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조계종 33·34대 총무원장 자승 스님/한국불교종단협의회장 진우 스님/동국대 이사장 돈관 스님/진각종 통리원장 도진 스님/태고종 총무원장 상진 스님/조계사 주지 원명 스님/조계종 중앙신도회장 주윤식/불교신문 사장 삼조 스님/법무법인 남평 대표변호사 김경규/(사)미소원/(사)한국수소에너지기술연구조합이사장 이욱태/중앙종회의원 향문 스님/동국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채석래/동국대와이즈캠퍼스 정각원장 철우 스님/(사)KYBA대한불교청년회중앙회장 장정화/범어사 주지 보운 스님/사성암 주지 우석 스님/불갑사 주지
불교 언론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간 법보신문 창간 35주년을 축하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게 된 각 종단의 총무원장 스님과 통리원장, 스님들과 재가 지도자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법보신문의 지난 35년은 한국불교의 35년이었으며, 또한 종단이 함께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더욱 뜻 깊은 이유입니다.신문은 문화와 사람, 삶의 지침이 되는 아름다운 면과 사회의 잘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케 하는 추상같은 면이 함께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파사현정의 올곧은 정신과 그늘진 곳에 처한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법보신문 창간 35주년 및 대표이사 이·취임법회를 앞두고 10월22일 조계종 종정 중봉성파 스님이 ‘言行同進(언행동진)’의 휘호에 축하와 당부를 담아 전했다. 영축총림 통도사 서운암에서 휘호를 써 보낸 성파 스님은 “언론사도 말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말과 행이 동시에 함께 나아가야 된다”며 “생각과 실천이 함께 이어질 때 불교계 정론지로 앞장서고 더 크게 발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당부했다. 앞서 김형규 대표와 새롭게 신문사를 이끌어갈 이재형 신임대표는 10월12일 서운암을 찾아 종정 스님을 예방한 바 있다. “전임대표와 신
법보신문 창간 정신은 부처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는 데 있다. 공공기관과 공권력, 정권에 의한 종교편향 및 타종교의 훼불 등에 단호하게 대응하며 법보신문이 보여준 파사현정의 궁극적 지향 또한 ‘정토세상 구현’이다. 지금도 법보신문 편집국에 들어서는 이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법보신문의 신조는 ‘정토세상 만들어가는 언론’이다. 창간 이후 법보신문이 가장 주력한 활동 또한 정토 구현을 위한 새로운 신행문화의 제시와 선도였다. 이는 불교언론이 시대를 기록하는 사관이자 정법을 지키는 외호신장인 동시에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 바람직한
선원빈 국장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가 인간적으로는 더없이 너그럽지만 언론인으로서는 칼날처럼 매서웠다고 기억한다. 선 국장이 왕생한 다음해인 1994년 12월 출간된 ‘솔바람 소리를 듣던 사람 선원빈’(불지사)에서 지인들은 그를 이렇게 추억했다.“일생을 불교에 대한 애정으로 불교의 장래를 걱정했던 선원빈 거사는 천년 고찰을 지켜온 소나무처럼 열정과 냉철한 비판과 정확한 논리, 웅대한 안목으로 불교 언론을 이끌어온 수장이었다.”(전 직지사 주지 법등 스님) “내가 인연을 가졌던 인물을 회고해 보는 일이 가끔 있다. 그러면 경전(耕田, 선
‘새롭게 일어서는 불교 구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부처님 가르침을 세상에 실현하는 문서포교사가 될 것임을 발원한 법보신문이 단호하고 날카로운 필봉을 앞세우며 불교의 외호신장이 된 것은 건강하고 힘 있는 불교를 위한 불가피하고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정법을 훼손하고 불교를 폄훼하는 부당한 일들을 바로잡는 파사현정의 노력 없이 정토의 구현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보신문의 노력과 정신은 특히 2005년 독립언론으로 거듭나며 더욱 빛을 발했다.법보신문은 창간 직후부터 공공기관과 공권력, 정권에 의해 자행되는 종교편향 및 타종
‘이제 돌이켜보건대 23년 동안 오직 한 길만의 불교언론에의 길이 당신의 생애를 다한 길이었습니다. 어찌 그렇게도 심심산천에서 금방 내려온 순정입니까? 어찌 그렇게도 깊은 땅속에서 솟아난 단단한 뿌리를 가진 마을의 당산 나무였습니까? 그런 당신의 넉넉한 시절 인연을 어디 가서 찾아야 합니까? 나도 그렇고 우리 불교언론의 젊은 식구들 모두, 당신의 큰 눈동자 하나씩 받들어 눈물 가득히 서천의 여래 곁에 노니는 당신을 오래도록 추모할 따름입니다. 부디 잘 가소서. 선 국장 영가이시여!’(고은 시인의 추도사 중)1993년 10월29일 서
