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번의 웅혼한 범종 소리 지나간 자리에 햇살이 들기 시작한다. 한 선사가 빈 하늘을 응시하듯, 수령 400년에 이르는 느티나무가 대웅전을 마주한 채 묵묵히 서 있다. 한 거사가 작은 숲으로 난 길을 따라 미륵전으로 걸어가고 있다. 세조가 기도해 지병을 치유했다는 입소문 깃든 미륵불이다. 고려후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니 어언 800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온 부처님이시다. 이 절 영화사는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지켜보았다.의상이 해돋이 명소에 지은 절화양사에 뿌리 둔 곳이 영화사범굴사 명맥 이은 절이 대성암고구려·백제·
#1절에 한 번 살아볼래?어머니 한 마디에 12살 소녀 ‘예!’눈으로 본 것을 마음으로 보았다 하는 건 착각일 뿐!동국대 장학금 권선 10년사람 키워야 불교 진흥! 5월이다. 땅과 비, 그리고 해와 달이 빚어낸 기적들이 가야산 기슭에도 일어났다. 진달래와 철쭉이 겨우내 품었던 향기를 일시에 발산하고 있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꽃이 피었으니 봄이다! 오늘은 특별한 스님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 날이다. 인연 닿는 비구니 스님들께 부탁드렸었다. 선교를 통해 내외가 명철하신 스님 한 분 귀띔해 주십사 하고. 한 분을 추천 받았고 수소문
절에 한 번 살아볼래?어머니 한 마디에 12살 소녀 ‘예!’눈으로 본 것을 마음으로 보았다 하는 건 착각일 뿐!동국대 장학금 권선 10년사람 키워야 불교 진흥! 5월이다. 땅과 비, 그리고 해와 달이 빚어낸 기적들이 가야산 기슭에도 일어났다. 진달래와 철쭉이 겨우내 품었던 향기를 일시에 발산하고 있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꽃이 피었으니 봄이다! 오늘은 특별한 스님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 날이다. 인연 닿는 비구니 스님들께 부탁드렸었다. 선교를 통해 내외가 명철하신 스님 한 분 귀띔해 주십사 하고. 한 분을 추천 받았고 수소문 끝
진달래가 떨군 꽃잎 서너 장이 가야천 물길 따라 내려오고 있다. 저 꽃잎 흘러 온 길 따라 오르면 가을 단풍을 그대로 담고 흘러 물마저 붉게 변한다는 홍류동 계곡이다. 가야천과 홍류동 계곡이 이어져 생성된 길, 마을과 산사의 인연이 닿은 길 ‘소리길’이다. 우주 만물이 소통하고, 자연이 교감하며 내는 생명의 소리를 들려주는 길이다.가야천·홍류동 계곡 이어지고마을과 산사 인연 닿은 소리길만물 소통·생명의 소리 들려줘치인리는 최치원 이름 딴 지명그의 책에 해인사 창건기 전해일주문 지나 사천왕문 향한 길망상·탐욕 한조각 허용 않는 곳이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며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794년 7월30일. 신라서 구화산으로 건너가 중국 땅에 지장신앙의 뿌리를 내린 김지장(696~794) 스님은 “열반한 뒤 육신을 다비하지 말고 3년이 지난 뒤 열어보아 썩지 않았으면 그대로 개금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가부좌 한 채 열반에 들었다. 그날, 구화산이 울었다. 산천이 진동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돌무더기가 쏟아져 내렸고, 범종을 쳤지만 종은 제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땅으로 떨어졌다. 범상치 않은 시적(示寂)임을 무정(無情)도 직감했음이라!신라 권력투쟁 지켜본 왕자 수충스스로 지장
수줍게 피었을 선운사 ‘봄 동백’과의 만남은 잠시 미뤄둔 채, 지난 밤 내내 달빛 머금은 오솔길 걷는다. 선운사 유명세 따라 선운산이 됐지만 이 불산의 원래 이름은 도솔산(兜率山)이었다. 미륵보살이 상주하는 내원(內院)과 천인들이 노니는 외원(外院)으로 짜여진 도솔천이니, 내원궁으로 향하는 이 산길 홀로 걷고 있으나 실은 천인들과 함께 걷고 있는 것이리라.도솔암 옆 절벽에 새겨진 마애불은 여명의 빛살을 받으며 황금색으로 나투고 있다. 새침해 보이는 미륵불이신데 어찌 보면 퉁명스러워 보여 달래주고 싶다. 정감 넘치는 마애불이었으니 이
