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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법시대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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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ddnjs
등록일
2015-10-26 11:57:17
조회수
2848
요즘 대한불교 조계종과 종립 동국대학교가 무척 시끄럽다. 시끄럽고 쟁론과 투쟁이 많은 곳이 세속의 본 모습인 것은 맞다. 그러나 승가가 시끄러우면 수행이 없다는 방증이다. 승가가 수행하지 않고 권력과 부귀영화를 탐한다면 더이상 승가가 아니다.

세존께서는 교단을 비구, 비구니, 청신사, 청신녀의 사부대중으로 꾸릴것을 유교하셨다. 이 사부대중은 전부 수행자 단체인 교단의 구성원이다. 단 차이점이 있다면 출가와 재가의 차이점이다. 비구, 비구니는 전문수행자로써 수행에 전념하여 도과道果를 증득하면 재가수행자들을 지도하는 것이 임무이고, 재가수행자들은 출가수행자들이 수행에 전념하여 도과를 증득할 수 있도록 물질적인 지원을 임무로 하는것이 세존의 가르침이다.

세존께서는 당신 스스로 불사 즉, 절을 세우는 것에 관여하지 않으셨다. 재가제자들이 정사를 완공하면 그 정사에서 수행지도를 하셨을 뿐이다. 그렇다면 출가수행자들은 세존의 제자가 되기로, 세존의 가르침에 다라 수행하기로 목숨을 걸고 출가했다면 반드시 세존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이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세존의 제자가 아니므로 가사를 걸쳤어도 세존의 제자가 아니다.

자승 총무원장과 종단 집행부가 "대중공사"를 통하여 자정과 개혁을 한다고 발표했을 때, 나는 그말을 하나도 믿지 않았다. 그냥 보여주기, 면피용 행사에 그칠것이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역시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 왜색불교에 찌든 불교를 개혁하고자 동산, 청담, 성철스님 등이 정화개혁을 했던 그 출발부터 잘못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승만의 힘을 빌리고, 대처승들을 사찰에서 쫓아내기위해서 폭력배들을 동원한 결과가 지금 조계종이 이렇게 폭력과 은처, 부귀영화를 탐하는 세력의 씨앗을 심은 것이다. 정말로 조계종에서 법맥으로 따진다면 청정한 법맥이 몇이나 될까?

선방에서는 도과를 증득하겠다는 선객들을 보기가 드물다. 오로지 "안거성만"에만 집착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는 선객들이 태반이다. 마음속 깊이 탐,진,치 삼독심을 갈무리 한 채로 좌선을 한다고 앉아있다. 마음이 무소유 상태가 되어 앉지 않는데 몸만 앉아서 무슨 도과의 증득을 바란단 말인가.

소위 말하는 "사판승"들은 오로지 돈과 권력에만 집착하여 머리 깍은 사업가가 태반이다. 자비심은 눈을 뜨고 살펴봐도 찾을 수 없고 얼굴 관상과 눈을 보면 "살기"가 가득하다. 이런 자들이 삭발염의하고 부처님의 옷인 "가사"를 걸치고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 이런 자들이 가사를 걸치고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과연 청정승단인가?

묘법연화경 서품에서 세존께서 경을 설하려 하실 때, 증상만에 걸린 5000인이 세존의 법문도 듣지 않고 자리에서 떠난 사실을 볼 때, 승가의 가장 큰 적은 "자기합리화에 능한" "깨닫지 못했으면서 깨달은 채"하는 무리들임을 알 수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에 도대체 몇명의 "미륵부처"가 있는 줄 모른다. 전부 성불했다면 왜 "용화세계"는 이루어지지 않는가? 왜 상서로움은 우리나라에 없는가. 이렇게 많은 "미륵부처"가 있는데도...

세존께서 경에 이르시길 "성불은 나와 똑같은 상호와 덕성을 갖추어야 성불이라 한다"라고 말씀하셨고 또 많은 성문제자들에게 수기하시길 "무량겁 동안 수많은 부처님을 모시고 수행한 다음 비로소 성불하리라"라고 수기하셨다. 죽음이 한낱 꿈일진대 어찌 이생, 저생을 나눌 것인가? 수행은 멈춤이 없이 다음생에도 계속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누가 감히 성불했다하는가? 마왕 파순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망발을 입에 담을 수 있는가? 지금 부처님과 똑같은 상호와 덕성을 갖춘 스님이 조계종단의 누구인가?

우리는 세존의 성문제자도 아니다. 우리는 말법시대의 중생들이다. 우리들의 공덕이 빈약하여 위대한 스승이신 세존의 회상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이다. 경전에 모든 수행의 과정이 담겨있다면 성불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전은 큰 줄기만 제시할 뿐, 수행과정에서 나오는 수많은 경계들은 결국 자기의 신심과 의지로 헤쳐나가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 수행자만이 법상에 올라 스행자들을 지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함부로 "성불"했다는 말을 입에 담는 수행자들은 불교수행자들이 아니고 "마왕파순"의 마군족속이라고 보아야 한다.


출가수행자는 오로지 수행과 포교만 하고, 재가수행자는 사찰의 운영과 출가수행자들의 뒷받침에 전념하면서 출가수행자들의 지도로 수행하는 올바른 교단이 생겨날 수 있을까...

초야에 묻혀 계시는 눈밝은 수행자들이 포교현장으로 나오지 않는 이유는 재가수행자들의 잘못된 정신상태가 일조를 하고 있다. 몇백만원 자리 승복과 고급 승용차 타고 큰 절 주지하면 "큰스님"이고 허름한 승복에 눈빛을 갈무리하고 길을 걷는 스님들을 보면 "중"취급도 하지 않는 세태를 누가 만들었는가? 재가수행자들의 썩은 눈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승가나 재가도 똑같이 썩은 것이다.
작성일:2015-10-26 11:57:17 211.181.8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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