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신문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신문입니다. 법보(法寶)라는 이름처럼 부처님의 보배로운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전하는 신문으로 항상 응원하고 지지해왔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신문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법보신문이 전달돼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물론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인연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조계사 템플국장 선해 스님이 교도소, 군법당, 병원법당, 지자체 등에 법보신문을 보내는 법보시캠페인에 동참했다. 스님은 “인터넷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화면을 통해 보는 것과 지면
“부처님 가르침을 주변에 전하는 것이 꼭 불자 수를 늘려 교세를 확장하자는 것에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음식을 맛있게 하는 곳을 발견하면 친구들에게 그 맛집을 알려주고 싶은 것처럼, 전법은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고 얻은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전법은 주변 이웃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보살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법보신문에 담긴 부처님 가르침과 스님들 법문, 불자들의 다양한 신행 이야기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기원합니다.”김한일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습니다. 법당에 앉아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취업, 내집마련 등 걱정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 누군가를 돕겠다는 생각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더라도 베푸는 것에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보시의 공덕이기도 합니다. 법보신문 법보시 캠페인을 통해 많은 분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고 보시의 공덕을 알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마음치유아카데미 원장 혜성 스님이 최근 법보신문을 교도소·군법당·병원법당·관공서 등에 보내는 법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장인 이창재 교수는 2013년 비구니스님들의 수행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를 제작한 감독이다. 일반인들에게 일 년에 단 두 번만 문이 열리는 비구니 수행도량 ‘백흥암’에서 펼쳐진 스님들의 치열한 정진담은 진한 감동과 함께 묵직한 울림을 전한 수작으로 꼽힌다. 천상 불자일 것 같은 이창재 교수가 부처님과 인연을 맺은 것은 30여 년 전인 대학생 시절.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삶이라는 게 특별해 보이지 않았고 굳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무심선원을 알기 전에는 마음공부를 하지 않았다. 신심 깊은 불자인 어머니를 따라 가끔 기도와 수행을 따라 했을 뿐이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땐 108배, 철야 삼천배를 하기도 했다.가족 7남매 중 여섯번 째 여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참선을 자주했다. 어느 순간부터 큰 사찰의 보살선방에 들어가 30여 년간 하안거 동안거를 지내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선방에서 참선만 하고 있던 여동생이 “오빠도 마음공부 한번 해볼래?”라고 권유했다. 오래전부터 지켜보며 든 호기심에 같이 정진해보고 싶었지만, 무릎이 아파 가부좌를 틀지 못한다고 거절했다.
11세기 후반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화엄종을 개혁하고 천태종을 개창함으로서 중앙불교계는 교종 계열의 화엄종과 법상종, 선종 계열의 천태종과 조계종 등 4개 종단으로 개편되었다. 특히 화엄종에서는 의천이 고려 초기에 균여의 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서 종단의 주류가 의천의 문도들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의천이 세상을 떠난 뒤 70년만인 의종 24년(1170)의 무인들의 정변, 그리고 뒤이은 명종 26년(1196)의 최충헌의 집권을 계기로 하여 불교계는 또다시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중앙불교계에서는 전반적으로 선종 계
