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 5년간 10억 지원박태원 울산대 교수가 연구책임불교학·국문학자 등 12명 참여‘종합해제’로 정확·가독성 제고차세대 원효 연구자들도 양성 고전 번역의 성패와 질을 결정짓는 핵심 조건인 ‘정확성’과 ‘가독성’을 최대한 살린 신개념의 원효전집 번역이 추진된다.박태원(60) 울산대 철학과 교수가 한국연구재단의 토대연구지원사업 분야에 신청한 ‘원효전집 번역과 종합해제’가 최근 선정됨에 따라 매년 2억원씩 5년간 총 10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원효전집 번역과 종합해제’는 원효의 모든 저서에 대한 문헌학적·개념사적·연구사적
‘아, 원효대사는 동방의 성인인데 비석하나가 없다니….’의천, 퇴락한 분황사 찾은 뒤원효대사 업적 선양에 주력왕에게 시호 내려줄 것 건의‘대성화쟁국사’ 추봉에 일조원효대사의 흔적을 찾아 분황사를 찾은 의천(義天,1055~1101)은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미어졌다. 퇴락한 분황사에는 무성한 풀만 자라고 있었다. 의천은 대웅전에 들어가 제수를 갖추고 제문을 읽었다. 제문을 읽는 의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 의천을 진흙으로 빚은 원효대사의 소상(塑像)이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설총이 옆에서 절을 하자 그를
乙未年 夏安居 解制 法語 (법상에 오르시어 주장자를 한 번 치시고)去年貧未是貧이요今年貧始是貧이라去年貧無卓錐之地이더니今年貧錐也無이로다.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요,금년 가난이 비로소 진짜 가난이네.작년 가난은 송곳 꽂을 땅도 없더니,금년 가난은 송곳조차 없어졌구나.오늘은 을미년 하안거 해제일입니다. 대중은 각자 본분상(本分上)에서 열심히 정진하였습니다. 이제 3개월 동안 공부한 살림살이를 점검(點檢)해 볼 시간입니다. 대중은 철저히 가난해 졌습니까? 화두가 독로하여 대의단이 타파되어서 탐·진·치 삼독과 일체 번뇌 망상이 다 떨어져 나가
사랑은 주는 것이다. 상대에게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내어주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어도 더 주고 싶은 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길을 쓸어주고 물길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상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행여 상대를 위한다는 구실로 구속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온전히 나를 다 주었는데도 돌아서 가는 사람에게 서운해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라고 따져 묻지 않는 것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가서
‘아, 몹시 목이 마르구나.’황폐한 무덤 속에서 잠을 자던 원효(元曉,617~686)대사는 심한 갈증으로 잠이 깼다. 곁에서 의상(義湘,625~702)대사의 고른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당나라로 유학을 가기 위해 항구로 향하던 두 사람은 직산(?山:천안)에서 밤을 맞아 무덤 속에서 눈을 붙였다. 이번 유학행은 처음이 아니었다. 10여 년 전에도 그들은 유학을 시도했다. 그러나 고구려와 당나라의 국경인 요동에서 변방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첩자로 오인 받아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다행히 수십일 만에 간신히 빠져 나와 목숨은 건졌지만
"성철과 청담은 대승사에서 총림 구상을 했고, 모든 개혁의 지향점은 ‘부처님 당시처럼’으로 정했다. 훗날 봉암사에서의 수행 전설은 대승사에서 비롯됐음이었다. 성철과 청담은 총림을 해인사에 세우겠다고 못 박고 있다. 해인사를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법향(法鄕)으로 여겼던 것이다."청담이 성철에게 편지를 보냈다. 발신지가 상주가 아닌 문경이었다. 상주포교당에 묶여있던 거주 제한이 풀려 대승사로 옮겼으니 함께 정진하자는 내용이었다. 1944년 가을, 성철은 도리사를 떠나 문경 대승사로 옮겨갔다. 대승사 선원에는 청담 외에도 자운, 홍경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이후 90년 만에 태어나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불교사상가이자 사회지도자로 추앙받는 원효대사. 그는 불교 사상의 종합과 실천에 노력한 정토교의 선구자이며 최고의 저술가로 불린다. 많은 저술 중 ‘십문화쟁론’ ‘열반종요’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발심수행장’ 등이 지금까지 남아 후학들의 정진을 독려하고 있다.