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분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면 좋을 것 같아 동참했습니다. 법보신문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양한 관점에서 소개하는 내용이 많아 자기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을지,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전인철 한국명상지도자협회(39) 팀장이 최근 법보신문을 교도소·군법당·병원법당·관공서 등에 보내는 법보신문 캠페인에 동참했다. 전 팀장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의 가르침은 개인의 행복을 넘어 모든 사람에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며 “포교는 불교의 세력을 확대한
‘무문관(無門關)’은 남송시대 선승 무문혜개(1183~1260) 스님이 본칙을 소개하고 이를 직접 비평한 평창과 본칙의 요체를 읊은 송을 붙여 편찬한 공안집이다. ‘벽암록’ ‘종용록’과 더불어 선종사의 3대 공안집으로 꼽히는 ‘무문관’은 1700공안의 정수를 담고 있다는 찬사를 받아왔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선 수행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무문관을 사색하다’는 동국대 명예교수인 저자가 ‘무문관’의 본칙, 평창, 송을 오늘날의 일상어와 철학 언어로 해독·해석한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무(無)’자 공안을 비롯한
선은 시퍼렇게 날이 선 검과 같다. 어정쩡한 중간이 없다. 깨치면 부처이고 못 깨치면 중생일 따름이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한 걸음 더 내딛고, 거대한 은산철벽을 무너뜨리고 나아가야 한다. 그 길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야 한다. 세간의 어설픈 자비란 찾아볼 수 없다. 몽둥이로 내려치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귀를 멀게 하고, 팔을 잘라 바친다. 여우와 살쾡이의 길이 아니라 그들의 넋을 송두리째 찢어버리는 사자의 길이다.명상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은 시대.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혈압을 낮춰주며,
“조세이탄광에서 희생당한 조선인 광부들을 떠올리면 어떻게든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분들은 여느 사고나 단순한 천재지변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일제에 의해 억지로 징용으로 끌려가 벗어날 수도 없는 곳에서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습니다. 그분들의 유해 발굴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자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우리 모두의 다짐입니다.”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위령재를 주최한 관음종 총무원장 법명 스님은 최근 한일 정치권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
“우리는 깊은 바닷속에 갇혀있는 183구의 영가들이 햇볕을 받는 날들이 꼭 와야 한다는 원력과 신심을 가지고 위령재를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지속하면 그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관음종 종정 홍파 스님은 40여 년간 한일불교 교류를 이끈 주역으로 관음종이 조세이탄광 희생자 위령재를 매년 지내는 것도 스님의 원력에서 비롯됐다. 스님은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를 들어 “우공이산의 고사가 시사하는 점은 큽니다. 지금 우리는 우공과 같이 해저에 묻힌 희생자의 유골을 반드시 유족의
3월 28일 관음종 스님과 불자들이 1942년 2월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로 조선인 136명을 비롯한 183명이 희생된 장소 앞에서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있다. 동참자들은 82년 전 해저 탄광 붕괴사고로 원통하게 사망한 조선인과 일본인 수몰 희생 영가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잊지 않고 발굴 노력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발원했다.일본=이재형 대표 mitra@beopbo.com[1723호 / 2024년 4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
“천고에 묻힌 슬픔이여, 시간의 먼지 속에서도 그대들은 빛을 잃지 마소서. 이 땅에 우리들 발 딛고 살아가는 한 반드시, 반드시 그대들을 태양 아래로 인도하겠나이다. 부디 맑은 공기 원 없이 들이마시고 남은 원한 다 훌훌 털어버리고 극락왕생하소서.”(관음종 총무원장 법명 스님 추도사 중)3월 28일 오후 1시,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탄광 희생자 추모광장. 오전부터 간간이 내리던 비는 위령재를 시작할 무렵 빗줄기가 굵어지고 바람은 거세졌다. 어제까지도 완연한 봄날이더니 하룻밤 사이에 겨울의 끝자락으로 되돌아간 듯했다. 82년
종교학계에서는 세계종교의 공통적인 특성으로 교리적 차원, 신화적 차원, 윤리적 차원, 의례적 차원, 경험적 차원, 조직적 차원을 언급한다. 이 6가지를 고루 갖춰야 종교의 기능을 발휘하고 생명력과 역사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중 윤리적 차원은 대중의 신뢰와 직결된다. 사회적인 행동 규범인 윤리의 요소가 결여되면 사회적으로 지탄받기 쉽고 확장성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불교는 윤리성이 가장 두드러진 세계종교다. 불교 윤리는 부처님이 첫 설법에서 명확히 밝힌 것처럼 의도와 행위가 개인에게 미래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업에 기반한다.
