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불교의 이단인가 정법의 수호자인가 “태국 불교가 국민 타락 선도한다” “산티 아소케가 유일한 정통” 주장 태국 승가, 아소케 이단으로 규정 국민의 97%가 불자인 명실상부한 불교국가. 연간 1000만명의 관광객이 환락을 찾아 방문하는 세계 최대의 섹스관광국. 태국의 아이러니컬한 양면성 앞에 많은 이들은 태국의 승가와 불교에 대한 의심을 품곤 한다. 이는 대승불교권이나 서구인들뿐만 아니라 태국 국민들이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순적 현실로 인해 태국 불교가 현실도피적인 불교, 현실에 타협하는 불교로 매도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태국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태국의 왕실과 승가, 그리고 정부가 교묘하게 먹이사슬처럼 연결된 공생 관계임을 발견할 수 있다
BPF는 개인의 수행과 평화가 사회와 인류의 평화로 연결되는 통로라 주장하며, 참선·철야정진 등을 통한 대사회적 운동을 전개해왔다. # 특별한 ‘신발’ 전시회 지난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아주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진흙과 흙먼지로 뒤덮인 신발 수천켤레가 쌓인 전시장, ‘이라크 전쟁이 남긴 것’이라는 전시 타이틀을 통해 방문객들은 그것이 누구의 신발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신발의 주인들은 이라크 전쟁에서 죽은 미군과 이라크 민간인들이었다. 그 가운데는 미국 국방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군인들도 포함돼 있었다. 그 전시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12시간 동안의 릴레이 명상을 이어나갔다. 이 전시회를 주최한 BPF 관계자는 “전쟁에 소요되는 인간 비용(the human cost of w
2003년 한국 INEB대회에 참가한 세계 18개국 불교 NGO활동가 100여명은 임진각을 방문해 한국 평화를 기원하는 법회를 열고 '자유의 다리'위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다수의 힘은 세상을 바꾼다. 물방울이 모여 강과 바다를 이루고, 산이 모여 산맥과 백두대간을 이루듯이. 불교 NGO들의 활동을 물방울이 모인 그릇에 비유한다면 이들의 연합체는 적어도 마을을 굽이치는 강물의 흐름에 비유될 수 있지 않을까.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불교 NGO 운동가들은 영세한 환경 속에서 사회적 편견에 맞서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활동 무대는 열악하고 그들의 영향력 또한 상대적으로 미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의 힘이 모아지면서 개인의 편견과 열등감을 극복하
2500여년전 석가모니 부처님은 모든 존재가 불성을 가진 존재라고 천명함으로써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철저하게 부정했다. 이는 인도 브라만 계급의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힌두사회의 관습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도에서 불교가 소멸하고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쇠망과 부활을 반복하는 중에도 중생을 얽매는 카스트 제도는 면면히 이어져왔다. 지금도 수많은 인도인들은 카스트의 한계로 인해 자신의 직업과 결혼, 거주 공간 등 삶의 대부분이 제한된다. 카스트의 네 계급 안에도 속하지 못하는 가장 천한 계급인 불가촉천민들은 여전히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천대받으며 살고 있다. 손도 대서는 안될 만큼 더럽고 천하다는 이 사람들에게 다가가 당신이 곧 부처라고, 그러므로 佛法에 귀의해 당신 스스로를 자유롭
최근 서구에서는 참선과 호스피스를 접목한 불교호스피스라는 영역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호스피스란 죽음을 앞둔 말기 질환자들을 임종까지 돌보는 자원봉사활동을 일컫는데, 여기에 불교의 수행법을 접목시켜 환자의 정신적 안정까지 도모하는 것이 바로 불교호스피스이다. 서구에서도 불교호스피스 활동이 가장 활발한 나라는 바로 호주이다. 불교호스피스가 호주에서 가장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호주인들의 높은 사회봉사 의식과 세계적인 수준의 호스피스 제도, 티베트 스님들의 수행법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 데서 비롯된다. 의료 전문가들이 세계에서 가장 호스피스 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로 호주를 꼽을 정도로 호주의 호스피스 제도는 세계적인 수준이며, 호스피스센터에서 보살핌을 받다 임종하는 환자는 연간 2만4000여명에
쓰나미가 남아시아 일대를 강타하고, 집과 가족을 잃은 수많은 이재민들이 망연자실한 채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스리랑카 해변에 노란 조끼를 입은 한 무리의 대만인들이 도착했다. 이들의 손엔 의약품과 쌀자루가 들려있었고, 이들이 입은 옷엔 자제(慈濟) 즉 자비로 세상을 구제한다는 마크가 찍혀 있었다. 자제공덕회의 구호 봉사단은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재난이 발생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사진은 스리랑카 쓰나미 재해 현장의 자제 봉사단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사상 초유의 강진이 발생한 인도네시아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여진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에도 아랑곳 없이 자제공덕회 봉사자들은 각종 구호품과 함께 인도네시아 재해지역으로 출발했다. 2001년 미국에서 9·11이 발생했을 때에도 가장 먼저 도착