‘…법보신문은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삼천대천세계의 눈이 되고 귀가 되고 입이 되고자 태어났다. 저 해와 같은 광명을 빌어 무량의 소리를 담은 목탁을 깎았다. 잠들지 않고 쉬지 않고 게으르지 않으며 굽힘이 없고 쓰러짐이 없고 부서짐이 없는 목탁을 만들었다. 둥그나 모나지 않고 곧으나 삐뚤어짐이 없으며 아무리 써도 닳지 않는 샘물처럼 넘치는 목탁을 빚었다.…’(월산 스님 창간사 일부)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한 불국사 조실 월산 스님은 법보신문 초대 발행인으로 명확한 불교언론의 방향을 제시했다. 스님이 직접 쓴 창간사는 원고지 7매 분량으로
2005년 11월9일, 당시 법보신문 발행인이던 종상 스님은 법보신문의 운영권 및 재산권 일체를 전 직원들에게 이양했다. 이양식에서 종상 스님은 “법보신문이 불교 정론지로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결단을 내렸다”며 “법보신문이 더 큰 권위와 높은 품격을 갖춘 신문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모든 직원들이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독립언론 법보신문의 출범이 이뤄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988년 창간 이후 법보신문은 괄목 성장을 거듭하며 불교계 대표 언론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불국사의 재정 지원에 의지해야 하는
성림당 월산 스님(聖林月山, 1913~1997)은 한국불교의 중흥을 이끈 고승이다. 금오태전 선사(金烏太田, 1896~1968)의 법을 이어 간화선을 진작시키고 선원과 강원을 개원해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법주사, 신흥사, 동화사, 불국사 등 교구본사 주지를 맡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혼탁해진 사찰을 일신해나갔다. 총무원장·종회의장·원로회의 의장 등 조계종 주요 직책을 역임하며 종단의 기틀을 세웠고 한국불교 위상을 높이는 데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이와 함께 스님의 뚜렷한 업적의 하나가 법보신문 창간이다.스님은 화두를 깨친 선의 종장이
1980년대 ‘새로운 불교’를 향한 열망에 호응하며 탄생한 법보신문의 행보는 창간 초기부터 불교계 안팎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정 종단에 국한되지 않고 기득권의 눈치를 살피지 않으며, 범종단적으로 시선을 넓히고 정권을 향한 감시와 재야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담아냈기 때문이다. 법보신문에 어떤 기사가 실리는지는 불교계의 기류가 어디로 흐르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여겨지기도 했다.법보신문 창간 멤버로 활동했던 최승천 전 조계종출판사 부문사장은 2018년 법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 집권층에서 보면 달갑지 않은 기사가 1면 머
1988년 창간한 법보신문이 올해로 창간 35주년을 맞이했다. 불국사 월산대종사의 원력으로 새로운 불교,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사명감을 안고 일성을 울린 법보신문은 지난 35년 동안 수많은 불자들의 성원과 관심 속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침을 겪기도 하고 독립언론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 앞에서 35살을 맞이하는 법보신문은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1980년대 한국은 처절한 봄의 계절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혜의 향기로 마음과 마음을 잇겟습니다.”법보신문의 출판브랜드인 ‘도서출판 모과나무’의 발원이자 지향점이다. 2014년 출범한 모과나무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스님과 불자들의 신해행증(信解行證)을 책으로 엮어 출간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출간한 33권에 달하는 부처님의 책(佛書)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출범 5년 만에 한해 10~15권의 불서를 출간하는 중형 출판사로 성장한 모과나무는 ‘성철평전’으로 2017년 불교출판계 최고 영예인 불교출판문화대상을 수상했으며 이 책은 2017 교양부문 세
창간 30년 동안 법보신문은 많은 불서를 출간했다. 법보신문은 2005년 불국사로부터 독립하기 전에도 ‘법보출판사’를 설립, 선(禪)을 비롯한 수행, 포교,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불서를 직접 제작해 출간했거나 법보신문에 연재했던 콘텐츠를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할 수 있도록 제공했다. 법보신문이 설립한 법보출판사가 1991년 직접 제작해 수많은 독자들이 지금도 찾는 책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이원섭(1924∼2007) 선생의 ‘깨침의 미학’이다. 이 책은 무명을 밝히는 100가지 공안(公案)의 참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법보신문
