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 때 김진영 선생 문하로 들어가 조각 입문백제불교도래지 조성하며 120호 석장 지정 노르웨이 오슬로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프로그네르 공원이 있다. 일명 ‘비겔란 조각공원’이라 불리는 이 공원은 총 32만 3700평방미터에 조각가 비겔란의 작품 193 점이 멋진 조경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세계 명소로 거듭난 이 공원을 찾는 관광객만도 매년 400만명. 특히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관련된 조각품들이 펼쳐져 있고, 더욱이 윤회를 바탕으로 한 동양사상이 스며들어 있기에 더욱 눈길을 끄는 공원이다. 강함-부드러움 조화돼야 조각가 비겔란이 ‘프로그네르’공원을 만들었다면 석장 이재순 씨(53세)는 ‘백제불교최초도래지’를 조성했다고 할 수 있다. 영광 법성포에 조성되고 있는 ‘백제불교최초도래지’는 A.
18세 김만술 선생 문하 입문 후 조각에 눈 떠원만 상호-조형미 위해 과학 접목 시도 결실 그리움으로 여기 섰노라/ 호수와 같은 그리움으로,이 싸늘한 돌과 돌 사이 / 얼크러지는 칡넝쿨 밑에 / 푸른 숨결은 내 것이로다.세월이 아주 나를 못 쓰는 티끌로서/ 허공에, 허공에, 돌리기까지는 / 부풀어오르는 가슴속에 파도와 / 이 사랑은 내 것이로다. .......중간 생략......허나 나는 여기 섰노라./ 앉아 계시는 석가의 곁에/ 허리에 쬐그만 향낭을 차고이 싸늘한 바위 속에서/ 날이 날마다 들이쉬고 내쉬이는/ 푸른 숨결은/ 아, 아직은 내 것이로다. (서정주 시 ‘석굴암관세음의 노래’중에서) 경주 석굴암 본존불을 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 탄성은 보는 순간 터져 나오기보다 시
19세 때 유천만 장인 만나매듭 공예 전수 받아한·중·일 3개국 교류전주도하며 세계화 견인 中, 화려- 日, 사실적韓, 정갈-섬세 매력생활 장신구 변화 따라현대 매듭도 발전 거듭 40여년 매듭일에만 전념해 온 심영미 장인이 비톳에 실을 걸어 꼬고 있다. 사진=채한기 기자. 실과 실이 만나 마디가 생기고, 그 마디는 다시 또 다른 마디와 만나 나비가 된다. 그 나비 매듭은 다시 풀어져 실로 돌아가지만 다시 매듭과 매듭의 인연을 맺으며 한 송이 매화로도 피어난다. 이처럼 매듭은 인연 속에 윤회를 거듭하듯 시작과 끝이 둘이 아님을 우리에게 조용히 전해준다. 매듭장 심영미(62세). 그는 지난 40여년 세월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한 올 한 올 엮듯 매듭에만 정진해
’78년 ‘쪽’ 만난 미술학도 40대 초 문화재로 나주서 4대째 가업…천연염색 대중화 선도 쪽 염료 ‘꽃물’이 소생하기 전‘욕심’이 들어가는 순간 쪽빛은 사라지고 만다.자연이 주는 풍요로움도 받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은 장인이다. “푸른색은 쪽(藍)에서 얻었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靑取之於藍而靑於藍), 얼음은 물로 인해 이루어졌으나 물보다도 더 차다(氷水爲之而寒於水).” 중국 순자(荀子)의 이 한마디에서 청출어람 (靑出於藍),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이르는 성어가 유래했다. 한승원 작가는 그의 한 작품에서 ‘하늘과 바다가 왜 쪽빛이거나 청람색일 때가 더 많은지 아시오?’라고 물으며 이렇게 말한다. “붉은색은 흥분하게 하고 노란색은 긴장하게 하고 검정은 절망하게 하
조선 중기 끊겼던 전통종 제작 기법10년 각고 끝 찾아 신라종 완벽 복원 한쪽 눈을 잃었지만 작은 깨달음을 얻은 원광식 종장은 오늘도 범종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 쪽 눈을 잃었으니 수평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종은 만들 수 없다.” 스승이자 8촌 형님이기도 한 원국진 장인의 한마디는 청년 원광식에게 청천벽력이었다. 종에서 손을 뗀 그는 1년 가까이 방황했다. 지난 5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1963년 그는 스승 원국진 장인의 권유에 따라 종 만드는 일에 손을 댔다. 신의주에서 주조 작업을 했던 원국진 장인은 3.8선이 그어지던 무렵 남쪽으로 내려왔고 ‘성종사’ 이름으로 종 만드는 일을 이어갔다. 그러나 스승에게는 아들이 없었
나전-구두제작 기술 접목선조 칠피 기법 완벽 터득초창기 문헌-유물거의없어가죽위에 구두약 칠하기도 유물재현-전통작 선보여사라진 칠기공예 되살려신선미 투영한 현대작 심혈후학양성·대중화 선도 역할 박성규 칠피장은 30여년 동안 전통공예 복원과 창작에 매진해 왔다. 가죽칠 공예라 할 수 있는 칠피(漆皮)는 아직도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진다. ‘가죽’이라 하면 구두나 장갑, 옷, 그리고 핸드백 등의 실용품만 떠올리게 될 뿐, 이 가죽이 때로는 옷장이 되고 서류함이 되며 보석 상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좀처럼 하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박성규 씨가 1990년대에 접어들며 옛 칠피 기술로 세간에 유물 재현과 전통 작품을 선보이기 전까지 우리의 칠피 공예가 존재했
