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사는 세조11년(1465) 창건 이후 예종대까지 왕이 직접 방문하거나 왕실의 제사 또는 기우제를 시행하는 등 높은 사격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성종 이후 점차 사세가 축소된다. 특히 연산군대가 되자 1503년 1월 18일에 도성 외곽에 거주하는 승려의 원각사 출입을 금지하였고, 1504년에는 연산군이 이곳을 ‘연방원(聯芳院)’이라는 이름의 기생집으로 만들어 승려들을 내보냄으로써 실질적으로 법등이 끊기게 되었다.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경성을 번듯한 황제의 도시로 조성하기 위해 근대적 도시개조사업을 시작한다. 이 무렵 해관
금정총림 범어사 사부대중이 1919년 3월 부산지역 독립만세운동을 이끈 범어사 스님들과 명정학교 재학생들을 비롯한 순국 선열의 호국 정신을 새기는 법석을 마련했다.범어사(주지 경선 스님)는 3월1일 범어사 상마마을에 위치한 범어사 3.1운동 유공비 앞에서 ‘3.1운동 103주년 기념식’을 봉행했다. 이 자리에는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경선, 승가대학장 정한 스님을 비롯한 산중 소임자 및 대중 스님들과 서종현 범어사 금정불교대학 총동문회장, 장병주 부산불교총연합신도회 사무총장 등 재가 대표 등이 참석해 범어사 3.1운동의 호국 정신을
사찰이 일제강점기 중요한 독립운동 근거지였음을 증명하는 ‘서울 진관사 태극기’가 보물로 지정된다.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이 광복절을 사흘 앞두고 8월12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등록문화재인 ‘서울 진관사 태극기’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서울 진관사 태극기’는 2009년 5월27일 진관사 칠성각 해체·보수 공사 도중 발견됐다. 가로 89cm, 가로 70cm 크기에 태극의 직경은 32cm다. 일장기 위에 먹으로 태극 청색부분과 건·곤·감·리 4괘를 덧칠해 만든 태극기로, 일장기를 거부하고
금정총림 범어사가 3.1운동 102주년을 맞아 부산 지역 3.1운동을 이끈 범어사 스님들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고 유공자들을 추모하는 기념식을 봉행했다.범어사(주지 경선 스님)는 3월1일 상마마을 3.1운동 유공비 앞에서 ‘범어사 3.1운동 102주년 기념식’을 봉행했다. 범어사가 주최하고 부산불교총연합신도회가 주관한 법회는 순국선열을 위한 헌다, 삼귀의 및 반야심경, 헌향, 추도 입정, 추도사, 기념사, 헌화, 만세삼창 등의 순서로 전개됐다. 이 자리에는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경선 스님과 부주지 대오, 승가대학장 정한, 총무국장
“너와 내가 하나요. 만물중생이 다 한 몸이요. 세계만방 모든 나라가 하나다. 이 세상 삼라만상이 한 송이 꽃이니라.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조선 땅이 세계일화의 중심이 된다.”35년간의 일제 억압에서 벗어나 나라를 되찾은 다음날, 가야산 남쪽 끝자락인 덕숭산에 머물던 수행자들도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독립 소식에 만공 스님(滿空, 1871~1946)은 상좌에게 붓과 무궁화꽃 한 송이를 가져오라 일렀다. 상좌가 그것들을 가져오자 만공 스님은 붓을 잡고 무궁화 꽃잎에 정성스럽게 휘호했다.‘세계일화(世界一花)’어느 제자가 고개를 갸웃거
다음에 연재된 웹툰 ‘초월(初月)’은 이상훈이 글을 쓰고, 이현세가 그림을 그린 작품이다.이 작품은 구성상 액자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품의 외부는 삼각산 진관사에 템플스테이를 하러 간 파란이라는 여주인공이 마음 속 상처를 치유하고 사문(沙門)에 든다는 내용이고, 그 내부는 파란이 밤마다 진관사의 수륙재에 모이는 아귀, 측간귀, 처녀귀 등 외로운 넋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대장부 초월 스님의 행장을 살펴본다는 내용이다.이 작품은 연재되기 전부터 화제가 됐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초월 스님의 행장을 담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
