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젠 더 이상 처분할 재산도 없어요.”몽골 이주민 나른투야(47)씨가 기운없는 목소리로 꺼낸 첫마디는 아들 아나르군(15)의 치료비 걱정이었다. 나른투야씨 가족은 몽골에서 넉넉하진 않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행복한 삶을 이어왔다. 그러나 2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아나르의 얼굴 한쪽이 마비되면서 불행의 그늘이 찾아들었다. 놀란 마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급성림프모구성 혈액암. 몽골의 의료시설로는 항암치료와 제반수술을 진행할 수 없었다. 현지 의사들은 외국의 병원을 빨리 알아보라고 했
“어머니, 아버지는 나이가 많으세요. 눈도 안보이고 무릎도 아프고 숨쉴 때마다 가슴이 아프세요. 저의 고향 스리랑카 상황이 좋지 않아요. 병원치료도 못 받고 비싼 약으로 겨우 통증만 줄이고 있어요.”스리랑카 이주노동자 드라하(49) 씨는 2006년 한국에 들어왔다.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가 택시를 몰며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꿈을 품고 한국에 왔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도 낳고 화목하게 살고 싶었어요.” 기대를 가득 안고 한국에 들어왔지만, 무릎이 불편해 거동이 힘든 부모님을 두고 외국에 오래 나와 있을 수 없었다.
서울 조계사(주지 원명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김형규)이 2월 28일 네팔 이주노동자 순다르 키란(43)씨에게 이주민 돕기 캠페인으로 모금한 400만원을 전달했다. 지원금은 올해 1월 31일부터 2월 27일까지 법보신문 독자들과 불자들이 보내온 성금으로 마련했다.여섯 식구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에 온 키란 씨는 일을 하던 도중 쓰러졌다. 간수치는 일반인의 40배가 넘었고 간경화 초기 증상을 보여 한 달간 약물치료와 쓸개를 제거했다. 그의 병원비는 1400여 만원. 월급 대부분을 고향에 보내 남은 돈이 없다
서울 조계사(주지 원명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김형규)이 1월 31일 스리랑카 이주민 시란(42)씨에게 이주민 돕기 캠페인으로 모금한 400만원을 전달했다. 지원금은 올해 1월 3~30일 까지 법보신문 독자들과 불자들이 보내온 성금으로 마련했다.아버지 병원비를 마련하고자 한국에서 일하는 시란씨는 8년 동안 끔찍한 사고를 연속으로 당했다. 유압프레스에 깔려 손가락이 잘리고, 추위에 언 발을 녹이다 화상을 입어 발가락을 절단했다. 치료하는 과정에서 당뇨가 심해져 무릎까지 잃고 말았다. 의족조차 마련하지 못하다 최근
“딸이 어느덧 7살이에요. 아마 많이 컸을 거예요. 아들은 이제 막 중학교 들어갔어요. 아내에게 듣기론 의젓하게 잘 컸대요. 아이들이 아빠 걱정 안 하고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네팔 이주노동자 순다르 키란(43)씨가 간직하고 있는 딸의 기억은 5년 전, 막 태어났을 때가 마지막이다. 꼬물거리던 손가락과 호기심 가득한 큰 눈이 생생하다. 한국에서 일하다 아내와 8년 만에 재회하며 생긴 생명이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걱정이 컸다. 어려운 형편에 잘 키울 수 있을지 막막했다. “네팔은 대다수가 소작농이에요.
