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관련된 세시풍속은 주로 농사일을 도맡아 하는 소의 건강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는 목적에서 비롯됐다. 우선 매해 정월대보름마다 사람이 먹는 오곡밥을 쇠죽에 섞어 소에게 먹인다. 이때 소가 쌀을 먼저 먹으면 쌀 풍년, 콩을 먼저 먹으면 목화 풍년 등으로 그 해의 농사를 점쳤다. 또 밥과 떡 등을 상에 차려 외양간 앞에 두고 소가 1년 내내 사고 없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음력 정원의 첫 번째 ‘축일’인 상축일은 ‘소의 날’로 정하고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음은 물론, 특별히 잘 먹이면서 그동안의 소의 노고를 치하하기도 했다. 이날은 사람도 쇠붙이나 연장을 다루지 않는 등 근신하는 날로 알려져 있다. 함경도 지방에는 입춘에 나무로 만든 소를 관청에서부터 끌고 나와 마을의 민가를 돌며 농사를
삼국시대 △617년 신라 원효대사 탄생 △665년 신라 고승 혜통 당에서 구법하고 귀국 △725년 법천사 창건 △833년 진주 연지사종 주성 고려시대 △929년 천축 삼장법사 마후라 내왕 △953년 황룡사탑 벼락 맞고 소실 △1289년 7월 8일 보각국존견명, 인각사에서 입적 조선시대 △1397년 9월 흥천사 준공, 선종의 수찰로 삼음, 11월 일본 구주탐제원도덕이 예물을 바치고 대장경을 요청 △1457년 세조 『능엄경』, 『법화경』 등을 수교하고 함허당『금강경설의』를 교정. △1553년 1월 양종 시경승 2천 5백여명에게 도첩을 줌 △1877년 9월28일 일본 진종 대곡파 본원사 조선개교사 오촌원심 방문 근·현대 △1913년 2월20일 택성 김탄허 스님 탄생. 5월 25일 만해 한용운 『조선불교유신론
소와 관련된 창건 설화가 전해지는 사찰은 공주 갑사, 해남 미황사, 보은 법주사 등이다.갑사에는 대웅전 중창불사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정유재란(1597년)으로 소실된 갑사를 재건하기 위해 인호 스님을 비롯한 대중 스님들이 대웅전복원에 나섰다. 그러나 그 원력에 비해 공사의 진행은 너무나 더뎠고, 불사에 필요한 자재조차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인호 스님의 꿈에 소 한 마리가 나와 “불사를 도울 것이니 걱정 말라”며 절 안으로 성큼 들어선다. 꿈에서 깬 인호 스님이 방문을 열자 문 밖에 그 소가 서있었다. 이후 소는 매일 같이 향나무와 기와 등 법당 중건에 필요한 자재를 구해와 힘을 보탰다. 소의 도움으로 공사는 원만하게 진행됐고 마침내 불사의 회향을 앞둔 어느 날, 기력을 다한 소는 지쳐
2009년은 기축년(己丑年) 소의 해다. 십이지의 두 번째 자리에 해당하는 소는 북북동 방향과 음력 12월, 그리고 새벽 1~3시를 지키는 방향신이자 시간신이기도 하다.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소는 단순한 가축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힘든 농사일의 주역일 뿐 아니라 서민들의 유일한 운송·이동수단이기도 했으며 재산으로서의 가치 또한 뛰어났기에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존재였다. 농사신으로 숭배 대상 때문에 소는 예로부터 부를 불러오고 화를 막아주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꿈에 황소가 집으로 들어오면 부자가 된다’ ‘설날 새벽 송아지 우는 소리는 풍조(豊兆)’라는 속설도 이런 관념에서 유래한 것이다. 소는 또 전해내려 오는 설화나 고분 벽화에서 종종 농경과 관련한 숭배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고구려 안악 3호분
소의 한없이 순박한 눈동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평화롭고 유유자적한 느낌에 젖어들게 한다. 하지만 때로는 시냇가 엄마 개구리의 배풍선을 터뜨리기도 하고, 농부로 하여금 젊은 시절의 황희정승에게 귓속말을 하게 하기도 한다. 떼를 지어 휴전선을 건너가기도 하고 또 한편 광화문 네거리를 인파로 가득 메우게 하기도 한다. 우리 문화에 나타난 소의 모습은 고집세고 어리석은 측면도 있지만 대체로 풍요, 부유함, 길조, 의로움, 자애, 여유, 우직함 등으로 축약된다. 주인을 구하기 위해 의로움을 불태운 소 이야기가 있다.어느 시대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아버지가 소를 몰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아들이 찾으러 나섰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소가 죽은 아버지를 판자로 덮고 호랑이와 대치를 하고 있었다. 호랑이가 아버지
‘사부대중이 함께 이룩한 불교계의 첫 민주화 운동’이라는 평가를 받는 1994년 종단개혁이 올해로 15주년을 맞았다. 서의현 총무원장의 ‘3선 개헌’ 저지에서 비롯된 94년 종단개혁은 내부 자성을 통해 종단이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반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개혁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본지는 2009년 새해를 맞아 15주년을 맞은 94년 종단 개혁의 참 의미를 되돌아보고 향후 과제를 점검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21일 담양 용흥사에서 특별대담을 진행했다. 이날 대담에는 94년 개혁 당시 범종추 부의장을 맡는 등 개혁불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고불총림 백양사 유나 지선 스님과 재가불자로서 개혁을 이끌었던 경기대 정치교육원장 손혁재 교수가 참가했다.  
