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자료를 찾으러 건국대 도서관에 가는데 저녁 6시가 다 되었다. 도서관에 들어가면 두 서너 시간은 걸릴 테니까 저녁밥을 먹고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지하상가에서 밥을 사먹은 뒤 생수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며칠 전부터 감기약을 먹고 있어 물이 필요했다. 마침 에스컬레이터 옆에 편의점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에 스물 안팎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서 있었다. 냉장고에 넣어 둔 물 말고 실온에 있는 물 있느냐고 물었다. 요즘 날씨에는 창고에 있는 물은 얼기 때문에 차라리 냉장고에 있는 물이 덜 차
“지금 뭐하세요? 저녁은 드셨어요?”지방대 출신 아들 카이스트 입사연구원 발탁 자랑하는 것도 잠깐 석박사 부하직원 입사에 스트레스그만두고 싶다는 아들 위로 격려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에 대해인광대사, 견성성불 가르침 설파“복덕과 지혜로서 성불도 완성해” 어젯밤에 큰아들이 전화를 했다. 시시때때로 카톡을 하면서 별로 궁금할 것도 없는데 새삼스럽게 안부인사가 길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이럴 때는 스스로 고민을 털어놓을 때까지 계속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주위를 빙빙 돌듯 겉돌기만 하더니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오늘 아들이 오는데 이불은 개야 하지 않을까?”“이불 안 갠다고 누가 뭐라 그래? 나 편한대로 살면 되지.”“아무리 그래도 아들이 오면 앉을 자리는 있어야지.”“그것도 그렇네. 그럼 오랜만에 청소나 한번 해볼까?”“당연하지. 이렇게 어질러 놓으면 아들이 또 오려고 하겠어? 집도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맛있는 음식도 해놔야 자주 오려고 할 거 아니야? 바쁜 아들이 재미없는 부모를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잖아. 경건한 마음으로 아들 맞을 채비를 해야 도리지. 그나저나 당신 참 많이 변했다. 나야 원래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렇
겨울 추위가 시작되었다. 난방을 해야 하는 계절이다. 난방을 하면 따뜻해서 좋은데 눈과 코가 건조한 것이 문제다. 특히 눈이 뻑뻑해서 조금만 책을 봐도 금세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가능하면 집에서 히터를 틀지 않는 이유다. 대신 내의를 여러 겹 껴입고 그 위에 스웨터를 입는다. 요즘 내의는 과거처럼 두껍지 않으면서 보온성이 뛰어나 활동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난방을 하는 대신 옷을 두껍게 입으면 공기가 청정하고 눈도 피로하지 않아 좋다. 덤으로 난방비도 아낄 수 있다. 잠자리에 들 때도 마찬가지다. 전기담요의 온도를 세게 올려서
지난 8월이었다. 전주에서 특강을 하고 한국전통문화전당 옆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에 식사를 마친 후 산책 삼아 동네 구경을 나갔다.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 잠에서 막 깨어난 도시의 얼굴을 보러 나갈 때면 은근하게 설렌다. 전주는 항상 올 때마다 느끼지만 문화를 지키고 계승하려는 노력이 도시 곳곳에 배어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듯 문화의 향기도 느낄 수 있다. 거리를 걷다 눈에 띄는 조형물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마치 그것을 보기 위해 여행을 온 것처럼 두근거린다.강의하러 전주 갔다
요즘 영화나 TV 드라마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의사, 정치인, 재벌 그리고, 판사와 변호사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모든 드라마가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드라마가 그 중의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선택한다. 특히 판사나 변호사, 검사가 얽힌 이야기는 드라마의 단골 메뉴다.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지점에서 사건은 발생하고 사건이 있어야 이야기가 전개되는 만큼 법조인의 등장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지 모른다. 시청자는 검사나 변호사가 등장해 오리무중에 빠진 사건을 명쾌하게 풀어나가는 장면을
대전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아들이 집에 왔다. 모처럼 집에 온 아들을 위해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했다. 일주일 전에 나주에서 강의를 하고 온 이후 계속 몸이 아파서 누워 있었다. 아들이 오는 날도 손끝 하나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아팠지만 벌써부터 누워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억지로 참으면서 음식을 만들었다. 예전에 집안 어른들이, 자식들이 집에만 오면 맨날 아프다고 인상을 찡그리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지금까지는 그 다짐을 잘 지키고 있다. 물론 앞으로 더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
