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청장 김찬)이 기독교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등회를 중요무형문화재로 공식 지정했다. 문화재청 무형분과위원회(위원장 임돈희)는 3월30일 오후 서울 고궁박물관에서 분과회의를 열고 지난 2월9일 지정 예고했던 연등회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연등회는 우리나라 대표적 전통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됐을 뿐 아니라 그 동안 연등회를 둘러싸고 진행됐던 논란도 사실상 마무리 됐다. 무형분과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연등회가 지난 1월27일 회의를 거쳐 2월9일 지정 예고된 이후 접수된 이의제기와 관련해 논의를 진행했지만 “연등회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데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9일 문화재청이 연등회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최근 일부 개신교 측이 “연등회의 문화재지정예고와 전사법 개정이 특정종교에 대한 특혜”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광식)가 보도자료를 내고 이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문광부는 2월10일 국민일보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과 ‘공공정책 포럼’ 등의 주장을 인용한 10일자 보도와 관련해 해명 보도자료를 내고 “전사법 개정과 연등회의 문화재 지정예고 등은 특정종교에 대한 특혜가 아니다”며 “헌법 정신에 따른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 목적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광부는 보도자료에서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의결된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개정안(전사법)은 민족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전통사찰을 보존․지원함으로써 민족 문화 향상
▲연등회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예고 됐다. 이에 따라 연등회는 우리나라 대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불교의식·공예기술 등 무형유산 체계적 관리 위해 제도 보완해야” 문화재청 무형분과위원회(위원장 임돈희)가 1월27일 연등회에 대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예고를 결정함에 따라 통일신라시대 이후 1000년 이상 지속돼 온 연등회는 그 전통과 역사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특히 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은 단순히 불교행사를 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으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보전과 전승이 가능하게 됐다. 또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속에 깊이 자리매김해 오고 있음에도 그 동안 소외됐던 불
자비참법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서 널리 행해졌다. ‘고려사’에 예종(睿宗)이 원년(1106)에 친히 문덕전에서 자비참도량을 설치한 기록이 있다. ‘자비도량참법’이 고려대장경 보유부(補遺部)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니 늦어도 12세기 이전에는 전해졌고 고려 중기와 후기에는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몇몇 고승들은 자비참에 대한 바른 해석과 수행을 도모하고 더 나아가 고려 말의 분위기에서 이의 바른 수행을 통해 사회 풍조를 개혁하고 교세를 다시 진작하기 위하여 이에 대한 주석을 행하였다. 조구(祖丘: ?~1395)가 편찬한 ‘자비도량참법집해(慈悲道場懺法集解)’를 보면, 미수(彌授: 1240~1327)의 ‘자비도량참법술해(慈悲道場懺法述解)’에 관한 내용이 100여 곳 이상에서 인용되고 있다. 법상종의 승려로서 당대
