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은 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도 보드가야 고려사 주지 원공 스님이 불법으로 사찰 땅을 매각하고 잠적한 사건과 관련해 "한국불자들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내는 상상하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다"며 "반드시 사찰 땅을 되찾아 고려사를 올곧게 건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 보드가야에 위치한 통도사 직할 해외포교당 고려사 주지 원공 스님이 사문서 위조 등의 불법적인 방법으로 사찰 토지의 상당부분을 제3자에게 매각하고 잠적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원공 스님은 국내에서 해외 포교당에 대한 직접적인 관리가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현지법인 이사들의 서명 등을 위조하는 수법을 동원해 토지를 매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는 그만의 글쓰기 방법이 있었다. 인각사 일연 스님 진영. “『삼국유사』는 정녕 우리 역사를 지식인의 역사에서 민중의 역사로, 사대의 역사에서 자주의 역사로 바꿔놓은 책. 우리 문학을 지식인의 문학에서 민중의 문학으로, 사대의 문학에서 자주의 문학으로 바꿔놓은 책이다.” 지난 26년 간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천착해 온 고운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의 말이다. 지난 2002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를 펴낸 이후 『일연을 묻는다』,『길 위의 삼국유사』를 출간해 ‘삼국유사 3부작’을 완성한 고운기 교수가 필생의 작업으로 발원한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시리즈의 두 번째 결과물인 『삼국유사 글쓰기 감각』을 선보이면서 드러나지 않았던 일
한국 전통 사경 수행의 진수를 선보이는 사경 시연회가 미국 LA카운티미술관(이하 LACMA. 이하 라크마)에서 열렸다. 라크마는 8월 21일 한국사경연구회 김경호 회장을 초청, 사경 특강과 시연회를 개최했다. 8월 1일부터 내년 1월까지 라크마에서 진행되고 있는 고려사경 전시회의 일환으로 열린 강연 및 시연회에서 김경호 회장은 우리나라 전통 사경의 역사적 가치와 함께 수행의 의미와 방법 등에 대해 특강했다. 이어 진행된 시연회에서는 감지에 금니와 은니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경의 전 과정을 직접 시연했다. 사진 제공=한국사경연구회
한국사경연구회 김경호〈사진〉 회장이 한국 사경의 진수를 미국에 알리기 위해 8월 18일 미국 LA로 출국한다. 미국 LA카운티미술관(LACMA. 이하 라크마)에서 8월 1일부터 내년 1월까지 진행되고 있는 고려사경 전시회의 일환으로 라크마 측이 김경호 회장 초청 강연 및 시연회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라크마 측은 해외에서 접하기 힘든 사경의 의미와 그 제작과정 그리고 사경에 담긴 뜻을 미국인들에게 보다 쉽고 정확히 전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강의와 함께 사경 과정을 직접 시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 21일 전시장에서 한국사경 제작 과정에 대한 특강 및 시연 등 부대행사를 진행한다. 김 회장 역시 이번 강연 및 시연을 통해 사경의 의미와 수행의 가치를 전달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사경은 우리나라에
일연(一然) 스님의 일대기를 쓰기 위한 필요성이 있어서 『고려사절요』를 들추다가 이런 대목에 눈길이 머물렀다. 1227년의 일이었다. 이 해에 일연 스님은 스물한 살의 나이로, 개성에 가서 승과 시험을 치렀다. 개성에서는 점술을 잘한다는 주연지라는 사람이 최이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최이는 아버지 최충헌의 뒤를 이어 무인정권을 이끈 이다. 그러나 주연지는 본디 최산보라는 이로 전라도 영광에 살면서 점술가 노릇을 하였었다. 조카인 광효와 함께 점술로 사람들을 홀려 겁탈을 일삼는가 하면, 급기야 남의 집 소를 도둑질해 마을에서 도망쳐 나와야 했다. 다른 마을을 떠돌다 개성에 올라와 역시 점술로 사람을 홀렸다. 제 버릇 남 주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데 최이의 신임이 날로 두터워졌다. 그러니 그 세력이 나날이