깨달음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깨달음을 얻으면 뭔가 신비한 현상을 경험하거나 남들에게는 없는 초능력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 그 대상이 불보살이거나 귀신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영체라도 상관없이 그런 분들을 볼 수 있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된 원인으로는 TV나 영화 등의 영상매체가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고승들의 행적을 담은 서적에서 그분들의 신이한 능력을 지나치게 강조한 폐해 때문이
사람마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공부 방법도 다양하고 공부 기간도 다양하다. 내가 불교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생로병사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왜 사람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가?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이 사무치게 궁금했다. 해답을 찾으면 중생교화를 하겠다는 거창한 목적이나 철학적인 허세로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그저 나의 생로병사가 궁금했을 뿐이다. 아주 개인적이고 아주 소극적인 궁금증이었지만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알고 싶은 절실한 의문이었다. 물론 이런 삶의 법칙은 나에게만 적용된 문제가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지난달에 타이완(臺灣)에 다녀왔다. 고궁박물원에서 전시한 공자(孔子)특별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타이완은 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나라다. 점심 때 인천공항을 출발해 타이완에 도착한 시간에도 여전히 밝은 대낮이라 외국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시차도 느낄 수 없었다. 한국보다 조금 덥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길거리마다 적힌 한자들도 중국에서 쓰는 간체자(簡?子)가 아니라 우리 눈에 익숙한 정자체(正體字)라서 한국에 있는 듯 편했다. 길눈이 밝은 제자가 곁에 있어 더욱 편했는지도 모른다. 타오위안 국제
내가 글을 쓴다고 하면 정말 멋있다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글쓰기가 매우 고상한 일이거나 낭만적인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워낙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나는 왜 글을 쓸까. 글은 나에게 무엇일까.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하다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점공부하다 보니 어느 순간 해결이해 안 되더라도 포기 않으면긴 어둠의 끝서 희열 만나게 돼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두
“부자들은 돈이 많으니까 남 도와주는 것도 많이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복을 더 많이 짓게 되고, 복을 지으니까 더 잘 살 수밖에 없는 거죠.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으니까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잖아요. 당연히 복을 지을 수가 없으니까 더 가난해지고…. 복을 짓는 데도 빈익빈 부익부라니까요.”갑자기 큰 돈 벌어 자랑하지만나눔은 “여유 생기면 하겠다”돈을 버는 것 좋은 일이지만어떻게 쓰냐에 사람 가치 결정얼마 전에 집안 모임에 참석했다가 실직한 조카를 만났다. 올해 서른여섯 살인 조카는 실직한 지 한 달이 조