포털사이트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찾기 위한 수행카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처음 발심한 초심자들이 인터넷 수행카페를 이용하면 해당 수행법에 대한 상세하고도 체계적인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또 그곳에서 좋은 함께 공부하고 정진하는 도반들을 만날 수 있음은 물론 높은 단계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선지식’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터넷이다.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현재 불교카페 및 불교커뮤니티가 다음(http://cafe.daum.net) 1만1160여 개, 네이버(www.naver.com) 3860여 개, 프리첼(www.freechal.com) 320여 개 등 모두 1만5000여 개에 이른다. 이들 카페 대부분 포교, 친목단체, 사찰순례, 봉사, 찬불가 등을 성격이 강하지만 수행에
불교에서 절은 지극한 하심(下心)을 통해 자신의 상을 철저히 버림으로써 교만한 마음을 조복시키는 전통적인 수행법의 하나로 일컬어져왔다. 우리나라에서 절수행이 널리 확산된 것은 흔히 조선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절이 보편화된 결정적인 계기는 성철(1911~1993) 스님으로부터 비롯됐다. 합련 해인사 백련암에 주석하던 스님은 자신을 친견하기 위해 찾아온 신도들에게 3000배를 하지 않으면 만나지 않았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그렇듯 스님은 신도들에게 늘 절을 강조함으로써 수행의 기본은 스스로 하심하는 것임을 일깨웠다. 성철 스님이 입적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그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이 모두 성철 스님의 영향에서 비롯됐음은 두 말할 나위없다. 특히 성철 스님 문도사찰인 서울 정안사, 마산
부처님의 가르침이 새겨진 경전을 한 자 한 자 쓰며 삼매에 젖어드는 사경 수행. 부처님이 열반한 이후부터 제자들이 조려나무 껍질인 패엽(貝葉)에 범어로 기록한 패엽불전에서 유래한 사경은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걸쳐 가장 왕성하게 이뤄질만큼 높은 호응을 받았던 수행이었다. 사경은 마음이 평정하지 않으면 글자가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한 자를 사경할 때도 일념으로 글자에 담긴 진리를 갈파하려는 진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글자도 진리도 삐뚤어지는 법이다. 이처럼 진리에 대한 참구 자세의 흐트러짐을 찰나에도 허락지 않는 사경은 자신의 업을 소멸하는 참회를 통해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이다. 그리고 그 수행 공덕을 중생에게 회향하는 대승적 수행 방편이다. 『금강경』에는 “삼천대천 세계에 가득하도록
알아차림 수행처 반냐라마에서는 위빠사나 수행자를 지도하는 ‘사띠 스쿨(Sati School) 수행 지도자 과정’이 개설돼 있다. 좌선에 이어 경행을 하고 있는 사띠 마스터회 회원들. 몸과 마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면밀히 관찰해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 등을 끊는 수행인 위빠사나. 초기경전 『대념처경(Maha Sati Patthana)』에 자세히 설명돼 있는 위빠사나는 부처님 당시 수행법의 원형이 비교적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역사성으로 동남아 불교국가에 이어 한국불교에서도 그 영향력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위빠사나는 늘 일어날 수 있는 혹은 일어나고 있는 자신의 변화와 느낌, 수행의 진행도, 의문 등을 다른 수행과는 다르게 스승에게 그 즉시 점검을 받고 질
수행을 하는 목적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 맑은 호수처럼 고요한 상태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수행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실현하는 것으로 연기, 무아, 중도, 무집착, 무심, 공의 이치를 몸과 마음으로 구현하는 부처가 되는 길이다. 주력(呪力)이란 진실한 말의 힘이란 뜻으로 그 진실한 말을 진언(眞言)이라 한다. 많은 수행 가운데 주력은 이러한 신비한 힘을 지닌 진언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닦아 청정하고 깨끗하며 평화로운 모습을 찾는 수행법이다. 진언은 중생의 언어가 아닌 부처의 참된 경지를 나타내는 말로 그 자체가 부처님의 법이며 이를 염송함으로써 궁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진각종, 총지종 등 밀교 종단에서는 진언 수행을 통해 궁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한다고 설
한국불교에서 염불은 원효 스님을 시작으로 자장, 의상, 나옹 스님 등을 거치며 전성기를 구가했고, 현재까지 가장 대중적인 수행법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사진은 염불만일회 여름 성지대회 모습. 염불(念佛)은 참선, 주력, 절과 함께 한국불교를 이끌어 온 대표적 수행법이다. 염불은 말 그대로 부처님이나 불보살님의 이름과 모습을 생각하는 것. 그러나 그 생각은 단순히 부처님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이름과 모습을 내 몸과 마음으로 기억하고 그리며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이다. 염불은 이를 통해 번뇌와 망상을 없애고 깨달음을 이뤄 불국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수행법이다. 염불은 꾸준히 행하기만 하면 저절로 마음이 안정되고 환희심이 생기는 가장 쉬운 수행법이다. ‘모든 중생을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