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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경이 소설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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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sim park
등록일
2018-07-21 15:07:28
조회수
2776
Q1 : 지장경이 소설인지요?

얼마전 네이버 지식에서 지장경이 소설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내용은 지장경은 부처님이 설법한 것이 아니고 2000년 전에 대승 불교 스님들께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즉 지장보살도 창작이고 아미타불도 창작이라는 것이지요. 제가 지장경을 여러번 읽어 보았으나 회의적인 내용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지장보상님 형상을 만들고 기도하면 극락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어 이상하다고는 했는데...

지장경이 소설인지? 지장보살은 실제 없는 것인지? 아미타불도 없는 것인지? 극락이란 것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꾸며 만든 것인지? 궁금증을 풀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Q2 :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한국불교가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승불교, 소승불교에 대하여 공부하고 싶은데 정리된 책이 있나요?

Q3 : 주변에서 자꾸 창가학회 SGI(일본 법화종)를 믿으라고 강요가 심한데 어찌하면 좋을지요? 남묘호렌게쿄(창가학회 SGI, 일본 법화종)의 신앙에 의문이 생깁니다. 진실을 알고 싶어요.

(아래 글이 말씀하신 긍금증 해결에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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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부처님 가르침)의 변질

법法은 붓다Buddha의 가르침을 뜻하는 고대인도어(빠알리어) 담마Dhamma(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붓다Buddha는 '깨달은 자', '눈을 뜬 자'를 뜻하는 고대인도어로 일반명사다. 고타마Gautama 붓다Buddha(석가모니불)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불佛 또는 불타佛陀는 고대인도어 붓다Buddha를 중국어(한문)로 음사한 것이다. 우리말(한국어, 한글)로는 부처라고 한다.

그러면 '깨달은 자', 붓다(부처님)는 무엇을 깨달았나?

부처님은 법法을 깨달았다.
부처님은 법法을 깨닫고 나서 법法을 가르쳤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法은 '깨달은 내용'(깨달음의 내용)과 '깨닫는 방법'(깨달음의 길)을 통칭한 것이다.

부처님이 가르친 '깨달은 내용'은 '존재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다.

부처님이 가르친 '깨닫는 방법'은 '팔정도(깨달은 자가 되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를 닦는 수행'이다.

부처님은 수행을 통해서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완전히 바르게 깨닫고 나서, 자신의 수행 경험을 시행착오를 빼고 '경험적+합리적'으로 정리하여, 자신과 같은 '깨달은 자'(붓다, 부처)가 되는, 달리 말하면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으로 가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 줄임말로 팔정도라 이름 짓고 '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팔정도 바와나; 바와나Bhāvanā는 계발 수행을 뜻하는 고대인도어)을 가장 중요하게 가르쳤다.

부처님은 팔정도를 바와나(계발 수행, 계발하는 수행, 닦는 수행)의 관점에서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 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세 부분으로 그룹핑하고, 설법(법을 설명함) 시의 편의를 위해 '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사마디 바와나)을 사마타, '사마타 후에 깊은 빤냐(혜慧; 정견·정사유)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 바와나)을 위빠사나라고 이름 붙였다. ('실라 바와나'는 그냥 실라)

팔정도 바와나, 즉 실라(戒; 정어·정업·정명)•사마디(定; 정정진·정념·정정)•빤냐(慧; 정견·정사유) 바와나(계발 수행)를 한문 번역경전의 표현으로 말하면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이고 부처님이 사용한 고대인도어로 말하면 실라•사마타•위빠사나다.

부파불교(소승불교)든, 상좌불교든, 대승불교든, 중관불교든, 유식불교든, 밀교(금강승불교, 티벳불교)든, 선종(선불교)이든, 화엄종(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파)이든, 일본 법화종(남묘호렌게쿄, 나무묘법연화경교,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파, 국제창가학회 SGI)이든, 조계종(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파)이든, 천태종(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파)이든...

부처님佛이 가르친 '깨달음의 내용'(깨달은 내용; 존재의 실상과 진리)은 어느 정도 유사하게 가르친다 할지라도,

(중국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노장사상에서도 '깨달음의 내용, 즉 도道를 깨달은 내용'을 부처님이 가르친 '법法을 깨달은 내용'과 어느 정도 유사하게 가르친다. 한문으로 번역된 불교 경전의 사상이나 교리를 '깨달음의 내용'이 어느 정도 유사한 노장사상을 적용하여 이해하는 중국의 불교를 격의불교格義佛敎라고 한다. 예컨대, 노장사상의 "무無" 또는 "허虛" 개념을 적용하여 반야경般若經의 "공空" 개념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 등을 말한다. 그러나 노자-장자의 가르침에는 ‘도道의 경지, 깨달음의 경지, 완전한 행복의 경지’에 도달하는 구체적인 '깨닫는 방법'과 '나我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인 자비Metta-Karuna'에 대한 가르침이 없는 아쉬움이 있다)