부처님께서는 마음의 이치를 알고 깨달은 분입니다. 우리는 ‘나’라는 것에 집착하면서 화도 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자꾸 엎어져서 다시 일어나는 삶을 반복합니다. 그래서 ‘중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끊임없이 부처님을 떠올리고 부처님의 따뜻한 미소를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붓다처럼’에 나오는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는 표현처럼 말입니다. 오늘 아침 한 불자님이 심각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습니다. 주변 사람과 불편한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로 너무 힘들다고 했습니다. 사실 스님들도 가장 힘든
원각사는 세조11년(1465) 창건 이후 예종대까지 왕이 직접 방문하거나 왕실의 제사 또는 기우제를 시행하는 등 높은 사격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성종 이후 점차 사세가 축소된다. 특히 연산군대가 되자 1503년 1월 18일에 도성 외곽에 거주하는 승려의 원각사 출입을 금지하였고, 1504년에는 연산군이 이곳을 ‘연방원(聯芳院)’이라는 이름의 기생집으로 만들어 승려들을 내보냄으로써 실질적으로 법등이 끊기게 되었다.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경성을 번듯한 황제의 도시로 조성하기 위해 근대적 도시개조사업을 시작한다. 이 무렵 해관
해심심의밀의보살은 부처님의 경지는 상대적 대립으로 이루어진 변계소집의 언어로는 나타낼 수 없고 조금이라도 설한 바가 있다면 이는 모두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부처님 설법은 쓸모없다는 말인가? 해심심의밀의보살의 해명을 들어보자.“선남자여 그렇다고 본사께서 일이 없어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모든 성자의 성스러운 지혜와 견해는 명칭과 언어를 벗어난 것으로 중생들에게도 이와 같은 이치를 깨닫게 하기 위해 임시로 명칭과 언어를 세우신 것입니다. 위없는 깨달음을 드러냅니다.”불교의 성자는 부처님과 권현보살들이다. 교리상 소승의
나는 올 초부터 가짜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해 오면서, 되도록 내 생각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있다. 지난 글에선 나의 마음과 더불어 운명을 함께 하는 나의 몸에 대해 사색하였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타자의 몸[他身]’이라는 주제로 옮겨오게 되었다. 나는 이번 주제의 독특함에 흥미를 느끼지만, 많은 사람이 그 내용에 흔쾌히 동의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긴 해도 그것 또한 미륵의 후예들만의 기이한 학문적 열정으로 도달한 결론이니, 그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저 미륵의 후예들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가면서 그
‘대념처경’의 핵심 주제는 4념처 명상이다. 신수심법 네 가지 대상에 마음챙김을 확고하게 확립시키는 불교 고유의 수행법이 바로 4념처 명상이다. ‘대념처경’은 이 4념처를 위빠사나 방식으로 설명했다. 이 명상으로 지혜와 통찰력을 얻고, 그 지혜와 통찰력은 해탈과 열반, 깨달음의 성취로 수행자를 인도한다. 불교수행자라면 사마타 명상에 머물지 말고, 반드시 4념처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초기불교의 입장이다. 그동안 29회에 걸쳐서 4념처 명상을 다루었는데, 이번에는 ‘대념처경’ 결어 부분을 살펴보면서 4념처 명상을 총정리해
사진은 그 자체로 중요한 문화유산이자 역사라고 한다. 뭔 말인가 싶겠지만, 지금이라도 어릴 적 사진 한 장을 꺼내 본다면, 아하! 할 것이다. 또한, 다음의 이야기를 듣자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최근 마산포교당 정법사는 관음전 목조보살좌상의 문화재 지정을 추진했다. 문화재 지정에 별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뜻하지 않게 보살상의 보존 기간이 문제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지정문화재가 아닌 경우 건설·제작·형성된 이후 50년 이상이 지난 것을 우선으로 하며, 그중에서도 작품성이 뛰어난 것만을 지정하는 것으로 되어
“봄 산의 별각탕을 배불리 먹고/ 배를 문지르며 앞산을 지나 소요한다/ 금당과 옥마도 모두 나에게는 하찮으니/ 누런 띠풀 헤치며 다시 고사리를 캐노라.”이는 18세기 중후반 해남 대흥사와 지리산 화엄사 등에서 활동한 몽암기영 스님의 ‘몽암대사문집(蒙庵大師文集)’에 나오는 ‘채궐(採蕨, 고사리를 캐다)’이라는 시다. 봄철이 되면 온 산에 가득한 고사리를 캐 만든 별각탕 한 그릇이 있다면 세속 최고 가치로 여기는 금당·옥마도 필요 없다고 말한다. 이렇듯 별각탕은 수행자 허기를 채우고 정진하는데 더없이 귀한 원천이었다. 별각탕은 ‘고사리
