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출장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입장휴게소였는데, ‘되돌림 화장실’이라는 독특한 화장실을 만났다. 한글 이름이어서 눈에 띄었는데 화장실 입구에 있는 홍보관에 들어가 살펴보니 꽤나 의미 있는 화장실이었다. 건축물을 허물 때 나오는 건설폐기물을 100% 재활용해서 지은 화장실이었다. 건설폐기물을 재활용해서 건축물을 지어 되돌렸다는 의미와 화장실이란 곳이 우리 몸을 거쳐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곳이란 두 가지 의미가 ‘되돌림 화장실’이라는 말에 담겨 있었다. 건설폐기물을 재활용한다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건설폐기물은
쏟아지는 비 받아놓기만 해도온난화 대책에 큰 효과 있어비 없는 것은 열대야와도 관련편리함 누린 대가 고통으로 와염천에 떠오르는 풍경 하나가 있다. 마당가 풀들이 축축 늘어지고 매미 울음소리마저 더위가 삼켜버린 날이면 뙤약볕 아래 달궈진 마당이며 담벼락 그리고 골목길 어귀까지 물을 뿌리곤 하시던 아버지 모습이다. 아버지가 호스로 물을 뿌리시는 틈바구니에 나도 슬쩍 끼어 시원한 물세례를 받곤 했다. 대문간에 있던 진돗개 진수도 꼬리를 흔들며 낑낑댔고 결국 물세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진수가 물기를 온몸으로 털기 전에 얼른 저만치 피해
깜빡 잊고 아침에 지어 놓은 밥을 솥에 그대로 두고 하룻밤을 지냈다. 집에서 저녁밥을 먹는 사람이 없어서 그만 밥 관리를 소홀히 하고 말았다. 이튿날 새벽에 퍼뜩 생각나서 부엌으로 달려가 밥솥 뚜껑을 여는데 시큼한 냄새가 났다. 따스한 마음 담긴 ‘밥 먹자’‘밥=생명’이란 생각서 나와감사 모르는 음식문맹보단욕심내려놓고 음식 대해야아뿔싸!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여름마다 몇 번씩 이렇게 아까운 밥을 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이미 시큼하게 쉬어버린 밥을 놓고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걸까 생각해봤다. 무엇보다 밥
밤이 되어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보름 넘게 지속되면서 많은 이들이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높은 기온에 매미 개체수가 엄청나게 증가해서 매미 울음소리마저 소음공해가 되어 괴롭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렇게 지독한 폭염은 작년에 한 달여 지속되던 가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도시에서 살고 있으면 가뭄은 사실상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비가 참 안 오네’ 라고 느끼긴 해도 수도꼭지를 틀면 언제나 물이 콸콸 나오니 가뭄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폭염은 다르다. 폭염이 가뭄과 다르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과학기술의 진일보는 부작용도 제법 가져다줬지만 그 덕에 누리는 혜택도 많다. 서울 내 집에 앉아서 저 먼 알래스카 곰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니 가히 혜택이라 할 만하다. 자연의 끝없는 순환의 고리 속인간은 일방적인 특혜만 받아개발 논리 대신 보전 가치 보며생명 관점에서 자연 바라봐야얼마 전 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알래스카에 살고 있는 브라운 베어의 생활을 24시간 지켜보기 시작했다. 알래스카 곳곳에 설치된 라이브 캠 덕분이다. 요새 그곳은 연어가 한창 올라오는 시기이다. 연어가 힘차게 강을 거슬러 펄쩍펄쩍 뛰어
아이들 어릴 적에 ‘작은 집 이야기’란 그림책을 자주 읽어줬다. 미국 작가 버지니아 리 버튼이 쓰고 그린 이 그림책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대부분이 발전 원하면서도자연 줄어듬은 원치 않아뭇 생명들 존재 살필수록내 존재도 있음 알아차려야먼 먼 옛날 시골 마을에 작은 집이 한 채 있었다. 아담하고 아름다운 집이었다. 그 집을 지은 사람은 금과 은을 다 주어도 이 집을 절대 팔지 않을 거라 했다. 이 집을 지은 이는 그의 손자의 손자, 그리고 그 손자의 손자가 그곳에서 사는 모습을 지켜보며 오래도록 남아 있길 소망했다. 작은 집은 언덕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비디오테이프를 넣으면 언제나 첫 장면은 ‘호환과 마마’만큼 무서운 불법비디오를 보지 말라는 공익광고가 떴던 걸로 기억한다. 목숨을 잃기도 했으니 호환과 마마에 따르는 두려움은 실로 컸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동물원 우리 안에서나 볼 수 있는 호랑이는 더 이상 맹수가 아니었고 이제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춘 천연두 역시 두려워할 그 무엇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둘을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으로 설정한 광고는 오히려 희화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우연히 도로 위 줄지어선 자동
