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류관 냉면 맛의 여운을 만끽하면서 광법사(廣法寺)로 발길을 재촉한다. 광법사는 지난 90년 북한이 새롭게 복원한 절이라고 해서 남쪽 불교계에서도 관심을 끌었던 절이다. 당시는 북한에서 절을 복원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던 기억이 남아 있던 터라, 광법사로 향하는 내 마음속엔 약간의 설렘이 포함돼 있다.90년 복원된 국보사찰광법사. 국보 제164호로 지정될 정도로 북한에서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찰이다. 지금도 외국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설사 그들이 불교관련 인사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찾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평양에 소재한 고구려 시기 창건 주요사찰은 영명사, 금강사, 광법사, 법운암, 정릉사 등 다섯 곳인데, 현재는 광법사, 법운암, 정릉사가 복원돼 남아 있다.일행을 태운 승합차가 광법사 앞 주차
구름안개 피어나는 이곳은 신선이 사는 경지로다초입 안심사 서부도엔 6·25상흔 남아금강굴 지나면 세속의 차별은 사라지고묘향산 등반을 앞두고 잠이 오지 않는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산을 등반하게 된다는 설렘도 있지만, 밤새 내리는 눈으로 혹시 등반이 어렵지나 않을까라는 조바심 탓이 더 크다. 게다가 북한의 전력난으로 향산 호텔의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춥기까지 하니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다. 밤잠을 설치며 연신 창밖을 살폈다. 이제 그만 왔으면 좋으련만 저놈의 눈은 그치지 않고 하염없이 내린다. 새벽녘에 이르러서야 눈발이 가늘어지더니 가까스로 그쳤다. 휴-. 이윽고 아침 식사 시간. 아니나 다를까. 눈길이 매우 위험하니 등반을 포기하는 편이 낫겠다는 주장이 나온다. 침묵을 지키는 이도 있고 대세를 따르겠다는 표
우주의 정상에 핀 연꽃 봉오리 우린 아무래도 거대하고 웅장한 것에는 덜 익숙하다. 좁은 한반도 태생이란 유전인자가 몸의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모양이다. 작고 아담한 것은 솔깃이 정겹다. 여자 또한 그럴 것인데 요즘은 크고 늘씬한 팔등신이 미인의 척도가 되어버렸다. 서구적 물상이 모든 가치를 지배하는 세상이어서 그런가. 앙코르의 곳곳에 새겨진 천상의 댄서 압살라는 그렇지 않다. 가늘게 내리깐 눈으로 바라보는 도발적이지 않은 표정, 가는 허리, 도톰한 유방을 가진 아담한 처녀의 모습이다. 니악 뽀안은 수반 위에 올려놓은 연꽃 같다. 수반이 조금 크긴 하지만 다른 유적에 비하면 앙증맞다. 각 변 길이가 70 미터인 사각 연못의 가운데 중앙탑이 있다. 동심원 형태의 계단을 올라가면 연꽃 모양 조각으
나는 사형으로부터 '새해에는 꼭 도제를 한 사람 두게 해 달라'는 실행 될 수 없는 화두를 받았다. 지금 우리의 주위에는 제자가 은사스님을 뵙고 3배의 예(禮)로 문안을 드리면 '누구시더라?' 하는 이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도제(徒弟)가 많아서 몇 인지도 모르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한 명도 없는 이도 있고, 지은 바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겠지만 한 명의 도제를 얻기 위해 일부러 큰절 살이를 하는 이도 있다. 스승은 한 번 도제로 삼으면 도제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는 알아야 한다. 고분고분 할 때는 효상좌로 보다가 그렇지 못할 때는 귀찮고 힘들어하는 도제도 두지 말아야 한다. 세속인도 자식을 하나 얻으면 갖은 공을 다 드리는데 말이다. 도제가 된 사람은 한 번 스승으로 모셨으면 한 줌
지난 번 출가재일에 입교한 40여명의 행자를 맡아 갈마했는데, 결혼하지 않은 행자는 3~4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이혼 경력이 있고 자식을 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행자들이었다. 갖가지 말 못할 사연과 인연들로 얽혀 있었다. 이 행자들은 법적으로 자식들은 친권포기를 했고 아내와도 이혼을 했거나, 한 여인과 두 번이나 이혼을 했거나, 기본 예식을 외우지 못하거나, 불교 상식을 몰라 입방고사에 낙방하는 등의 문제는 계속 되풀이되고 있었고, 교육을 마치면 수행자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생각하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 상좌를 두는 스님들께 권하고 싶은 작은 일이 있다. 상좌 될 행자와 같이 목욕탕을 한 번 가 보고, 평상시에 법수(法數) 하나라도 물어보고, 한꺼번에 상좌를 둘 때는 세랍(世臘
'결과 보다 행동 강조한 어휘 '선행의 과보' 뜻으로 쓰여 功 德(공 덕) '功' 자의 뜻이 '공'임은 한자 자체가 우리말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자가 갖는 의미는 '功勞(공로)', '功績(공적)'. '成功(성공)'. '功夫(工夫, 공부)' 등으로 그대로 전용된다. '德' 자는 뜻으로 읽을 때 '큰, 크다'인데, 실제 우리의 일상어에서 '크다'로 쓰이는 때가 별로 없고 '덕' 자체가 한 단어로 쓰인다. '덕이 있다' '덕봤다' 등으로 쓰인다. '道德'이라는 의미로서의 '덕'인데 이것을 '크다'의 개념으로 파악했다면 인간 행위에 있어서 도덕보다 더 큰 것은 없다는 이유가 작용된 것일 터이니 매우 다행한 일이다. 이 '德' 자가 '크다'의 의미