부처님佛이 가장 중요하게 가르친 구체적인 '깨닫는 방법'(실천법, 수행법)인 '팔정도를 닦는 수행'(실라•사마타•위빠사나; 팔정도 바와나)을 변질 없이 바르게 가르치지 않는 불교는 부처님佛이 가르친 법法(깨달은 내용과 깨닫는 방법)을 온전히 가르치는 불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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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부처님 가르침; 깨달은 내용과 깨닫는 방법)의 변질 : 소승불교(부파불교)와 대승불교

깨달은 자가 되기도 전에 부처(깨달은 자)의 가르침(法)에 대한 주석(論)과 자신의 가르침을 주창하는 후대 불교인들이 만든 각종 불교종파들과 그들이 저술 편찬한 수많은 '위작(불설이 아닌, 즉 부처님佛이 설한 것이 아닌) 불경'(위경)들과 수많은 주석서(아비담마, 아비다르마, 아비달마, 논장, 논서論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왜곡 변질시키고 많은 혼란과 오해를 야기시켜왔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각종 불교종파들이 난립하고 수많은 위경들과 논서들이 만들어지면서 부처님이 가르친 '깨달은 사람이 되는 바른 실천법'(깨닫는 방법)인 '팔정도를 닦는 수행'은 유명무실해지고, 각 종파들의 난해하고 관념적인 이론(논서)과 구호, 뜬구름 잡는 허풍스러운 이야기와 말장난, 그리고 기복(구복) 신앙만이 남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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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가 일어나게 된 데는 기존 부파불교(소위 소승불교)의 타락과 변질이 주요 원인이 되었다. 부처님 사후에 부파불교의 난립과 함께 교리의 이론화와 힌두적 관념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깨달은 사람(이른바 1200 아라한; 부처님도 아라한이다. 스승으로서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아라한)으로 이끌었던 부처님의 가르침은 진리로서의 생생한 생명력과 실천력을 잃어갔고 기존 부파불교(소위 소승불교)의 승려집단은 승원(사원, 사찰)을 중심으로 고도의 철학적이고 난해한 이론(청정도론 따위의 수많은 아비담마)을 만들면서 소수의 지식인들만이 알 수 있는 고급종교가 되어 왕실과 귀족들의 지원 아래 중생들과 유리된 엘리트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초 상인(장자)들과 재가신도 그리고 정치세력(브라만 계급의 정치, 사회, 경제적 지배에 대항하는 크샤트리야 계급인 왕들)의 지원을 받았던 불교는 승가에 필요한 모든 물자와 사원 조성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까지 지나치게(?) 풍부하게 시주 받아, 1세기경부터 불교교단은 장원제도莊園制度의 바탕 위에서 경제적 기반을 다져 엄청난 토지와 재산을 지니게 됐다. 이렇게 부를 축적하게 되니, 수행에도 게을러진 비구들은 탁발하려 하지 않고 사원에 들어앉게 되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점차 잃어갔다.

인도에서 부파불교가 소승의 딱지를 받게 된 것도 부족함이 없는 사원에서 수행은 등한시 한 채 법法(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철학적(학문적) 연구에만 정신이 팔려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는 불교(부처님佛 가르침敎)의 본래 정신을 저버린 당 시대의 모습에 그 원인이 있었다. 그리고 인도의 대중들은 이렇게 변질되어가는 불교를 차츰 등지게 되었다.

부파불교가 법法(부처님 가르침; 담마, 다르마, 달마)에 대한 철학적 연구와 주석서(아비담마, 아비다르마, 아비달마; 논장, 논서) 저술에만 몰두하고 부파 간의 경쟁과 논쟁에 정신이 팔려 하화중생의 본분을 저버렸지만, 그나마 한 가지 잘한 점은 '부처님의 말씀(가르침, 설법)을 기록한 경전'(오늘날 '초기경전' 또는 ‘니까야’라고 불림; 니까야는 부처님 말씀을 갠지스강 유역의 고대인도 민중어인 빠알리어로 기록한 경전모음을 지칭함)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혁적인 승려들과 재가신자들은 중생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추상적인 사변만 일삼으며 권력과 유착하여 일신의 안락만 추구하는 기존 부파불교 승단을 비판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 중생들을 구원하는 참된 불교가 되자고 대승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들은 기존 부파불교 승려들의 이기적이고 귀족적인 모습을 소위 '소승'이라 공격하고 스스로를 모든 것을 담는 수레, 소위 ‘대승'이라 자칭하면서 대중적인 신앙운동을 전개시키고 대승경전을 저술 편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의도는 순수했지만 그들은 일반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수단으로 부처님이 가르친 실천법(깨닫는 방법)인 '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을 외면하고, 인도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는 박티신앙과 일부 브라만사상(또는 힌두사상)을 차용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변질시키는 우를 범했다

