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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가르침 :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닉네임
moosim
등록일
2016-05-25 06:52:17
조회수
4215

부처님 가르침 :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

깨달은 자가 되기도 전에

붓다(깨달은 자)의 가르침에 대한 주석(論)과 자신의 가르침을 주창하는

후대 불교인들과 그들이 속한 각종 종파들이 편찬한


수많은 위경들과 수많은 논서(아비담마, 아비다르마, 아비달마, 논장)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왜곡 변질시키고 많은 혼란과 오해를 야기시켜왔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많은 종파들이 난립하고 수많은 위경들과 논서들이 만들어지면서


부처님이 가르친 '깨달은 사람이 되는 바른 길(팔정도)'을 계발(바와나)하는

바른 실천법인 "팔정도 바와나(계발 수행)"는 유명무실해지고


각 종파들의 난해하고 관념적인 이론(논서)과 구호

뜬구름 잡는 허풍스러운 이야기와 말장난

그리고 기복(구복) 신앙만이 남았다는 점이다.

 

.

대승불교가 일어나게 된 데는 소위 기존 소승불교의 잘못도 크다. 부처님 사후에 부파불교의 난립과 함께 교리의 이론화와 힌두적 관념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깨달은 사람(소위 1200 아라한; 그 당시 부처님의 제자가 재가, 출가자를 포함해서 대략 10만명 정도 였다고 하는데 이들 중 대략 100중 1명을 아라한으로 이끌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도 아라한이다. 스승으로서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아라한)으로 이끌었던

부처님의 가르침은 진리로서의 생생한 생명력과 실천력을 잃어갔고 기존 승려집단은 승원을 중심으로 고도의 철학적이고 난해한 이론(청정도론 따위의 수많은 아비담마)을 만들면서 소수의 지식인들만이 알 수 있는 고급종교가 되어 왕실과 귀족들의 지원아래 중생들과 유리된 엘리트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재가신자들과 개혁적인 승려들은 중생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추상적인 사변만 일삼으며 권력과 유착하여 일신의 안락만 추구하는 기존 승단을 비판하면서 부처님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 중생들을 구원하는 참된 불교가 되자고 대승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들은 기존 승려들의 이기적이고 귀족적인 모습을 소위 '소승'이라 공격하고 스스로를 모든 것을 담는 수레, 소위 ‘대승'이라 자칭하면서 대중적인 신앙운동을 전개시키고 대승경전을 편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의도는 순수했지만 그들은 일반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수단으로 부처님이 가르친 실천법인 팔정도 바와나(계발 수행)를 외면하고 인도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박티신앙과 브라만사상의 철학으로부터 차용하는 우를 범했다

그들은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박티신앙(박티는 '헌신'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을 받아들여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 헌신하기만 하면 법(法, 진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몰라도(바르게 이해하지 못해도), 그리고 부처님이 가르친 실천법인 "팔정도 바와나(계발 수행)"를 실천하지 않아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아미타불 신앙을 발전시켜 나갔고, 

한편으로는 부파불교를 오염시켰던 브라만사상의 철학을 본격적으로 차용하여 이를 대승불교의 철학적 기초로 삼았다


아미타불 신앙은 극락을 건설(창조)하고 다스리는 신격화된 최고의 부처인 아미타불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죽어서 극락(천국의 다른 이름)에 갈 수 있다는 신앙이다. 아미타불도 부처라 신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가 거느린 보살들은 신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대중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또 다른 이름은 관자재보살, 반야심경 첫 구절에 등장)의 능력은, 고통 받는 모든 중생들을 살펴 볼 수 있는 천 개의 눈(천안)과 그들을 고통에서 구해 줄 천 개의 손(천수)을 가진 전지전능한 신에 버금가는 능력이다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등의 협시보살을 거느린 아미타불은, 하급 신을 거느린 우주 창조신 브라만, 또는 천사를 거느린 천국을 포함한 우주 창조신 여호와와 같은 개념(관념, 상상)의 존재다


아미타불은 AD 2세기경에 저술된 화엄경류(대방광불화엄경 등)에 등장하는 화엄교주(화엄종파의 교주)인  

비로자나불(비로자나는 산스크리트어 바이로차나의 한문 음사로, 혼돈의 어둠에서 빛을 창조하여 온 우주에 두루 빛을 비추는 존재로서 하느님 또는 창조주라는 의미, 다른 이름으로 일명 대일여래)이 창조하여 자신과 함께 우주 5온을 구성하는 5온불 중 한 부처로 묘사되기도 한다 

소위 화엄성중 또는 신중은 화엄경과 화엄교주를 수호하는 여러 하급신의 무리를 일컫는다


AD 1세기경에는 공사상을 기반으로 한 반야계통의 대승경전(반야심경, 금강반야바라밀경/금강경 등)이 나타나고, AD 2세기경에는 화엄경류, AD 4세기경에는 법화경류(묘법연화경 등)의 대승경전이 나타난다

AD 4세기경에 완성 저술된 대승경전의 왕이라 불리는 묘법연화경에 이르러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머나먼 과거로부터 미래 영겁에 걸쳐 존재하는 초월적인 신적 존재로 묘사된다

이로써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는 힌두교 -불교의 등장으로 몰락했던 브라만교가 인도토속신앙과 변형된(힌두화 된) 불교를 흡수하여 종교적 형태로 다시 등장한 브라만교의 전승- 와 거의 차이가 없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인도 땅에서 불교가 사라진 것은 불교(부처님 가르침)가 서서히 변형되면서 불교(부처님 가르침)의 '진리로서의 생생한 생명력'과 '생생한 실천력, 부처님이 가르친 실천법인 팔정도 바와나(계발 수행)의 실천의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며,

소위 기도발이 더 좋은(영험한 신들이 더 많은;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과 어리석은 견해와 어리석은 신앙에 더 잘 부합하는 더 좋은 기복신앙인) 힌두교만 믿으면

힌두교화된(위경들을 통해서 힌두교 신들과 비슷하게 부처들이 신격화된) 불교는 자동적으로 내포된다고 인도인들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지혜롭고 자비로운(사랑이 넘치는) 어떤 신(하늘님, 브라만, 여호와, 신격화된 부처..)이나 어떤 신격화된 보살(대자대비 관세음보살..)에게 복(행복)과 지혜와 사랑을 구하는 기도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람(부처, 보살)이 되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바른 실천인 팔정도 바와나(계발 수행)를 가르쳤다

 

진정 행복해지고 싶다면 지혜롭고 자비로운(사랑이 넘치는)  어떤 위대한 존재에게 복(행복)과 지혜와 사랑을 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혜롭고 자비로운(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 진정으로 행복해진다

작성일:2016-05-25 06:52:17 124.53.89.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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