0.1mm의 붓으로 화엄세계를 만들어 내는 전통 사경의 세계. 부처님 말씀을 한자 한자 새기는 사경은 단순히 경전을 베껴 쓰는 차원을 넘어 그 자체가 곧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고려시대 불교 사경을 주제로 전시회가 열린다. 고려 불화를 소개하는 전시회가 해외에서 열리는 경우는 간혹 있었지만 사경을 주제로 열리는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LA카운티미술관(약칭 LACMA. 이하 라크마)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김병국)의 도움으로 라크마 한국미술실 내 중앙특별전시실에서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작품 전시회를 지난 5월 23일부터 진행하고 있다. 7월 24일까지 십장생도 10폭 병풍과 십장생도 사방문 등 ‘궁중장식화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중국 복건성에서 열린 제4차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 행사 장면. 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등 7개국 차인들이 참가하는 제5회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가 중국 영파에서 열린다. 영파는 중국의 선차문화가 해로를 통해 동쪽으로 전해졌다고 알려진 곳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논문과 영파지역에 전해지고 있는 선차문화를 조명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4월 23~26일까지 열리는 선차대회에는 중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등 7개국의 차인들이 각국의 선차법을 선보이는 행다 시연회와 영파 칠탑사 등에서의 헌다례 등도 함께 진행된다. 학술대회에서는 선차와 관련한 20여 편의 논문이 소개될 예정이다. 각국의 차문화계에서 다루고 있는 논문을 한 자리에서
뉴욕 정명사 불사 동참자의 공덕을 새긴 ‘시주질’은 고려 사경의 전통을 재현한 것이다. 불사 동참자의 이름을 기록으로 남기는 ‘시주질(施主秩)’ 장엄 전통이 700년 만에 재현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시주질은 한국사경연구회 김경호 회장이 불교미술의 최고로 평가받는 고려 사경 문화재에 담긴 사성(寫成) 양식을 계승해 제작했다. 지난 2월 21일 미국 뉴욕 정명사(주지 길상) 내부장엄 불사 시주질 봉안법회에서 공개된 ‘시주질’은 가로 97cm, 세로 35cm의 감지에 금니로 조성된, 그 자체가 한 점의 작품이다. 시주질의 양식에 있어서 바탕이 된 문화재는 고려사경 중 최상의 장엄을 선보이는 보물 제752호 ‘화엄경 보현행원품’. 시주자 이름 등은 한글로 조성해 현대적인 미감을
전국의 수많은 절터들이 무분별한 개발과 경작 등으로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조계종과 문화재청이 올해부터 5년간 3000여 곳에 달하는 전국 사지(寺址)에 대한 대규모 학술조사를 실시한다.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사지 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문화재청은 조계종 총무원 산하 불교문화재연구소에 매년 11억씩 5년간 총 55억의 문화재보호기금을 지원한다. 사지는 전국적으로 수천 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국가지정문화재(사적) 35건, 시·도지정문화재나 문화재자료 69건으로 총 104건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대다수의 절터들이 개발, 경작, 훼손, 도난 등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규명 없이 훼손·멸실 되는 등 보호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못한 채 방치돼 왔다. 이런 가
대동금석서에 실려 있는 원오대사비문 우리나라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했던 사찰의 위치가 확인됐다. 최연식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교수는 한국목간학회가 1월 15일 서울시립대에서 개최한 정기발표회에서 이우(1637~1693)가 편찬한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를 토대로 10세기 초 처음 대장경을 봉안했던 사찰인 해룡왕사(海龍王寺)가 포천 성산에 있었음을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당시 대장경 완질 봉안의 의미는 각별했다. 『고려사』에 “신라 승려 홍경이 대장경을 배에 싣고 예성강에 이르자 왕이 직접 맞이했다”고 기록돼 있으며, 『삼국유사』에는 “신라말에 보요(普耀)선사가 두 차례 오월에 가서 대장경을 싣고 왔다. 곧 해룡왕사의 개산조이다.…위대하도다, 초조여. 훌륭하도다, 진
