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고 불법 홍포에 앞장서온 불교활동가를 지원하기 위한 후보를 추천받는다.동출 스님은 11월6~20일 제20회 불교활동가 추천 공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지원자격은 5년 이상 현장에서 활동한 재가불자, 외국인 스님이며, 이력서 및 활동내역서와 개인 호은 단체 추천서 1부를 이메일(sulpub@nate.com)로 접수하면 된다.심사를 거쳐 활동가를 선정하며 불교활동가지원금 전달식은 11월 말~12월 초에 진행될 예정이다.자세한 사항은 동출 스님에게 문의하면 된다. 010-9004-2707김민아
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주지 원경스님)가 9월7일 대광보전에서 불모 금호약효스님 95주기 추모다례재를 봉행했다. 행사에는 금호 스님의 문도와 유족들이 참석했다.마곡사 주지 원경 스님은 “마곡사는 수많은 화승을 배출한 도량으로 현재 금호 스님의 후학들을 위해 금어원을 짓는 공사를 진행 중에 있다”며 “2024년도에 완공해 2025년에는 금호 스님을 위한 전시회를 할 개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시회를 위해 금호 스님의 작품을 대여 호은 기증을 받고 있다”며 “스님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강태희 충청지
아미타부처님은 어디 계신고.마음에 간직하여 간절히 잊지 말게나.생각하고 생각해 생각 없는 곳에 이르면육근의 문에서 자금광이 비치리라.阿彌陀佛在荷方(아미타불재하방)着得心頭切莫忘(착득심두절막망)念到念窮無念處(염도염궁무념처)六門常放紫金光(육문상방자금광) -나옹혜근(懶翁惠勤, 1320~1376)계묘년 새해 벽두(2023.1.1),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오전에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연락을 받고 어머니가 입원해 계시는 광주(光州) 병원으로 부랴부랴 달려가는데, 중간쯤 갔을 때 운명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7년 넘게 병상에 누워 계시느라 온몸이
일제강점기 친일승려 척결과 조선총독부 사찰령 폐지에 앞장선 동고당 문성 대종사의 독립유공자 추서를 기념하는 포상 전수식이 부산 해인정사에서 마련됐다.해인정사(주지 수진 스님)는 9월16일 경내 대적광전에서 ‘동고당 문성 대종사 독립유공자 포상 전수식’을 봉행했다. 이 자리에는 해인정사 주지 수진 스님과 스님의 상좌 스님들이 참석했으며 강석두 국가보훈처 공훈관리과장, 이갑준 사하구청장, 최인호 국회의원 등과 해인정사 신도들이 자리했다. 법회는 삼귀의 및 반야심경, 국기에 대한 경례, 포상(대통령 표창) 전수 및 기장 봉정, 헌향, 헌
지난 토요일 한 스님의 다비식이 있었다. 송광사에 온 이래 4~5번의 다비식을 보았다. 절집 다비식이나 속가의 장례식도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대부분 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이웃의 도움을 받아 매장까지 했지만 요즘은 거의 장례식장에서 상을 치르고 전문업체가 매장 호은 화장까지 도맡아 한다. 절집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전문업체가 다비식을 준비한다.그래도 다비의식 등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온 대중이 모두 참석해 번과 만장을 들고 다비장까지 운구를 하고 염불을 하면서 차분하고 장엄하게 진행된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법랍이 지
일제강점기 친일승려 척결과 조선총독부 사찰령 폐지에 앞장선 동고당 문성 대종사가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문성 대종사의 상좌인 부산 해인정사 주지 수진 스님은 8월24일 해인정사 경내 문화회관에서 ‘동고당 문성 대종사 독립유공자 추서 기념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가보훈처로부터 ‘2022년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포상 안내’를 받게 된 사실을 알렸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8월9일 문성 스님의 상좌 수진 스님 앞으로 보낸 공문에서 “정부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여 민족자존의 기치를 높이 세우신 박문성 선생의 독립운
지난 30여년 간 지역 불자들을 위해 불교 서적을 간행해 배포하는 등 문서포교에 앞장서면서 교도소 재소자들의 교화를 이끌어 온 군산 성흥사 회주 송월 스님이 법보신문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1992년 성흥사 주지로 부임한 송월 스님은 개신교세가 유독 강한 군산에서 포교를 위해 달마도 10만 장 보시의 원력을 세웠다. 또 절의 소식을 알리는 소식지부터 ‘법구경’ ‘금강경’ ‘화엄경’을 요약한 법문집 등을 발간해 문서를 통한 포교에 앞장섰다. 송월 스님은 2000년부터 군산교도소를 시작으로 전북지역에서 재소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헌
‘저물녘 눈을 뜨는 열나흘 달빛처럼/ 어둠을 밀어내는/ 청청한 저 눈, 눈빛,/ 주장자 비껴들고서 짐짓 딴청이시네 // … // 보리심(菩提心) 한 자락도 부여잡지 못한 아침/ 세상 밖 바람결에 귀를 잃어버렸구나!/ 부릅뜬 눈썹 끝에서/ 쏟아지는/ 바람소리’ (김종호 시 ‘달마도를 걸다’ 중에서)달마도가 기운 넘치는 생동감을 얻으려면 소림사 면벽 9년의 정진력이 농축된 ‘눈’이 살아야 한다. 군산 성흥사 회주 송월법원(松月法圓) 스님의 화폭에서도 그 청정한 눈은 강렬하게 빛난다. 일필휘지로 내려간 가사(법의)의 선(線)도 강한 듯
