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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산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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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sim.park
등록일
2017-09-15 17:15:41
조회수
2232

이미지: 하늘, 실외


사진 : 5세기 초 찬드라굽타 2세의 아들 쿠마라굽타 1세에 의해 건립된 학문불교의 중심인 나란다(Nalanda, 那爛陀) 대학의 유적. 이 유적지를 살펴보면 학승과 수행승들의 기숙사와 수도원에는 시중드는 하인들의 방이 승려의 방마다 딸려 있다.



불교 발원지는 인도다. 그러나 현재 인도 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이고, 불교는 겨우 0.9%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인도에는 불교 유적만 있고 불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원인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겠으나 지금까지는 이슬람의 침입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 원인에는 단순히 이슬람의 침략만이 아니라 그 외에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8세기 초(AD 712년) 우마이야 왕조의 장군 무하마드 빈 카심이 신드와 펀잡 지방을 정복하면서 이슬람이 인도에 들어오게 되었다. 15세기까지 지속된 이슬람의 인도 정복 결과 델리 술탄 왕조와 같은 이슬람 국가가 인도대륙에 수립되었으며, 이후 16세기에 이슬람을 신봉하는 무굴제국이 세워져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8세기 초부터 인도대륙을 정복하기 시작한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사원이 파괴되면서 불교는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복잡한 힌두교의 다신교적 일신론(택일신교; 3~4억에 달하는 힌두교 신들 중에는 비슈누신의 화신으로서의 부처와 예수 그리고 알라까지도 들어가 있다. 이 신들 중에서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주신을 택일하는 택일신교)은 이슬람교의 엄격한 일신론의 영향을 받아 15세기~18세기에 걸쳐 펀잡 지방에서 발생한 시크교(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종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게 되고, 힌두교는 다시 부활하여 인도대륙과 주변국가를 종교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인도대륙에서 불교는 8세기에 이슬람이 침공하기 이전에 이미 대중적 지지 기반을 상실했고, 불교의 생명력은 이미 병든 상태였다. 그리하여 불교는 이슬람 침공으로 완전히 쇠망할 수밖에 없었다.

무신론인 불교가 인도대륙에서 「초기불교 ―> 부파불교 ―> 대승 중관론 ―> 대승 유식론 ―> 밀교」로 변하면서 유아론(有我論)과 수많은 신(神)의 개념이 등장하고, 차츰 힌두화의 길을 걸으면서 힌두교와 별 차이가 없어지고, 불교는 자신의 독자성을 잃어갔다. 즉, 불교의 쇠망에는 불교 자신의 내부 변질이 근본적인 몫을 했다는 말이다.

당초 상인(장자)들과 재가신도 그리고 정치세력의 지원을 받았던 불교는 승가에 필요로 하는 모든 물자와 사원 조성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까지 풍부하게 시주 받아, 1세기경부터 불교교단은 장원제도(莊園制度)의 바탕 위에서 경제적 기반을 다져 엄청난 토지를 지니게 됐다. 이렇게 부를 축적하게 되니, 수행에도 게을러진 비구들이 탁발하려 하지 않고 사원에 들어앉게 돼, 근검하는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점차 잃어갔다.

부파불교가 소승의 딱지를 받게 된 것도 부족함이 없는 사원에서 수행은 등한시 한 채 법에 대한 철학적 연구에만 정신이 팔려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본분을 저버린 당 시대의 모습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그리고 인도의 대중들은 이렇게 변질되어가는 불교를 차츰 등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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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불교는 왜 병들게 됐을까? 주요 원인은 힌두교 의식을 받아들이면서 불교 본래의 정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즉, 7~8세기경 불교교단이 힌두교 의례의식(제사, 기도 등)을 받아들이고, 힌두교 정신(박티사상 등)을 받아들이면서 9~10세기경부터 불교는 힌두교와 구분할 수 없게 됐다.

또한 불설(붓다가 설한 것)이 아닌 방대한 불교경전을 편찬 저술했다가 이를 다시 요약본으로 만들고, 그 요약본을 다시 다라니(陀羅尼, dharani)로, 다라니를 만트라(眞言, mantra)로 줄였는데, 일반인들은 방대하고 난해한 불교경전과 만트라로는 불교를 이해할 수 없었던 점도 불교가 지지기반을 상실한 이유였다.

그러다가 보니, 차츰 시주가 줄고 재가자의 발길이 멀어져가면서, 가난해진 승려들은 재가자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 신격화된 여러 보살들을 내세웠다. “힌두 신들이 부처님께 귀의해 보살이 됐기 때문에, 힌두 신전에 갈 필요가 없다. 여기로 오면 각종 보살이 신적인 능력으로 너희들의 소원을 이루어 줄 테니, 여기 와서 빌고 시주하도록 하라…” 이런 궁색한 자구책이 오히려 불교의 힌두화를 재촉했다.

그러한 상황에 이슬람 세력이 쳐들어와서 1203년 불교(밀교)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비크라마실라 사원(밀교 사원)을 파괴함으로써 인도에서 불교는 자취를 감추게 됐다.