팔공총림 동화사 포교당 대구 보현사(주지 지우 스님)가 3·1독립만세운동을 주제로 한 스토리보드를 제작했다. 보현사는 8월14일 팔공총림 동화사 포교당 보현사에서 제막식을 갖고 그날의 함성을 재현했다.1919년 3월 동화사 지방학림 생도 10명은 3월29일 동화사 출장소(현 보현사)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만세운동을 준비해 30일 덕산정 시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펼쳤다. 이 사건은 ‘덕산정 시장 만세운동’으로 적극 동참한 동화사 지방학림 생도들은 징역 10개월을 판결받고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대구광역시 중구청은 3.1독립만세
3·1만세운동 100주년이 된 올해 직지사에서 정진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봉률 스님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가 열렸다.조계종 제8교구본사 김천 직지사(주지 법보 스님)는 광복절을 앞둔 8월11일 독립운동 공로로 건국훈장을 받은 포월당 봉률 스님의 73주기 추모다례재를 봉행했다.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을 비롯해 승가복지회장 웅산, 직지사 중암 회주 도진 스님 등 사부대중 800여명이 참석해 봉률 스님의 유지를 되새겼다.추모다례는 천수경, 삼귀의, 한글 반야심경 봉독, 직지사 다도반 헌다, 봉률 스님 행장소개, 보리수합창단 조가, 도진
제국주의 힘의 논리를 온몸으로 거부했다. 세계평화의 부드러운 봄바람을 염원했다, 2000만 겨레의 혼을 다해 외쳤다. “대한독립만세!” 1919년 3월1일이었다. 100년이 흘렀고, 다시 한 번 그날의 뜨거운 외침이 한국불교총본산 서울 조계사에서 울려 퍼졌다. 100년 전 3·1만세운동이 심었던 비폭력과 상생 그리고 화합 정신의 씨앗을 미래 100년의 열매로 만들겠다는 발원이기도 했다.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원행 스님, 이하 종단협)는 3월1일 오전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법회’를 봉행했다. 선열들의 정신
한국불교총본산이 숙연해졌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3·1만세운동의 주역이자 독립운동가 용성진종(龍城震鍾, 1864~1940) 스님의 생애를 담은 ‘용성평전’을 부처님께 고하는 날이었다. ‘용성평전’에 서린 용성 스님의 정신과 사상이 한반도 평화의 기운으로 싹트길 염원하는 마음들이 한국불교총본산, 서울 조계사에서 움트는 순간이기도 했다.사)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이사장 법륜 스님)는 2월27일 오전 조계사 대웅전에서 ‘용성평전’(모과나무, 2019) 봉정식을 봉행했다. ‘용성평전’을 기획출간한 법보신문 출판자회사 모과나무(대
한국 7대 종교지도자와 세계 20개국 종교인들이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100년 전 평화적 저항운동을 이끈 3.1운동 정신을 되새기며 한마음 한뜻으로 세계평화를 발원했다.한국종교인평화회의(대표회장 김희중, 이하 KCRP)는 2월 20일 파주 도라산역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세계종교인 평화기도회’를 개최했다. 이날 불교계를 비롯한 국내 7대 종교지도자 및 대리참석자, 20개국 종교인,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마음을 모았다. 행사는 △개식 선언 △화합의 평화 하모니 공
1971년 11월15일 밤 10시15분, 서울 조계사에 범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총무원장 청담 스님의 입적을 알리는 열반종이었다. 청담 스님은 하루 전날인 14일 오후 몇몇 신도들과 서울 도봉산장을 올랐다가 다음날 새벽 쓰러져 혜화동 우석대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그러나 응급처치에도 의식은 회복되지 않았고, 주치의로부터 회생할 가망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결국 이날 오후 5시30분경 스님은 다시 조계사로 옮겨졌고, 이날 밤 스님과 신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연을 접었다.다음날 아침 주요언론은 청담 스님의 입적 소식을 앞다퉈 보도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