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번 하고자 하는 일은 그 누가 반대해도 하고 마는 성정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출현해서 못하게 한다면 그만두지, 그렇지 않고는 지금까지 중도에 폐한 일은 없었다. 이러한 의지로 강사와 법사와 포교사와 율사와 선사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지리산의 무쇠소’, 조계종출판사)조계종 제29대 총무원장 고산 스님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밝혔듯 평생 수행자로서 강직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 인물이었다. 옳다고 믿는 일에는 물러섬이 없었고,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여길 때는 단호히 거부했다. 1999년 총무원장 재선거를 거부하고 스
조계종(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정암사(주지 천웅 스님) 수마노탑이 국보로 승격되는데 혁혁히 기여 한 정선군청 관계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공로를 치하했다.조계종은 6월16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에서 최승준 강원도 정선군수에게 종정 공로패를, 서건희 정선군 문화관광과장에게 총무원장 공로패를 수여했다.최승준 정선군수는 군수로 재직하며 ‘희망찬 아침, 평온한 저녁, 행복한 정선’을 위해 헌신했고 특히 보물 제410호 정암사 수마노탑 국보 승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서건희 문화관광과장은 전통 문화유산 보존과 특히 수마노
나는 76세 할머니 불자다. 올봄에 설악산 봉정암에서 회향할 일이 있었다. 나는 봉정암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35년 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늙어 어렵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가서 회향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병마가 오는 바람에 법보신문에 회향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봉정암 부처님의 가피에 대해 적어본다. 봉정암에 처음 간 것은 1985년 7월 중순이다. 도반 형님들이 봉정암 순례를 제안했다. 서울 형님, 부산 형님, 여기저기서 여덟 명이 함께 봉정암에 올랐다. 산길이 험하고 힘들었다. 길을 잃어 원점으로 다시 돌아와
1. 우리나라 최초의 관현악곡으로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할 때의 가슴 벅찬 감흥을 표현한 불교음악을 무엇이라 하는가? ① 참선곡 ② 영성곡 ③ 회심곡 ④ 영산회상곡 ⑤ 월인천강지곡 2. 우리나라 9세기 초 당풍의 범패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많은 제자를 기른 스님은?① 의상 대사 ② 자장 율사 ③ 진감 선사 ④ 원광 법사 ⑤ 원측 대사 3. 우리나라 3대 성악곡으로만 짝지어진 것은? ① 범패, 판소리 ② 가곡, 찬불가 ③ 판소리, 승무 ④ 화청, 가곡 ⑤ 향가, 승무 4. 일반 백성들에게 불교를 널리 전파하려는 목적으로 우
2017년에 우리나라는 윤5월이 있었고 대만은 윤6월이 있었다. 그때 각 선방에서는 안거기간을 어떻게 하는지 의견이 분분했던 기억이 난다. 대만은 그해 4개월간 안거를 했다. 올해도 윤4월이 있다. 바이러스 재난으로 변동이 생겼지만 정상적으로 한다면 하안거 중간에 윤달이 든 경우다. 부처님 당시에도 윤달이 있었다. 다만 우리처럼 몇 년에 한 번씩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국왕이 필요할 때 윤달을 만들어 공포하였다. 그러니까 코살라국은 윤달이 있고, 사위국은 윤달이 없을 수 있다. 율장에는 안거기간 중에 윤달이 포함된 경우 어떻게
율장은 승단과 출가자의 수행과 생활 방식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가에 따라 효용가치가 드러난다. 어떤 이가 율장은 재가자의 필수과목이라고 주장한 글을 읽고 답답한 마음으로 며칠 지냈는데 한 스님으로부터 이런 주장에 대한 견해를 묻는 문자를 받았다. 부처님께서 제정한 계율의 종류와 재가불자에 대한 계율교육을 간략히 살피고, 재가자의 율장열람에 대한 상좌부불교와 북방불교의 차이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부처님께서는 출가오중(出家五衆)을 위해서 비구계, 비구니계, 식차마나육법, 사미 및 사미니 십계를
중국에 네 가지 율장이 동시에 존립하던 상황에서 율장마다 조금씩 다른 지범개차의 기준은 일상에서 계율을 실천하는데 혼란과 충돌을 일으켰다. 도선율사는 어느 율장에 의거하여 구족계를 받았는가에 따라 계체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계체이론을 근거로 수계 이후의 계행을 판단하는 기준을 결정하였다. 그는 중국의 구족계 수계가 처음부터 사분갈마법에 의해 이뤄졌으므로 ‘계행’도 사분율장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소의율장의 원칙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실제 적용함에 있어서는 사분율장만으로 일처리를 온전하게 할 수 없는 한계를 인식한 그는 일의 성취를 위