[1722호 / 2024년 3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첫째, 좌선과 일상에서의 수행 문제이다. 인도 선은 좌선 중심으로 선정이 발달되어 있다. 물론 아함부 경전에도 행선(行禪)이 나타나 있고, 위빠사나에서도 행선이 발달되어 있다. 움직이면서 걷는 행위나 모든 행위에 사띠(sati)를 챙기는 일상의 명상을 중시한다. 반면 중국선은 인도 선보다 한발 더 나아가 행주좌와어묵동정에서의 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일상에서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그대로가 본원 자성청정심의 발원지요, 본래심의 작용이라고 본다. 마조는 밥 먹고 옷 입는 모든 일상에 마음이 작용하고 있으며, 그 마음이 곧 부처라고
새벽 4시 45분, 청곡사 대웅전 앞 적막의 한가운데 서 있다. 도량석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짧은 순간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북극성과 눈이 딱 마주친다. 북극성과 나와의 거리는 433광년이다. 433년 동안 빛의 속도로 달려온 북극성의 별빛이 창백한 푸른 점 속의 아주 아주 작은 나의 눈에 와닿는 기막힌 순간이다. 찡하다. 곧이어 목탁이 또로로록 올려지고 새벽바람이 소리를 싣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대웅전 처마에 깃들어 사는 작은 새가 제일 먼저 맑고 고운 소리로 응대한다. 천년을 넘게 흐르던 계곡의 물소리는 여전히 깊이
“‘법보’는 바로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부처님 말씀은 살면서 겪는 공허함, 쓸씀함, 외로움, 슬픔 등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리입니다. 이런 진리의 말씀은 괴로움 속에서 앞만 보고 아웅다웅 다투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좌·우·뒤까지 살필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물론 내·외적인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불법이 곧 고통에서 벗어나는 희망메세지인거죠. 현재 한국이 전 세계 자살율 1위인 상황에서 포교는 필수적입니다. 삶에 희망을 전달하는 가장 존귀한 방법인 법보시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길 바랍니다.”양주 석굴암 주지
“불교를 믿는 사람도 많고 대중적이지만 정작 일반인들이 불교를 접할 수 있는 계기는 많지 않습니다. 법보신문이 인연이 되어 사람들이 불교를 배우고 신행하기를 바랍니다.”사단법인 ‘붓다’의 이재현 붓다봉사단장이 법보신문을 군법당·교도소·병원법당·관공서 등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그가 단장을 맡고 있는 붓다봉사단은 마이산 탑사 탑밴드 봉사단을 중심으로 20여 명의 단원이 활동하고 있다. 장학금 전달, 어르신 생신상 차려드리기, 군부대 위문, 부처님오신날 연등 축제 참여, 베트남 해외 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 왔다. 지
“법보신문은 불법의 인연을 우리 사회 곳곳에 잘 전달하고 있는 신문입니다.”동양화가 한경혜(49) 작가가 법보신문을 교도소·군법당·병원법당·관공서 등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한 작가는 1995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입상하면서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 회화에 나타난 물의 표정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여러 차례의 전시회를 통해 깊은 선 체험과 사유의 세계를 펼쳐냈다.“그림은 작가가 보여주는 언어입니다. 그림이라는 형상에 내면의 마음자리를 표현하고 그것이 공통적인 울림으로 다가가 전달되는 것
“법보신문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으면 그냥 쉽게 넘어갑니다. 그런데 꼼꼼히 읽어보면 우리에게 유익한 내용이 아주 많고 부처님 진리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렇게 좋은 내용을 교도소에 계신 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하게 됐습니다.”경남 양산에 거주하는 주영주(64·가휘) 불자가 법보신문을 교도소·군법당·병원법당·관공서 등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2013년부터 법보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그는 “원래 나쁜 사람이 있다기보다는 한때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것”이라며 “그 안에서 힘겨운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