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시식은 천도·퇴치를 병행하는 의식마음에 번뇌 없는 사람에겐 귀신도 못와 부처님은 사대부조(四大不調), 음식, 업, 마음, 귀신에 의해 병이 생긴다고 했다. 먼저 사대부조 병은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기는 병으로 환경 조건이 맞지 않거나 운동 부족 등이 여기에 해당 된다. 다음 음식으로 인한 병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과음이나 과식 혹은 영양 부족이나 변질 된 음식을 먹어 병이 생기는 경우이다. 업에 의한 병은 과거생에 지은 좋지 않은 행위가 현생에 과보로 나타나는 경우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병이 생길 수 있는 요인을 안고 있다가 때가 되면 그 병이 마음과 몸으로 나타나게 된다. 일종의 유전적이고 선천적인 병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에 의한 병은 심리적 병리 현상으로 욕구불만, 스트레스,
천도재는 죽은자와 산자 위한 해탈법회 집착과 미혹 씻어내고 공덕을 쌓는 의식 불교의 다양한 의례 가운데서도 천도재나 사십구재는 불자들을 떠나 일반인들에게 까지 빼 놓아서는 안 되는 의식으로 중요성이 크다. 불자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사람이 죽고 난 후에는 반드시 천도재나 사십구재를 해주어야만 되는 것으로 여기고 절을 찾아가 망자의 명복을 빌고 보다 좋은 세상에 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천도재나 사십구재가 그 의미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과연 망자를 비롯한 유족이나 동참자들에 대한 교화 효과의 정도가 얼마나 되느냐하는 데에는 회의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우선 오해 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천도재나 사십구재를 하나의 제사의식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해 불교에서 행해지는 모든 재는 공양이나
불법승 낱낱이 청해 공양 올리는 내용홀로 존재할 수 없는 법계연기 이치 담겨 보공양진언(普供養眞言) 옴 아아나 삼바바 바라 훔 / 보회향진언(普回向眞言) 옴 삼마라 삼마라 미만나 사라마하 자가라바 훔 / 대원성취진언(大願成就眞言) 옴 아모가 살바다라 사다야 시베훔 / 보궐진언(補闕眞言) 옴 호로호로 사야목계 사바하 찰진심념 가수지(刹塵心念可數知): 모든 먼지의 수효를 셀 수 있거나 / 대해중수 가음진(大海中水可飮盡): 넓은 바다의 물을 다 마시거나 / 허공가량풍가계(虛空可量風可計): 허공을 다 알고 바람을 묶는 재주를 갖추어도 / 무능 진설 불공덕(無能眞設佛功德):부처님의 공덕 다 말로 못하리니 / 고아일심 귀명정례(故我一心歸命頂禮):일심으로 머리 숙여 예배 합니다. 삼보통청 예문은 불법승 삼보를 낱
법계 차원에서 중생과 삼보는 차별 없어 다함께 평등…‘감응-가피’는 모두 허언 지심정례공양 삼계 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至心頂禮供養三界導師四 生慈父是我本師釋迦牟尼佛) / 지심정례공양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至心頂禮供養十方三世帝網刹海常主一體達磨耶衆) / 지심정례공양 대지문수사리보살 대행 보현보살 대비관세음보살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至心頂禮供養 大智文殊舍利菩薩 大行普賢菩薩 大悲觀世音菩薩 大願本尊地藏菩薩 摩阿薩) / 지심정례공양 영산당시 수불부촉 십대제자 십육성 오백성 독수성내지 천이백 제대 아라한무량자비성중 (至心頂禮供養靈山當時受佛咐囑十代弟子十六聖五百聖獨修聖乃至千二百第大阿羅漢無量慈悲聖衆) / 지심정례공양 서건동진 급아해동 역대전등 제대조사 천하종사 일체 미진수 제대 선지식(至心頂禮
시감로수진언(감로수를 올리는 진언) 〈나무소로바야 다타아다야 다냐타 옴 소로소로 바라소로 바라소로 사바하〉 일자 수륜 관진언( 올린 물을 하나의 글귀로 관찰하는 진언) 〈옴 밤 밤 밤 밤〉 유해진언(젖과 같이 윤택하게 하는 진언)〈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밤〉 운심 공양진언(마음을 움직여 공양을 하시게 하는 진언) 원차향공 변법계(향기로운 공양을 법계에 펴서)/ 보공무진삼보해 (다함 없는 삼보님게 공양하오니)/ 자비수공증선근(자비로써 받으시고 선근을 늘려 )/ 영법주세보불은(부처님의 은혜를 갚게하소서) 〈나막살바 다타아데박 미사베모계박 살바타캄 오나아데 바라혜암 옴 아나감 사바하〉 중생은 먹어야 산다. 먹지 않고는 그 누구도 생존 할 수 없다. 음식은 그런 의미에서 중생들에게 있어 가장 으뜸이
진언권공(眞言勸供) 향수나열 (香羞羅列)재자건성 (齋者 虔誠)욕구공양지주원(欲求供養之周圓)수장가지지변화(須仗加持之變化)앙유삼보 (仰惟 三寶)특사가지 (特賜加持)이처럼 향긋한 공양을 정성껏 차려놓았습니다. 부디 이 공양이 원만 하게 이루어지기를 원하오니 삼보님께서는 공양을 변화 시키는 특별한 가지를 내리옵소서.나무시방불 나무시방법 나무시방승. 무량위덕 (無量威德)자재광명 (自在光明)승묘력 변식진언(勝妙力 變食 眞言)무량한 위덕과 자재한 광명과 뛰어난 묘력으로 음식을 변화 시키는 진언.〈나막 살바다타아다 바로기데 옴 삼바라 삼바라 훔〉 법계를 근본으로 하는 삼보는 그 수효가 한량이 없다. 일체 세계는 부처의 몸이 되고 일체 세계가 돌아가는 이치 법이 되며 이 가운데에서 생을 살아가는 일체의 생명들은 승이