민족 수난기에 기록된역사와 희망의 서사시 나라 스승 일연 스님이집념과 정진으로 완성 ▲인생은 역사적이면서도 신화적이고, 종교적이면서도 세속적이다. 우리들 인생은 때때로 꿈꿀 필요가 있고, 현실과 세속을 초월할 필요가 있다. ‘삼국유사’는 우리를 꿈꾸게 하고 초월로 이끈다. 사진은 ‘삼국유사’가 집필된 경북 군위군 인각사. 법보신문 자료사진. 읽고 또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는 책이 있다. ‘삼국유사’가 그런 책이다. 재미있다고 그 내용을 다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삼국유사’는 쉬운 듯 하지만 사실은 어렵다. 전문 학자들이 오랜 세월 연구해 오지만, 그 비밀이 다 풀린 것도 아니고 역사적 사실을 다 밝힌
▲조영록 교수 ▲동아시아 불교교류사 연구 젊다는 것이 꼭 나이를 일컫는 말은 아니다. 역사학을 전공한 조영록 동국대 명예교수가 그렇다. 올해 76세, 대학 강단에서 물러난 지도 이미 10년이 넘었다. 허나 학문에 대한 열정에 있어서는 어떤 젊은 학자 못지않다. 조 교수는 퇴임 후에도 중국과 일본의 불교유적을 수시로 답사하거나 관련 전문가들을 방문했다. 또 기본적인 문헌 이외에도 지방 사료들까지 꼼꼼히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거나 기존 학설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조 교수가 최근 펴낸 ‘동아시아 불교교류사 연구’(동국대출판부)는 그렇게 지난 10년간 쏟아 부었던 열정과
고려시대 최대의 불교문화의식인 ‘팔관회’가 부산시내에서 재현된다. 부산광역시불교연합회(회장 정여 스님)는 11월6일 오후 2시 부산어린이대공원 정문에서 부산학생교육문화회관 광장으로 이어지는 구간에서 팔관회 행진 및 의식을 봉행한다. 행진에 이어 오후 2시 30분에는 행진 종착지인 부산학생교육문화회관 광장에서 팔관재계 수계법회를 봉행해 불자와 시민들에게 팔관회 의식의 문화적인 전통과 가치를 알린다. 팔관회 의식은 ‘고려사절요’ 등 고려시대 문헌에 기록돼 있는 자료들을 취합한 근거를 바탕으로 옛 의식 그대로 진행된다. 취타대가 선두를 맡고 그 뒤를 대신들과 각 나라의 사신, 기수, 장군, 병사 등 고려의 사부대중 200여명이 따른다. 행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왕은 허남식 부산시장이, 왕비는 부인 이미자씨
동다송은 한국 대표 茶書실증적 체험 담아서 저술 경화사족의 차 애호 촉발다양한 다서 출현 계기돼 초의 스님의 ‘동다송’은 한국의 대표적인 다서(茶書)로 손꼽힌다. 이는 우리나라의 차가 이미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다고는 하지만 정작 차의 역사, 문화 전반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동다송’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물론 한국의 차에 대한 정보는 ‘동다송’ 이외에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고려사’,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 ‘조선왕조실록’ 등과 같은 역사서와 문인이나 승려들이 남긴 시문을 통해 시대마다 사람들이 차를 이해했던 편린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차의 전모를 살펴보기에는 자료의 제한성과 한계점을 극복하기 어렵다. 이러한 사료의 부족은 한국 차문화를 다층적으로 이해
‘보조국사 생애…’ 출간법산 스님 등 7명 집필삶과 사상 다각적 조명보조사상 대중화 기폭제 ▲'보조국사의 생애와 사상' 한국선을 정립한 조계종 중흥조이자 영원한 수행자의 사표로 일컬어지는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스님에 대한 첫 평전이 출간됐다. ‘보조국사 열반 800주년 기념사업회’는 최근 문화관광부, 순천시, 대한불교진흥원 등 지원을 받아 ‘보조국사의 생애와 사상’을 펴냈다. 보조지눌 스님은 선사상과 교학을 회통한 정혜결사의 실천불교운동으로 고려사회에 새로운 수행체계를 실현한 고승이다. 지눌 스님은 ‘육조단경’에서 조계혜능의 정혜쌍수의 전통선지를 깨닫고, ‘화엄경’에서 선교일치의 원돈사상을 깨달았으며, ‘대혜어
문화재청 무형문화재분과위원회가 지난 7월8일 회의를 열어 연등회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보류했다. 이에 대해 학계와 교계에서는 문화재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다. 특히 일부 문화재위원이 “제등행렬에서 일제의 잔재가 보인다”는 등 연등회의 전통성과 역사성을 문제 삼았던 것으로 드러나 교계와 학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본지는 연등회가 지니는 의미와 문화재적 가치 등을 점검하는 특별대담을 진행했다. 대담은 8월24일 본지 김형규 편집부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조계종 문화부장 진명 스님과 한국민속학회장을 역임한 전남대 국어교육과 나경수 교수가 참석했다. 편집자 문화재위원회 보류 결정 겸허한 수용이 종단의 뜻 무형문화, 시대따라 변화 원형만 고집하는건