그들은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는 박티신앙(박티는 '헌신'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을 받아들여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 헌신하기만 하면 법法(진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몰라도, 그리고 부처님이 가르친 실천법인 '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을 실천하지 않아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아미타불 신앙'을 주창하여 확대시켜 나갔고, 한편으로는 부파불교를 오염시켰던 브라만사상의 철학을 본격적으로 차용하여 이를 대승불교의 철학적 기초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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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 신앙은 극락을 건설(창조)하고 다스리는 신격화된 최고의 부처인 아미타불을 믿고 따르기만(아미타불을 염불하기만)하면 죽어서 극락(천국의 다른 이름)에 갈 수 있다는 신앙이다. 아미타불도 부처라 신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가 거느린 보살들은 신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대중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는 천수천안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또 다른 이름은 관자재보살, 반야심경 첫 구절에 등장)의 능력은, 고통 받는 모든 중생들을 살펴 볼 수 있는 천 개의 눈(천안)과 그들을 고통에서 구해 줄 천 개의 손(천수)을 가진 전지전능한 신에 버금가는 능력이다. 극락을 건설(창조)하고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등의 협시보살을 거느린 아미타불은, 천국을 포함한 우주를 건설(창조)하고 천사를 거느린 우주 창조신 여호와 또는 하급신을 거느린 우주 창조신 브라만과 같은 개념(관념, 상상)의 존재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아미타불을 창조했다는 부처다. 비로자나불의 비로자나는 산스크리트어 바이로차나의 한문 음사로, 혼돈의 어둠에서 빛을 창조하여 온 우주에 두루 빛을 비추는 존재로서 하느님 또는 창조주라는 의미다(다른 이름으로 대일여래라고도 한다). AD 2세기경에 완성 저술된 화엄경류(대방광불화엄경 등)에 등장하는 화엄교주(화엄종파의 교주)인 비로자나불은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아촉불·보생불·아미타불·불공성취불등 네 명의 부처를 창조하여 우주를 이루는 5온(?)을 구성하는데, 비로자나불은 이들을 창조한 본초불로써 우주 삼라만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를 창조하여 내려 보내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고 다스리는 우주 창조주(창조신)이다. 화엄경과 화엄교주를 수호하는 여러 하급신의 무리를 소위 화엄성중 또는 신중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브라만교 또는 브라만교의 전승인 힌두교의 우주 창조주(창조신) 브라만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관념, 상상)의 존재다

아미타경과 지장경은 누가 설했을까? 부처님이 설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AD 2세기경에 저술 편찬된 아미타불이 등장하는 화엄경류(대방광불화엄경 등)와 마찬가지로 아미타불이 등장하는 정토경류(정토삼부경《대무량수경 · 관무량수경 · 아미타경》 · 지장경 · 미륵경 등)에 속하는 '위경, 즉 위작(부처님佛이 설한 것이 아닌, 불설이 아닌) 경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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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1세기경에는 공空 사상을 기반으로 한 반야계통의 대승경전(반야심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경, 반야경 등)이 저술 편찬되고, AD 2세기경에는 화엄경류(대방광불화엄경, 40화엄, 60화엄, 80화엄, 보현행원품 등)의 대승경전이, AD 4세기경에는 법화경류(묘법연화경, 법화삼부경 등)의 대승경전이 저술 편찬된다.

AD 4세기경에 완성 저술하여 편찬된 대승경전의 왕이라 불리는 묘법연화경에 이르러 고타마 붓다(석가모니 부처님)는 머나먼 과거로부터 미래 영겁에 걸쳐 존재하는 초월적인 신적 존재로 묘사된다

이로써 부처님(佛)의 가르침(敎)을 뜻하는 불교佛敎는 기원전 6세기경에 성립된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종파에 의해 변질을 거듭하여, 힌두교(불교의 등장으로 몰락했던 브라만교가 인도토속신앙과 변질된, 즉 힌두화 된 불교를 흡수하여 종교적 형태로 다시 등장한 브라만교의 전승)와 거의 차이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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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은 금강반야바라밀다경의 줄임말이다. 금강경은 중관학파의 공空 사상을 담아 저술 편찬된 ‘위작(불설이 아닌, 즉 부처님佛이 설한 것이 아닌) 불경'으로 대승불교의 사상(이론)적 기반이 된 경전이다