英 조각가 베네샤월키 1970년 조성 연기 - 팔정도-업 상징 조형물 압권 “당신은 익숙하지 않는 곳에서 길을 잃었을 때 지도나 가이드북을 보고 도움을 청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자신의 길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어디에서 돌아설 수 있을 것인가?” 갤러리 중심에 설치된 8미터 높이의 지혜의 분수. 담마 파크 갤러리 소장 베네샤 월키는 “그 방법을 찾고 싶은 사람들은 지구의 한 귀퉁이 태국 탐본 반 판에 마련된 담마 파크를 찾으라”고 말한다. 담마 파크 갤러리. ‘佛法으로 이루어진 공원 전시장’이라 번역할 수 있는 이 테마 파크는 한 영국인 조각가가 태국에 마련한 불교 생태 공원이다. 영국 잉글랜드 출신인 베네샤 월키는 길포드 대학과 메드웨이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19
태국 戒 받은 영국인 스님의 사회봉사 영국에 불교 전하는 역할 톡톡히 담당 99명의 사람을 죽여 그들의 손가락과 발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고, 붓다를 죽임으로써 100명을 채우려했다는 희대의 살인마 앙굴리마라. 그를 미워하는 스승의 꾐에 빠져 잘못된 길로 들어섰던 그는 결국 붓다에게 교화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고, 아무리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도 마음의 방향을 바꾸면 훌륭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의 대명사가 되었다. 위는 교도소에서 참선을 배우고 있는 재소자들. 맨아래사진은 앙굴리마라를 설립한 아잔 케마담모 마하테라 스님. 스님은 2003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사회복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훈작사 작위를 받았다. 이 전설적인 살인마의 이름을 딴 영국의 불교단체
1988년 민중항쟁 직후 민주화 스님 결성 15년간 지하단체로 활동하며 운동 전개 온 국토가 탑과 호수로 뒤덮인 위빠사나의 나라, 1990년 총선에서 승리한 아웅산 수지 여사가 국회에 발도 들이지 못한 채 강금돼 있는 나라 미얀마. 상좌부 불교의 전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고 알려진 미얀마는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로부터 세계 최악의 인권국가, 최고의 빈민국으로 지목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얀마 불교계는 위파사나 수행 전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정권에 빌붙어 민중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집단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혹자는 “미얀마의 스님들이 정치운동을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미얀마 불교의 친정부적 성격을 노골적으로 비웃기도 한다. 미얀
베트남 민주화 운동의 선두주자 틱광도 등 20년째 구속-연금중 1월 11일 새벽 38년만에 고국땅을 밟게 된 틱낫한 스님을 환영하는 인파들이 하노이 공항을 가득 메웠다. 이날 베트남 불교의 ‘봄날’이라도 온 것처럼 스님을 환영하는 플랜카드들과 꽃들이 거리 곳곳에 펄럭이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세계적인 스타 틱낫한 스님의 귀환을 허용한 것에 대해 베트남 정부의 종교적 개방정책(도이모이)이라 설명하며 베트남 인권과 종교 자유의 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UBCV소속 스님들(맨위)과 2003년 파리에서 열린 UBCV회원들의 거리행진(아래). 하지만 정작 베트남 민주화운동의 주자들인 베트남불교연합(UBCV) 소속 스님들은 틱낫한 스님 방문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스님의 고국 방문을 반대하
1만5천개 마을에서 자립운동 전개 우주적 깨달음과 공동체적 삶 추구 아리야라트네 박사가 지난 해일로 피해를 입은 스리랑카 수재민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고 있다. 1505년부터 1948년까지 무려 450년에 가까운 세월을 포르투칼과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지를 차례로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70% 이상이 불교신자인 나라 스리랑카. 근대화 과정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의 대거 유입, 그들의 불교 비판, 서구 지식인들의 사회개조론이 범람하는 등 서구 열강으로부터 물질적·사상적·종교적 개조를 강요받으면서도 스리랑카인들이 어떻게 불교신앙을 지킬 수 있었을까. 그 배경에는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어린이 일요불교학교’(Sunday School)나 1950년대 이후 전개된 스리랑카 전통주의와 신전통주
미국의 불교는 동양의 그것과 달리 사원에서 신도로, 스님에서 일반인으로 전해지는 구조가 아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만나는 불교는 영화와 사진전, 음악회, 출판물, 신문과 TV, 광고 등 대중매체를 통해서이다. 미국에서 티베트 문화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원인을 추적해보면 티베트 승려 출신의 미국인들이 티베트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뉴욕에 위치한 티베트 하우스 전경. 뉴욕에 위치한 티베트 하우스는 명실상부하게 미국내 티베트 불교 대중화의 1번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미국의 다른 티베트 센터와 달리 이곳은 미국 현지인들이 세운 티베트 연구소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달라이라마의 뉴욕 센트럴 파크 법회를 주최하고, 미국내 각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