미국에서 흑인노예를 해방시킨 사람은 바로 저 유명한 링컨 대통령이었다. 링컨은 대통령이 된 뒤, 대통령 집무실로 한 여류작가를 초대했다. 그 여류작가는 『엉클 톰슨 캐빈-톰 아저씨 오두막』이라는 소설을 쓴 분이었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유명한 작가는 아니었다. 이름은 스토우 부인. 스토우 부인이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서자 링컨 대통령이 정중히 맞아들여 의자로 안내했다. 그리고 링컨 대통령은 스토우 부인의 작은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고개를 숙였다.“이 작은 손으로 위대한 작품을 쓰셨군요….” 링컨 대통령은 스토우 부인의 손을 감싸 쥐고 오랫동안 감동에 젖었다. 링컨은 변호사 시절, 스토우 부인이 쓴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감명 깊게 읽고 흑인 노예의 비참한 생활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반드시 이 억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 이전개관 당시만 하더라도 서양사와 중국사가 포함된 연표에 (고)조선의 역사가 빠져 있었다. 그러나 2007년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단군이 역사로 편입이 되었고 금년 11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조선관이 개관되었다. 이로써 (후)조선과 일제에 의하여 부정되어 왔던 민족사가 본격적으로 재조명될 수 있는 전환점이 형성되었다. 그동안 고대사와 관련하여 쟁점의 중심에 있는 고서는 민족시원을 1만년 이전까지 적시하고 있는 규원사화, 한단고기 등으로 사학계에서는 사료적 가치조차 없는 위서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단고기의 위서논쟁과 함께 규원사화가 진본임을 아는 국민은 몇이나 될까. 조선조 숙종 2년 발간된 규원사화는 1972년 당대 최고의 문화재 위원이 심의를 하여 진본임을 확인한 중요한
천태종 창종조 대각국사 의천 스님 열반 다례재가 11월 21일 개성 영통사에서 천태종(총무원장 정산)과 조선불교도연맹(위원장 심상진, 이하 조불련)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됐다. 영통사에서 남북 불교도들이 합동법회를 봉행한 것은 지난 2007년 11월 대각국사 다례재 이후 2년 만의 처음으로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온기를 불어 넣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천태종은 11월 21일 영통사에서 조불련과 공동으로 대각국사 의천 스님 열반 908주기 합동 다례재를 봉행했다. 이번 천태종과 조불련의 만남은 지난 10일 서해에서 발생한 교전이후 첫 번째 남북 공식 민간교류다. 이 자리에는 총무부장 무원, 사회부장 경천, 섭외국장 거홍, 의전국장 원재 등 총태종 관계자 13명과 조불련 정서정 서기장, 차금철 책임지도
사경을 한지 2년이 지났을 무렵에 이상한일이 일어났다.고려사경을 재현하신 세밀하고 정교한 선생님의 체본으로 사경을 하는데 보일 것 같지 않은 부분이 더 환하게 보이는 것이다. 내 눈의 동공이 두 배로 커진 느낌을 받고 닫집을 그리고 사불을 하고 금강저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닫집 속에 발원문을 써 넣을 때는 감동 그 자체였다. 숨이 막힐 것 같은 환희심으로 부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그리고 썼다. 얼마 전부터는 금강경을 쓰고 있으면 글자가 한지 위에 새겨지는 게 아니라 경전 한자 한자가 한지 위에 솟아오르는 느낌이 든다. 이 얼마나 환희심이 나고 감사한 일인가! 선생님으로부터 화엄경약찬게 체본을 받는 날 아침이 잊혀지지 않는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대원정진력구호’를 외치면서 일어난 기억이 생생하
1981년 여익구 편역-민족사 간행…“반정부적”이유저자 중 금서 조치를 당한 첫 번째 인물은 도선국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행보에 반하는 무리를 가차없이 내쳤다.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쓴 소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생각을 달리하고 움직임을 달리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으려 했다. 여기에는 서적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금서(禁書)다. 일반적으로 정치·안보·규범·사상·신앙·풍속 등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법률이나 법률을 집행하는 국가기관에서 책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려 일반에 유포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금서다. 그 방법 또한 다양해서 책을 불태우는 것을 비롯해 유포 및 판매를 금지하거나, 심지어 열람이나 소유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기도 했다.서양에서는 이미 서기