공空 사상은 인도의 나가르주나Nagarjuna(용수龍樹; 150? ~ 250?)에 의해 AD 3세기에 완성되었다. 용수는 여러 저술(아비달마, 논서)들을 통하여 ‘반야경’의 공空 사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면서 부파불교(소승불교)와 기존의 브라만 사상 및 힌두교 주장들을 모두 비판했다

그러나 관념적인 공空 사상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부처님의 실천적 가르침을 배척하게 된다

용수는 진공중도의 반야공관을 설하였는데, 이 설에 기초를 둔 종파를 중관학파中觀學派(산스크리트어 madhyamika), 중관파 또는 중관불교라고 한다

용수는 자신이 저술한 대표적인 아비달마(논서)인 ‘중론’에서 모든 사물은 상호 의존적인 연기관계로 존재하기 때문에 자성이 없으며 모든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공空하다고 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진짜 진리(眞諦, 勝義諦)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본체로서 인간의 사고 내지 인식작용이 미치지 않는 초월적 상태로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과 무관한 영원한 무루의 실체를 말하는데 이것은 플라톤이 주장하는 이데아의 세계, 변화하는 현상세계의 배후에 있는 영원하고 본질적인 실체(본체)의 세계와 유사하다

이에 비해 덮힌 진리(俗諦, 世俗諦)는 상대적인 진리로 인간의 시각과 사유에서 본 법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플라톤이 주장하는 동굴의 세계 또는 현상의 세계와 유사하다

용수가 주창한 진제(진짜 진리)에 의하면 "이 세상의 일체 사물은 본래 생겨나지도 소멸하지도 않으며, 늙고 죽는 것도, 심지어 깨달음마저도 모두 거짓된 관념(空)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물의 생기소멸과 생명체의 생로병사는 모두 ‘덮힘’의 결과에 지나지 않으니 이 ‘덮힘’을 제거하면 불생불멸의 무루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용수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덮힘’의 세상으로 '환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눈을 뜨기까지 그것은 마음을 괴롭히는 고통의 바다지만 일단 눈을 떠버리면("어떻게 How?") 고통스럽던 꿈은 이슬과 같이 사라지고 영원한 평안과 해탈 속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이다

용수는 이와 같이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空을 자신의 저술(아비달마, 논서, 논장)을 통해서 이론적으로 논증함으로써 대승불교의 철학(사상, 학문)적 위상을 정립하였지만 생생한 깨달음인 해탈지경을 관념적인 공空으로 바꿔버림으로써 불교를 사실에 관한 법에서 관념이 지배하는 추상적인 법으로 변질시키고 말았다

즉 부처님이 증득(증명경험으로 득)한 해탈지경은 번뇌가 사라진 인간의 완성된 지혜의 마음으로 우주의 실상(실제 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를 비추는 살아있는 지혜(빤냐, 통찰 지혜; 수행의 통찰 경험에 의해서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였지만, 용수(龍樹는 나가르주나Nagarjuna의 한문 번역)의 사유와 논리에 의해 반야(般若는 빤냐Panna의 한문 음사)는 철학적 사유로만 존재하는 관념적인 지혜, 즉 관념적인 공空의 지혜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서 수행을 실천하기보다는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또는 비현실적인) 사람들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공空을 "논리"로써 깨닫고는 모두 반야를 얻었다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용수는 ‘중론’으로 대표되는 여러 논서들을 저술하여 "대승불교의 논리"를 창시했기 때문에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러나 용수는 훌륭한 논리로 소위 소승(부파불교)과 외도들을 굴복시킨 훌륭한 사상가(학자)이자 철학승이었지만 수행승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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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범부들이 집착하고 있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생명체(오온)를 포함한 세상(우주자연)의 모든 것(제법, 모든 존재)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눈을 가리고 있는 환영(덮힘)에서 벗어나면 본래 속박되지도 않고 해방되지도 않는 제법의 본래 모습인 진여를 보게 된다"고 용수는 주장하는데 이는 힌두교(브라만교의 후신)의 핵심 교리인 '마야사상'(산스크리크어 마야의 의미는 '환영, 환상'이라는 뜻)과 거의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무정(무생물)에서부터 유정(생물)과 열반에 이르기까지 물질-정신적인 모든 것은 꿈이나 환영(환상)과 같으며 부처님의 깨달음도 하나의 분별 관념(개념; 空)에 불과하다. 깨달음도 없고(空이고) 깨달을 것도 없다"고 용수는 주장한다