얼마 전 호은 스님에 관해 묻는 짤막한 이메일을 받았다. 2007년 6월 내금강을 다녀와 쓴 기사를 봤는데 여기에 장안사에 머물렀던 고승들 중에 호은 스님이 거론됐다며 관련 기록들을 찾아줄 수 없느냐고 했다. 당시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고 기사를 쓰기는 했지만 근대사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어려울 것 같다고 답장을 보냈다. 이를 계기로 몇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의외의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이메일을 보낸 분은 남해에 거주하는 박신조(65)씨로 호은(虎隱, 1850~1918) 스님 친동생의 증손이라고 했다. 기이한 인연으로 어릴 때
194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순천 송광사 주지를 3번 지내면서 조계총림의 승풍을 진작시켰던 취봉 스님이 지난 8월9일로 입적 35주기를 맞았다. 이를 계기로 보성 대원사 회주 현장 스님이 취봉 스님의 상좌인 원공 스님이 구술한 얘기들을 토대로 정리해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현장 스님은 취봉 스님에 관련된 일화와 어록 등을 소개한 뒤 “폭력적인 투쟁이나 소송 없이 불교정화의 모범이 된 송광사 이야기는 조계종단에 커다란 교훈으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편집자 송광사의 취봉 노스님은 일본 임제대학을 졸업한 현대적인 학식과 교양
군산 성흥사 주지 송월 스님이 군산예술의전당 제2·3전시실에서 ‘꽃은 피고지고 또 피고’를 주제로 서예·문인화 개인전을 열었다. 9월2~8일 진행된 이번 개인전에서는 2m✕7m의 금강경과 2m✕8m의 연꽃작품 등의 대작을 비롯해 금강경 병풍, 반야심경 병풍, 법성게달마 병풍과 현대서예 달마도, 문인화 등 송월 스님의 다양한 작품이 선보였다.9월3일 열린 개막식에는 태고종 포교원장 승천 스님(정읍 일광사 주지)을 비롯해 군산사암연합회장 도연(군산 상주사 주지), 순창사암연합회장 청암(순창 장덕사 주지), 전주
오늘은 우란분절입니다. 백중이라고도 하는데 ‘우란분경’에는 우란분절의 기원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목련존자가 육신통을 얻어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찾았더니 어머니는 아귀로 태어나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신통력으로 어머니를 구하려 했으나 어머니의 업이 두터워 구할 수 없자 부처님은 수행승의 자자일(自恣日)인 7월15일에 과거와 현재 7세(世)의 부모를 위해 부처님과 스님들께 백가지 음식과 다섯 가지 과일 등으로 공양하면 돌아가신 어머니도 천계의 복락을 누리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련존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 아귀도에
日미성년 출산 심각한 수준 미성년 결혼 중 90%가 파탄 ▲좋은 만남은 인생을 좌우하고, 따뜻한 가정의 정이 소중한 만남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히로나카 스님은 고등학생들에게 만남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있다. 두 달 전 우리 절에 17세인 아이 엄마와 9개월짜리 미우라는 아기가 함께 왔다. 일본의 최남단 섬인 오키나와에 있는 여성지원센터에서 연락을 받아 나는 아이와 젊은 엄마를 우리 절로 받아들였다. 미우 엄마는 16세에 임신을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모두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결혼 후 몇 달 동안은 사이좋게 지냈는데, 갑자기 아이 아빠가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다. DV(가정
부처님 말씀 가운데 첫 번째 효는 ‘의식주’요, 두 번째 효는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요, 세 번째 효는 부모님을 부처님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부처님처럼 받드는 것이 바로 바른 효도입니다.이처럼 지중한 부모님의 은혜를 우리들은 과연 얼마만큼이나 가슴에 새기고 사는지, 부모님께 보답을 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겠습니다. 오늘은 우란분절 기도에 입재하는 날입니다. 불자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우란분절은 부처님의 효에 관한 가르침을 상징하는 불자들의 명절입니다. 다음 일화를 잘 새겨들으시고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새깁시다.언젠가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남인도의 어느 마을을 향해가고 계셨습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길거리에 웬 사람의 해골 무더기가