현대 연등회, 변질됐다는 주장문화의 특수성 이해 못한 해석 형태나 모양 조금 달라졌다고연등회 전통성 부정해선 안돼 문화재청이 ‘역사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연등회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보류한 것과 관련해 학계에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특히 연등회가 부처님께 연등공양을 올리는 불교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연등회의 지정보류는 자칫 불교전통문화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각도 있다.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장 미등 스님에 따르면 불교에서 연등은 어둠을 밝혀주는 지혜에 비유돼 연등공양을 중요시 여겼다. 특히 ‘대지도론’을 비롯해 ‘보살본행경’ ‘잡보장경’ 등 수많은 경전에서 연등공양의 의미에
중요무형문화재 지정기준은 전통·예술·학술성 포함여부 통일신라 이후 전승된 연등회 춤·음악 등 내포된 종합예술 연등회가 1000년 이상 지속돼 온 전통문화로서 충분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부 문화재위원들이 지나치게 형식적인 원형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복합돼 있는 연등회를 원형을 중시하는 유형문화재와 동등한 기준으로 심사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실제 지난 7월 문화재청 무형문화재분과위원회는 “연등회에 사용되는 ‘등제작’과 관련해 뚜렷한 역사적 계보를 확인할 수 없고, 현재 진행되는 제등행렬이 일제시대의 것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지정을 보류했다. 그러나 교계와 학계에서는 “연등회는 천
▲정우 스님은 7월18~19일 부다가야가 위치한 비하르주 수상 니띠쉬 꾸마르와 인도주재 김중근 대사를 차례로 면담하고 고려사 문제해결을 위한 협조를 당부했다. 통도사 전 주지 정우 스님이 부처님 성도성지 인도 보드가야에 위치한 통도사 해외포교당 고려사 정상화를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정우 스님은 7월18~19일 부다가야가 위치한 비하르주 수상 니띠쉬 꾸마르와 인도주재 김중근 대사를 차례로 면담하고 고려사 문제해결을 위한 협조를 당부했다. 이와 함께 부다가야 고려사와 바라나시 녹야원, 마날리 설산사 등을 관리하는 현지법인 ‘한국불교회’의 이사진을 정비하고, 이사회를 통해 3개 사찰 모두 통도사 공찰로 등록키로 결
삼국사기·고려사 등 문헌에 연등회 전통 고스란히 남아 불교·토속문화 결합되면서 독창적 민간 축제로 발돋움 연등회가 1000년 이상 지속된 불교행사이면서 민중축제로 존재해 왔다는 것은 이미 숱한 문헌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특히 통일신라시대 중국을 통해 수용된 연등회가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우리나라의 전통 민속의례와 융합되면서 독창적 전통문화로 발전해 왔다는 것은 학계의 보편적인 견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문왕(?~875) 6년 봄 정월15일에 임금이 황룡사를 찾아 연등을 관람하고 그 자리에서 백관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으며 진성여왕(?~897)도 황룡사에서 연등을 관람했다. 이는 이미 통일신라시대부터 연등회가 널리 성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료다. 연등회가 고려시대에
▲ 오대산, 아미산, 구화산과 더불어 중국 불교 4대 성지로 불리는 보타산에서 가장 큰 절 보제선사 앞엔 관음보살이 방생하던 호수 해인지가 있다. 연꽃으로 둘러싸여 연화지로도 불린다. 천태 지의 대사의 가르침과 숨결이 흐르는 천태산을 떠나 버스로 4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영파(닝보)시.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해상 실크로드의 역사를 복원하고 있는 곳이다. 영파는 고대로부터 국제적인 무역항으로 이름이 높았고, 7∼8세기경부터 중국 동남해안에서 가장 번성한 무역항이었기에 신라인은 물론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북적대던 항구도시였다. 이 도시가 동북아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지가 되기까지는 9세기 초 이곳을 해상기지
