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사 큰 법당에 가부좌하고 앉으니머릿속에 매미소리탱탱한 줄 하나 매어 놓는다연이어 가로세로얽히고설킨 거미줄 소리소리순식간에 빈 머릿속매미허물로 가득 찬다꿈틀대는 초침 속 결가부좌하고꽉 끼는 옷을 벗는다몸부림 옷부림친다팔만 사천 땅 속 시침 분침 흔들린다 조여든다조여 오는 거미줄 속에 앉아벗어버린 옷, 텅 빈 안쪽을 찬찬히 들여다본다이판사판탱탱한 어둠 밧줄 한 쪽 끝을확 놓아버리니 거미줄 밖이다. 이혜선 시인(1950~현재)의 ‘거미줄 법문’은 매우 자유로운 형식의 꾸밈이 없는 현대선시이다. 선시의 발전 과정을 살펴 필자 나름대로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 치 반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 구천 발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울음 서른 근공양(供養)이란 불가에서 불법승 삼보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다하여 음식, 재물, 향, 등, 차(茶), 꽃, 과일, 쌀 등을 바치는 공덕으로 불보살의 가피(加被)를 기원한다. 일반용어로는 부모나 웃어른을 모시고 정성스럽게 음식과 이바지를 올린다는 뜻으로 공양을 올린다고 한다.공양은 아랫사람
학교의 졸업장도 필요가 없고용을 썼던 성적표도 필요가 없네어떻게 살아야 저 표정이 나올까무엇을 알아야 저 웃음 나올까기쁨도 노함도 뛰어넘고서슬픔도 즐거움도 뛰어넘고서좀 배웠단 먹물 빼고 또 빼어버린좀 안다는 우쭐 놓고 또 내려놓은아, 비울 것 다 비워낸 사내가 있다저 닦을 것 다 닦아낸 사내가 있다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이다. 아라한은 속세를 떠나(出離), 욕망을 떨쳐버리고(離欲) 괴로움에서 벗어난(離苦) 소승불교시대 수행자가 성취한 최고위 성자이다.삼학(三學: 계율·선정·지혜)의 수행에 의해서 욕망의 불과 분노의 불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돌아오는 길에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풍경을 달고 돌아왔다먼데서 바람 불어와풍경소리 들리면보고 싶은 내 마음이찾아간 줄 알아라…산사의 풍경소리, 바람소리, 시냇물소리, 목탁소리, 범종소리, 예불소리, 독경소리 등은 아무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향기로운 소리(香聲)이다. 특히나 풍경은 바람소리와 짝이 되어 밤낮으로 잠도 자지 않고 임을 기다리다가 바람이 먼저 기척을 하면 곧바로 쟁그랑쟁그랑 반가이 반응을 한다.11월 대학입시기도 하려 경내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풍경소리가 반가이 맞이한다. 법당에서 졸고 계신 부처님
꿈이로다 꿈이로다모두가 다 꿈이로다너도 나도 꿈속이요이저것이 꿈이로다꿈에 나서 꿈에 살고꿈에 죽어가는 인생부질없다 깨려는 꿈꿈은 깨어 무엇하리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은 인구에 회자하는 인생을 꿈에 비유한 일화이다. 어느 날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온 세상을 훨훨 날아다녔다. 꿈속에서 완전히 나비가 된 장자는 얼마나 즐거웠는지 자신의 존재를 망각했다. 꿈에서 깬 장자는 “꿈속에서 내가 나비가 되었는지, 아니면 나비가 꿈속에서 장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인생은 한 바탕 긴 꿈이고, 한 편의 소설이고 드라마이다. 지
그땐 나는 강아지였지.목화(木花)송이 같은 한 마리 복술강아지였지.그땐 당신은 목련(木蓮)꽃이었지.그땐 구름도 당신을 닮아 목련꽃으로 피고맑은 냇물도 목련꽃 빛으로 흐르고죽은 바윗돌에선 목련꽃의 싹이 트고나는 목련꽃 빛의 복술강아지였지.그땐 나는 온몸이 달아쇳덩이도 녹일 듯이 온몸이 달아꽃나무를 위성(衛星)처럼 한 천 번쯤 돌다가미친 듯이 문득 날아오를 듯솟구치곤 하다가 떨어져 떨어져꽃나무를 안은 채 타서 죽었지.목련꽃같이 핀 이승의 당신먼 전생의 전생 때부터 나는 당신을 찾아 헤맨 짐승이었지.현재 지구에서 살고 있는 밤하늘의 별들