2004년 5월 경주 감은사지를 방문한 R. 나라야난 교수. 부처님오신날은 불자들에게 부처님이 탄생한 나라인 인도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고 인도 성지 순례를 다녀 온 불자들의 뇌리에서는 탄생성지인 룸비니 동산과 성도성지인 보드가야의 대탑 앞에서 느꼈던 전율이 잔잔하게 흐를 것이다. 붓다의 나라 인도의 제1종교는 점유율 80%를 넘는 힌두교이며 불교는 1%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신지 2400여년이 흐른 지금, 불교는 인도 사회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을까. 또 인도인들에게 부처님은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을까. 인도 네루대학교 국제관계학과 나라야난(73, Rangachari Narayanan) 교수에게 인도 사회에 남아 있는 부처님의 발자취와 문
3대 장인 손꼽힌 민종태‘수곡’ 호 이은 무형문화재 64년 오색찬란 자갯빛에푹 빠져 장인 대장정 올라 고려 명작 복원 열정 살려현대감각 살린 작품에 매진 돈에 눈멀어 조급증 생겼다면당장 손 떼고 다른 길 찾아라 손대현 나전칠기장이 발우에 옻칠을 하고 있다. 수행정진 할 스님이 사용할 발우이기에 더욱 정성을 쏟는다. 경기도 광주 산기슭에 자리한 손대현 나전칠기장(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4호· 59세)의 작업실에 이르자 그가 나와 합장을 하며 반갑게 맞는다. “먼 길 오셨습니다!” 정성들여 모은 두 손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보내는 눈길이 참으로 따뜻했다. 그의 호는 수곡(壽谷)이다. 이채로운 것은 그의 스승 호도 ‘수곡’이요, 스승의 스승 호도 ‘수곡이라는 점
6·25 종전 직후마음 달래려 동양화 입문해학·파격 구성·강렬색채이끌려 민화 공부 시작 서궐도-고구려 고분벽화 복원독보적 업적으로 평가 받아대중 ‘민화사랑’에 감사70여 제자에 만화기법 전수 백발의 송규태 민화장. 겸손과 당찬 기운이 배어있는 장인이다. 창경궁과 창덕궁을 일러 동궐이라 한다. 이 동궐의 전경을 그린 그림이 ‘동궐도’인데 세로 273cm, 가로 36.5cm로써 다섯 번 접게 되어 있는 화첩 16개가 연결되어 하나의 그림을 이루는데 합치면 세로 273cm, 가로 584cm의 대작이다.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후원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구도를 잡아 각 건축물의 위치와 모양, 부속 시설물, 주변 산세와 나꾸까지도 채색으로 세세하게 묘사돼
김태숙-한상수 문하서 동양-한국전통기법 사사천연염색-창조성 돋보여 최고 자수 반열 올라 자신 머리카락 사용 ‘비천상’맥끊긴 고려기법 복원한 명작중국상품에 밀려 힘겹지만 각고 정진으로 하나씩 극복 유희순 자수장은 30여년 동안 틀 앞에 앉아 세상만물을 수 놓았다.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수를 놓는다.금실 은실 청홍실/ 따라서 가면/ 가슴 속 아우성은 절로 갈앉고처음 보는 수풀/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남향 햇볕 속에/ 수를 놓고 앉으면세사 번뇌/ 무궁한 사랑의 슬픔을/ 참아 내올 듯머언/ 극락정도 가는 길도/ 보일 성싶다. (허영자 시인의 ‘자수’) 정성을 다해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가는 여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섬섬옥수 따라 비단 위에
40년 두석장의 길을 걸은 그에게서 무소유 삶을 사는 선승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자물쇠에 관심이 많았던 박문열 씨는 진주의 장석수집가 태정 김창문 씨가 7단 자물쇠를 소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가 머무르고 있는 진주로 향하고 있었다. 대중 전통가구에 달린 자물쇠는 기역자로 구부러진 쇳대를 넣은 후 고삐를 빼는 단순한 형식의 2단 자물쇠. 그러나 패물이나 주요 문서를 넣어두는 조선시대 대감 집 가구의 자물쇠는 2단이 아닌 5단, 6단 등 차원 높은 기기묘묘한 자물쇠였다. 1992년 자물쇠를 주제로 설립한 사립 박물관인 태정박물관에 도착, 그 유명한 7단 자물쇠를 본 순간 그는 이 자물쇠를 복원시켜보자는 원력을 세웠다. 1979년부터 매년 장석 관련 유물을