전주시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게 되어 내려갔다. 장소는 전주시 평생학습관으로 매주 화요일마다 세 차례 강의를 하는 일정이었다. 마지막 강의를 하던 날이었다. 관장님과 함께 사무실에서 차를 한 잔 마시는데 탁자 옆에 세워 둔 액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글씨가 삐뚤빼뚤하는 것으로 봐서 초등학생 시화전을 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뭔가가 이상했다. 시 제목 아래 적은 글 쓴 사람의 이름 곁에 숫자가 특이했다. 학년과 반을 뜻하는 2-3이나 5-2가 아니라 73 또는 82와 같은 숫자였다. 순간 머릿속으로 스치는 느낌이 있어 관장님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은 그 자체가 법문이고 가르침이다. 특히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작가와의 만남은 더욱 그렇다. 특별히 나를 위해 법문을 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그분들은 마치 나의 심중을 꿰뚫는 듯 그때그때 나에게 꼭 필요한 법문을 들려준다. 어떤 작가는 그림으로, 어떤 작가는 인생이야기로, 어떤 무명의 작가는 숲속의 비석으로 누워 법문을 펼쳐준다. 굳이 법문이란 형식도 취하지 않으면서 진짜 법문을 들려주었으니 고수들이 따로 없다. 이런 고수들을 만날 수 있는 나는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이다.유난히 글쓰기 힘들어진 최근타고난
언니 집에서 지낸 열흘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산책할 때였다. 언니 집 옆에는 낮은 산이 있었는데 나처럼 등산 싫어하는 사람도 새벽마다 발걸음을 할 정도로 만만했다. 산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낮은 야산이었다. 산자락에는 곳곳에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어디서든 쉽게 산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계단은 마치, 산이라고 부담 갖지 말고 들어와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새벽마다 산으로 향했다. 비 오는 날에도 갔고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갔다. 늦잠 자는 날에도 갔고 저녁밥을 먹은 후에도 갔다. 35도가 넘는 더위
“옛날에 살던 우리 집 그대로 남아 있을까? 흔적도 없겠지? 한 번만 다시 가봤으면 좋겠는데.”언니들과 함께 찾아간 고향집재개발 지정으로 4년째 빈집폐허가 되어 쓰레기 나뒹굴어생주이멸 가르침 절실히 느껴광주 언니 집에 온 지 열흘이 다 되어 갈 무렵이었다. 아침밥을 먹은 후 언니들이랑 함께 누워 뒹굴뒹굴하던 내가 말했다. 뜬금없다 싶었는지 셋째 언니가 나를 쳐다봤다.“가면 되지.”뭐가 문제냐는 듯 넷째 언니가 자신 있게 얘기한다.“주소를 알아야 가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광주 떠난 지 벌써 30년이잖아.”어리바리한 내가 풀이
세 자매가 만났다. 전화통화도 자주 하고 일이 있을 때마다 만나지만 세 자매가 한 장소에서 열흘을 보낸 것은 결혼 이후 처음이다. 각자 사는 곳이 다르고 가정이 있다 보니 시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자매는 모두 여섯이다. 그 중 둘째 언니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다섯 자매만 남았다. 이번 모임에는 셋째언니와 넷째언니 그리고 막내인 내가 참석했다. 광주에 있는 셋째언니 집으로 넷째언니와 내가 갔다. 넷째언니는 천안에서, 나는 용인에서 출발했다. 오랜만에 피붙이를 만나니 그저 좋다. 형제자매는 어린 시절에 같은 시
모든 일이 다 끝났다. 강의도 끝나고 원고도 끝났다. 심지어는 사람들과의 약속도 다 끝마쳤다. 이제 마음껏 쉬어도 된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가 한없이 좋다. 몇 달 동안 계속 긴장하면서 살아온 탓인지 놀면서도 노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혹시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데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달력을 확인한다. 아무 일정도 적혀 있지 않다. 앞으로 2주 동안은 판판이 놀아도 된다. 심지어는 연재하는 글도 휴가에 들어간다. 넘치는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앉
방을 정리하다가 대학교 때 샀던 책을 발견했다. 불문과를 다니면서 한국미술사로 전공을 바꾸기 위해 공부하려고 처음으로 산 책이었다. 색채를 생생하게 느끼며 공부해야 할 한국회화사 책인데 그림이 모두 흑백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아, 내가 이 책으로 공부했지. 감회가 새로웠다. 책을 펼쳤다. 첫 장을 넘기자 맨 앞부분에 내가 써 놓은 글이 있었다. 글은 짧았는데 행갈이까지 된 시구절이 두 줄로 적혀 있었다.기관 수장 욕심내는 스승에서만족할 줄 모르는 노욕 목격환호성의 껍데기에 쌓인 결과마음 수시로 점검하고 챙겨야‘그리하여, 다시/ 껍
장마철이다. 비가 내린다. 비는 조용히 내릴 때도 있고, 사정없이 쏟아질 때도 있다. 어떻게 내리든 상관없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라 그저 반갑기만 하다. 무조건 많이 내려 메마른 땅을 적셔주기만 하면 된다. 물론 비가 좋은 것은 집에 있을 때의 일일 뿐이다. 집을 나와서까지 좋은 것은 아니다. 빗길을 걸어가려면 우산을 들어야 하고 옷과 신발이 젖는 것을 감수해야 하니 귀찮고 성가신 일이다. 무거운 가방이라도 들고 있다면 더욱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빗길에 운전을 해야 하는 위험성도 만만치 않다. 특강 차 거창으로 남편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