‘푸른 길 따라서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누각이 시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네. /눈발 흩날리며 걸린 폭포는 용의 조화가 분명하고/ 하늘 찌르며 솟는 흰 학은 몇 천 년이나 살았는지/ 시냇가 푸른 소나무도 삼백 길이나 되어 보이네./ 스님은 내가 봄잠 즐기는 것도 알지 못하고/ 무심하게 낮 종을 치고 있구나.’ (김삿갓 ‘금강산에 들어가다(入金剛)’)묘길상과 마하연을 뒤로 하고 표훈사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짧은 석장에 의지한 원로 스님들이 묘길상을 향해 더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춘원은 만폭동을 눈으로 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금호 스님의 수제자사실감 중시…산수화 일품단청-조각에도 뛰어나 어느 날, 고창 선운사 하늘에 화광이 솟자 이를 본 사하촌 사람들은 절에 불이 난 줄 알고 허겁지겁 모여 들었다. 그러나 선운사는 산사의 고즈넉함만을 간직하고 있었을 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고창 선운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당시 선운사에서 특별히 추진하고 있었던 불사는 단 하나. 바로 ‘선운사 팔상탱화’〈사진〉를 조성하던 중이었다. 이 불사의 도편수는 금호 스님의 수제자 보응 문성. 불사에 임할 때 회향일을 정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던 보응 스님은 마지막 붓을 놓을 때를 회향일로 잡았다. 보다 여법한 탱화를 조성하고자 했던 원력이 있어서일 것이다. 팔상탱화를 조성할 당시 고창 지역은
오래전 지리산 천은사 삼일암에서 내가 겪은 일이다. 그 선원은 전국에서 공부 잘 하는 선객들이 구름처럼 모여와서 성황을 이루었다. 그런데 그 당시 천은사 큰절에 나이 70여세나 되는 호은이라는 노장님 한 분이 계셨는데 그는 중노릇 수십 년에 강당이나 염불당, 또 기도처만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런 방면에는 아는 것이 많았으나 한 번도 참선은 해 본 일이 없었다. 이 노장이 결제 전날 삼일암에 와서 다른 스님들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입승은 “어림도 없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 사실을 안 성월 조실 스님은 허락하며 “이왕 아주 올라와서 공부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돈 빌려 준 문서와 쌀 빌려 준 문서를 지켜야 하고…” 그 당시 나뿐 아니라 50여 대중의 불평도 조실
백차는 살청이나 유념(捻) 공정이 없이, 시들게 하는 위조(萎凋)와 건조 등 2단계만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 지는 가장 원시적인 차로 장시간 시들기 만으로 약간 발효되게 건조시킨 흰솜털이 많이 보이는 약발효차(微醱酵茶)이다. 백차는 어린 싹으로만 만든 백아차(白芽茶)와 1창 1~3기로 만들어 지는 백엽차(白葉茶)로 나누어지는데, 차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백호은침(白毫銀針)이 백아차에 속하고, 백차지만 흰색으로만 보이지 않고 흰색 녹색 갈색 등이 어우러진 색인 백목단(白牧丹), 공미(貢眉), 수미(壽眉) 등은 백엽차에 속한다. 백차의 유래는 중국의 당(唐), 송(宋) 시기에 발견된 생엽 자체가 희게 보이는 백엽차나무(白葉茶樹)에서 따서 만든 것으로, 송나라 휘종 황제가 자신이 저술한『대관다론』에서 말
캄보디아의 전통 축제인 ‘쌀의 날’ 축제가 5월 26일 열렸다. 농업 인구가 많은 캄보디아에서는 쌀의 날이 되면 온가족이 함께 가까운 절을 찾아 부처님께 한해의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한다. 온가족이 정성을 다해 부처님께 올해의 풍작을 기원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우기가 시작되는 4월 말부터 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물이 고이는 5월 중순이 되면 쌀의 날 축제를 연다. 쌀의 날은 캄보디아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명절이자, 모내기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기도 하다. 캄보디아는 전국민의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전체 농사의 80%가 바로 벼농사이다. 캄보디아에서는 대부분의 논에서 2모작이 가능하며, 수로와 인접한 논의 경우 1년에 5모작까지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처럼 영농이
해인사(海印寺)의 사명(寺名)은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유래한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없이 깊고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때 우주의 온갖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海]에 비치는[印]는 경지를 말한다. 창건주 순응 스님 사명이 《화엄경》에서 유래한다는 것은 해인사가 화엄사상을 이념으로창건된 사찰임을 의미한다. 최치원이 지은 과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 조에는 의상 스님의 가르침이 전해진 사찰 10곳[華嚴十刹]을 기록돼 있는데, 해인사 또한 화엄십찰의 하나다. 해인사의 창건주는 순응(順應) 스님이다. 스님은 신라 애장왕 3년(802)에해인사를 짓는데 해동화엄의 종조 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