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잘 쇠셨습니까? 오늘은 새 해, 새 달, 새 날입니다. 설을 쇤다는 것은 새로운 마음가짐과 자세로 새로운 법문을 듣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문은 누가 하고 법문을 듣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것을 잘 알면 새 것의 의미 또한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 모두는 ‘올해에는 반드시’로 시작되는 첫 생각, 계획들을 했을 것입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바라는 바이니, 한 가지도 같지는 않겠지요. 이러니 이것을 듣고 계신 부처님이 원하는 것들을 다 들어줘야 될 텐데 걱정입니다. 천수천안이 아니라 만수만안도 부족할 테지요. 그러나 여러분들의 바람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과거와는 다른 더 좋은 환경의 변화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포교원에서 주관하는 포교·신도단체임원대회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먼 곳까지 오시느라 다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이번 임원대회를 위해 우리가 모인 양양 낙산사는 의상 스님께서 창건하신 유서 깊은 곳입니다. 또 동해바다는 새벽을 뜻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올 해에는 희망찬 포교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곳으로 대회 장소를 잡았습니다. 마음-몸짓 하나 하나가 포교 포교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각 단체 여러분들에게 오늘은 포교에 대한 얘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포교라는 것은 마음 하나하나, 또는 몸짓 하나하나가 다 포교입니다. 포교가 따로 있겠습니까? 불자라면 스님이든 재가자든 간에, 일반인들에게는 특별한 그 무엇이 있는
인연따라 생기고인연따라 사라지니세상엔 고정불변한영원한 실체는 없다 허공은 허공일 뿐어둠이 오면 어둡고밝음이 오면 밝아진다자성자리도 그러하다 오늘 법문의 주제는 ‘법을 바로 보는 안목을 가지자’입니다. 여러분, 법을 바로 보는 지혜가 무엇일까요. 법을 바로 보는 안목을 부처님 말씀에서 찾는다면 정견(正見)이 될 것입니다. 바로 본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깁니다. 무엇을 바로 봐야 할까요. 바로 보는 그 의지처는 또 어디일까요. 부처님은 삼라만상, 일체현상이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변해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상(無常)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하지 못하다는 뜻이지요. 제법(諸法)은 연생연멸(緣生緣滅)이라. 인연 따라 생기고 인연 따라 사라집니다. 이처럼 인연 따라 생기고 멸하기
오늘은 성도재일입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정각을 이뤄 부처님이 되신 날입니다. 이런 뜻 깊은 날 부처님의 전생에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그 치열한 수행 과정을 되새겨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과거 부처님은 도솔천의 내원궁에 선혜 행자라는 수행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선혜 행자는 한 마을을 지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마을은 여느 마을과 같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거리로 나와 큰길을 청소하고 각종 공양물을 손에 받쳐 들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선혜 행자가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사람들이 이처럼 분주합니까.”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연등불을 뵙기 위해서입니다. 연등불이 오늘 마을을 지나가거든요.” 이 말을 들
복은 화살이요지혜는 허공이라화살에 집착하니허공을 알지 못한다 삼세가 일념이고일념이 삼세인걸지혜없어 못깨달으니무상함에 집착하네 오늘 법문은『금강경』제 24장의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편입니다. ‘복과 지혜는 비교할 수 없다’ 이런 말이지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있는 모든 수미산과 같은, 그렇게 많은 칠보(七寶)를 다른 이에게 보시하고, 또 어떤 사람은 반야바라밀경의 네 글귀로 된 한 게송만이라도 잘 지켜 간직하고 독송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 들려주는 이가 있다면, 어떤 것이 더 큰 공덕이겠는가. 수미산 같은 엄청난 보물을 보시해도 결국은 금강경의 한 구절 게송을 지니는 공덕에는 전혀 미치지 못할 것이니라.”자! 여러분 여기 복(福)
