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종 36주년을 맞은 총지종은 지난해 중앙종의회의 결의를 통해 올해를 종단 중흥 원년의 해로 선포했다. 이는 지난 2006년 종단중흥기획단을 구성하고, 종단 운영과 종책 방향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해온 결과다. 총지종 종령 효강 정사를 단장으로 하는 종단중흥기획단에는 통리원장 원송, 법장원장 법공, 중앙교육원장 화령 정사 등이 실무자로 참여해 교화 활성화를 목표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제10대 총지종 종령인 효강 정사는 종단의 정신적 지주로 평소 △시대 변화에 걸맞는 교화방편 개발 △도제양성과 의식 및 의궤 개혁 △사회복지 활성화와 포교방법 개발 등 종단 중흥을 위한 종도들의 역할을 강조해 왔다. 효강 정사는 대내적으로도 통리원장, 법장원장, 교육원장, 사회복지법인 이사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지난 5월 부산 정각사에서 봉행된 양부 만다라 봉안법회. 밀교는 불교를 제법 공부한 사람에게도 생소한 분야다. 때문에 주술에 의한 치병이나 기복의 수단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밀교는 은밀하게 설해진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비밀불교(秘密佛敎)의 줄임말로, 공개적이고 개방적인 가르침을 뜻하는 현교(顯敎)의 상대적 의미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심오해 경지에 도달한 자 외에는 알 수가 없어 특별히 ‘비밀’이라고 하는 것이다. 밀교의 특징은 강한 실천력이다. 현교를 대표하는 대승불교는 부파불교의 이론적이고 교학적인 면을 탈피하고자 일어난 새로운 불교로서 실천을 중시하는 보살사상을 내세웠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부파불교의 교리적 측면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고, 후대로
“1700여년의 한국불교가 최근 외래종교에 밀려 침체를 면치 못하는 것은 승단이 세속화되고, 올바른 수행이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국불교가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행풍토를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승가종은 출가수행자들의 지계를 강조하고 교육을 체계화함으로써 한국불교의 새로운 수행풍토를 조성하는데 앞장서 나갈 것입니다.” 승가종 종정 월인〈사진〉 스님은 “침체된 한국불교가 다시 중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청정수행풍토 조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스님은 “종단 스님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진행함으로써 출가수행자로서의 위의를 갖추게 하고 이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알려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952년 음력 2월 1일 김제 금산사로 출가한 스님은 195
2006년 6월 7일 부산에서 개최한 승가종 창종 5주년 기념 대법회. 계·정·혜 삼학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계율은 부처님 당시부터 불자라면 누구나 받아 능히 지켜나가야 할 의무사항으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지계 의식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승단 내에서조차 이미 오래전부터 부익부빈익빈 문제가 심화되고 있을뿐더러 가난한 스님들은 당장 노후걱정을 해야 하는 등 승단이 지나치게 세속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2001년 새로운 수행풍토를 조성하겠다며 창종한 승가종은 그 동안 한국불교 승단에 병폐로 지적돼온 각종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신행문화를 개척했다. 특히 승려 노후복지시스템을 구축해 모든 출가수행자가 수행에 전념
원융종이 2006년 9월 충주 중앙탑 공원에서 개최한 ‘국운융창 기원 수륙 대법회’ 모든 것이 둥근 원과 같아 모나지 않고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다는 원융무애(圓融無碍)사상은 다양한 사상을 하나로 아우르고 통합시키는 불교의 근본이념이 돼 왔다. 특히 신라 원효, 의상 스님에 의해 체계화된 ‘원융무애’ 사상은 1700년 한국불교를 지탱해 준 근간이 됐다. 대한불교 원융종은 이 같은 ‘원융무애’ 사상을 올곧게 계승해 사상적, 이념적 대립으로 혼란을 겪는 우리 사회가 하나로 융합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한국불교의 중심종단으로 성장했다. 1977년 ‘원융무애 사상을 바탕으로 대승보살행을 실천하고 태고보우 국사를 종조로 종풍을 선양하며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한다’는 종지를
창종 31주년을 맞은 원융종은 종정 일공 스님으로 대변된다. 1977년 원융종을 창종한 이후 20여 년간 총무원장으로서 종단의 행정을 지휘했고, 현재는 종정으로서 종도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1943년 12세의 나이에 예산 수덕사에서 만공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일공 스님은 이후 청담 스님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그러던 중 스님은 한국불교의 가장 큰 특징이 ‘원융무애’사상에 있음을 깨닫고 이를 계승, 선양해야겠다는 발원을 세우고 원융종을 창종했다. 창종 이후 스님은 해외교류 사업에 중점을 둬,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 ‘한중일불교교류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할 수 있는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스님은 ‘한국불교종단진흥회’를 조직, 회장에 역임하며 종단간 협력에도 앞장섰다. 일공
관음종이 창종 30여년 만에 한국불교의 중심 종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총무원장 홍파 스님의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시각이 많다. 특히 한일불교교류협의회 이사장,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 등 스님의 활발한 대외 활동은 신생종단이었던 관음종이 급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는 평가다. 1961년 관음종 개산조인 태허 스님의 문하로 입산한 홍파 스님은 1981년 창립 이사로 종단협에 참가한 데 이어 종단협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각 종단간의 우의와 협력을 위한 각종 사업을 주도해 왔다. 그러나 관음종이 총무원장의 노력으로만 유지될 수는 없다. 홍파 스님의 주변에는 종무 행정을 뒷받침 해줄 풍부한 참모진이 있다. 우선 홍파 스님이 대외적 활동에 집중한다면 종단내부 행정은 종회의장 법륜, 포교
현재 한국불교계 내에는 역사와 전통을 달리하는 수많은 종단이 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등록된 27개 종단을 비롯해 등록되지 않은 종단 등 수십 개의 종단이 서로 다른 종지종풍을 바탕으로 한국불교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조계, 태고, 천태, 진각종 등 대형 종단을 제외하곤 나머지 종단에 대해서는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본지는 월간 기획으로 그 동안 대형 종단에 가려져 있던 종단을 찾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