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불교는 위기에 있다. 위기는 늘 기회로 반전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위기를 인식하고 그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처절하게 성찰하고 대안을 실천할 때만 기회가 된다. 빠른 시일 내 혁신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한국 불교는 3등 종교로 전락할 것이다. 흔히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 개혁은 사람과 의식, 제도, 문화의 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점을 분석하여 개인에 문제가 있다면 참회하고, 제도가 원인이면 제도를 바꾸고, 잘못된 문화 때문이라면 새로운 문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개혁이 구호나 이념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준칙이 되고 몸에 스며들어가 생활이 될 때 개혁은 비로소 꽃을 피운다. 개혁을 추진할 기구와 운동단체, 동력이 필요하다. 개혁의 방향을 세우고 분석과
지금 불교와 개신교 신자는 감소하고 천주교 신자는 늘고 있다. 청소년과 어린이 불자가 더욱 빠른 속도로 줄고 있어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 도심의 엘리트 불자 또한 하향세다. 한국불교는 이미 소수종교로 전락하였고, 산중의 아주머니와 할머니 덕분에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탄이 그리 과장이 아니다. 담론을 생산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엘리트들은 대다수가 기독교도들이다. 이제 포교 또한 혁신해야 한다. 포교의 방법과 주체에 잘못이 있을 뿐이지 상황은 좋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물신화와 탐욕에 지치고 이에 반감을 느낀 대중들이 마음이 평안한 삶으로 전환하고 있고 상처난 몸과 마음의 치유를 원하고 있다. 21세기의 담론은 생명과 평화, 사회정의, 복지와 상생일 터인데, 불교교리는 이들 문제에 대한 답을 풍성
교육은 말 그대로 백년지대계다. 스님의 교육은 한국불교의 미래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세 시대의 방식이 별다른 성찰과 개선 없이 답습되고 교과목도 구태를 전통이라 간주하며 집착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스님들의 법문이 들을 것이 없다며 기피하는 불자들이 늘어나고, 스님들이 불자들과 대화하다가 무지를 드러내는 일도 종종 발생하였다. 이에 스님들의 위의는 전락하고, 스님 스스로도 무명에 휘둘려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교육원은 이런 폐단을 척결하고자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동안 한문을 공부하다가 정작 경전의 의미나 진리는 놓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이에 한문 교재를 한글화하였다. 선의 교육에 너무 치중한 것도 문제다. 기존의 강원에서는 ‘치문’, ‘선요’, ‘절요’, ‘서장’, ‘전등
이번 차례에는 교육에 대해 알아보자. 그나마 현 종단 체제에서 행한 것 가운데 가장 잘한 부문이 교육개혁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더 혁신할 부분이 많다. 교육목적에서 시작하여 교과과정, 교육방법에 이르기까지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혁신할 것인가. 2012년 9월 27일에 공포된 ‘종단 법령집’의 ‘교육법’에 의하면, 제 1조는 “종단교육은 부처의 혜명을 잇고 법을 전해 중생을 제도하는 근본이념 아래 모든 종도에게 깨달음을 성취하고 보살도를 실천함에 필요한 교육을 시행하여 불국토 실현에 이바지할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이다. 이는 상구보리 하화중생, 혹은 원효가 말한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 중생을 넉넉하고 이롭게 한다(歸一心之源 饒益衆生)”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
이번 총무원장 선거에서 반드시 수립해야 하는 것은 선거공영제와 중앙관리제다. 우선 종단 차원에서 종단 중앙 선거 관리위원회(가칭)를 조직한다. 선관위는 어떤 문중이나 계파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부대중을 구성원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공정한 자를 각 교구별로 추천을 받아 정한다. 선관위는 선거를 감시하고 관리할 뿐만 아니라 선거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홍보를 맡는다. 선거 공영제는 금권선거를 비롯하여 자유방임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폐단을 방지하기 위하여 종단의 중앙 조직에서 선거를 관리하고 그에 소요되는 선거비용을 종단의 부담으로 하거나 후보자의 기탁금 중에서 공제함으로써 선거의 형평과 기회균등을 보장하고 선거비용을 경감하며 나아가 공명선거를 실현하려는 선거제도를 말한다
지금 총무원장 선거제도 및 방식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종헌 제52조 ②항은 “총무원장은 총무원장 선거인단이 선출하며 원로회의의 인준을 거쳐 취임한다.”, ③항은 “제2항의 총무원장 선거인단은 중앙종회의원과 각 교구종회에서 선출한 10인의 선거인(본사주지 포함)으로 구성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종단의 총무원장 선거 관행에 대해 명진 스님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24개 교구 본사에서 240명, 중앙종회 의원 81명을 합해 321명이 투표로 총무원장을 뽑는다. 후보들은 본사 주지에게 2000만·3000만원, 나머지 선거인단에게 500만 원 정도 뿌리는 것이 관행화돼 있다. 대략 30억 원을 쓰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종회의원이나 주지 선거 때도 액수의 차이만 있을 뿐 돈이 오간다.”라고 말한 바 있