공(空)은 반야경, 중관, 유식, 여래장, 정토, 선 등 대승불교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개념이다. 그렇기에 공을 모르고 대승불교를 말할 수 없다.이 책은 용수를 중심으로 공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대승불교 입문서다. 저자는 가지야마 유이치(1925~2004) 전 교토대학 명예교수. 공사상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반야·중관사상, 인식론·논리학을 중심으로 불교의 문헌학적·철학적 해석에 큰 업적을 남긴 석학이다. 저자는 ‘숫타니파타’와 ‘담마파다’ 등 초기경전에 나타난 공사상의 근원을 파헤치며, 설일체유부의 실재론을 논파한다. 또 반야
“법보신문은 불법의 인연을 우리 사회 곳곳에 잘 전달하고 있는 신문입니다.”동양화가 한경혜(49) 작가가 법보신문을 교도소·군법당·병원법당·관공서 등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한 작가는 1995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입상하면서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 회화에 나타난 물의 표정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여러 차례의 전시회를 통해 깊은 선 체험과 사유의 세계를 펼쳐냈다.“그림은 작가가 보여주는 언어입니다. 그림이라는 형상에 내면의 마음자리를 표현하고 그것이 공통적인 울림으로 다가가 전달되는 것
“법보신문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으면 그냥 쉽게 넘어갑니다. 그런데 꼼꼼히 읽어보면 우리에게 유익한 내용이 아주 많고 부처님 진리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렇게 좋은 내용을 교도소에 계신 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하게 됐습니다.”경남 양산에 거주하는 주영주(64·가휘) 불자가 법보신문을 교도소·군법당·병원법당·관공서 등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2013년부터 법보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그는 “원래 나쁜 사람이 있다기보다는 한때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것”이라며 “그 안에서 힘겨운 시간을
과잉의 시대다. 굶어 죽는 이는 드물어도 영양 과잉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이들은 수없이 많다. 앎도 마찬가지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지식에 휩쓸리고 지식에 갇혀 자신을 옭아맨다. 건강을 위해선 좋은 먹거리를 골라 적당한 양을 꼭꼭 씹어 삼켜야 하듯 지식도 좋은 내용을 선별해 사유의 과정을 거쳐야 지혜가 된다.이 책은 방대한 초기 불경에서 가려 뽑은 307개 게송이 실렸다. ‘담마빠다’에서 192개, ‘숫따니빠따’에서 90개, 4부 니까야와 ‘테라가타’에서 25개를 선정했다. 게송들은 군더더기가 없고 들어서 금방 알 수 있으며, 샘물
불교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되려면 1만 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가로, 세로가 15km쯤 되는 거대한 성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0년마다 한 알씩 꺼내 그것이 다 없어지는 시간이 1겁이라고 하니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얼마나 지중한지를 보여준다. 억겁의 세월을 윤회하는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참된 스승의 올바른 가르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지난해 1월 세연을 마친 저자는 수많은 이들에게 삶의 길을 일러준 스승이다. 제자 김향진 씨가 입적한 스승을 그리며 “가슴이 시리고 아프다. 스승이 계시지 않으니 스승의 은혜 더욱 감사
한시(漢詩)에 대한 편견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단단하다. 어렵고 고리타분하며 중국 문자로 써진 시라는 인식이 그렇다. 조선시대엔 한문만 중시하고 한글은 철저히 무시했듯 이젠 역으로 한문이 냉대받는 모양새다. 그러나 한문은 우리 언어다. 한글 60%가 한자에 기반하기도 하지만 불과 100년 전까지도 공문서, 교재, 문집 등 절대다수 문헌이 한문으로 이뤄졌다. 또 한시로 그리움과 회한, 찬탄과 격려, 깨침과 입적의 순간을 노래했다. 한문을 배제하면 우리 문화와 정서의 태반을 잃는 셈이다. 정약용이 ‘나야 조선 사람이기에 달게 조선 시를