해동법사, 해동종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에는 원효보살, 원효성사로 존칭되고 ‘화쟁국사’라는 시호가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불교 최초의 깨달은 스님 원효대사는 경주 설씨와 순창 설씨의 중시조인 설총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제1회 내포문화숲길 걷기대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특히 이번 행사는 지역 자산인 ‘길’을 매개로 지역을 넘어 역사와 문화, 종교를 아우르는 축제의 장으로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사)내포문화숲길(이사장 지운 스님)은 5월30일 ‘내포가 하나로’라는 슬로건 아래 제1회 내포문화숲길 걷기 축제를 개최했다. 걷기대회는 충남도청 잔디광장에서 진행된 개막식을 시작으로 수덕사까지 약 6킬로에 달하는 거리를 걸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행사에는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과 내포문화숲길 이사장 지운 스님,
‘버릴것 하나 없는 가난한 눈빛 하나로 짧은 심지 하나 강 깊은데 박고’버거워도 살아가자야! 기가 막히다. 한 발 앞은 낭떠러지고 한 발 뒤는 절벽. 오산의 사성암은 절벽과 절벽 사이에 절묘하게 앉아 있다. 처마에 매달린 풍경처럼 허공에 매달린 암자! 그렇다고 아슬아슬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쭉쭉 뻗어 오르려는, 유유히 흐르는 구름도 단박에 움켜잡아 이리저리 흔들어 보려는 양 당찬 위용을 뿜어내고 있다. 회색과 적갈색의 막돌이 자아낸 돌담과 계단은 유럽 중세의 한 고성(古城)으로 이어진 돌길을 연상시켜 이국
"어머니는 또 가슴이 무너졌다. 소리 없이 선방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잡아당겨보았다. 역시 문이 잠겨있었다. 아들이 잠근 문을 열어 달라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돌아섰다." 어머니 강상봉이 범어사 원효암을 찾아갔다. 큰절 범어사에 들러 아들을 찾으니 원효암에서 여름 안거 중이라 일러주었다. 어머니는 몸이 약한 아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 계절이 바뀌면 약과 의복을 마련하여 성철을 찾아갔다. 그러나 성철은 어머니를 아예 만나주지 않았다. 해인사에서도 그랬고, 범어사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원효암은 금정산 중턱에 있다. 의상대사
성불(成佛)은 어떻게 성취할까. 문사수법회 경전학당이 개원 10주년을 맞아 달마대사부터 원효 스님까지의 성불론을 공부한다.문사수 경전학당은 3월부터 중앙전법원과 대전전법원에서 ‘성불, 어떻게 성취하는가’를 주제로 강좌를 개강한다. 본 강좌를 통해 달마대사부터 원효대사까지 강조했던 성불론을 공부하며 이를 관통하는 핵심을 짚어 성불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돕는다.이번 강좌는 1988년부터 문사수법회를 이끌어온 대표법사인 여여 김태영 법사가 강단에 선다. 여여법사는 동국대에서 전공한 불교학 등 탄탄한 교학적 기반 위에 수십년 실참수행 경
왕복무제(往復無際)나 동정일원(動靜一源)이라. 함중묘이유여(含衆妙而有餘)로되 초언사이형출자(超言思而逈出者)는 기유법계여(其唯法界歟)이로다. 가고 옴이 짬이 없으나, 움직임과 고요함은 한 근원이라. 온갖 미묘함을 함유하고도 여유가 있고 말과 생각을 초월하여 멀리 벗어난 것은 오직 법계뿐이로다.물질문명 노예된 현대인탐욕 내리는 연습 필요해불법대로 수행하지 않으면진정한 행복 얻을 수 없어배움에서 반수 이상 실천해열심히 공덕짓는 불자되길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릴 주제는 ‘화엄경’ 법문에 들어가기 전 ‘현담’ 설법이라는 부분입니다. 현
하늘 물고기가 내려와 노니는 샘 금정(金井)을 품은 산. 그 한 자락에 의상 스님은 범어사(梵漁寺)를 창건했고, 원효대사는 원효암과 미륵암을 지었다. 원효암을 정면에서 바라보며 왼쪽엔 원효대, 오른쪽엔 의상대가 있으니 마주보는 모양새다. 암자 하나 사이에 두고 법향 나누며 정진해가는 두 선지식, 상상만 해도 법열이 밀려온다.도통해 ‘구름타고 세상 구경’동산스님 은사로 범어사 출가잠 오면 빗자루 들고 도량청소원효암 주석 40여년 ‘장좌불와’칭찬비난에 희비 엇갈리는 건상대 말에 내 감정 끌려간 것기왓장 깨지는 소리에 ‘몰록’오도 일화에