7월도 어느덧 중순에 접어들었다. 곧 초복을 시작으로 중복과 말복이 열흘 간격으로 기다리고 있다. 복날 보양식은 더위에 지쳐 허해진 몸을 추스르고 보신하려 먹는 음식이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던 그 시절 삼복더위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 했을까? 고기 구경은커녕 먹는 것 자체가 귀하던 때, 너나없이 몸을 움직이는 노동을 하던 그 시절을 상상해보자. 더운 날 노동으로 쏟아낸 땀방울의 무게만큼 축났을 체력을 복날에 몸을 보신하는 일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지혜였을 수 있다. 그래서 단백질 함량이 높은 육개장, 백숙,
퇴근 시간이 좀 지난 뒤라 그랬는지 전철 안에는 서 있는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여유가 있었다. 전철 칸이 연결된 곳에 문이 활짝 열려있었는데 내가 탄 앞 뒤 칸의 풍경도 넉넉해 보였다. 훤하게 뚫린 공간에서 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전철 안에 있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전철 안에서 책 읽는 사람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잠을 청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람들 대부분이 열심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오
해 질 녘, 한낮에 오르던 기온이 한풀 꺾이고 바람도 제법 불던 시각이었다. 모임에 가려 버스를 탔다. 주말 이른 저녁이어서인지 사람도 별로 없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나는 금세 한기를 느꼈다. 여름이면 필수품처럼 챙겨 다니는 카디건을 꺼내 입었다. 그러고 보니 기사는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창문은 모조리 닫혀있었다. 차창 밖에는 일렁이며 가로수가 춤추고 있는데 그 선선한 바람을 닫힌 창이 가로막고 있고 버스 안은 꽁꽁 얼 것만 같은 에어컨이 가동 중에 있었다. 당장 시원해지고 싶은 욕망이에너지 소비로 지구 덥게 해부채로 땀 식히는 여유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콘크리트로 만든 빌딩과 아파트에 둘러싸여 24시간을 보내야하는 도시인들에겐 간절한 바람일 수 있다. 더구나 희뿌연 하늘이 도시를 덮는 날이 많아질수록 그 답답함은 비례해서 커지기 마련이다. 휴일이면 막힐 걸 뻔히 알면서도 꾸역꾸역 길을 나서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자연을 이리저리 도려내고 파헤치며 들어선 도시에 살고 있으나 우리 안에 내재된 유전자에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여전한 까닭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연을 만나는 일은 어쩌면 고향을 찾아가는 일과 같다고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 내게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줬다. 연휴가 끝난 다음날 지역의 한 수변공원의 풍경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쓰레기로 발 디딜 틈 없는 그곳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환경미화원의 뒷모습이 다소간 충격적이었다. 쓰레기양에도 놀랐지만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 풍경은 마치 그곳에서 놀던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를 잠깐 뜬 게 아닌가 싶었다. 앉았던 깔개조차 그곳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전날 밤에 비라도 내렸다면 저 많은 쓰레기들의 대부분은 바다로 쓸려갔을 테고, 어느 바다인가를 둥둥 떠다녔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