남들이 칭찬할 때 덩달아 칭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남들이 돌 던질 때 함께 던지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남들이 칭찬하는 일을 전면 비판하거나 남들이 비난할 때 막아서는 일은 웬만한 용기가 아니면 어렵다. 하물며 오랜 세월 받들어 온 경전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다.‘불교 사상사는 개념 왜곡의 역사였다’는 저자는 대승불교의 정수로 평가받으며 오늘날까지 널리 독송 되는 ‘금강경’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비판 수준과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초기 경전과 대승 경전에 대한 분석과 언어학, 해석학, 논리학까지 적극 활용하고 있다.저
“힘든 상황에 처한 분들에게 불교를 전하는 뜻깊은 일에 선뜻 동참하게 됐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고 그 가르침을 본받아 서로 돕고 이해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박동주(51·구원) ㈜마음챙김여행사 대표가 최근 법보신문을 교도소·군법당·병원법당·관공서 등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박 대표는 “법보신문은 한국 불교계 소식을 다양하게 알려줄 뿐 아니라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꿋꿋하게 걸어가고 있는 언론”이라며 “법보신문이 펼치는 캠페인에 공감해 적극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박 대표는 지난 25년
한암중원 스님(1876~1951)과 탄허택성 스님(1913~1983)은 불교사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의 좋은 사례로 꼽힌다. 한암 스님은 타고난 선문(禪門)의 지도자로 1925년 ‘천고의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며 오대산에 들었다.탄허 스님도 타고난 소년재사(少年才士)였다. 독립운동가 아들로 6세 때 사서삼경을 독파할 정도로 비범했다. 노장사상에 심취했던 스님은 1932년 8월 14일 불교뿐 아니라 유교와 도교에도 통달했다던 한암 스님에게 의아했던 점들을 묻는 글
선은 화엄과 더불어 한국불교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다. 당나라 백장 스님이 훗날 가지산문을 개창한 도의 스님의 깨달음을 두고 “마조의 선맥이 모두 신라로 가는구나!”라고 경탄했듯 이후 선은 천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명안종사를 배출했다. 그러나 억불의 시대와 일제강점기에도 굳건했던 선은 아이러니하게 명상의 전성시대라는 현대에 이르러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문 닫는 시민선방이 늘더니 이제는 흔하던 선원장 초청 법회도 찾아보기 어렵다. 불교종립대학에서 선학 강좌를 찾기 힘들고, 선방에서조차 위빠사나 등 다른 수행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탄
세상이 하얘졌습니다. 법당과 요사채 기와지붕도, 마당 나무들도 소복소복 눈을 이고 섰습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빨간 연등은 큼직한 산딸기를 빼닮았습니다. 도시에 내리는 눈은 천덕꾸러기라지만 산사의 눈은 다릅니다. 슬쩍 우리의 본래면목 보여주듯 티 없이 맑은 세상을 펼쳐냅니다.선어록에도 종종 눈이 등장합니다. 혜가 스님이 숭산의 달마대사를 찾아가 싹둑 팔을 잘라 내려놓은 날 펄펄 눈이 내렸다지요. 원나라 선승 허주 스님의 “눈이 천산(千山)을 덮었는데 왜 한 봉오리만 희지 않은가?”라는 물음에 몽산 스님이 “별천지이지요”라는 답변은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절에 다니는 불자라면 사홍서원(四弘誓願)이 익숙할 것이다. 불교 행사 대부분 삼귀의로 시작해 사홍서원으로 마무리한다. 한때 어느 단체에서는 사홍서원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구체적인 서원으로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 세계 70억 인류와 수많은 생명체를 아우르는 ‘중생’을 다 구제하겠다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의구심은 당연할 수 있다. 또 찰나찰나 일어나는 번뇌 망상을 어찌 다 다스릴 것이며, 초기불교를 비롯해 부파·중관·유식·화엄·법화·밀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