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토굴에서 지내고 있다. 집 뒤로 냉골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올라가면 속리산에서 제일 높은 천황봉에 다다를 수 있다. 냉골이라는 말처럼 계곡에 들어서면 서늘한 기운이 돌고 아직도 응달에는 잔설과 얼음이 골짜기마다 남아 겨울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양지바른 곳에는 애기냉이들이 듬성듬성 있어 지난주에는 여린 냉이로 된장찌개를 끓였다. 어려서인지 향은 그리 나지는 않았다. 동장군이 쎄다 해도 봄날 훈풍을 어찌해보겠는가.나는 일주일에 한 번 보은 읍내에 나가 장도 보고 목욕도 하는데 새로 잘 지은 건물이 선거관리위원회 건물이었다.
종교는 신앙의 체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가 합리적인 이해만을 인정하는 과학과 그 체계와 의미를 달리하고 있는 것은 그 안에 신앙과 실천의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체제는 모든 종교적 행동의 원천이며, 종교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체제이다’라는 일본의 종교학자 기시모토 히데오(岸本英夫) 박사의 말은 그 점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불교를 다른 종교와 대비하여 말할 때, 그 중심개념이 깨달음이란 측면을 들고 있다. 실제로 모든 불교사상은 깨달음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러한 깨달음이 없는 믿음을 맹신이라는 입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는 ‘집합 기억(collective memory)’ 개념을 제시하면서, 기억이란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이라기보다 기억의 내용과 그 구성의 본질은 사회적 현상임을 주장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란 1퍼센트는 진짜 기억일 수 있겠지만 99퍼센트는 그 시대의 지배적 사조와 부합하는 과거 상(像)의 재구성이라고 본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 나라의 역사적 기억 역시 과거의 온전한 재생일 순 없고 집단적·정치적 특성이 가미된 기억틀을 통해 재구성될 뿐이라고 하겠다. 대통령 기념관은
8년 전 우리나라 바둑계 국수 가운데 한 사람이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바둑 대국을 펼쳤던 것을 기억한다. 결과는 국수의 참패였지만 이 세기의 대결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로 큰 관심을 받았다. 이는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되어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수술도 하고 있다. 나아가 인간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생명의 탄생 영역까지 확장하여 생명을 복제해 낼 수 있게 됨으로써 신의 영역에 도전하
작년 가을이었다. 어느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질문을 받는 자리였는데 공군법사로 있는 스님 한 분이 내게 “불자 장병들에게 지속적인 신심을 낼 수 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기에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금강경’에는 두 가지 큰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자신이 부처임을 믿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크나큰 서원을 세우라는 말씀이다. 금강 같은 믿음은 내 삶에 확신을 갖는 것이고 그 확신은 자신의 삶에 일정한 방향성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내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경에서는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백세시대를 살고 있다. 사회적 정년을 지나고도 연명해 나갈 시간이 수십 년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생명체가 자신의 생명이 단멸되지 않고 영속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일단은 안도할 일이다. 우리가 안부로 묻는 ‘안녕(安寧)’이라는 인사말의 함의가 ‘아무 탈 없이 편안한가’를 묻고 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나 장수하고 있는 노인들에게 있어 단순히 생명현상의 연장이라는 사실 그 자체가 꼭 달가운 일이라 할 수 있을까. 필자의 부친은 무병장수하시다가 92세에 돌아가셨는데 90세가 되니까 “하루하루의 시간이 지루하다”라는 말씀
종교백화점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한민국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다. 종교적 열의도 대단하다. 종교와 신앙의 본질적 매력 외에도 식민시대와 전쟁을 겪으며 인간의 한계와 극명하게 대비되어 기대고 싶은 신의 존재가 어느 나라보다 절실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요즘은 종교가 위기를 겪는 중이다. 기독교는 신부와 목사가 부족하고 불교도 출가자가 현격히 줄었다. 새로운 신자 구하기도 쉽지 않은 것은 모든 종교의 공통점이다.이 시대에 가장 활발한 종교는 무종교라고 한다. 처음부터 종교를 갖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믿던 종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대한민국 인구 증가율은 –0.176%로 마이너스를 기록하였으며, 합계출산율은 0.7명대로, 2022년의 0.78명보다 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합계출산율은 한 여자가 임신이 가능한 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며, 인구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은 2.1명이라고 한다. 2023년의 합계출산율은 인구 유지에 필요한 합계출산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저출산 문제는 2002년 합계출산율이 1.17명으로 떨어져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되면서부터 주목되기 시작하였
속리산 법주사에서 출가해 인생의 거반을 선원에서 보냈으며 어쩌다 사회복지 법인 연꽃마을에서 대표이사로 만 오년을 보냈다. 한 달 전 대표이사 소임을 내려놓고 속리산의 작은 토굴에서 한겨울을 보내고 있다. 올겨울 유독 춥고 눈이 많이 내리다 보니, 그리고 또 이런저런 이유들이 겹쳐 푸르름과 생명을 상징하는 ‘오아시스’가 문득 떠 올랐다. 오래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지금까지 보았던 한국 영화 중에서 순위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에 넣을 수 있다고 스스로 이야기한다. 중증뇌성마비장애를 가진 한공주(문소리
이른 아침 범어사를 지나 금정산 고당봉을 다녀오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부처님께 삼배를 드릴 수 있어 좋고 자연의 변화를 체감하고, 사색의 시간을 갖고, 심신이 건강해지니 더욱 좋다. 평소에는 인적이 드문 호젓한 길인데, 매년 정초가 되면 새벽부터 주차 전쟁이다. 금정산성, 고당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인산인해다. 새해 해맞이하려는 인파로 인해서다. 801m 고당봉에 올라서면 해운대에서 광안리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 영도를 잇는 부산항대교, 대마도까지 전경이 펼쳐진다. 해맞이하기에 장관이다. 이런 현상이 어디 범어사뿐이겠는가. 신
올해 2024년은 청룡의 해다. 지난 2000년은 경진년(庚辰年)으로 백룡의 해였고 2012년은 임진년(壬辰年)으로 흑룡의 해였다. 2000년대의 시작과 함께 상승하는 용의 기운이 세 번째 돌아오는 것이다. 용은 부귀와 풍요를 상징하는데 오늘날 용과 관련된 지명이 전국에 1200여 개나 된다고 하니 복을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지난해는 다사다난했다. 마음에 두게 되는 2023년 사건을 정리하면 두어 가지 정도다. ‘종교편향적 인사’에 대한 불교계의 공분이 그 하나다. 인사 편중의 원인을 당장에 불자인재가 없다는 자책으
옛날에 어떤 앵무새가 어느 산에 갔다. 그 산의 새들과 짐승들은 모두 그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며 해치지 않았다. 그러나 앵무새는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이렇게 나를 대하지만, 오래가지 않을 테니 돌아가야 하겠어.” 앵무새는 곧 산을 떠났다. 몇 달이 지난 후, 그 산에 불이 나서 사방이 모두 타고 있었다. 앵무새는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는 바로 물에 들어가 날개에 물을 묻혀 공중으로 날아올라 젖은 털로 물을 뿌려 큰불을 끄려고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했다. 천신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너는 어찌 그토록 어리석으냐! 천 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