우리사회 불안정성이 가속화되고 있다. 청년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고, 가장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이며, 노인들은 홀로 외롭게 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눈물짓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문을 굳게 닫아걸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놓은 채 불안해하고 있다.법보신문은 이러한 우리사회에서 사람이 희망이고 미래인 정토세상을 일구기 위한 역할에 최선을 다해왔다.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고, 절망 앞에서 갈 길을 잃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며 언론의 공공재 역할에 충실했다.특히 공익법인 ‘일일시호일’은 부처님 가르침에서 배운
올해로 창간 30주년을 맞이한 법보신문은 언론을 통한 정론직필의 사명과 좋은 불서 편찬을 통한 포교역량강화, 그늘진 곳에 대한 자비 나눔이라는 공익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법보신문은 불교계에서 가장 바르고 영향력 있는 언론으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문서포교의 역할과 종단 안팎의 개혁은 물론 이교도들에 의한 음해와 훼불에 가장 민감하게 대응했던 언론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법보신문은 2014년 조계종이 주최하고 법보신문과 불교방송이 주관한 조계종 신행수기 공모를 계기로 법보신문사 출판브랜드 모과나무
“지방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보신문의 분석보도와 심층보도는 불교계 전반의 흐름을 이해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사실 그동안 몇몇 심층보도는 ‘법보신문이 아주 큰 어려움을 겪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 당시에는 힘들지 모르겠지만 생각하면 그러한 보도 태도는 올바른 것입니다. 편향적 보도가 아닌 불교도의 입장에서 객관적이면서도 심층적으로 보도하기 위한 법보신문의 노력,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분명 불교계 흐름이 바른길로 가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곽만연 전 부산 동아대 인문과학대학
“저와 함께 나이 들고 있는 법보신문 창간 30주년을 축하합니다. 지난 30년 간 불교 대중화를 위해 앞장서며 정론직필의 언론으로 역할해 주심에 독자로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불자들이 법보신문을 통해 모든 곳에서 부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힘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바이오 분야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조애리(수경지) 불자는 30세에 독자가 돼 4년째 법보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그에게 법보신문은 불자로 거듭나게 한 매개체다. 일찍이 부처님께 귀의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불교를 접하기는 했지만 스스로 불자라 칭하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며 뉴스 소비가 급증하고 있는 반면 광고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언론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계언론 역시 이 선상에 놓여 있는 가운데 ‘법보신문’도 ‘생존·전법’이라는 은산철벽을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길을 떠나라!”는 부처님 전도 선언은 오늘도 지면을 통해 끊임없이 실현해 가야 한다. 30년 전 첫 발을 내딛으며 품었던 초심(初心)에서 화두의 실마리를 찾아보려 ‘법보신문’ 창간 멤버였던 최승천 조계종 출판사 부문사장을 만나 대담을 나눴다.‘주간불교’의 전신인 ‘불교회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법보신문은 1988년 5월 창간 이후 지난 30년 간 환희와 고난의 역사를 걸어온 한국불교와 그 길을 함께 걸었다. 종단 개혁으로 자정을 하기도 했으며, 이교도들 훼불에 맞서 불법을 수호하고자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연등회 제등행렬이 공권력에 의해 방해를 받기도 했으며, 폭력으로 얼룩진 종단 사태를 경험했다. 반면 한글대장경이 완간되고 금강산 신계사를 복원하면서 남북통일의 초석을 놓는 등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2005년 11월 불교계 최초 독립언론으로 출범한 이후에도 법보신문은 한국불교사의 주인으로서 파사현정의 현장에 동참했다.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