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연이 없던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한국유학은 부처님 법을 만나 삶을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머물지 않고 더욱 정진하는 불자가 되겠습니다.”제6회 대한불교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에서 포교원장상을 수상한 최옥란(대지) 불자는 불제자로서의 각오를 다지는 것으로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 중인 그는 아픈 어머니와 자신에게 찾아온 병마로 괴로워하던 중 부처님 법을 만나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신행수기에 담았다. 조선족 동포인 그는 “불교를 알게 된 것은 짧지만 너무 많
“어떤 이들에게 공감이 되고 힘이 된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김영관(금강) 불자가 제6회 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에 접수한 작품은 ‘내 삶은 부처님 품안에서’다. 그는 군복무 중 불행한 사고를 겪은 뒤 뇌병변장애로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안고 있다. 하지만 ‘법화경’ 사경과 108배 그리고 불자장애인모임 보리수아래와의 인연으로 치유해 나가고 있다. 중앙승가대 학인시절 삼보일배로 5대 적멸보궁을 순례한 범종 스님과 인연도 그를 불연으로 이끈 큰 계기였다. 그는 이번 수기에서 기도하고 수행하며 불자장애인들과 교류하면서 차차 마음의 병이 나
“부처님 품 안에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 느낀대로 소소하게 쓴 글이 상을 받게 돼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매순간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삶을 진솔하게 풀어낸 ‘부처님과의 동행’으로 법보신문 사장상을 수상한 허정애(연화) 불자는 “이 역시 부처님의 가피라고 생각한다”며 거듭 감사를 전했다. 허정애 불자의 삶은 소소한 일상까지 부처님 가르침에 기반하고 있다. 지역 복지관에서 무료급식봉사를 해온 지도 올해로 30년. 처음엔 멋모르고 시작한 봉사지만 불교 공부가 깊어지고 세월이 쌓이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수행으로 변했다. 그는 “부처
“새로운 생명을 받고 다시 태어났으니 나누고 실천하는 불자가 되겠습니다.”제6회 조계종 신행수기공모에서 불교방송사장상을 받은 이상복(혜림) 불자는 심장이식수술로 새 생명을 받은 2018년 2월1일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했다. 수상작 ‘제주에서 600km 날아온 희망의 이야기’는 심부전증으로 고생하다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자신의 사연을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이상복 불자는 “철없이 천방지축으로 살다 16년 전 우연히 인터넷방송에서 정각사 주지 정목 스님의 목소리를 듣고 부처님 법을 접하게 됐다”며 “수술 전후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신행수기를 읽으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응모작을 읽으면서 심사위원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 해가 거듭할수록 공모작품의 내용이 다양해지고, 특성이 두드려져서 최종심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았다. 이번 신행수기의 특성은 응모작 대다수가 불교적 신행이나 불교사상이 글 속에 녹여져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불교의 수행이 되었다는 증거로서 신행수기의 중요한 조건요소인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모든 문학작품에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듯 신행수기 역시 사람마다 제각기 피하지 못할 사연이 있고, 나름대로 역경과 고통을
인도의 나란다(Nalanda)! 직역하면 시무염(施無厭)이다. ‘한량없는 보시’로 충만한 그곳은 부처님 10대 제자에 속하는 목련존자와 사리불의 고향이기도 하다. 굽타 왕조의 두 번째 왕인 쿠마라굽타 1세(415∼454)가 그곳에 ‘나란다 사원’을 조성하니 이내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기록된 ‘나란다 대학(Nalanda University)’이 세워졌다. 교수 1000여명에 1만여명의 학승들이 상주하며 공부했던 전당. 매일 100여군데서 강좌가 열렸는데 불경은 물론 인명(因明, 논리)·천문·언어·의학을 넘어 범패·문학·베다까지도 연구