이처럼 용수는 부처님이 증득(증명경험으로 득)한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을 자신은 증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념과 논리로 부처님의 생생한 깨달음을 부정하고 사실과 이치에 입각한 부처님의 실천적 가르침(팔정도를 닦는 수행)마저 배척하였던 것이다

용수의 공空 사상이 확산되면서 현실의 존재마저 실제하지 않는 환영이라 생각하니 현실의 중요성은 경시되고, 인과법과 깨달음마저 분별(구분) 관념이라고 부정하니 이치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보는 눈이 사라져, 이후 불교(대승 불교)에서는 '세상을 올바르게 만드는 바른 이치'와 '생생한 실천력, 즉 부처(깨달은 자)가 가르친 실천법(깨닫는 방법)인 팔정도를 닦는 수행의 실천의지'가 사라지고 염세적 무기력증과 추상적 관념만이 팽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대승 불교에서 우주의 본질이 공空하고 물질-정신적인 모든 것이 환영이라는 (힌두교의 핵심 교리인 마야사상과 비슷한) 결론을 내리자 불교(대승 불교)는 힌두교와 사상적으로 별 차이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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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브라만 사상의 환경 속에서 생겨난 불교였고 힌두교(브라만교의 전승)와 더불어 교리의 변천이 이루어졌으며 결국 힌두교 속으로 함몰되어버린 인도의 불교역사(佛敎史)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의 생생한 진리의 가르침은 부파불교(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관념적인 교리변천(수많은 위경들과 논서, 논장, 아비담마, 아비다르마, 아비달마)을 거치면서 마침내 힌두교화 되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인도 땅에서 힌두교는 번성하고 마침내 불교가 사라진 것은 불교(부처님佛 가르침敎)가 서서히 변질되면서 불교의 '진리로서의 생생한 생명력'과 '생생한 실천력, 즉 부처님이 가르친 실천법(깨닫는 방법)인 팔정도를 닦는 수행의 실천의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며, 소위 기도발이 더 좋은, 즉 영험한 신들이 더 많은 더 좋은 기복신앙인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과 어리석은 견해와 어리석은 믿음에 더 잘 부합하는) 힌두교만 믿으면, 힌두교화 된(위경들을 통해서 힌두교의 신들과 비슷하게 부처들이 신격화되고, 논서 논장들을 통해서 교리사상적으로도 힌두교와 유사해진) 불교는 자동적으로 내포된다고 인도의 대중들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상이 인도대륙에서 불교가 사라지게 된 인도의 불교역사, 즉 초기불교 ―> 부파불교(소승불교) ―> 대승불교; 좀 더 상세히 말하면, 초기불교 -> 부파불교(소승불교) -> 대승 중관불교 -> 대승 유식불교 -> 밀교의 역사이다

그 외에도 인도에서의 불교 멸망에는 외부 세력(이슬람 세력)의 침입 등 여러 가지 외적, 내적 요인들이 많겠으나 확실한 것은, 부처님이 가르친 바른 수행(팔정도를 닦는 수행)이 단절된 채 대중들과 유리된 승려 중심의 승원불교, 학문불교, 기복불교는 결국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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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의 불교 멸망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인도에서 불교가 멸망해갔던 과정과 상황이 현재 한국불교가 처해 있는 상황과 너무 유사하기 때문이다. 즉, 힌두교가 불교를 대체했듯이 기독교가 불교를 대체해가고 있으며, 불교가 힌두화 했듯이 우리나라에선 49재나 천도재와 같은 방편불교가 성행하고, 제불보살을 신격화하는 기도의식과 기복불교가 성행하면서 기복으로 충당하는 사찰재정과 그 축재로 타락해가는 권력화된 한국불교 종단의 지도층,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부처님이 가르친 바른 수행인 팔정도를 닦는 수행이 오랜 세월 동안 단절되면서 변질된 수행풍토다.

그런가 하면 관세음보살로 대표 되는 ‘관음신앙’, 아미타불로 대표 되는 ‘정토신앙’, 지장보살로 대표 되는 ‘지장신앙’과 같이 타력으로 복과 구원을 구하고 비는 신앙은 본질적으로 타력의 종교인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어서 본질적으로 자력의 종교인 불교의 특징이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기도로 소원을 성취하려 한다면 소위 기도발이 더 좋다는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에 가서 기도하는 것이 낫다) 바로 이런 현상이 인도에서 블교(소위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기복의 신앙인 힌두교에 점차로 동화되면서 멸망하게 된 현상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우선 시급한 것은 불자(부처님佛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자)들과 소통하기엔 너무 큰 간격을 지니고 있는 어렵고 난해한 (많은 위경을 포함한) 한문경전(한문 번역경전)을 대체할 수 있도록, 부처님이 설한 경전을 우리말로 바르게 번역하고 널리 보급하여 불자들이 쉽게 읽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국불교의 미래에 내려진 시급하고 필요하고 중요한 과제다