1호선 지하철 분실물신고센터에 있는 건 / 하얀 차돌 두어 개와 나를 따라온 / 청태 사이로 비치는 오대산 맨가슴 그리고 / 가부좌 틀고 있는 청량선원이네 그곳엔 / 내가 주워온 금빛 옷을 걸친 늙은 부처 아니 / 법당 왼쪽에 단정히 앉아있던 / 이마 말간 문수동자가 있네 아니 이 날 / 푸른 솔잎 입에 문 물총새 한 마리 그리고 / 툇마루에 졸고 있는 하늘 한 자락과 / 솔바람이 있네 아니 지하철분실물센터 / 알림판엔 깔깔 웃음 웃던 습득물이 붙어 / 있네 동굴 속으로 고함지르며 사라진 / 습득이 붙어있네 습득이 보이네.현대인들은
캄캄한 밤 회오리바람 속에서 깜빡거린다저 불빛, 부러진 단검 하나 남은 검투사 같다무슨 결박으로 동여매 있기에저 안의 황야에 저리 고달프게 맞서는 것일까등대는 외롭고 적막하고 단호하다모든 찰나는 단호하므로 미래가 없고미래가 없으므로 과거도 없다모든 찰나는 영원한 현재이므로마지막 순간까지 결연하게 깜빡거린다저 불빛, 절벽 앞에서의 황홀이다등대는 망망대해에서 홀로 어두운 밤에 외로움과 회오리바람과 싸운다. 끝끝내 밝은 불빛을 지켜서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배에게 희망의 항로를 밝혀준다.“부러진 단검(短劍) 하나 남은 검투사 같다
떠나는 바람은 집착하지 않는다.그저 왔다가 갈 뿐이다.임종게(열반송)는 고승대덕 선지식이 마지막 떠나는 길에 중생에게 선물로 남긴 일 자 천금의 선시이다. 한 소식을 얻은 대장부라면 자신이 평생 가슴에 품고 읊은 한 마디 노랫가락은 있어야 한다. 선시는 짧을수록 상징성이 있다. 일본의 하이쿠는 5·7·5의 3장 15자 형식의 문학이다.광우(1925~2019) 스님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비구니다. 비구니 강원의 1기 졸업생이고, 동국대학 불교학과 최초의 비구니 졸업생이다. 최초의 비구니 명사(대종사)이다. 한국 비구니 스님들의 표상이
사람한테 잡혀가도 입을 크게 벌리고만 있으면 산다고 아버지한테귀 닳도록 들었습니다. 사람한테 잡혀가도 눈만 크게부라리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겁먹고 도망간다고, 눈을 똑바로뜨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도망간다고아버지한테 귀빠지게 들었습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눈 하나깜박대지 않고 크게 뜨고 있는 내가 무섭지요. 벌벌 떨리지요?명태의 이름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명천(明川)에 사는 어부 중에 태씨(太氏)가 처음 잡은 고기라서 그 고기 이름을 명태라고 불렀다는 설과, 함경도에서 명태간으로 기름을 짜서 등불을 환하게
까만 어둠 헤집고 올라오는 꽃대 하나/ 인삼꽃 피어나는 말간 소리 들린다./ 그 끝을 무심히 따라가면 투명 창이 보인다.한 사내가 꽃대 하나 밀어 올려 보낸 뒤/ 땅속에서 환하게 반가부좌 가만 튼다./ 창문 안 들여다보는 내 눈에도 삼꽃 핀다.무아경, 흙탕물이 쏟아져도 잔잔하다./ 깊고 깊은 선정삼매 고요히 빠져 있는/ 저 사내, 인삼반가사유상 얼굴이 환히 맑다.홀연히 진박새가 날아들어 묵언 문다./ 산 너머로 날아간 뒤 떠오르는 보름달/ 그 사내 침묵 사유 만발하여 나도 활짝, 환하다.인삼(人蔘)의 뿌리가 ‘사람 인(人)’의 형태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아사달 아사녀가중립(中立)의 초례청(醮禮廳)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껍데기는 가라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신동엽(1930~1969)은 한국시단의 참여시, 저항시의 대표적 시인이다. ‘껍데기는 가라’가 그의 대표시이다.그의 시는 4·19학생혁명의거, 동학농민혁명, 통일신라 석가탑의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 분단
절하고 싶어절에 갑니다.절하고 또 절하면 저절로 내 병 낫습니다. 땀 뻘뻘 흘리며절하는 한 순간 한 순간의절은 영원을 짜는 피륙절하고 싶어절에 갑니다.절은 절을 하는 장소다. 절은 사원, 사찰이라고 하는데 수행의 장소요, 기도의 장소요, 중생을 교화하는 공간이다. 부처의 길을 가는 수행자 즉, 출가사문들이 모여 사는 수행 공동체 공간이다. 최초의 절은 부처님의 집인 왕사성의 죽림정사이다. 대나무 숲이다.한편 절은 불교 신행생활과 수행에 있어 필수적이다. 절을 하는 목적은 바라는 소원을 기도하는 것과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것이다.