계율을 잘 지켜도지혜가 부족하면몸에 다리만 있고눈 없는 사람과 같아 부처님 가르침 믿고십이연기를 통해원인과 결과 이해하면인생 깊이가 달라져 올바른 말을 하지 않으면 좋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너무 심한 말, 독한 말은 좋은 말이 아니며 뜻이 없는 말도 좋은 말이 아닙니다. 또 가십 역시 좋은 말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는 말, 서로 화합하는 말이 올바른 말입니다. 그리고 부드럽고 따뜻한 말, 본질이 있는 말, 이득이 있는 말이 좋은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불법을 통해 하는 말이 가장 좋은 말입니다. 따라서 가장 좋은 말은 4성제에 관한 말이고, 올바른 말은 8정도에 속해 있습니다. 어느 민족, 어느 나라에서든 좋은 일에 관한 말과 좋은 진리를 말하는 시간이 가장 좋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모든 축복
마을에서는 대선 정국이라고 해서 온통 관심이 그쪽으로 집중되어 있는데 잠시라도 불심을 다지는 시간을 갖겠다고 이 자리를 찾은 여러분을 만나니 미래가 밝아 보입니다. 오늘은 ‘간화선 수행과 원력’이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교를 믿는 목적은 깨달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깨달음, 즉 지혜를 완성시킬 수 있는 가치관을 어떻게 열어 가느냐 하는 것이지요. 수행에 앞서 원력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원력은 공덕이 쌓여야 되고 또한 원력이 형성되어야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것인데, 부처님 가르침에 복과 공덕이 있습니다. 복은 형상을 말하고 공덕은 형상 없는 모습을 가르칩니다. 어떻게 하면 형상을 여의고 공부할 수 있는 인연을 지을까. 이것을 부처님 가르침이나 조사 스님들의 가르침 속에서 찾아
오늘 하루 즐거웠습니까? 저도 즐거웠습니다. 어르신 150명을 모시고 표충사에 다녀왔습니다. 가을이라서 단풍도 좋고 경치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르신들 말씀이 단풍은 예쁘지만 늙는 것은 싫다고 합니다. 봄에 새싹이 나면 새싹도 예쁘지요. 꽃이 피면 꽃도 예쁘고. 여름에 잎이 무성하면 그것 또한 예쁩니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 더더욱 예쁜 것처럼, 어린아이는 어려서, 청년은 청년이라서, 장년은 장년이라 좋고 노인은 노인이라서 좋은 것입니다. 늙는 것이 슬프거나 후회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도 저 단풍처럼 예쁘게 늙으시길 바랍니다. 벼랑 끝에 매달린 형국 오늘날 한국불교의 주류는 대한불교조계종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선종인 동시에 대승입니다. 그리고 불교로서의 종지는 깨달음입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은 구체적으
먼저 머리 깎고 사는 스님으로서 불자들의 사표가 되고 길 안내자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아프게 해드려서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캄캄한 밤일수록 등불의 힘이 더 크다고 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서 어려울수록, 힘겨울 때일수록 더 열심히 정진하겠다는 확신을 드립니다. 『화엄경』 야마천궁게찬품(夜摩天宮偈讚品)을 보면 이 광활한 우주가 부처님의 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대하고 있는 허공도 부처님의 몸입니다. 부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죠. 광활한 우주는 부처님 몸 그리고 우리 모두의 마음 가운데 똑같은 지혜와 덕성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광활한 우주가 부처님의 몸이라는데, 또 우리 마음 가운데 부처님이 계시다는데 왜 우리는 전혀 스스로가 부처임을 모른
흙 가라앉으면 깨끗해도흔들면 흙탕물로 변하듯사람 본성 맑다 하지만탐욕에 이끌리면 탁해져 불쏘시개 계속 넣어야젖은 장작 불 타오르듯기도-염불 한 번 하면한 시간 이상 지속해야 오늘은 행복이라는 주제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행복보다도 소중한 말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부처님께서는 동서남북 사대문을 통해서 생로병사의 실상을 보시고 생로병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고민을 거듭하다 출가하셨습니다. 6년 동안의 고행 끝에 부다가야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부처님이 되신 태자는 마음이 아주 맑고 깨끗하고 그윽했습니다. 마음을 괴롭히던 번뇌 망상이 다 사라지고 파란 하늘처럼 때 묻지 않은 연꽃과 같은 마음이 된 것입니다. 거기에는 고뇌도 고통도 없습니다. 부처님은 깨닫고 나서 맑은