그리나 무엇보다 가장 시급하고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부처님이 가르친 바른 수행인 '팔정도 바와나(바와나는 계발 수행을 뜻하는 고대인도어), 즉 실라(戒; 정어·정업·정명)•사마디(定; 정정진·정념·정정)•빤냐(慧; 정견·정사유)를 계발하는(닦는) 수행(한문 번역경전의 표현으로 말하면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이고 부처님이 사용한 고대인도어로 말하면 실라•사마타•위빠사나)'을 부처님이 설한 경전에 의거해서 올바르게 복원하는 문제가 한국불교의 미래에 내려진 가장 시급하고 필요하고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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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부처님은 지혜롭고 자비로운(사랑이 넘치는) 어떤 신(브라만, 하느님, 신격화된 부처..)이나 어떤 신격화된 보살(천수천안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에게 복과 지혜와 사랑을 구하는 기도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람'(부처)이 되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바른 실천인 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을 가르쳤다

진정 행복해지고 싶다면 지혜롭고 자비로운(사랑이 넘치는) 어떤 위대한 존재(신, 브라만, 하느님, 여호와, 하늘님, 신격화된 부처,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등)에게 복(행복)과 지혜와 사랑을 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혜롭고 자비로운(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 진정으로 행복진다

부처님(佛)의 가르침(法, 敎)을 지식(학문, 교학)으로만 공부하면 행복해지지 않는다. 부처님이 가르친 바른 수행(팔정도를 닦는 수행)을 바르게 실천하여 스스로 지혜롭고 자비로운(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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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지고(깨달음)의 자리에 ‘하나’를 세웠다
어떤 이는 지고의 자리에 ‘본래면목'을 세웠다 (불립문자파, 노장파, 선사파)

어떤 이는 지고의 자리에 '공空'을 세웠다 (중관파; 오직 공空파)
어떤 이는 지고의 자리에 '식識'을 세웠다 (유식唯識파; 오직唯 식識파)

어떤 이는 지고의 자리에 '법신(비로자나불)'을 세웠다 (극락정토파)
어떤 이는 지고의 자리에 '범신(브라만)'을 세웠다 (브라만 논사파)
어떤 이는 지고의 자리에 ‘대아(우주아)’를 세웠다 (힌두 논사파)


부처님은 아무 것도 세우지 않았다

부처님은 다만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두고
'있는 그대로' 사랑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진정으로 완전히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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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을 따라
지혜(Panna; 연기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와
자비(Metta; 나와 너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 속에서
진정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May all beings
be in Panna & Metta
really be liberated.. be peaceful.. be happy~

Panna & Metta are developed togeth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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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Script (1) : 정법正法을 파괴하는 자, 사자충

사자의 몸에 기생하는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또는 사자충)은 사자의 몸속에서 사자의 살을 파 먹으며 자라서 결국 백수의 제왕인 사자를 죽게 만든다는 벌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든다는 승려(스님; 비구, 비구니)들 중에도 사자충들이 많이 있다. 자신이 사자충인 줄 알기도 하고 또는 모르기도 한, 또는 다른 사람과 신도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조차도 최면을 거는 여러 종류의 사자충들이 참 많이 있다. 이들은 스승의 정법正法(바른 가르침)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변질시켜 자신들의 개인적, 집단적 사리사욕을 채우고 결국은 스승의 가르침을 죽이는 사자충 같은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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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正法을 파괴하는 자(사자충)들에 대한 부처님의 경고가 『법 아님 등의 품, 앙굿따라니까야, A1:10:1~42』에 기록되어 있다. 외부 세력이 아니라 내부의 사자충들에 의해 정법이 파괴되는 것이라고 부처님께서는 경고하신다.

"비구들이여, 법이 아닌 것을 법이라고 말하는 비구(사자충)들이 있다. 그들은 많은 중생(생명의 무리)들에게 손해가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불행이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해로움이 되고 괴로움이 된다. 또한 그들은 많은 악업을 쌓고 정법을 사라지게 한다.

비구들이여, 법을 법이 아니라고 말하는 비구들이 있다. 그들은 많은 중생들에게 손해가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불행이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해로움이 되고 괴로움이 된다. 또한 그들은 많은 악업을 쌓고 정법을 사라지게 한다.