수원 봉녕사가 불기 2564년 윤달을 맞아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유주무주 일체고혼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무량공덕을 닦는 ‘화엄법회 무차천도재’를 봉행한다.봉녕사(주지 진상 스님) 화엄법회 무차천도재는 5월19일 오전 9시 입재를 시작으로 5월26일 초재, 6월2일 이재를 봉행하고 6월9일 회향한다. 입재식에는 동화사승가대학원장 용학 스님을 초청해 법문을 듣고 석좌교수 도혜 스님과 율주 적연 스님이 시식을 봉행한다. 초재와 이재에서는 도혜 스님이 법문을 통해 ‘화엄경’의 가르침과 무차천도재의 공덕을 설하고 주지 진상 스님과 율주 적연
1998년 가을, 조계종에 또 한 번 폭풍이 몰아쳤다. 월주 스님의 총무원장 3선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더니 급기야 폭력사태까지 발생했다. 3선을 반대하는 스님들이 총무원을 접수하면서 조계종은 내분으로 치달았다. 1994년 종단개혁을 선언하며 대대적인 제도혁신에 나섰지만 권력을 향한 스님들의 욕심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총무원장 자리를 두고 발생한 스님들의 ‘혈전’으로 조계종은 세간의 따가운 비판에 내몰렸다.이 소식은 고산 스님에까지 전해졌다. ‘지리산의 무쇠소’(고산 스님, 조계종출판사)에 따르면 이 무렵 고산 스님은 통영 연
경주에서 신라 예술의 최고봉이던 석굴암이 조성되고 있을 무렵, 옛 백제 땅 김제 금산사에서는 진표율사에 의한 중창이 한창이었다. 면모를 일신한 사실상의 창건이나 마찬가지인 불사였다. 이때 미륵불이 율사 앞에 나타나 미륵장육상을 조성할 것을 당부하였고, 그 자리에 연못을 지정하셨다고 한다. 익산 미륵사 역시 연못에서 나타난 미륵삼존을 보고 세워진 사찰이었다고 하니, 아마도 미륵부처님은 이런 연못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그러나 실상 연못을 메워 공사를 한다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주문이다. 고민하던 진표율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몸이 아픈 곳
영축총림 통도사가 경자년 음력 4월 윤달을 맞아 49일간 모든 생명을 위한 기도를 올리며 산중 어른 스님의 감로 법문을 청하는 생전예수재와 자장율사의 가사에 담긴 정신을 이어 대덕 스님에게 가사를 공양하는 가사불사를 봉행한다.통도사(주지 현문 스님)는 5월3일부터 6월 중순까지 ‘불기 2564년 생전예수재 및 가사불사’를 봉행한다. 생전예수재는 이날 오전 10시 입재식을 시작으로 6월20일 오전8시 회향식까지 49일간 여덟 차례의 법회를 통해 봉행된다. 또 가사불사는 같은 날 입재해 6월15일 오전10시 회향식을 갖는다.특히 올해는
상좌부불교의 팔리율은 계체를 색법으로 보기에 신업과 구업으로 행위가 밖으로 드러나야 규제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계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준수하되, 계문에서 언급하지 않으면 제한할 방법이 없다. 물론 상좌부불교에서도 법답게 수행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어떤 이들은 계문에 술을 먹지 말라는 조항은 있지만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조항은 없으므로 흡연은 규제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에서 담배나 빈랑을 사용하고 문신하기도 한다. 심지어 신도들이 스님들에게 담배를 권하기도 한다.2013년 불교평론 53호에 실린 깜맛사까 스님의 논문 ‘한국
진신사리를 봉안한 국내 유일 모전석탑 정선 정암사(주지 천웅 스님) 수마노탑이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4월17일 보도자료를 통해 “4월23일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보물 제410호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을 국보로 예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국보로 승격된 수마노탑은 강원도 정선군 구한읍 정암사 적멸보궁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 이전 모전 석탑이다. 수마노탑이라는 명칭은 불교에서 금, 은과 함께 7보석 중 하나로 꼽히는 마노(瑪瑙)와 관련이 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은 진신사리를 가지고 귀국할 때 서