빠르게 노래하다 숨쉴 틈 놓치기도 노랫말의 뜻 부처님 자비의 손길마다 꽃들 빛나고, 공덕의 그늘마다 새들이 우나니, 만유에 나투신 부처님 은혜에 우리들 두 손 모아 예불 드리자는 내용으로 된 곡이다. 글의 배용이 찬단으로 되어 있기에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부를 수 있는 의식곡이다. 곡의 분석 이 곡은 24마디 세 도막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8분의 6박자 민요풍으로 된 곡이다. '산에 가면 푸른 바람'은 이 곡의 주제로서 8분의 6박자의 리듬꼴에 주의해야 한다. '산 빛 열리고'에서는 연결구 부분이므로 셈여림을 주제보다 더 강하게 할 필요가 있고, '들에 서면 밝은 햇빛'에 있어서는 도약 음정이 많이 사용되었기에 음정에 주의해야 한다. '강물 흐르네'에서는 A부분의 종지형이므로 곡이 끝나는
살아나렴! 킹콩 글·이상교 그림·노성빈 '에이, 귀찮아…'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다른 애들이 기르는 햄스터는 잘도 죽던데, 용일이가 기르는 햄스터는 잘 돌보지 않는데도 팔팔합니다. '먹이 주었니? 목욕은 시켰니? 아이구, 냄새! 밖에 좀 내놓으렴.' 식구들마다 햄스터에 대해 한 마디씩 잔소리를 했습니다. '형 햄스턴데 어째서 나한테만 시켜요?' 엄마께 따졌습니다. '함께 샀으니 네 햄스터도 되잖아?' 엄마가 대답하기 전에 누나가 앞서 말했습니다. 햄스터 한 마리를 기르기 시작한 지 석 달이 되어갑니다. 암놈인지, 수놈인지 모르면서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기르기 시작했을 때는 햄스터의
조선초기 양식 전각마다 고려의 멋 듬뿍명부전 지장보살상 마치 숨을 쉬는 듯 구월산 월정사에는 현재 두 분의 스님이 살고 있다. 두 스님은 이 절에서 오랜 세월 관리인을 해왔던 노 거사의 두 아들인데,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스님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재작년에 스님이 되었으니 아직은 사미승인데, 두 스님 모두 고등중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지난 2000년 법타 스님이 평불협 방문단을 이끌고 이곳을 방문했을 때, 두 형제에게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스님이 될 것을 적극 권유했었는데, 그것이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법타 스님은 스님이 되어있는 아우 스님을 부둥켜안고는 등을 두드리면서 “잘했어. 얼마나 좋아. 이렇게 스님이 되어 있으니.”라며 기뻐 어쩔 줄 모른다.주지격인 형님 스님은
스님들의 가사는 출가 수행자의 표시로 입는 법의를 말합니다. 가사는 불교 발생지인 인도의 전통의상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카샤야’라고 하여 ‘탁하다’, ‘어둡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 가사는 ‘입는다’고 하지 않고 ‘수한다’ 라고 말합니다. 인도 스님들은 날씨가 더워 상의로 가사만을 걸칩니다. 그러나 북방지역으로 불교가 전파되면서 보온을 위해 장삼을 입고 그 위에 가사를 걸치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사는 종파에 따라 색상을 달리하고 조계종의 경우는 고동색입니다.
어리석은 중생의 생로병사를 확실히 밝혀주려고 그렇게도 힘든 고행의 길을 기쁨으로 밝혀주시고, 무명 속에 가리운 중생들의 번뇌를 말끔히 씻어 주려고 온갖 시련 물리치고 성도의 길을 자비롭게 인도하신 부처님을 찬탄한 곡이다. 쉬운 선율 진행과 높지 않은 음역으로 작곡되었기에 불교 의식 때나 법회 때 쉽게 불려질 수 있는 곡이다. ‘이루심이여 이루심이여’에 같은 가사를 반복하여 리듬을 강조하고 이다. 첫 마디의 끝 부분에 사용된 음정에 주의해야 한다. ‘눈부신 성도의 이루심이여’ 역시 가사를 두 번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데, 첫 번째 동기와는 묻고 답하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뒷부분은 더욱 작게 노래하여 곡을 마무리해야 한다. ‘어리석은 중생의 생로병사를 말끔히 확실히 밝혀서 해결해 주려고’에서는
‘平’ 자에는 여러 뜻이 있으니,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에 ‘평탄(平 평탄할 坦)하다’ 할 때는 평탄이란 의미이고, ‘평화(平 화할 和)’라 하면 고르게 조화롭다는 뜻이고, ‘평균(平 고를 均)’이라 하면 ‘똑고르다’는 뜻이다. ‘等’ 자도 ‘균등(均等)’이라는 ‘가즈런하다’의 뜻에서 급수를 규정하는 ‘등급(等 급수 級)’의 의미로 두루 쓰이게 된다. ‘평등’이란 말은 곧 ‘균평제등(均平齊等)’의 준말이니, 높고 낮음이나 깊고 옅음이 없이 일체 현상이 모두 같은 공성(共性)으로 진여의 심성 위에는 모든 차별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석가모니께서 고대 인두의 네 가지 사회 계급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한 ‘사성평등(四姓平等)’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절대 평등의 깨달음이 ‘평등각(平等 깨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