비구들이여, 여래(如來; 자연의 이치/법칙, 즉 연기의 이치/법칙에 따라 그렇게如 온來 자; 부처님께서 자신을 지칭하시는 호칭)가 설하지 않은 것과 선언하지 않은 것을 여래가 설했고 선언했다고 말하는 비구들이 있다. 그들은 많은 중생들에게 손해가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불행이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해로움이 되고 괴로움이 된다. 또한 그들은 많은 악업을 쌓고 정법을 사라지게 한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설했고 선언한 것을 여래가 설하지 않았고 선언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비구들이 있다. 그들은 많은 중생들에게 손해가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불행이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해로움이 되고 괴로움이 된다. 또한 그들은 많은 악업을 쌓고 정법을 사라지게 한다."

우리 불자들은 혹시 어떤 경전이 불설佛說(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인지 비불설非佛說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또는 '어리석은 선지식'(사자충)을 추종한 탓에 위와 같은 죄를 짓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볼 일이다.

<출처 : http://blog.daum.net/thanksbuddha/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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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正法이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하 가섭(깟사빠) 존자가 부처님께 '정법正法이 사라지는 이유'를 묻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깟사빠여, 황금과 유사한 것이 세상에 생기지 않으면 황금은 사라지지 않는다. 황금과 유사한 것이 세상에 생기면 황금은 사라지게 된다. 그와 같이 유사정법이 세상에 생기지 않는 한 정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유사정법類似正法이 세상에 생기면 정법正法은 사라지게 된다.

깟사빠여, 자연현상이 정법을 사라지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쓸모 없는 인간(사자충)들이 나타나서 이 정법을 사라지게 만든다."

- 『유사정법경, 상윳따니까야, S16:13』 中에서

부처님께서는 유사정법의 출현을 엄중히 경고하셨다.

유사정법이 세상에 생기면 정법은 사라지게 된다. 정법이 사라지는 이유는 비불설非佛說을 불설佛說(부처님께서 설하신 것)로 둔갑시켜 유통하는 자(사자충)들 때문이다.

인류 역사 이래 가장 고귀한 가르침인 불법佛法(부처님佛 가르침法)이 인도에서는 왜 사라지게 되었을까? 단순히 이슬람 군대(외부 세력)의 침략 때문이었을까? 외부 세력이 아니라 내부의 사자충들에 의해 정법이 파괴되는 것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법 아님 등의 품, 앙굿따라니까야, A1:10:1~42』에서 경고하신다.

사실 스리랑카에 '부처님(佛) 말씀(가르침, 설법; 法)을 고대인도어(갠지스강 유역의 고대 인도 민중어인 빠알리어)로 기록한 경전'(오늘날 '초기경전' 또는 '니까야'라고 불림)을 전하지 못했다면 부처님의 원음은 지구 상에서 완전히 소멸했을 것이다. 간담이 서늘한 일이다.

인도에서 정법을 사라지게 한 '유사정법'은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사유해 볼 일이다.

<출처 1: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RY6N&articleno=15&categoryId=1®dt=20130922183416>
<출처 2: http://blog.daum.net/thanksbuddha/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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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Script (2) : 종교宗敎 vs. Religion

종교宗敎는 '(산)마루 또는 근본 종宗 + 가르칠 교敎'의 합성어로, '산 정상(마루, 宗)에서 바라보듯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근본(宗)이 되는 훌륭한 가르침(敎)'이라는 뜻이다

종교宗敎라는 용어는 5세기경에 중국에서 붓다(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지칭하기 위해 처음으로 쓰여졌다고 하는데, 동양 문화권에서는 신神과는 무관하게 '근본이 되는 훌륭한 가르침'이란 의미로 쓰여져 왔다.

19세기 말 서양 종교학(신학, Religious studies or Science of Religion)이 일본에 소개되면서 'Religion'을 번역할 때, 같은 의미의 동양 문화권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학자들이,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지칭하던 용어인 종교宗敎를 Religion에 대응하는 번역어로 사용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Religion의 어원은 ‘re(다시)+lig(신과 잇는, 결합하는)+ion(것)’이다. 이 Religion(신과 다시 결합 하는 것)을 '붓다의 가르침'을 지칭하던 용어인 종교宗敎라고 번역한 것은 번역의 오류다.

국어사전에서는 Religion의 번역어인 종교를 ‘신神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그런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체계’라고 정의하고 있다.