공양게(供養偈) 공양시방조어사(供養十方調御士):시방에 항상 계신 조어사들과 / 연양청정미묘법(演揚淸淨微妙法): 드러낸 청정하고 미묘한 법과 / 삼승사과해탈승(三乘四果解脫僧):삼승의 네 경지와 해탈한 수행승들께 / 원수자비애납수(願垂慈悲哀納受):공양을 올리오니 자비로 받으소서. 조어사는 부처님의 별호이다. 부처님은 자신과 남들을 잘 길들이시는 분이기 때문에 붙여진 호칭이다. 잘 길들인다 함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불선업과 번뇌를 항복시키고 다스린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청정을 바탕으로 한다. 어떤 말씀이건 부처님이 하신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모두가 중생을 정화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삼승은 세 가지 종류의 깨달음을 말하고 사과는 네 단계의 수행경지를 말한다. 먼저 삼승은 보살승,
욕건만다라선송(欲健曼茶羅先誦)정법계진언 〈옴 람〉 만다라는 우주의 진리나 깨달음의 경지 또는 불 보살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부처와 보살 등 성현들을 모시기 위해 설치해 놓은 법단, 수행을 하는 도량, 법회를 행하는 일등의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절에 가면 법당에 그려져 있는 여러 가지 탱화나 문양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들이 일종의 만다라이다. 욕건 만다라선송은 삼보를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는 법단을 만다라로 표현하고 이 만다라를 세우기전에 먼저 외우는 진언이라는 뜻이다. 공양드릴 법단을 만들려면 안팎이 청정해야 한다. 정 법계 진언은 법계를 청정히 하는 진언이다. 법계란 무엇인가? 중생의 마음에 의해 나타난 모든 존재의 모습이다. 모든 존재는 마음에 의해 그 모습이 드러난다. 그리고 마음에 의해 드러난
〈가 영(歌詠) : 부처님 몸 시방에 두루 하시니 삼세의 여래들 한 몸이어라. 중생을 제도하려는 광대한 원과 넓고도 크신 원 끝이 없으니 저희가 머리 숙여 예배 합니다.〉 가영은 삼보를 낱낱이 거명 하여 도량에 강림 하시도록 청하는 청사를 하고 나서 부처님의 공덕을 노래로서 찬탄하는 것이다. 이미 밝혔듯 부처님의 진실한 몸은 물질과 형상으로 이루어진 몸이 아니다. 부처님은 모든 존재가 지닌 법의 성품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삼기에 부처님에게 몸이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되지만 중생들에게 그 존재성을 말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말 하는 것이다. 시방은 동서남북 사방과 그 사이의 간방에다 상하를 더한 것으로 모든 공간을 통칭 한다. 이러한 모든 공간에 부처가 두루하다 함은 부처님들이 개개인의 모습을 하고
〈일승의 원교인 대화엄경과 대승의 실교인 묘법화경 세 곳에서 마음 전한 격식 밖의 선 법문 등 시방에 항상 하신 심히 깊은 법보님들, 그리고 대지 문수사리 보살님과 대행 보현 보살님과 대비 관세음 보살님과 대원 본존 지장 보살님과 부처님의 마음을 전해 받으신 가섭 존자와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여 펴신 아난 존자 등 시방에 항상 하신 청정한 승보님들, 이와 같이 한량없고 끝이 없어 낱낱 티끌 세계에 두루한 삼보님을 청하노니 자비로써 저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도량에 강림 하시고 이 공양을 받아 주소서.〉 이 단원은 법보와 승보를 청하는 내용이다. 부처님 말씀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심오하고 높은 경전이 있으니 화엄경과 법화경이다. 화엄경은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직후 다섯 비구들을 찾아 가르침을 설하시기 이전에 보리수
대승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설명 하는데 있어 부처의 몸에 세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법신·보신·화신이 그것인데 법신은 깨달음의 경지 그 자체를 몸으로 삼은 것이고 보신은 깨달음 안에 들어 있는 갖가지 바라밀의 결과에 의한 공덕을 몸으로 삼은 것이며 화신은 보신에 의해 법신이 인간화된 것이다. 경에서는 법신을 비로자나불로 보신을 노사나불로 화신을 석가모니불로 표현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법신·보신·화신은 별개적 존재가 아니다. 곧 법신 속에 화신이 있고 화신 속에 보신이 있어 동일한 몸이 된다. 삼신이 일신이며 일신이 삼신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법신과 보신은 우리 중생들에게는 알려지지 않는다. 법신과 보신은 형상을 떠나 있고 언어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신과 보신이 우리에게 알려지려면 육신
청정한 법의 몸인 비로자나 부처님과 원만한 과보의 몸인 비로자나 부처님과 천백억으로 변화한 석가모니 부처님과 극락세계 교주인 아미타 부처님과 오는 세상에 교주가 될 미륵 부처님과 시방에 항상 계시는 진여의 부처님들… 불교 속에 들어오면 수많은 부처와 보살의 이름을 만나게 된다. 사찰을 가 보아도 여러 전각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그러다 보니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불교를 다신론적 종교나 교체신론적 종교로 오인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다신교적 종교란 세상에는 하나의 신만이 있는 게 아니라 많은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이고 교체신교는 그 많은 신들도 저마다 맡은 역할이 있어 상황에 따라 신을 바꾸어서 믿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종교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처럼 신은 하나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