‘국립’과 ‘관장’이라는 직함이 주는 선입견만 없다면 그는 여전히 자유로워 보인다. 트레이드마크인 모자는 여전하지만 그 흔한 넥타이는 사양했다.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 옷섶을 잡아주는 정도의 매너가 그와 세상의 타협선일지 모른다. 지난 2월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된 윤범모(69) 관장의 이력은 빼곡하다. 가천대 교수,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최근까지도 동국대 석좌교수로 강단에 섰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예술총감독, 창원 조각비엔날레 총감독으로 현장을 지휘했고 한국민화센터 이사장, 가나문화재단 상임이사, 한국큐레이터협회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불자님 생일 축하합니다.”따스한 봄날, 생일 축하 노래가 ‘낙산불자마을’에 퍼졌다. 이날 주인공은 20년 넘게 낙산사 아래서 건어물을 파는 어경희씨. 어씨는 생일날 케이크를 직접 들고 찾아온 낙산사 포교국장 수미 스님에게 연거푸 감사인사를 전했다. 스님은 “항상 건강하고 집안이 평안하기를 기도드린다”며 진심어린 축원까지 잊지 않았다.스님이 즉석에서 사진을 뽑아 선물하자 어씨는 “상가 전체가 불자마을이 된 후 스님께서 생일이면 꼭 찾아와 축원까지 해주시니 앞으로 일이 더 잘 풀릴 것 같다
부처님이 열반을 앞둔 어느 날, 쿠시나가라 숲속에서는 작은 소란이 일었다. 한 늙은 바라문이 찾아와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한 것은 우담바라가 피는 것처럼 드문 일이니, 제발 잠시만이라도 뵙게 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난은 “부처님을 번거롭게 하지 말라”며 만류했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부처님은 자비로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늙은 바라문은 정중히 예를 올리고 자신의 의심을 부처님께 물었다. 그의 질문을 받은 부처님은 팔정도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설했다. 이에 감복한 바라문은 “저도 여래의 법 가운데 출가해 구족계를 받을
“즐겁고 행복한 부처님오신날 되세요.”국내 여자당구 3쿠션 랭킹 1위, 세계 랭킹 3위인 스롱 피아비 선수가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법보신문 독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캄보디아 출신의 피아비는 뛰어난 성적과 상냥한 성격으로 수많은 팬을 보유한 프로 당구선수다. 지난 3월에는 캄보디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행사장에 함께해 더욱 유명해졌다.푸른 새싹과 봄꽃 그리고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연등 물결 가득한 5월1일 피아비 선수를 만났다. 빌킹코리아 소속의 피아비 선수는 5월의 푸르름을 뒤로한 채 2주 앞으로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해 열린 제 6회 신행수기 공모에서 이정희 불자의 ‘진흙에서 핀 연꽃처럼’이 대상인 총무원장상을 수상했다. 조계종 중앙신도회가 주최하고 법보신문과 불교방송이 공동주관 한 신행수기 공모에는 총 162편이 접수됐다. 수상작 20편 중에 총무원장상을 비롯해 포교원장상, 중앙신도회장상 등 10편을 지면에 소개한다. 편집자주출근길에 내가 다니고 있는 절 죽림사에 들렀다. 죽림사는 도심 절이지만 대나무와 산으로 둘러 쌓여있어 아늑함이 느껴지는 포교당과 불교대학이 있는 사찰이다. 전생부터 지은 죄업을 참회하는
태어나서부터 나는 고국인 대한민국에 오기 전까지 한 번도 사찰을 방문해본 적도, 가사를 입은 스님들을 만난 적도 없는 그야말로 불법의 불모지에서 살아온 중생이었다. 비록 육조혜능 대사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선종의 5가7종이 꽃을 피운 중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내가 태어난 연변이란 곳은 조선족 교포들이 모여 사는 변방의 산촌으로 변변한 사찰 하나 없었던 곳이었다. 오로지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가 되면 앞날에 탄탄대로가 펼쳐지리라는 출세의식에만 젖어 시작한 유학생활이었지만 나는 고국인 이곳 대한민국에서 부처님을 만났다. 어찌 보면 도망치듯
어릴 적부터 계절 알레르기 때문에 밖에도 잘 못나가고 학교도 자주 빠졌다. 그러다보니 친구도 많은 편이 아니었고 늘 집에서 동생과 아니면 장난감과 지냈다. 가까이 살고 계시던 할머니 댁에 가서 친척 형, 누나와 작은 고모와 시간을 보냈다. 작은 고모가 망월사에 처음 데리고 갔던 걸로 기억이 난다.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자주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기가 끝났을 때는 자유롭게 다녔다. 그랬다. 어렸던 나에게 산 끝자락에 있는 망월사는 더 커보였고 더 웅장해 보였다. 절에 가면 마냥 모든 것이 신기했고 너무 편안하고 좋았던 것