사경을 수행으로 받아들인 후 내가 나를 이겨나가는 가운데 세월의 구비마다 처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니 이것은 사경을 통하여 얻는 나만의 능력이며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보배임에 틀림없다. 내가 지고 가기에는 버거운 일들이 사경 속에 녹아들어 나도 모르게 편안하니 한 점 한 획이 부처요, 내 마음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가득하니 정말 아름답고 즐거운 수행이다. 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나 고요한 시간을 이용하여 6시까지 사경한다. 3시간동안 모든 마음 다 내려놓고 사경한 이 원력이 동력이 되어 하루하루가 아무 일 없는 듯 하니 이 시간의 사경은 나의 기도이기도 하다.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작품을 할 때는 10시간 씩 몰입할 때도 있다. 경문을 눈으로 읽고 소리 내어 염송하고 마음으로 이해한 뒤 무아의 심경으로 정성을
임진왜란 당시 금산에서 장렬히 순국한 승장 영규 대사와 조헌 선생의 전투장면을 그린 기록화. 한국사에서 ‘호국불교’하면 청허당 휴정(1520~1604) 스님이나 사명당 유정(1544 ~1610), 기허당 영규(?~1592) 스님 등을 흔히 떠올린다. 휴정 스님은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73세의 노구를 이끌고 승병을 모아 구국의 횃불을 치켜든 고승이었고, 유정 스님은 평양 수복을 비롯해 의령, 울산, 순천 등에서 큰 전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훗날 일본에 건너가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500명을 인솔해 귀국한 임진왜란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영규 스님 또한 800여 명의 의승군을 이끌고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성 탈환에 성공한데 이어 군사적 요충지인 금산에서 왜적에 맞서 장
고려사학회는 전라북도, 익산시와 공동으로 5월 16일 오전 10시부터 원광대 60주년 기념관에서 ‘익산 백제 미륵사지의 재발견’이란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이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장이 ‘익산미륵사지 석탑 출토 사리장엄의 의의’란 주제로 조사보고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백제 무왕의 익산 경영과 미륵사(박현숙 고려대 역사교육과) △백제 무왕대 불교계의 동향과 미륵사(김상현 동국대 사학과) △익산 미륵사지 탑의 축조 과정(양정석 수원대 사학과) △백제 무왕의 서동설화와 미륵사(나경수 전남대 국어교육과) 등 논문이 발표된다. 또 토론자로는 정재윤(공주대 사학과), 조경철(한국학중앙연구원), 이강근(경주대 문화재학과), 현승환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등이 참여한다. 고려사
고려시대 몽고군 침략으로 인해 사찰이 소실되는 법난을 당한 황룡사 터 기나긴 역사 속에서 불교를 핍박하거나 나아가 불교 자체에 대한 말살을 시도한 사건들은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사찰을 훼손하거나 철폐시키는 것은 물론 사찰재산의 몰수, 탑과 불상 및 경전의 파손, 불법을 펴는 법회의 금지, 승려의 환속, 출가금지에서 학살까지 법난(法難)으로 규정할 수 있는 이러한 사건들은 불교를 태동시킨 인도에서부터 우리나라까지 불교가 전래된 많은 나라에서 발생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에 버금가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불교를 태동시킨 인도에서는 6세기 초 북인도를 침입한 훈족이 자행한 법난과 8세기 이후 이슬람교도들의 침입으로 비롯된 법난 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호전적 기질을 갖춘
설총 낳고 무애행 보였던 원효.(맨왼쪽)길위의 큰 스님으로 불렸던 경허 스님. (가운데) 탈춤놀이에서 연기자들이 쓰는 파계승탈의 한 모습.(오른쪽) 승려 출신 소설가 김성동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만다라』를 극화한 드라마에서는 한 스님이 거나하게 술이 취한 채 손으로 술상을 두드리면서 “월백설백천지백하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고, 선술집의 작부는 이 생경한 스님의 모습을 묘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세간에서 고기 먹고 술 마시는 스님을 일러 말하는 파계승(破戒僧)의 대표적 모습이 이러할 것이다. 파계승은 말 그대로 불법의 계율을 깨트린 스님을 말한다.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어육을 마다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여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