49일 가행정진 입재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여 함께 정진을 시작하게 된다니 마음에서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오늘 가행정진에 앞서 한 보살님의 수행이야기로 우리가 왜 수행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일명 ‘여의도 보살’이라고 불리는 보살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기도 열심히 하기로 손꼽히던 그 보살님이 한번은 제게 찾아와 마음을 다스렸다가도 집에 가서 남편 얼굴을 보면 다시 미운 마음이 일어난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3·7일 정진 통해 인연 깨달아 그래서 왜 그런가하고 이 보살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니 지난 세월동안 남편이 미운 짓을 많이 했어요. 이 보살님이 젊은 시절에 웨딩숍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돈만 벌어 놓으면 남편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예쁜 탤런트 누구누구
“10년 뒤라도 죽는 날은 ‘오늘’이 된다”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 것을 당부한 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 저는 1965년 중학교를 다니다가 출가를 했습니다. 40년이 넘었으니 이제 곧 60세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 법석이 ‘성공 릴레이 대법회’라 하니 저도 자랑 하나 하겠습니다. 20대 초반 사병 시절의 일입니다. 영장을 받고 군대를 갔는데 미치도록 절이 그리웠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살 수 없다고 하듯이 저도 절을 떠나니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법당은 없고 종교활동은 하고 싶고 해서 한 달에 한 번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래도 문제는 남아있지요. 절에서 온 스님이 ‘할렐루야’를 같이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어느 날, 절박한 심정으로 전
아주 견디기 어려운 여름이었습니다. 이러할 때 안거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수행자들은 백중날 법랍을 한살씩 더 먹게 됩니다. 자신이 법랍을 한살 더 보태도 될 만큼 착실히 수행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것입니다. 절에서는 해제 날 정식 스님이 되는 계를 받곤 했습니다. 저도 옛날 해제 날 계를 받고 부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날이 되면 그동안 중노릇을 제대로 했는지 안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겉만 번지르르 할 것이 아니라 안팎으로 제대로 수행을 했는지 안했는지, 수행자로서 제 구실을 제대로 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입니다. 예부터 처서가 지나면 삼베옷은 말려서 벗어놔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엔 그런 절기가 사라졌습니다. 우리나라의 기후도 온대에서 아열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 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 타야 훔’ 저는 이 광명진언을 54년간 한 시도 놓은 적이 없습니다. 새벽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들 때까지 24시간 광명진언을 염송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광명진언의 공덕은 참으로 크고 큽니다. 우리는 흔히 부처님께 멥쌀을 공양 올립니다. 이 쌀로 밥을 지어 먹고, 가루를 내어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또 엿의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고, 식혜를 만들어 공양하기도, 아픈 사람을 위해 죽을 쑤기도 합니다. 이렇게 쌀 한가지로 여러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광명진언 한 가지를 염송하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의 소원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진언에는 소원 이루는 힘 있어 진언이 됐건 염불이 됐건 열심히 하세요. 그 안에는 무궁무진한 부처님 법문
약인욕료지 若人欲了知삼세일체불 三世一切佛응관법계성 應觀法界性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이 게송은 화엄경의 제1 게송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 모든 것 오직 마음이 지어냄이로다’라는 뜻입니다. 신라시대의 불교를 5교 구산 선문이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에는 독창적 화엄 초조가 계시고 전통적 화엄 초조가 계십니다. 신라 원효 대사께서는 스승 없이 깨달음을 얻으셨기 때문에 독창적 화엄초조 이십니다. 스승의 계보를 이어 오신 의상 대사께서는 전통적 화엄의 종주로서 신라 문무대왕 18년에 범어사를 화엄 10찰 중 한 절로 창건하셨습니다. 범어사에서는 지장 100일 기도를 올리면서 재일마다 제방의 스님들을 초청해 법문을 듣습니다. 저도 오늘 음력 2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매우 영광입니다. 저는 현대사회에서 불교의 역할에 대해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부처님 재세시, 그리고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이 살았던 당시의 세계는 지금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자연, 그리고 자신들이 속해있는 공동체와 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에서 살았습니다. 