그 꽃이 보이지 않는다봉황천변,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흰 불꽃나는 그 주인 없는 땅을 차지한흰 꽃무리의 지주(地主)가 좋았다눈길 한번 주지 않아도마음껏 꽃 세상을 만들어내던 개망초꽃있어도 보이지 않고 보여도 다가오지 않던/ 그 꽃, 개망초꽃땅을 가리지 않는 그백의(白衣)의 흔들림이 좋았다문득 걸음을 멈추고 ‘멈춤’을 생각하니내가 가진 마음속 땅을 모두 내려놓으니거기 시간도 없고 경계도 없는 곳에비로소/ 보이는 그 꽃내 안을 밝히는 그 꽃보여야 꽃이라지만보아야 꽃이다‘비로소 꽃’은 주인이 없는 봉황천 뚝방에 땅주인인 양 흐드러지게 피
꽃은 피었다말없이 지는데솔바람은 불었다가간간이 끊어지는데맨발로 살며시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와불님의 팔을 베고겨드랑이에 누워푸른 하늘을 바라본다엄마…오곡이 익어가는 가을 벌판에 서서 어머니를 생각한다. 엄마의 젖처럼 풍성한 가을이다.꽃이 피는 봄날 봄바람은 불었다가 간간이 끊어지는 날 화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계신 와불(臥佛)님의 팔을 베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시인은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꼈다. 대자대비하신 자비로운 부처님의 사랑을 느꼈다. 그것은 어릴 때 엄마에게서 느끼는 포근한 삶이요 행복감이다. 시인은 ‘엄마’라고 한
이대로 당신 앞에 서서 죽으리당신의 사리(舍利)로 밥을 해먹고당신의 눈물로 술을 마신 뒤희방사 앞마당에 수국으로 피었다가꽃잎이 질 때까지 묵언정진하고 나서이대로 서서 죽어 바다로 가리폭포는 일직선으로 흐른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끊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는 듯이 흐른다. 내 마음을 임에게 보일 수 있다면 폭포처럼 하얀 마음을 굽힘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보이고 싶다.정호승(1950~현재) 시인은 ‘희방폭포’에서 부처님에게 시인의 마음을 폭포처럼 보이고 싶음을 노래하고 있다. 폭포처럼 그대로 서서 죽고 싶다고 표현한 것은 온전히
불 들어갑니다!하룻밤이든 하루 낮이든참나무 불더미에 피어나는 아지랑인듯잦아드는 잉걸불 사이기다랗고 말간 정강이뼈 하나저 환한 것저 따뜻한 것지는 벚꽃 아래목침 삼아 베고 누워한뎃잠이나 한숨 청해볼까털끝만 한 그늘 한 점 없이오직 예쁠 뿐!고승의 시신을 불에 태우는 다비식 광경이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 그리고 참나무 장작불은 시신을 시나브로 태우면서 차츰 불길이 졸아들고 잦아들었다. 하룻밤이 지나고 다 타지 않은 장작불(잉걸불) 속에서 환하고 따뜻한 기다란 정강이뼈 하나가 나왔다. 유골이다. 이것이 고승의 몸인 법체(法體)에서
관음상 이루어지다 대자대비하신 모습/ 글로나 붓으로나 옮길 수 있으리만/ 하 그리운 맘에 흙을 빚어 봅니다시방(十方) 어느 곳에 아니 나투심 없으시니/ 이 깨끗하지 못한 놈 차마 버리시랴/ 임이어 헌신하소서 그 얼굴로 보이소서서른두 가지 몸 마음대로 나투시니/ 끝동 회장(回裝)저고리 남치마로 차리시고/ 젊으신 어머니 되시어 오래 여기 머무소서춘원 이광수(1892~1950)는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이다. 100년(1919년 2월8일) 전, 동경 유학생 대표로서 2·8독립선언서를 짓고 독립운동을 하였다. 일제강점기 상황에서 적국(敵國)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으로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산에도 들에도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고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도 깨어나 꿈틀거리며 기운이 생동하고 있다. 학교도 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준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설날 SNS로 국민들에게 새해인사를 하면서 양산(梁山)의 집 마당에 핀 매화나무에 꽃이 곱게 핀 모습을 선물하며 남쪽지방의 봄소식을 전해 왔다. 역시 봄이 아름다운 것은 온갖 백화가 다투어 피어나기 때문이다. 국민이 좋아하는 시인 나태주(1945~현재)의 ‘풀꽃’까지 소개해 주어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