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게시판
답합니다.
 종원
 2015-11-03 21:01:30  |   조회: 2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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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의 가르침은 아상我相을 없애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아상이 없어지면 인상, 중생상, 수자상,
3상은 저절로 소멸되기 대문입니다. 금강경의 핵심은 이 아상을 없애야 공한 도리를 깨치기 때문입니다.

조계종단의 소의경전이 금강경입니다. 처음 발심하여 수행하다가 문득 공한 도리를 깨치게 됩니다. 그러나 보임과정에서 그 공한도리는 공함을 넘어서 꽉차는 공함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즉 일체법을 터득하기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금강경의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나"라는 것이 비어있고 "나"라는 것은 한낱 허망한 망상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나"가 비어있다는 것만을 알았다고 해서 수행자의 모든 업식이 저절로 정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시때때로 침노하는 업식은 비어있다고 깨달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려고 합니다. 이때 수행자는 자신이 철견한 불성의 자리를 관조하면서 그 업식을 녹여내게 됩니다.

금강경은 최초 수행의 경전이기도 하고 최후 성불의 지침서이기도 합니다. 금강경의 모든 말씀은 최후의 깨달음 즉 성불을 이루어야 완성되는 경전입니다. 수행과정에서 수많은 경계가 나와서 탐,진,치 삼독심을 일으킵니다. 신통이 나오면 이 신통력을 가지고 중생을 제도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사실은 명예욕에 바탕을 둔 "아상"입니다.

수보리존자에게 세존께서 32호상, 80종호를 상을 내세우는 것이라고 질책하는 진정한 뜻은 그것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보리 존자는 무엇보다도 32호상, 80종호 부처님의 상호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음을 세존께서 아셨기에 상을 가지고 있다고 질책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상호는 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수행하고 그 수행의 힘으로 중생을 제도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상호입니다. 실제로 32호상 중에서 "마음상"이 있습니다. 말처럼 고환과 성기가 몸안에 감춰진다는 뜻입니다. 수행을 해보면 삼매중에서 그러한 증험이 나온다는 것을 확실히 체득하게 됩니다. 여러사람들이 보는 게시판이니 상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금강경에서 성불이라함은 "자신이 부처임을 철견한 것"임을 말합니다. 묘법연화경을 정독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우리는 부모의 유전자를 받고 태어났습니다. 자식들은 부모를 닮았죠? 업은 유전자입니다. 유전자가 변하면
다음생에 더좋은 유전자를 가진, 더 많은 공덕을 지닌 부모에 의탁해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몸에 유전적인 병도없고 키도 크고, 체격도 좋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게 되죠. 특히 부모는 마음이 선량하고 재산이 많고 특히 불법을 깊히 신봉하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의탁해서 태어나는 수행자는 저절로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계속 윤회하면서 점점 부처님의 상호인 32호상, 80종호상에 근접해 갑니다. 이 상호는 수행의 증득이고, 중생제도의 공덕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비유가 아닙니다. 물론 비유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수행을 해보면 전부 실재한다는 겻을 알게 됩니다. 일반 중생들이 천신들을 볼 수 있습니까? 그러나 초기경전에 보면 세존께서 수많은 천신들과 대화하는 장면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절대로 비유가 아닙니다. 부처님게서 성문제자들이 하도 패거리짜고 싸우니까 도리천으로 올라가셔서 안거를 보내신 것도 역사적인 기록입니다. 경전을 중생의 눈으로 보면 전부 비유로 보이실겁니다...

삼천대천세계가 전부 부처라는 말은 불성을 말함입니다. 이 광활하고 끝이 없는 우주에 설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만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우리보다 더 생명이 장구하고, 우리보다 더 정신적으로 고차원적인 중생들이 많습니다. 그 존재들을 부처님께서는 천신이라고 칭하신 것입니다. 그 존재들은 우리보다 한층 공덕이 많은 존재들이죠. 부처님은 오계만 지켜도 그러한 공덕의 몸을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계율을 수지하고 지키므로써 마음이 꺼릴낄것이 없으니 당당하고, 그러니 죽더라도 악도(어두움, 무거움)에 끌려가지 않기 때문에 하늘몸을 받고 수승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수행자도 반드시 윤회합니다.

부처님의 전생담을 기록한 경전도 아울러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왜 석존께서 도솔천에서 강림하여 마야왕비의 몸에 의탁해서 태어나셨는지도 깊히 새겨보시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기술과 미국의 기술에 천지차이가 있듯이 중생의 눈으로, 머리로 이해할려는 것이 수행에는 엄청난 장애입니다. 그래서 수행의 기초는 세존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불상은 단지 위대한 스승의 존상입니다. 단지 가르침에 감사하는 예경의 대상일 뿐입니다. 불상에 무슨 의미(특히 기복적인)를 둔다면 무당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불상은 있어도 없어도 됩니다. 단지 모르는 중생들은 상이 있어야 즉 대상이 있어야 예경이라도 하기 때문에 불상을 조성화는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성불하소서...
2015-11-03 21: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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