종교를 이렇게 정의한다면 '부처님이 발견하시고 설하신 우주자연(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실상(실제 상태/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에 대한 '경험적+합리적'인 가르침인 불교佛敎(부처님佛 가르침敎)'는, 우주자연(물질세계)의 보편적 이치/법칙에 대한 '경험적+합리적'(=과학적)인 지식체계를 세우는 학문인 자연과학(물리학)이 종교(Religion)가 아니듯이, 종교(Religion)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신격화된 부처와 신격화된 보살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복과 구원을 비는 기복불교는 종교(Religion)라고 말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Religion에 대응하는 번역어로 종교宗敎가 아니라 신교神敎(신神의 가르침敎)를 사용했다면 용어가 주는 혼란과 갈등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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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Script (3) : 남묘호렌게쿄(국제창가학회 SGI, 일본 법화종, 법화경을 소의 경전으로 하는 종파)

중국 한자 南無·妙法蓮華經의 한국어 발음은 '나무·묘법연화경'이고, 일본어 발음은 '남·묘호렌게쿄'다. 남묘호렌게교는 소의경전인 묘법연화경(법화경)을 신봉 숭배하고 따른다는 것이다. 남묘호렌게교(나무묘법연화경)는 나무석가모니불,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아미타불 등과 같은 일종의 염불인데, 남묘호렌게쿄(한국어 발음은 남묘호랑교)를 염송(염불)하는 것은 AD 4세기에 등장한 위작(불설이 아닌, 즉 석가모니불이 설한 것이 아닌) 경전인 ‘묘법연화경’에서 절대전능한 신으로 신격화 된 석가모니불에게 (힌두교의 박티신앙처럼) 헌신(헌신 공양, 찬탄, 경배)하고 복과 구원을 비는 것이다.

일본 법화종(남묘호렌게쿄, 국제창가학회 SGI)과 같은 기복불교들은 중생들의 탐진치, '내가 믿고 의지하는 존재가 절대전능한 신적인 존재였으면 좋겠다.. 그 존재가 나(또는 나의 확장인 내 가족, 내가 속한 집단, 내 회사, 내 교회, 내 절, 내 나라)에게 복을 주고 나를 구원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고통받기 싫다.. 죽기 싫다.. 등등'과 같은 인간의 개인적 집단적 탐(갈망)·진(혐오)·치(탐·진에 대한 집착과 어리석음)를 이용해서 붓다(석가모니불)의 정법正法(바른 가르침)을 변질시키고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운다.

일본 법화종(남묘호렌게쿄)의 다른 이름인 SGI는 Soka Gakkai International(국제창가학회)의 약자다. 교조는 일본 승려 니치렌(일연日蓮; 1222~1282)인데, 그 위位(지위)는 묘법연화경을 설했다(?)는 석가모니불이 도저히 미칠 바가 아닌 말법시대에 출현한 본불이라고 주장한다. SGI는 일본 승려 니치렌(일연日蓮)을 본존불로하고 석가불과 다보불을 협시불로 하는 사이비 불교로, 겉으로는 불교佛敎(석가모니불의 가르침)를 표방하면서도 속은 반불교적인 교리와 일본민족주의적인 정서를 포함하고 있다.

전세계 190여 개 국가에 지부 건설, 전세계 대학 명예박사 학위(또는 명예교수 직위) 174개, 국가훈장 23개, 명예시민증 407개..., SGI 이케다 회장(교주의 다른 명칭)이 지난 45년간 세계 각국을 누비며 올린 성과다. 실로 엄청난 활동의 결과물이다. 국내에서의 활동도 마찬가지다. 한국 지부인 한국SGI는 130만이 넘는 신도와 전국에 세워진 300여 개의 문화회관, 전국을 35개 구역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111개 권역으로 세분화해 구성된 조직은 매우 탄탄하다. 특히 광선유포(불교의 포교 또는 기독교의 선교 개념, 줄임말로 광포라 함)의 핵심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대학생신도 역시 전국의 각 대학마다 수십 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사이비 종교인 문선명의 통일교가 대학생을 핵심 포교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이런 사이비 기복불교인 SGI는 그 신도들에게 자신들의 가르침이 최고 지위의 가장 영험한 부처님이 설한 진짜 가르침(법法)이라고 철석같이 믿게 만들고 신도들로 하여금 그들의 가족과 친지들에게도 반 강요적으로 표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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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몸에 기생하는 사자충은 사자의 몸속에서 사자의 살을 파 먹으며 자라서 결국 백수의 제왕인 사자를 죽게 만든다는 벌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든다는 승려(스님; 비구, 비구니)들 중에도 사자충들이 많이 있다. 자신이 사자충인 줄 알기도 하고 또는 모르기도 한, 또는 다른 사람과 신도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조차도 최면을 거는 여러 종류의 사자충들이 참 많이 있다.

니치렌(일연日蓮), 이케다 등등 같은 사자충들은 중생들의 탐진치를 이용해서 정법正法을 교묘하게 변질시켜서 대중들을 혹하게 하는 유사정법類似正法을 만들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정법正法을 파괴시킨다.
작성일:2018-07-21 15:07:28 119.64.23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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