시방 법계에 부처님 아니 계신 곳 없으니 아무리 작고 좁은 절이라도 부처님은 계실 겁니다. 겨울 한 철 나기가 곤란스러워 보이는 절이 보이면 아이들과 함께 올라가서 절을 올립니다. “부처님! 이 절이 잘 되게 해 주십시오”라며 절을 올리고 나면 절의 살림 걱정이 덜 됩니다.부처님의 슬하에서 69년을 살아온 재가불자로서는 약간의 시주와 기도만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입니다. 삼배를 마친 손자는 묻습니다.“할머니! 부처님은 6년 동안이나 고행을 하셨다는데 왜 저렇게 뚱뚱해요?”“네가 본 부처님 상(像) 만이 부처님이 아니라 여러 시대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혜림님의 첫 돌을 축하합니다.’ 예순 네 살의 나는 50여 봉사자들이 부르는 노래에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한사랑 파주공동체’ 장애인들도 함께 울었다. 2018년 1월31일 심장이식 수술로 새 생명을 받고, 2019년 2월1일 첫 돌을 기념한 잔치다. 철없던 시절,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고 천방지축 살아왔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고 집을 떠나 40여년을 방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한 친구와 사소한 의견 충돌로 주먹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심신
설렘과 긴장으로 잠을 설쳤다. 우리 일행은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도착해 셔틀버스를 타고 백담사 주차장에서 내렸다. 신발 끈과 마음자락을 단단히 묶었다. 여린 새순이 겨우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계곡에는 생강나무의 노랑 솜꽃이 봄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동행한 분들이 나눠 주는 결연한 웃음의 의미를 말없이 새기면서 걷기 시작하였다. 4월 산바람이 아직도 차갑게 옷 속을 파고들어 늘어진 마음을 잡아주었다. 이번 성지순례는 8월 말이면 긴 교직생활을 끝내고 교단을 떠나 인생 제2막을 시작하는 나 자신에게
‘엄마 자장면 시켜서 함께 드실래요?’딸아이 방문이 열리면서 한 말 한마디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였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딸아이를 보며 되물었다. “뭐라고 뭘 시켜 먹자고?” 다시금 들려오는 딸아이의 소리, ‘자장면 시켜먹자고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알았어. 시켜먹자.” 딸아이 마음이 변할까 생활정보지에서 중국음식점을 찾으며 “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를 수 백 번 읊었다. 딸 나이 40이 넘어 처음으로 한 ‘같이 밥먹자’는 말이었다. 한 집에 살면서 식구들과 함께 밥을 먹은 게
남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흐르는 물이 그동안 답답했다는 듯 하얗게 속살을 드러내며 봄소식을 전한다. 수선화·목련도 방긋방긋 미소 짓고, 앞산도 아련한 연록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나는 불교신자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경전 한 구절 제대로 읽어 본 적 없다. 그저 정월초순, 사월초파일, 백중, 동지 때만 절에 갔다. 1년에 4번 절에 가는 신도들을 보고 우리스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시길 ‘보살님은 무늬만 불자’라 했다.그렇다. 산수가 빼어나다는 배내골에 귀촌해서 신불산 백련사와 인연을 맺은 지 7~8년이 되었지만, 아직 ‘천수
“손톱에 구름이 떴네. 누가 너한테 큰 선물을 주려나보다.”손톱에 갈대 모양으로 흰 스크래치가 나 있었다. 선생님은 불그스름한 손톱 밑 살 위로 비치는 흰 구름은 어디서 쓸려왔는지 몰라도 약간의 보랏빛이 돈다며 손가락에 뜬 구름은 꼭 아미타불께서 내영하실 때 타시는 자색(紫色)구름 같다고 하셨다. 나의 샤미센(비파 모양의 삼현악기) 선생님이시다. 선생님과의 샤미센 수업이 끝나면 으레 구품사(九品寺)로 산보를 나갔다. 종문 가까이에는 죄의 무게를 달아보는 할머니와 염라대왕이 계시고, 그곳을 지나 손을 씻는 우물 뒤편의 안쪽 당에는 지
1988년의 IMF사태를 겪어오면서 세상살이가 참 쉽지 않았다. 그때 나는 불행의 열차에 실려 이승에서 지옥세계로 불리는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었다. 20년이란 형량을 선고받았다.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20년형을 받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굴곡진 삶의 의혹을 풀어보려 불교에 입문했고 그것은 ‘행운’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이 되질 않는다. 처음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 상고도 했지만 불법을 만나 공부하면서 모든 것이 인과에 의해 열매 맺는 것임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다.부산교도소에 잠깐 머물 때, 공장출력을 신청해 부산교도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