당나라 도선율사는 16세에 20일 만에 ‘법화경’을 다 외웠고, 17세에 혜군화상을 은사로 삭발 출가하고, 20세에 지수율사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26세에 스승의 권유로 지수율사에게 율장을 공부한 후 선정에 관심이 많아 좌선수행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스승으로부터 ‘계행이 깨끗하면 선정이 밝아지고 지혜가 비로소 제대로 잡히는데, 이제 겨우 한 번 들었을 뿐 실행도 해보지 않고 어찌 지범(持犯)을 알겠느냐’라는 꾸지람을 듣고 지수율사에게 돌아가 총 6년 동안 율장과 주석서를 20번 열람하였다.그는 사분율 속에서 대승과 통하는 요소들
율장연구는 정밀한 작업이 필요하다. 부처님 당시 생활상을 실질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학자들의 관심을 끌 요소가 많다. 그런데 학자의 접근법이 연구 중심이라면 수행자나 불자는 실행의 측면에서 율장에 접근해야 한다. 이것은 중요한 변별점인데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자.첫째는 수행이라는 관점이다. 모든 율장의 궁극적 목적은 개인과 집단이 번뇌를 여의고 해탈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출가자가 율장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출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기초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율장은 실체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특히 작지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라도 다시 조선 독립운동을 하겠소.”1919년 3월 경성지방법원.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하겠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용성 스님(1864~1940)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한평생 불교혁신운동을 펼쳤던 용성 스님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할 지도자가 필요한 순간 흔쾌히 앞장섰고 옥살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감옥에서 2년은 혹독했다. 가혹한 고문과 참기 힘든 수모를 당했다. 그럼에도 민족의 대표로, 존경받는 스님으로서 의연하기만 했다. 스님은 갇혔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
어느 분이 물었다. “스님! 남방에 가보니까 비구스님이 담배도 피고 심지어 문신을 한 분도 있었어요. 남방 스님들은 탁발을 하는데 왜 우리 스님들은 탁발을 안 해요? 남방은 육식을 하는데 우리는 왜 육식을 하면 안 되나요?”상좌부의 계율을 언급하면서 출가자의 생활을 평가하는 경우를 SNS상에서 자주 보았지만 막상 이런 질문을 직접 받으니 어떻게 답할까 고민스러웠다. 조금 어렵더라도 율장이 중국에 전래된 상황과 ‘사분율장’이 여타의 율장과 다른 점 등을 살펴봐야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상좌부불교나 티베트불교는
‘사분율’에 의하면 다른 비구의 죄를 드러낼 때는 적절한 때와 적절하지 않은 때를 알아야 하고, 진실이며 거짓이 아니어야 하고, 이익을 주고 손해를 주지 않으며, 부드러운 말로써, 성내는 마음 없이 자비심으로 해야 한다. 영지율사는 ‘사분율행사초자지기’에서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첫째, 때를 알아야 한다. 죄를 드러내기 마땅한 때와 마땅하지 않은 때를 아는 것이다. 거죄(擧罪)에 적당한 시기를 알고 적당하지 않은 때는 죄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이 죄를 범했더라도 그를 따르는 문도나 속가 권속이 있는 앞에서 죄를 드러낸다면 때
처음 대만에 왔을 때 한국불교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해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의 삼의는 어떻게 생겼냐고 누군가 묻는데 그 때만해도 별 생각 없이 우리는 7조 가사 하나뿐이라고 답했더니 무척 놀라면서 삼의 없이 어떻게 수계식을 하느냐고 되묻기도 했지요.나중에서야 알았지만 현존하는 모든 불교국가에서 수계식을 할 때는 반드시 삼의를 갖춥니다. 율장에서도 그렇게 규정하고 있지요. 출가자의 기본 요건인 삼의를 유일하게 우리만 충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승가리가 아닌 7조 가사 하나만으로 수계식을 하게 된 최초의
전 조계총림 방장 보성 대종사의 율맥을 이은 조계총림 송광사 율주 지현 스님이 다시 8명의 율사 스님들에게 율맥을 전하는 전통 전계 의식이 봉행 됐다.송광사 부산분원 관음사(회주 지현 스님)는 2월14일 경내 원통보전에서 ‘‘전등 율맥 전수 법회(傳燈 律脈 傳受 法會)’를 봉행했다. 이 자리에서 관음사 회주 지현 스님은 수덕사 승가대학 교수사 혜림 스님을 비롯한 8명의 스님에게 조계총림 송광사의 전통 율맥을 전하며 지계 실천과 계율을 부흥을 당부했다. 이날 법석은 개식, 내빈소개, 삼귀의 및 반야심경, 인사 말씀, 헌향, 고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