‘종남산송광사(終南山松廣寺)’ 편액이 고색창연한 빛을 발하고 있다. 최명희 소설 ‘혼불’을 접한 독자라면 천왕문이 설레게 다가올 것이다. 작품 속 도환이 이 절의 천왕문을 우리나라 최고의 천왕문으로 묘사했지 않은가.팔도도총섭 맡아서 승군 지휘임란·병란 후 후학양성 매진한벽암각성 문도 중창한 송광사절 연못 길 따라서 가면 종남산그 산을 넘으면 서방정토로 가는 이정표 ‘서방산’ 있고, 산 아래가진묵대사 출가한 사찰 봉서사“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소승이 보기에는 완주 송광사 사천왕이, 흙으로 빚은 조선 사천왕 가운데 가장 빼어난 조형
1919년 3월 1일. 그날, 거룩한 함성이 일었다.“대한독립 만세!” 2016년 3월 1일. 진관사가 자리한 서울 은평구 중심 도로엔 현재의 태극기와 다른 형태의 빛바랜 태극기가 함께 내걸렸다. 3·1운동 당시 한반도 땅을 뒤덮었던 그 태극기다. 97년 전 그 날의 함성에 더 귀 기울여 보라는 듯 하늘은 눈을 내려 이 땅을 설원으로 바꿔 놓았다.젊은이들에게 독립 필요성 설파정재 모아 상해임시정부 지원한초월 스님 주석했던 서울 진관사2009년 칠성각 해체·복원하면서3·1운동때 사용했던 태극기 발견원효대사 창건한 사찰 삼천사도서울과
신라 헌강왕(신라 49대. 875년 즉위) 재위 당시 신라는 번영의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선율에 얹어진 태평가가 밤낮으로 흐르는 경주 땅을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 이렇게 적었다. ‘경주서 인근 바다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장이 맞닿아 있었고 초가(草家)는 하나도 없었다. 생황소리와 노래 소리도 도로서 끊이지 않았다.’신라 헌강왕이 용 위해 지은 망해사어부 무사귀환 기원 아낙 마음 대변영취산과 문수산 가는 이정표 역할청량산 자락 영취산에는 1400년 전초암 짓고 살던 낭지스님 기록 전해자장 창건한 문수사는 문수산서 기인신
총 길이 36m, 계단 127개, 경사 51도. 대둔산 삼선계단 앞에 섰다. 얼핏 올려 보았음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아찔하다. 발 끝 하나 헛디디고 앞으로 고꾸라지거나 뒤로 휘청거리면 100m 절벽 아래로 추락이다. 철제 난간을 ‘콱’ 움켜잡았다. 이 계단을 건너 이 산의 정상 봉우리 마천대를 넘어야만 태고사에 닿으니 기필코 올라야 한다.원효가 ‘도인 출현’ 예언하고덩실덩실 춤추었던 태고사엔안온·호쾌함이 절묘히 깃들어경허의 세 달 중 하나인 수월그 손자 도천이 선지식 나기를바라며 50년 간 두문불출 가꾼잣나무 숲이 수행
슈우욱!설산의 찬 공기 가르는 소리가 시리게 들려온다. 숨죽인 채 귀 세워보니 끊김 없이 연이어 나는 소리다. 산짐승의 울부짖음? 아니다. 인시에 접어든 지금 깨어 있을 짐승 없지 않겠나. 지금 이 산길 걷는 이 오직 한 사람뿐일 터! 소리의 정체를 모르니 공포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조심스럽게 몇 걸음 더 내딛는다. 슈우욱! 슈우욱! 명징하게 울려오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폭포다!‘삼족오’는 고구려 문화 코드이 사실 잘 아는 아도화상이해질 무렵 날아든 까마귀 보며명산 예언하고 지은 ‘금오산’선조들이 숭상했던 길조를고려말 이
“단아한 천관산 보탑위용의 계룡산 보탑두 탑 중 아소카 탑은?”갑사(甲寺)! 천간 첫 째가 ‘갑’이니 세상서 으뜸가는 절이다. 국보 1점에 보물5점, 그리고 도지정 유형문화재 8점도 소장하고 있으니 문화재 보유 측면서도 ‘최고의 절’답다. 갑사 하면 철당간 지주와 동종을 떠올리는데 실은 더 멋진 보물이 있다. 그 하나가 삼신불괘불탱화(국보 298호). 효종 원년(1650년)에 조성된 이 탱화 길이는 12.47m고 폭은 9.48m다. 초대형 괘불이기에 걸기도 녹록치 않아 갑사도 대웅전에 모셔만 둘 뿐 이다. 아주 간혹, 개산대재나 사
“나라 잃은 애환 유독 짙게 배인 산원통함은 설산에 묻어라새 전설 써야할 우리다” 동학사 일주문부터 꽤 서둘러 걸음 했는데도 오뉘탑까지 400m나 남았다. 달 하나, 별 몇 개 나뭇가지 사이로 확연히 보이니 아직 시간은 좀 남았다. 돌계단에 앉아 차오른 숨 크게 한 번 고른다. 삼불봉 아래 상원암 옆 오뉘탑! 달빛 받으면 눈물 흘릴 정도로 아름답다는 말 익히 들었지. 그럼, 한 겨울 동녘서 피어오른 붉은 빛살 내려앉은 풍광은 어떨까! 설렘 가득 안고 서둘러 길을 떠났었다.어슴새벽 속 오라비탑(7층 석탑)과 누이탑(5층 석탑)은 요