이인호-박준주-이형철 선생문하서 단청-도금-보존 사사 법주사-홍인지문-경복궁700여 사찰-문화재 단청불사 무분별 화학안료 사용하는작금 악순폐단 사라져야 창의적 문양-색조 창출해야답습 넘은 현대단청 인정 40년 가까이 단청장의 길을 걸어온 월천(月泉) 양용호 씨. 산사의 한 전각을 완성하는 데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품이 든다. 목조 건축의 설계부터 완성까지 총괄 감독하는 건축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도편수, 기둥과 창방, 소로 등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어가는 목수, 지붕에 기와를 올려 전각의 형태를 마무리 하는 개와장. 그들 손길에 따라 산사의 기본 품격은 달라진다. 그러나, 그 산사의 전각을 최종 마무리 하는 사람은 도편수나 목수, 개와장이 아닌 바로
17세 조찬형 문하 입문최영환 만나 만리동에 둥지목공소 화재 역경 딛고‘장인 탁마’열정 불태워 창호 선보인 사찰만 500개미술관-한옥서도 맹활약세계 문양-기법 탐구하며 1000년 전통 맥 이어가 심용식 창호장은 17세에 목공에 입문해 30여년 동안 외길 인생을 걸었다. 서울 만리동의 시멘트 건물 사이로 금강송 향내음이 짙게 풍겨온다. 심용식 창호장의 손길이 머무는 성심예공원. (誠心藝工院·02)715-3342)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격자문을 열자 눈꼽쟁이창, 머름창, 팔각창, 소슬모란무늬문, 격자문, 불발기문 등 다양한 무늬의 창문과 출입문이 즐비해 있다. 30여년 장인의 길을 걸어 온 그의 여정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6호 창
10대 견습공 입사은공예 첫 인연이재호 문하서 본격 탁마1000년 은공 맥 이어가 한국기업-팔레비 국왕도세련-신선미에 찬사전통-현대미 깃든 불구 창작사리함 등 원형복원에도 심혈 백용식 은대공장은 지금도 기계를 마다하고 망치로 두들겨 원형을 잡아간다. 1996년 경상북도 월성군에 있는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 중 동쪽 석탑을 해체 수리하면서 발견된 사리장치. 외함, 사리기(내함), 사리병으로 구성된 이 사리장치(보물 제1359호)는 신라 ‘불교예술의 백미’라 평가될 정도로 은공예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외함 사벽면에는 사리를 수호하는 사천왕상과 상서로운 구름무늬를 새겼고 귀면 장식을 한 고리도 달려 있다. 압출기법으로 표현된 사천왕상은 당장이
호롱불 아래서만화 스승삼아 그림공부 종교미술 입문 가능성에볼펜 두 자루 들고 상경 주남-송곡 문하서 정진불미대전서 대상 수상 불교미술→전통미술 위해필법-색채-문양연구 박차 김의식 불화장이 붓 끝에 신심을 모아 보경사 탱화를 조성하고 있다. 깨달음도 일대사 인연을 만나야 몰록 찾아온다고 했다. 화두일념을 통한 인고의 용맹정진 세월을 보냈을 때 ‘깨달음의 인연’이 닿을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법성(法性) 김의식. 그의 불화 인연도 그렇게 찾아왔다. ‘무속화’를 공부 하면 어릴 적 산사에서 보았던 여법한 불화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붓을 잡았던 그는 19살, 친구가 가져 온 불화 도록 한 권을 보고 새로운 눈을 뜬다. “충격이었습니다.
화롯불에 여덟 손가락 큰 화상‘천년 맥 이어라’ 가르침 실천 한 살 때 입은 화상으로 여덟 손가락이 온전치 못한 이재만 씨. 그러나 그는 올곧은 ‘장인’정신으로 일관하며 그 손으로 대작들을 쏟아냈다. 미색의 얇은 종이처럼 가공시킨 소뿔 안으로 부처님과 관음보살, 지장보살이 여법하게 나투고 있었다. 관음보살과 함께 작게 그려진 동자들의 웃음이 맑기만 하다. 아직 채색 단계에 이르지 않아 색감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벽화나 일반 불화와는 또 다른 불교예술 걸작이 출현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인천 간석동 한 작은 작업실의 이재만 씨는 요즈음 불화 서적과 경전을 탐독하며 10년 전에 세웠던 2m 불탑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목조 불탑에 화려한
16세 때 조부 권유로정기호 문하에 입문 3년 동안 청소 허드렛 일기교보다 정신체득 어려워 30代 방황 속 미술계 도전전각-회화 접목 새 길 개척 무소유 삶 속 외길 걸어아시아 최고 명인 반열 민홍규 씨는 열 여섯 살 때 석불 정기호 선생 문하에 입문에 40년 가까이 옥새장의 길을 묵묵히 걸어 왔다. 정부가 2006년 말 공모한 ‘새 국새 모형 공모전’에서 인문(글씨), 인뉴(손잡이·봉황 손잡이)부문에 모두 당선된 민홍규(52세) 옥새장. 공모전을 통해 국새 제작의 제1인자로 명실공이 인정받은 셈이지만 사실 그는 아시아권에서는 독보적인 옥새 제작자로 우뚝 선 인물이다. 한 나라의 왕권을 상징하는 이 옥새의 제작 기법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