이번 차례엔 선거제도에 대해 알아보자. 선거란 말 그대로 대표를 뽑는 것이지만,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선거를 통해 구성원은 대표를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다. 선거 국면에서 구성원은 갈등과 대립을 표출하고, 각 후보자들은 이를 수렴하면서 의사통합을 한다. 구성원은 의사결정에 참여하면서 구성원으로서 주체를 형성하고 의식을 제고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표는 선거를 통해 구성원을 대리하여 정책을 결정하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당성을 획득한다. 위와 같은 사유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서 선거를 통하여 대표를 선출하고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율장과 승가의 전통으로 보면, 소임자의 선거는 올바르지 않다. 하지만, 이제 승가는 세속화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세속화가 문제가 아니라 종교집단의 성스러움과
복지는 승려의 미래다. 복지를 간과하는 것은 불교의 미래를 무시하는 것이다. 노스님일수록 더욱 존경받고 위의가 빛나야 한다. 종단에서 파악한 승려복지예산은 요양에 10억 원, 치료에 50억 원, 건강보험료에 150억 원, 연금보험료에 25억 원 등 235억 원이다. 앞의 글대로 하면, 그 정도의 재정확보는 가능하다. 재정을 확보한 후 이에 맞게 복지 마스터플랜을 짠다. 스웨덴의 복지 구호가 “요람에서 무덤까지”였다. 이를 차용하면, “출가에서 입적”까지 스님들에 대한 복지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종단의 복지원에서 이를 추진하되, 복지 전문가와 스님이 공동으로 기획한다. 기존의 연구 및 조사를 보면, 강원과 선방 수좌 수님들의 70% 이상이 주거할 공간이 없다. 65.4%의 스님들이 노후문제를 염려하고,
최근 한국 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적극적 복지와 구조적 폭력을 제거하는 적극적 평화 개념을 불교에 맞게 전환하여 종단의 복지이념을 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빈곤, 질병 등 좋지 않은 것을 해소하는 것에 대처하는 소극적 복지는 이를 야기하는 구조를 존속시킨다. 요한 갈퉁이 말한 대로, 평화란 싸움과 폭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을 제거한 상태를 뜻한다. ‘장아함경’에서 “그 중생은 빈궁으로 인해서 절도를 한다. 절도를 하기 때문에 즉 무기가 있고 그 무기가 있기 때문에 살해가 있다. 살해가 있기 때문에 탐취 사음이 있고, 탐취 사음이 있기 때문에 망어가 있다.”고 말한다. 가난 때문에 절도, 살해, 사음이 일어난다. 가난이라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개인의 악업을 짓는 원인이이라는 것이다. &nb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노스님들의 복지다. 나름대로 수많은 대중들에게 훌륭하게 포교하고 수행에서도 명성을 날린 스님조차 늙고 병들면 말 그대로 한 몸을 뉘울 집도, 절도 없다. 소임을 맡고 있거나 탄탄한 문중의 뒷배를 받지 못하거나, 힘 있는 제자를 두지 못한 스님은 의지할 곳이 없다. 찾다, 찾다 끝내 찾지 못한 스님은 사암을 두기도 한다. 사암도, 토굴도 얻지 못한 스님은 이리 저리 유랑하며 걸식이 아닌 걸식을 한다. 아무리 삶이 곤고해도 바라볼 별이 있고 기댈 언덕이 있으면 그나마 생을 영위할 수 있는 법인데, 한국 불교는 힘도 연고도 없는 스님들에게서 별도, 기댈 언덕도 빼앗았다. 노후가 걱정이 되니 수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노후를 대비하여 나름대로 준비를 한 스님은 괜찮지만, 그렇지 못한 스님은
아버지와 겸상을 하지 못하는데 할아버지와 겸상을 하는 이유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엔 자율과 예(禮)를 앞세워야 하지만,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엔 자유와 악(樂)를 더 앞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수염을 잡으면 후레아들이지만, 이를 할아버지에게 감행하면 재롱둥이다. 아버지가 엄하게 가르치지 않은 집안의 아이는 자유롭지만 예의가 없다. 반면에, 너무 엄하게만 가르치면 아이는 주눅이 들어 매사에 수동적이고 창조력도, 문제해결 능력도 떨어진다. 가정구조 안에서 아버지는 예를 갖추게 하고, 할아버지는 그 예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한다. 승가도 마찬가지다. 예와 악, 자율과 자유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호법부의 독립, 내부시선의 시스템화, 사찰운영위원회의 상호 감시체계 확립, 문중과 계파에 따른 온정주의 타파
이처럼 문화와 계율 사이의 괴리를 메우는 작업을 해야 하지만, 이런 사유로 지금까지 저지른 범계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스님들의 범계 행위가 불교를 쇠망하게 할 만큼 극단의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종단도 이를 의식하여 성찰과 쇄신을 주장하는데, 진실 없는 참회와 성찰은 쇼에 지나지 않으며, 외려 쇄신의 장애다. 모든 성찰과 쇄신은 진실의 조사와 공표로부터 시작한다. 신뢰받는 출가자와 재가자 공동으로 “청정승가정립을 위한 범계행위 진상조사위원회(가칭)”를 구성하여 빠른 시일 내에 모든 진실을 조사하여 보고서 형식으로 발표하여야 한다. 조사한 후 드러난 허물이 개인적인 것은 참회하고, 드러난 문제가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것은 구조와 제도를 개혁하여야 하며, 문화적인 것은 승풍을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