서울 조계사(주지 원명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김형규)이 1월 3일 미얀마 이주민 테민앙(33)씨에게 이주민 돕기 캠페인으로 모금한 400만원을 전달했다. 지원금은 지난해 12월 8일~올해 1월 3일까지 법보신문 독자들과 불자들이 보내온 성금으로 마련했다.테민앙씨는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고자 한국에서 취업했지만, 비호지킨림프종 혈액암에 걸려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고 있다. 일을 할 수 없을뿐더러 매달 들어가는 약값도 만만치 않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소식을 들은 부모님이 역으로 도와주고 있는 상황이다.모금계좌
스리랑카 이주민 시란(42)씨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웠다. 한국에서 청춘을 바친 8년 동안 끔찍한 사고의 연속이었다. 유압프레스에 깔려 손가락이 잘리고, 추위에 언 발을 녹이다 화상을 입어 발가락을 절단했다. 절단 부위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당뇨가 심해져 무릎까지 잃고 말았다. 결국 밀린 병원비만 4000만원. 치료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퇴원을 결정했다. 고향을 떠나올 때 가득했던 청운의 꿈은 잊은 지 오래다.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버틸 힘이 없습니다. 오래전 잘린 손가락은 치료를 잘 마쳤는
서울 조계사(주지 원명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김형규)이 12월8일 네팔 이주민 파이자 다빈(32)씨에게 이주민 돕기 캠페인으로 모금한 400만원을 전달했다. 지원금은 11월1일~12월7일 법보신문 독자들과 불자들이 보내온 성금으로 마련했다.다빈씨는 동료들과 추석을 보낸 뒤 돌아가던 중 가파른 계단에서 실족해 두개골과 허리가 골절되고 말았다. 며칠간 수술실을 들락거린 끝에 사고 발생 10일 만에 의식이 돌아왔지만 말은 어눌해졌고 혼자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쉽지 않다.모금계좌 농협 301-0189-0356-51 (사
“고향 가족 생계를 책임지려고 왔는데 오히려 제 몸이 다 망가져서….”미얀마 이주노동자 테민앙(33)씨가 잔뜩 쉰 목소리로 꺼낸 첫마디는 가족 걱정이었다. 외동아들로 태어난 테민앙씨는 고향 시골에서 작은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종일 열심히 땅을 고르고 밭을 갈아도 풍족한 하루를 보내기 힘들었다. 고된 나날을 보내던 중, 계속 재발하는 심장병을 견디던 어머니가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테민앙씨는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고자 한국에서 취업했지만, 그마저 암 진단을 받고 1년 가까이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고 있다.테민앙씨는 “쿠
서울 조계사(주지 원명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김형규)이 11월1일 태국 이주민 우사씨에게 이주민 돕기 캠페인으로 모금한 500만원을 전달했다. 지원금은 10월10~31일 법보신문 독자들과 불자들이 보내온 성금으로 마련했다. 육류 가공 공장에서 일하던 우사씨는 올해 6월30일 장갑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며 팔이 절단되고 말았다. 사고 후유증도 심각한 상태다. 매번 나가는 재활치료비와 의수 제작 등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56-51 (사)일일시호일. 070-4707-1080고민
가족의 생계를 위해 2016년 한국에 온 네팔 이주민 파이자 다빈(32)씨.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톱니바퀴처럼 일했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가파른 계단에서 헛디딘 발끝 한 번에 청년 가장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다빈씨가 한국에서 맞이한 7번째 추석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연휴를 맞아 동료들과 모임을 열었다. 고된 일과를 마친 동료들은 각자 가족 이야기를 꺼냈고, 자연스럽게 애달픈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 친구 여동생은 어릴 적에 핑(Ping, 대나무 그네) 타는 것을 좋아했어요. 한국과 문화가 비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김형규)이 10월10일 미얀마 이주노동자 아우룽 툰(32)씨에게 400만원을 전달했다. 8월31일부터 10월9일까지 법보신문 독자들과 불자들이 보내온 성금으로 마련했다.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아우룽 툰씨는 고된 일과를 마치고 거처로 돌아온 순간 깨질 듯한 고통으로 쓰러졌다. 동료들과 사장님의 도움으로 급히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지역병원에 환자가 많아 여러 곳을 돌다 입원했다. 선천적 동정맥기형으로 인한 소뇌출혈이었다. 수술에 들어갈 때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그는 나흘이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올해 6월30일 오전 7시, 공장에 출근한 태국 이주노동자 우사(31)씨는 돼지고기를 기계에 하나하나 넣어 잘게 다지기 시작했다. 휴일을 하루 앞뒀기에 한 주를 빨리 마무리하려는 생각뿐이었다. 