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웰다잉 특강의 마무리 단계로 여러분과 함께 ‘죽음명상’을 실습해보고 싶습니다.펜을 모두 놓으시고 허리를 펴고 눈은 반쯤 감습니다. 입은 다물고 혀는 입천장에 고정시키고 다리는 자연스럽게 반가부좌나 가부좌 자세로 앉습니다. 양손을 모아 단전 앞에 두고 아랫배로 천천히 자연스럽게 호흡을 합니다.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냥 내버려두고 지켜보면서 오직 아랫배의 호흡에만 집중합니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나, 여유 있게 죽을 수 있도록 철저하고 충분히 준비해야합니다. 만약 갑자기 죽는다면 여려분은 어떻게 죽겠습니까. 죽음 명상 통해 삶 돌아봐야 죽음준비는 제한된 삶의 시간을 보다 의미 있게 영유함으로써 편안히 죽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죽음
저는 수목장을 사랑하는 모임에 공동대표를 맡고 있지만 그건 감투에 불과하고 실은 수목장에 대해 남들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수목장’ 보다는 ‘왜 수목장이 필요한가’입니다. 아무리 좋은 장묘 문화라도 국가가 장려한다고 해서 갑자기 확산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는 단지 보조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의 장묘 문화가 수목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화장 비율이 50%를 넘어섰습니다. 서울이 70%, 부산이 75%입니다. 2030년엔 매년 60만명씩 사망 소중한 나무가 분묘를 만들고 있어 자꾸 훼손되고 있습니다. 자세한 수치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2000만기의 무덤이 있다고 합니다. 한 사람당 평균 15평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의학적으로 죽음을 어떻게 판단하는가와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또 좋은 죽음을 맞는 과정에서 호스피스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모두 숨을 쉬고 살아 계십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분 몸속에는 삶과 죽음이 함께 이뤄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최소단위를 생물학적으로는 세포라고 하지요. 이 세포의 단위에서 볼 때 여러분 몸속에서는 새로운 세포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활동하고 죽어가는 현상이 끊임없이 병행되고 있습니다. 내 몸속에는 생물학적 단위에서의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의학자나 과학자들은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의학적 관점에서 죽음은 다음 세대에게 좋은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
오늘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릴 ‘존엄사’라는 주제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익숙한 개념이 아닙니다. 하지만 질병을 고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평생을 의학자로 살아오며 제가 느낀 것은 세상에는 고치지 못하는 병이 많고 원인을 모르는 병 또한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고령으로 돌아가시는 경우 고칠 수 없는 병을 갖고 있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는 점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만큼 현대 의학은 많은 한계점을 갖고 있으며 그런 만큼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가 존엄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헌대 사회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1997년 우리나라 최대의 의료송사인 ‘보라매 병원 사건’이 촉발됐습니다. 이 사건은 치료 불가능한 환자 즉, 인공호흡기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고
오늘 저에게는 두 가지 즐거움이 있습니다. 첫째는 잘 죽으려하는 여러분을 만나 즐겁고 둘째는 여러분에게 죽음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 제 스승 중의 한 분이신 쉐오민 사야도 밑에서 공부를 하며 놀라운 점을 하나 배웠습니다. 그 분은 자주 “삶과 이별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간결하지만 심금을 울리고 통찰의 지혜를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래, 우리가 삶과 이별할 준비를 하지 못하고 사는 구나.’는 생각을 하며 전율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후 한국에 와서 선원에서 수행하는 어떤 분께 “삶과 이별할 준비를 하시오.”라고 가르침을 전했는데, 그 분이 그것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해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말로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당연하지만 두려운 준비 하루는 그분 딸이
반갑습니다. 요즘 참 좋은 바람이 불고 있어서 참으로 바람직합니다. 사실상 잘 죽는 법을 고찰한다는 것은 그 말 자체가 삶을 반조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인가를 더욱 간절하고 더욱 깊게 고찰하고자 하는데서 나온 말이 잘 죽는 법일 것입니다. 웰다잉이라는 것이 잘 죽는 법이죠? 그렇다면 잘 죽는 법,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인가 고찰 한번 해보겠습니다. 죽음 문제를 제일 먼저 깊게 들고 나오신 분은 인류 역사상 부처님이 처음입니다. 부처님은 출가하기 전 태자 시절에 사람이 죽어 나가는 상여를 보시고는 세상 사람이 다 죽는다는 사실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태자는 생각하시길 ‘사람이 누구나 죽는다면 지금 죽으나 내일 죽으나 며칠 더 있다 죽으나 몇 십 년 더 있다 죽으나 무슨 차이가
오늘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특별한 자리를 갖게 돼서 기쁩니다. 오늘은 웰다잉, 즉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자리입니다. 8년 전 일본에서 항공기가 떨어져 450명이 죽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잔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450명의 사망자중 65명이 비행기가 떨어지는 순간, 그 1분 20초의 시간 동안 유서를 써서 남겼음이 확인됐습니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그 아비규환의 순간에 담뱃갑, 수첩, 종이쪽지 등등에 유서를 쓴 것이지요. 1분20초의 시간,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유서를 쓸 수 있는 사람, 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죽음을 디자인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이 자리는 잘 죽는 법에 대해 말씀드리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봉은사와 법보신문은 공동주최로 10월 9일부터 8회에 걸쳐 매주 월요일 봉은사 보우당에서 오진탁 교수의 ‘제2기 웰다잉 체험 교실’과 죽음관련 전문가 초청 ‘웰다잉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8인의 전문가에게 듣는 웰다잉 특강’을 총8회에 걸쳐 지상 중계한다. 편집자 현대인의 죽음관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다른 것과 비교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비교의 척도인데, 무엇과 비교를 할 것인가. 우리가 한국 사람이고 동양사람이기에 다른 문화와 비교해 보기보다는 우리 조상들, 이 땅에서 먼저 삶을 살던 분들은 어떻게 죽음을 이해했을까를 더듬어 보며 현대인들이 오늘 어떤 죽음 이해를 갖고 있는가를 비교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갖고 있던 죽음 태도 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