▲의천, 그의 생애와 사상 대각국사 의천(1055~1101) 스님은 한국불교사에 있어 일찍부터 주목돼 온 인물이다. 그런 만큼 관련 논저도 수백 편에 이르며, 개개의 연구로 다뤄진 분야는 의천 스님의 정치․사회적 활동과 사상 편력만큼이나 다양하다. 특히 의천 스님의 화엄사상이나 천태종의 개창, 교장의 간행 등에 있어 상당한 연구업적이 축적됐다. 그럼에도 의천 스님의 불교사상이나 교학 연구에 있어서는 미흡했던 것도 사실이다. 스님의 저술이 오늘날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박용진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의 ‘의천, 그의 생애와 사상’(혜안)은 ‘대각국사문집’을 기본으로 ‘교장총록’ ‘원종문류’ ‘석원사림’ 등 분석에 기초해 의천 스
▲ 천태종 총무원과 원각불교사상연구원이 6월4일 서울 관문사에서 개최한 천태불교학술대회. 염불은 삼국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가장 대중적인 수행법이다. 그러나 염불은 그 대중성과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총림에서조차 홀대 받을 정도로 위상이 낮은 실정이다. 천태종 총무원(원장 정산 스님)과 원각불교사상연구원(원장 권기종)이 6월4일 서울 관문사에서 개최한 천태불교학술대회는 염불신앙의 역사와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자리였다. 염불은 부처님의 광대원만한 자비를 인식해 마음의 평화를 찾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길이며, 지극한 신심으로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닮아가는 수행법임을 재확인 했다.
▲1011년 판각된 초조대장경. 사진은 국보 276호인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 올해 초조대장경 판각 1000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그 동안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초조대장경 각판 발원 장소와 발원 날짜가 처음 규명됐다. 김성수(56) 청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문헌정보학회지’ 제45권에 투고한 논문에서 “초조대장경 각판 발원장소는 청주행궁이며, 그 발원일자는 1011년(현종 2) 음력 2월15일”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초조대장경이 1011년이라는 근거는 이규보가 1237년 고종을 대신해 작성한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에서 ‘현종 2년(1011년)에 침략한 거란의 군대가 물러가
보조 스님 정혜결사는권력 유착된 승단자정탈권력·탈정치화 통해승단 자주·자립화 추구 ▲조계종이 최근 자성과 쇄신을 통한 5대 결사로 구태에서 벗어나 대중과 함께하는 불교의 모습을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사진은 2007년 10월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아 봉행한 기념법회.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우리 불교역사에서 초유(初有)의 사태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나라 불교를 실질적으로 대표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이 종단차원에서 ‘결사(結社)’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내가 결사에 대하여 최초로 논문을 쓴 것이 1991년의 일이다. ‘정혜결사의 윤리적 성격과 그 실천’(‘한국불교학’ 제16집)이라는 논문이었는
인도 보드가야에 위치한 통도사 직할 해외포교당 고려사 주지 원공 스님이 사찰토지 상당부분을 매각한 채 잠적했다고 한다. 원공 스님은 현지법인 이사들의 서명을 위조하는가 하면 사찰 땅 매각 후 대금과 불사금 마저도 모두 횡령했다. 도량을 책임져야 할 주지가 불사금을 횡령하고 사찰 땅 마저도 팔아 넘겼다는 사실 앞에 아연실색해 질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모든 땅이 넘어가기 전에 통도사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이에 대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총무원 호법부에 사건의 사실관계에 대한 진정을 내는 것은 물론, 인도 대사관과 인도 경찰청 등 관계 기관에도 진정서를 접수해 더 이상의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치했다.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번 사찰 땅 매각이 불법으로 이뤄진 만큼 토지회수도 가능하리라 본다. 그러나 계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