우리 역사에서 불교소설은 조선시대 소설이 생겨나면서 함께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대표적 작품으로 김만중의 ‘구운몽’이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김만중의 ‘구운몽’ 이전에 이미 불교소설의 기운이 싹텄고 그 가운데는 작자가 밝혀진 부분도 있어 불교소설의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사재동 교수는 15세기 국문불서에 수록된 ‘안락국태자전’ ‘목련전’ ‘왕랑반혼전’ 등을 소설로 규정했고 국문학자들 역시 여기에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불교소설의 태동기 역시 15세기로 보고 있는 것이다.일제강점기서 현대까지중요 불교소설들이 지닌대승
경주 골굴사 주지 적운 스님이 맨발로 무대에 섰다. 정적이 흘렀다. 호흡을 가다듬은 스님은 느리지만 분명하게 기본 동작을 이어나갔다. 자유자재하게 손발을 움직이며 이완과 집중을 반복하던 스님은 순간적인 큰 호흡으로 공중에 몸을 띄웠다. 객석에서는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5분간의 짧은 시연은 강렬했다. 그것은 보이기 위한 무술이 아니라 불교 무술이라는 새로운 수행법으로 이어 온 30년 포교 역사가 동작 하나하나에 오롯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리라.범어사 양익 스님 창시한 선무도제자 적운 스님 1984년 대중화10월25~26일 포교
일본의 조동종 개산조 도겐(道元, 1200∼1253)선사가 쓴 ‘정법안장(正法眼藏)’은 세상에 나온지 70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선의 나침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정법안장 95권’ 전권을 한국어로 완역한 책은 없다. 그 연유야 확연히 알 수 없지만 95권이라는 방대함만으로도 범접하기 어려운데 ‘도겐의 선지와 사상’까지 통찰할 수 있어야만 읽어낼 수 있으니 번역을 한다는 게 그리 녹록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어머니 병을 고치기 위해초등학교 6년때 관음기도청년시절 지장기도 매진정토연구·염불의 길 걸어日유학 중
동두천 소요산은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린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화려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곱다. 소요산에는 온통 원효대사의 전설이 서려 있다. 가을 입구인 시월 첫날, 그 이야기의 진원지 자재암(주지 혜만 스님)을 찾아갔다. 가을은 산에서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 줄지어 서있는 나무들을 따라 요석공원을 지나다보니 요석공주별궁지가 나왔다. 일주문을 지나 한참을 걷다보면 왼편에 원효굴과 원효폭포가 있다. 다시 108계단을 올라 해탈문을 넘으면 원효대가 나타난다. 원효대사가 치열하게 수행했던 공간이란다. 원효대를 지나 치솟은 암벽
신라 오악(五嶽)의 하나로 국가차원에서 숭배돼온 영산 팔공산. 이곳 팔공산 남동쪽 끝자락에 아름다운 비경을 품은 불굴사(佛窟寺)가 자리하고 있다. 신라 신문왕 때 건립된 천년고찰원효대사 발심해 처음 정진한 곳영험 가득한 진신사리 모신 보궁 여인 모습한 약사불 또다른 성보불굴사는 신라 신문왕 10년(690년)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그러나 불굴사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곳이 원효대사가 발심해 처음으로 수행을 한 장소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신라 화랑들의 성지로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역시 이곳에서 수련을 했다. 전하는 바에 따
부처님의 고귀한 삶과 정신을 따라 부처님으로 살겠다고 서원한 이들이 초발심을 되새겼다. ‘붓다로살자’는 8월29~30일 지리산 실상사(주지 응묵 스님)에서 ‘2014년 워크숍’을 실시했다. 워크숍에는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도법 스님과 한국불교문화사업단장 진화 스님, 전준호 대한불교청년회장, 오종근 전북불교네트워크 공동대표 등 ‘붓다로살자’ 도반 30여명이 참석했다. ‘붓다로살자’를 서원한 지 1년 넘게 각 지역에서 활동 중인 도반들은 ‘당신이 있어 참 좋습니다’를 주제로 향후 방향과 초발심을 새기며 부처님으로 살아가기 위한
부처님의 고귀한 삶과 정신을 따라 부처님으로 살겠다고 서원한 이들이 초발심을 되새겼다. ‘붓다로살자’는 8월29~30일 지리산 실상사(주지 응묵 스님)에서 ‘2014년 워크숍’을 실시했다. 워크숍에는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도법 스님과 한국불교문화사업단장 진화 스님, 전준호 대한불교청년회장, 오종근 전북불교네트워크 공동대표 등 ‘붓다로살자’ 도반 30여명이 참석했다.‘붓다로살자’를 서원한 지 1년 넘게 각 지역에서 활동 중인 도반들은 ‘당신이 있어 참 좋습니다’를 주제로 향후 방향과 초발심을 새기며 부처님으로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