모든 측면에서 이웃들과의 관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상호 의존적인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공동체, 그리고 자연과의 유대관계가 중요하다는 불교의 가르침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와 자비 같은 정신적인 가르침을 되새김으로써 상호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삶의 중요성을 깨우쳐야 합니다. 세계화보다 지역화에 집중 오늘날 우리가 상점에서 어떤 음식을 살 때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수연부감미부주(緣赴感靡不周) 이항처차보제좌(而恒處此菩提座) 이 말은 산승이 좋아하고 어디든지 자주 인용하는 경구입니다. 『화엄경』 속에 있는 말씀인데, 부처님은 온 누리에 충만하시다, 그래서 중생이 마음을 깨끗이 하고 모든 번뇌를 지울 때 모든 부처님이 그 자리에서 인연을 따라 나투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이 법당에만 계신다고 생각했지, 우주에 충만하다는 표현을 쉽게 이해하진 못합니다. 하지만 아는 것만큼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수행을 쌓아서 내 마음을 끝없이 넓혀야 부처님의 진리도 엿볼 수 있게 됩니다. 부처님의 경구 한 마디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옛날 설산동자 같은 이는 부처님의 경전을 한 마디 듣기 위해서
중독은 심리적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약물에 의한 것이든 반복적 습관에 의한 것이든 모두 마음에 의하여 일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물중독의 경우는 약물에 자신도 모르게 몸이 길들어짐으로써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몸과 심리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를 파악해야합니다. 그리고 길들어져 있는 몸의 결박을 풀어 버려야합니다. 그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자비손’과 ‘정념’이라는 관찰방법입니다. 이를 활용해 길들임에 속박되어 있는 몸과 마음을 깨워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약물 중독에는 비의도적인 중독과 의도적 중독이 있습니다.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모두 습관적입니다. 습관이란 자신도 모르게 길들여져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길들여진 마음이 업(業)입니다. 그러므로 업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에는 같은 점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괴로움 없이 즐겁게 살려한다는 점이 똑같습니다. 예술, 종교, 철학도 그 근본 목표는 전부 고통 없이 즐겁게 사는 데 있습니다. 불교도 이 세상은 괴로운 것이다, 어떻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나고 죽음이 없는 열반의 세계에 가느냐. 거기에 근본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려고 하면 부처님이 어떤 분이냐, 어디에 계시느냐,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흔히 타종교인들이 말하기를 불교는 우상을 숭배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모신 분이 부처님입니까. 부처님이라고 생각할 때는 부처님이 되는데 불상이라고 생각하면 불상이 됩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불상이 되기도 하고 부처님이 되기고 하고 골동품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조승희 씨 총기 사건으로 일주일 동안 미국과 한국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에서 보여준 희생자에 대한 애도 물결에 참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오늘 고백하건데 사실 저는 지난 15년 동안 “미국 사람입니까?, 한국 사람입니까?’라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피해 왔습니다. 저로서는 대답하기 난감했던 물음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여러분 앞에서 분명하게 그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대중 박수) 하안거 해제 후 지난 한 달 반 동안 유럽과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숭산 큰스님의 뜻이 깃든 선원을 방문해 불상과 목탑, 죽비 등의 법구와 불서를 전하고 현지 선원 현황과 포교 현황을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국의 지식인들과도 많은 대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