이상을 정리해보면, 인도에서 불교가 멸망한 원인은 크게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내부적 요인

(1) 불교의 학문화와 불교 수행의 변질

이슬람이 인도대륙을 침공했을 때 인도대륙에는 불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힌두교도 있었고 자이나교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힌두교는 물론 자이나교도 살아있고, 심지어 조로아스타교 조차도 살아있다. 그런데 유독 인도대륙에서 불교만 사라지게 된 것에는 아래와 같은 내부적 원인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변질된 불교에서는 붓다가 가르친 수행인 '팔정도 계발 수행(정각으로 가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인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이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이다.

인도의 불교는 한편에서는 붓다가 가르친 수행이 변질된 참선, 고행, 기도, 염불을 강조하고 또 한편에서는 이론불교에 몰입 돼 있으면서 민초들의 삶 구석구석에 세심한 눈길을 주지 못했다. 밑바닥 사람들은 하다못해 굿을 하던지 푸닥거리를 해야 고단한 삶에 잠시나마 위안을 얻고 사는 재미라도 날텐데, 구체적으로 이해해서 실천할 수 있는 수행방법은 가르쳐 주지 못하면서 그저 벽만 쳐다보라거나 이해할 수도 없는 어려운 문자로 설법(법을 설명)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악순환만 거듭되어 신도와 승려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 토속신앙마저도 흡수한 힌두교를 당해내기 어려웠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의 불교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교훈이다.

승가(수행자 집단)는 붓다가 가르친 수행(팔정도 계발 수행)을 자신들도 바르게 실천하고 대중들에게도 바르게 가르치는 자리이타의 노력보다는 형이상학적 논의에 치중하는 이론불교인 아비달마불교로 변질되고, 또 한편으로는 힌두화한 변질된 기복불교가 성행하면서, 지각 있는 승려들은 달마(達磨)처럼 동쪽(중국, 티베트)으로 떠나가게 된 것이다.

때문에 인도대륙에서 불교가 소멸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은 대중을 외면한 부파불교가 소승의 딱지를 받게 되고, 부족함이 없는 사원에서 붓다가 가르친 바른 수행의 바른 실천보다는 법(法)에 대한 철학적 연구에만 몰두한 나머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본분을 상실해 인도의 민중들로부터 외면을 받은 것에 있다.

불교는 카스트제도를 부정하고 평등을 설파하는 멋진 교의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승려들은 자기 학문에만 몰입하고, 부파간의 경쟁에만 몰두한 나머지 자신들의 바른 수행은 물론이고 대중들을 소홀히 했다. 인도 대중들이 오랜 세월 동안 힌두교에 의해 세뇌되어 관습화된 카스트제도의 불평등과 불편함에 점점 더 길들어감에 따라 불교의 평등정신에 큰 매력을 못 느끼고 불교의 우수성은 인도 대중들에게 힘을 잃어갔다.

초기불교가 차츰 분열을 해서 부파불교가 되면서 소위 아비달마불교(아비담마불교)라는 이론중심의 불교가 번성하고, 승려들은 대중을 위한 노력보다 붓다가 거부했던 형이상학적 논의(논쟁)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즉, 부파불교는 일반인을 위한 대중적 노력보다 형이상학적인 논의에 치중하는 불교이론의 전문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신도들이 사원을 찾아가면, 연기, 팔정도, 사성제 할 때까지는 좋았는데, 차츰 공(空), 색(色), 색즉시공이 등장하면서 알아듣기 어려워진 것이다. 힌두교는 그냥 절대전능한 신을 믿으면 되는데, 까다로운 이론을 우선시하는 학문화된 이론불교는 점차 대중들의 호응에서 멀어지게 됐다.

불교가 난해하고 어려운 이론으로 무장하고 대승화되면서, 단순하게 힌두 신들에게 기도하고 복을 빌고 제사지내며 살던 단순한 대중에게 거부감이 나타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론보다는 가까이에서 항상 눈에 보이는 신상을 믿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5세기 초 찬드라굽타 2세의 아들 쿠마라굽타 1세에 의해 학문불교의 중심인 나란다(Nalanda, 那爛陀) 대학이 창건됐다. 현장승려가 구술한 대당서역기에 의하면 640년경 만 여명의 학생과 천 오백 여명의 교수가 있었던 이 대학의 기숙사와 수도원의 방에는 학승과 수행승 그리고 그들을 보조하는 하인들이 기거했다.

그리하여 나란다대학으로 대표되는 학문불교는 토론과 교리공부를 통해 귀족과 지식층만을 위한 ‘학문화의 길’을 걷고 있었다. 대중적 지지가 없는 이런 학문불교는 그들만의 세계에 천착하면서 대중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데 인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승원(사찰)과 대학에서 학문연구에 몰두하고, 자기들끼리의 지적 유희에 빠져있는 사이 서민층의 대중들은 불교에 등을 돌리고 힌두교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 외에도 불교 멸망의 내적 요인이 많겠으나 확실한 것은, 붓다가 가르친 바른 수행(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이 단절된 채 대중들과 유리된 출가자 중심의 승원불교는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2) 불교의 힌두화

인도대륙에서 불교의 쇠퇴를 이야기 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의 하나가 ‘불교의 힌두화’다.