'북금강 남설악' 들었다 해금강 너머로 툭 던질선기 가득한 절로 초대'숲은 제 스스로 거둔다!'설산(雪山)에 걸린 시린 달 벗 삼아 푸른 길 걷는다. 새벽 공기 차지만 피는 뜨겁다. 아니, 쿵쾅거린다. 금강산 가는 길 아닌가.변산반도 의상봉 동편 절벽에 걸린 암자(불사의방)서 수도하던 진표 율사. 지장보살로부터 정계(淨戒) 받은 직후 금산사와 법주사 창건하고는 금강산에 이르러 동쪽에 발연사, 서쪽에 장안사, 그리고 남쪽 신선봉 아래 지금의 화암사(禾巖寺)를 세웠다. 신선봉은 금강산 1만2천봉 중 제1봉. 지금은 설악산 북주
“그 어디 솜씨 좋은 장인 없으신가? 작은 불감에영산암 조각해 주면보고 싶을 때 꺼내 볼 터인데! ”“시작도 끝도 없어라. 나지도 죽지도 않는 이 한 물건! 마음 달이 물 밑에서 차오를 때, 나의 주인공은 어디로 가는가? 강남에서 온 제비야 고향 길은 어디로 나 있더냐. 네가 물어간 볍씨 한 알에 황금빛 수선화는 입을 열더냐?”청년 시절,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닿을 곳이었으나 남겨 두었다. 20대 푸른 감성이 그려낸 풍경 혹 아닐까봐, 하늘이 허락하면 백년, 천년 머물고 싶은 집인데, 당장 달려가 보고
“천관산 돌돛단배하늘서 새긴 경전대장봉에 내려놓고은빛바다 가르며 항해 중”하늘을 바다 삼아 항해하던 관세음보살 천관산에 이르러 잠시 쉬었더랬다. 바다에 발목 담근 채 다도해 풍광에 젖어들다 작은 섬 하나 끌어와 베개 삼고는 와선에 들었겠지. 배에 가득 실려 있었던 건 불경(佛經). 하늘서 새긴 경전 지상 어딘가에 내려놓으려 했던 것인지, 땅서 새긴 경전 하늘로 이운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산과 바다, 그리고 섬이 그려낸 한 폭의 그림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관세음보살은 배와 경전을 이 산에 놔둔 채 승천했다. 그 배 한 척 보려
천관보살이 법을 펴고 있는 장흥 천관산에 가을빛이 들자 연대봉서 환희대로 이어지는 1.2㎞의 억새길이 은빛 바다로 변했다. 억새군락지는 130만 평방미터에 걸쳐 펼쳐져 있다. 관세음보살이 불경을 싣고 와 쉬다가 돛대를 놓고 승천했다는 진죽봉이 저 멀리(왼쪽 봉오리) 보인다.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1318호 / 2015년 1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조주는 차 마셨고운문은 떡 먹었다.태고가 삼킨 건 ‘맛없는 음식’”한양(서울) 북쪽에 있는 큰 산 북한산(北漢山).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가 이 산을 상징하는데, 세 봉우리가 뿔처럼 툭 올라섰다 해서 고려 사람들은 삼각산(三角山)이라 했다. 저 바다 건너 유럽 알프스 산맥에도 뿔 달린 큰 산 하나있다. ‘알프스 초원의 뿔’ 마터호른(Matterhorn). 사진만 보아도 설산이 뿜어내는 장엄미가 느껴진다. 그러나 뿔은 하나다. 북한산은 멋진 뿔을 세 개나 달고 있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 따라 제 모습 달리해가며 서울을
“그립고 사랑하는그 모든 게 님이라면설악의 님은 사리탑” 절정을 향해 치닫는 10월의 단풍이 내설악 백담계곡을 붉게 감싸고 있다. 설악이 내준 어느 길로 들어서도 단풍나무숲으로 향하나, 오늘은 구곡담으로 난 길을 따라 봉점암(鳳頂庵)에 오르려 한다. 해발고도 1244m에 자리한 암자.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20여개의 암봉이 연이어 성처럼 길게 둘러쳐있다 해서 이름 붙여진 용아장성(龍牙長城)은 설악산에서 가장 험한 능선으로 손꼽힌다. 산 사람들 말에 따르면 “봉정암은 그 이빨의 잇몸쯤에 자리 잡고 있다” 한다. 가는 길 녹록치 않겠
설악산이 가을에 물들었다. 티 없이 맑은 하늘, 살랑 부는 바람에 산들이 울긋불긋 마음껏 들떴다. 가을의 꽃단장에 취한 사람들이 설악산을 찾았다. 힘겹게 오른 산 끝자락에서 부처님을 만났다. 봉정암 사리탑에 머리 숙이니, 가을향기에 취한 신심이 가슴 가득 메어온다. 설악산=채문기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1314호 / 2015년 10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