컨테이너 벨트를 따라 가공된 첫 번째 돼지고기가 나왔다. 두 번째 고기를 넣는 순간, 그만 장갑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으드드득” 뼈가 갈리는 끔찍한 고통이 몸을 뒤덮었다. 우사씨는 비명을 내질렀지만, 이른 시간 공장에 출근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국 팔이 반이나 잘린 뒤에야 기계가 멈췄다. 사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김형규)이 8월31일 스리랑카 이주민 인디카 삼밧(45)씨에게 400만원을 전달했다. 7월28일부터 8월30일까지 법보신문 독자들과 불자들이 보내온 성금으로 마련했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던 삼밧씨는 수원 가구공장에서 자재를 옮기던 중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응급 관상동맥 조영술 및 중재시술을 시행해 위기를 모면했으나 혈압 저하 및 폐부종이 이어져 지속적인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게다가 오랫동안 몸을 혹사시킨 탓인지 상세불명의 원발성 고혈압과 고지혈증 등 합병증을
“이제 집에 가서 어머니와 아내를 보고 싶어요.”미얀마 이주노동자 아우룽 툰(32)씨가 꺼낸 첫마디였다. 몸은 비록 성한 곳이 없더라도 그는 당장이라도 젊은 아내와 노모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가고 싶다. 그러나 2000만원이 넘는 병원비가 그의 발목을 꽉 붙들고 있다.그가 한국을 찾은 건 2015년 봄이었다. 정성껏 키워준 어머니에게 보답하고자 한국행을 택했다. 당시 24세, 한창 혈기왕성하던 그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루빨리 가정을 이뤄 어머니에게 손주를 안겨주고 싶었다. 임금을 많이 주는 직장을 이곳저곳 알아보다 선배 이주민들의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김형규)이 7월27일 네팔 이주민 파르바티(31)씨에게 400만원을 전달했다. 6월28일부터 7월27일까지 법보신문 독자들과 불자들이 보내온 성금으로 마련했다. 식당과 공장 등에서 생계를 잇던 파르바티씨는 지난해 후진하던 차량에 오른발을 밟혔다. 큰 이상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서울 네팔법당 주지 쿤상 스님의 도움을 받아 서울소재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근육이 안에서부터 찢기고 끊어져 조금만 더 늦었다면 한쪽 다리를 잃을 뻔했다.
가족과 떨어진 지 10년. 그사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오직 가족의 행복을 위해 한국에서 쉴 새 없이 일하던 인디카 삼밧(45)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저는 힘들어도 괜찮아요. 고향에 이 돈을 보내면 가족이 행복하니까요. 부모님은 농사를 짓는데, 제가 한 달을 꼬박 일해 벌은 돈이면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그럭저럭 살 수 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겨진 어머니가 걱정돼요. 하지만 돌아갈 수 없어요. 일을 그만두면 우리가족은 살아갈 방법이 없어요.”국가부도로 극심한 경제난을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김형규)이 6월27일 북한 이탈주민 김혁일(34)씨에게 400만원을 전달했다. 5월25일~6월27일 법보신문 독자들과 불자들이 보내온 성금으로 마련했다. 김혁일씨는 지난해 11월 지인의 차량을 타고 이동하다 건물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꼬박 한 달만에 의식을 되찾았으나 부러진 다리와 관절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뇌경색까지 발생해 병환이 더욱 악화됐다. 3개월의 수술과 치료를 거친 현재 재활 치료를 남겨두고 있지만 뇌경색으로 인한 운동기능 및 감각기능 저하,
비난과 괴롭힘의 연속이었다.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어눌하다며 구박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등살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오직 남편만 믿고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낯선 땅을 찾았지만, 네팔 이주민 파망 파르바티(31)씨가 한국에 정착하기는 녹록치 않았다.“2012년, 막 스무 살 성인이 됐을 때 지인의 소개로 당시 37세였던 남편을 만났어요. 남편은 매달 제 가족에게 돈을 보내준다고 약속했어요. 어린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어렵게 농사짓고 있는 부모님의 손을 덜어드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죠. 가족만 생각하며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김형규)이 5월26일 베트남 유학생 응예틴찐(23)씨에게 400만원을 전달했다. 성금은 4월27일~5월24일 법보신문 독자들과 불자들이 보내온 금액으로 마련됐다. 응예틴찐씨는 교통비를 아끼려고 전기자전거로 출근하다 버스와 충돌했다. 경추, 흉추, 요추, 늑골 등 다량의 뼈가 골절되고 신장과 간 등 장기들이 파열됐다. 아주대 외상센터장을 비롯한 내로라하는 교수들이 달려든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현재 그는 다행히 상태가 호전돼 전치 22주 판정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