대승의 신격화된 많은 부처와 많은 보살들은, 대중들의 기복심리에 필요해 보이는 힌두교의 신들을 이름만 달리해 불교로 편입시킨 것이다. 이러다가 보니, 서민들은 별반 다를 것 없는 자기 집 근처의 힌두 신전에 있는 신들을 찾아가게 되었고, 그러면서 불교는 더욱 쇠잔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자 지각 있는 대승 승려들은 달마처럼 동쪽으로 가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 인도의 뿌네대학에 다니면서 힌두교를 굳게 믿는 교수들 밑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그들은 서슴없이 불교와 힌두교는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왜 불교가 힌두교와 같은가라고 물으면 그들이 답하는 것은 힌두교의 사상과 불교의 사상(붓다가 설하지 않은 비불설 사상인 여래장 사상 등)이 같다는 것이다. 우리(불교인)가 아무리 그들과 같지 않다고 말해도 그들은 여전히 불교와 힌두교는 같다고 말할 것이다. 이제 방편이라는 이름으로 오해를 받을만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계속 변명하기보다는 차라리 오해받지 않을 붓다(석가모니 부처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 허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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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적 요인

외부적 요인으로 힌두교의 융성과 힌두교의 경쟁 종교인 불교에 대한 집요한 박해, 그리고 이슬람의 침략에 따른 무자비한 파괴로 1500년 전통의 인도 불교는 1203년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슬람교도인 아프카니스탄의 투르크계 가즈니(Ghazni) 왕조는 986년부터 본격적으로 인도 정복을 시작했다. 이들은 북인도 원정에서 이민족의 이슬람교로의 개종, 노예와 물자의 약탈이 주된 목적이었으므로 점령지를 오랫동안 지배하지 않았지만 불교나 힌두교의 사원과 성지를 파괴하고 보물을 약탈했으며 승려를 살해하는 역사상 유래가 없는 참극을 자행했다.

그 후 이슬람교도인 구르(Ghur) 왕조에 이르러서, 1203년 당시 불교(밀교)의 교단 근거지라 할 비크라마쉴라 사원이 파괴되면서 불교는 인도대륙에서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리게 됐다.

결국 불교의 고향 인도에서 불교가 쇠망한 원인은 다양한 신들로 이루어진 힌두교에 동화돼 정법을 지키지 못한 데 있다. 새로운 불교운동이라 할 대승불교가 등장했으나 대승불교 역시 초기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힌두화에 앞장섰다. 힌두화 된 불교는 붓다(석가모니 부처님)가 그토록 비판했던 주술주의 의례주의를 불교 안에 도입했고, 불교는 서서히 힌두교에 동화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7세기(629년~645년)에 현장승려가 인도 곳곳을 탐방한 것을 구술한 대당서역기의 내용 중에, “신드(Sindh) 지역의 수행승이 처자식과 함께 살면서 가축도 기르고 살생을 일삼는다.”는 대목이 있다. 이렇게 붓다가 가르친 바른 수행의 전통이 단절된 출가자(승려)들의 타락과 부패, 교단의 무능함, 신도 양성의 부재, 거기에 이슬람의 침공이 결정적으로 불교를 멸망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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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이러한 원인들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인도에서 불교가 쇠망해가는 상황이 현재 한국불교가 처해 있는 상황과 너무 유사하기 때문이다. 즉,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불교를 대체했듯이 기독교가 불교를 대체해가고 있으며, 불교가 힌두화 했듯이 우리나라에선 49재나 천도재와 같은 방편불교가 성행하고, 제불보살을 신격화하는 기도의식과 기복불교가 성행해서 기복으로 충당하는 사찰재정과 축재로 타락해가는 종단 지도층,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붓다가 가르친 바른 수행(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이 단절되면서 변질된 수행풍토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관세음보살로 대표 되는 ‘관음신앙’, 아미타불로 대표 되는 ‘정토신앙’, 지장보살로 대표 되는 ‘지장신앙’과 같은 타력신앙은 본질적으로 타력신앙의 종교인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어서 자력신앙의 종교인 불교의 특징이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 바로 이런 현상이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기복신앙인 힌두교에 점차로 흡수되면서 멸망하게 된 현상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도들과 소통하기엔 너무 큰 간격을 지니고 있는 어려운 한문경전, 난해한 한문경전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정법(붓다의 바른 가르침) 대신 현학적으로 설명하려는 학문적 태도를 타파하는 문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붓다께서 가르치신 바른 수행인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을 복원하는 문제가 한국불교의 미래에 내려진 과제라 하겠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출처 : http://blog.daum.net/511-33/12370013)

사진 : 조계종의 본찰인 조계사에서 종종 벌어지는 집단 난투극

이미지: 사람 3명, 사람들이 서 있음, 실외


 


작성일:2017-09-15 17:15:41 119.64.23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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