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강 석굴에서 외교관 석굴로 불리는 제 20굴의 노천 석불. 한 없이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석불이 온화해 보인다. 중대의 기운이 서늘하게 변해 몸을 휘감는다. 7월의 한 낮이건만 열기는 오간 데 없고 겨울의 문턱에 다가선 듯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온몸을 오싹거리게 한다. 해발 3000m. “중대 정상을 오를 때는 체온을 보호할 옷을 준비하라”는 가이드의 조언을 무시한 결과로 몸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잠시 뒤 초록의 융단이 드리워진 구릉과 파란하늘. 초록과 파랑만의 원색으로 연출하는 장대한 중대 정상의 풍경에 몸을 움츠리게 했던 한기(寒氣)는 멀찌감치 밀려난다. 중대에 오르지 않고 오대산을 얘기할 수 없다는 옛말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 사실 오대산 다섯 봉우리 모두 저마다의 특
중대 정상에 서 있는 사리탑을 중심으로 빼곡히 서 있는 돌탑들.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수행자들이 남긴 구법의 열정과 피와 땀의 흔적들이다.8만평이 넘는 대가람인 탑원사와 현통사의 경내 참배를 마치자, 시나브로 시간은 흘러 기세를 잃은 태양이 서대(西臺) 끝에서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다. 반나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그러나 숨 고를 틈도 없이 대라정, 현통사, 탑원사 등 3곳의 대가람을 잇따라 참배한 일행의 몸은 천근만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더위와 강행군에 지친 일행들 속에서 숙소로 돌아가 땀이라도 씻어내자는 웅성거림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오대산 길잡이 허홍발 씨는 야속하게도 이런 분위기를 애써 무시하며 다음 목적지인 수상사로 묵묵히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잠
대라정 저앙에서 바라본 대회진 전경. 높이 50m가 넘는 대탑을 중심으로 탑원사와 현통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탑원사와 현통사로 향했다. 대라정에서의 감동이 진득이도 발길을 붙들었지만 빠듯한 일정에 떨어지지 않는 발을 재촉해 길을 나섰다. 내려오며 바라보는 오대산의 절경은 짧은 일별(一瞥)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뒤흔들 정도로 아름다웠다.대라정에서 버스로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한 탑원사와 현통사는 오대산 불교의 얼굴 격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절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사격도 오대산에 점점이 박힌 사찰 가운데 가장 크고 유물 또한 풍부하기 때문이다. 또 지금은 두개의 사찰로 나눠져 탑원사와 현통사로 불리고 있지만 명나라 이전만 해도 대현통사로 불리며 대가람을 이뤘던 곳이
오래된 석탑의 푸른 이끼, 그 위에 떨어진 마른 나뭇잎. 그 모습이 내 마음에 문득 하나의 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연이 그린 그림. 내 마음이 열려있었던가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마음이 무심하면, 자연의 무심한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됩니다. 저는 그것을 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눈 뜬 사람에게 세상은 크나큰 갤러리입니다. - 계룡산 갑사 공우탑
오대산 대라정 전경. 사진 중간으로 1080계단이 선명히 보인다.열기로 달아올라야 할 7월 한 낮이건만 오대산은 선선하기만 하다. 마치 우리의 초가을을 옮겨다 놓은 듯 시원스런 살바람에 콧등에 맺힌 땀방울은 이내 자취를 감춰버렸다. 여름의 열기를 한 순간에 식히는 청량한 바람. 예로부터 오대산이 청량산(淸凉山)으로 불렸다는 옛 선인들의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오대산에 발을 들이는 순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청량사를 나올 무렵, 해는 중천을 넘어섰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설로 신이함이 가득한 청량사에서의 감동을 뒤로 하고 다음 순례지인 대라정(大螺頂)으로 향했다.대라정은 오대산 중심부인 대회진(臺懷鎭)에 위치한 사찰로 동대, 서대, 중대, 남대, 북대의 다섯 문수보살을 모두 모아 놓은 곳으로
똬리를 튼 뱀처럼 ‘S'자로 굽어진 길을 따라 남대(南台) 정상으로 향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성 처럼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청량사의 전경.듬성듬성 자리를 잡은 몇 그루 나무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고 서 있는 듯하더니 어느새 끝간데 없이 푸른 초원이 넓게 펼쳐진다. 눈이 가물거리도록 광활한 대지와 쪽빛 하늘. 명산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이런 광경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푸른 초원 멀리서 작은 바람이 일어난 듯 싶더니 어느새 다가와 옷자락을 흔들며 이마에 맺힌 7월의 열기를 한 순간에 식혀버린다. 자연이 빚어낸 예술작품에 감동도 잠시, 서둘러 카메라를 꺼내 눈에 맞췄다. 가슴 밑바닥에 솟구치는 환희를 오롯이 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말이 진실을 담기에 역부족이듯 카메라
동대에서 바라본 오대산 전경. 봉우리 정상이 평평하고 수목이 없어 마치 흙으로 된 평원 같다. 신발이 다 닳고/ 발바닥이 피흘려도 올라갈 수 없어라.// 정강이로 오르고/무릎으로 오르고/가슴과 턱/ 이마로 올라가도 다다를 수 없어라.//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늘의 하늘 끝/ 마음으로 닿을 수 있는/ 마음의 마음 끝/ 어떻게도 이대로는/ 바라다볼 수 없는,// 그 음성 아득하게/ 내리시올 자비/ 커다랗게 허릴 굽혀/ 안아 올려 주실/ 그 정상 이마직서 홀로 울어라. -박두진 ‘지성산(至聖山)’산은 마음의 고향이다. 산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에 마치 어미 품처럼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그뿐인가, 산은 인생에 비유되기도 한다. 평탄한 길이 있는가 하면 금새 험준한 절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런
“오대산은 신라 고승 자장 스님이 문수보살을 친견했던 곳일 뿐 아니라 이후 혜초 스님 등 수많은 한국 구법승들이 거쳐 갔던 곳입니다. 따라서 오대산을 순례한다는 것은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번 문수성지 중국 오대산 순례를 기획한 한진관광 마포총판 송기천〈사진〉 대표는 “오대산은 한국불교의 원류가 되는 곳”이라며 “오대산을 찾는 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한국 구법승들의 발자취를 찾고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오대산 순례를 기획하게 된 것은 지난 2000년. 우연히 지도에서 중국에도 오대산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한국 오대산과 인연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다. 그는 『삼국유사』 등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인연 있는 스님들을 통해 오대산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