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좋다하여 잘못된 수단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민주를 실현하기 위해서 비민주적인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어떤 수단을 쓴다는 것은 그 수단에 깃든 성향을 형성하는 것이기에 비민주적인 방식으로는 민주를 정착시킬 수 없다. 반대로 수단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정당한 수단이라 하더라도 목적을 성취시킬 수 있도록 여러 보완적인 방법들을 동원하여 목적이 성취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이것이 민주적인 방법이다”하면서 고지식하고 단순한 방식으로 밀어붙인다고 민주가 성취될 수
정부는 UN의 북한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수준에서 민간의 방북여행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정부의 일방적 안이어서 북한이 동의하고, 이에 따른 제반 조건이 갖추어져야 가능하다. 이 정책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미국의 한반도 간섭에서 벗어나 보겠다는 것이다. 남북 교류는 사실 미국이 통제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사르트르는 ‘인간끼리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데 왜 하필이면 신이 인간들을 중재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시한다. 아직도 이 땅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그 나라의 힘에 기대어 자신을 지키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2020년은 경자년으로 ‘흰색 쥐띠 해’라고 한다. 쥐는 인간과 더불어 가장 널리 분포하는 포유동물의 하나로,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 서식하며 개체 수는 인간보다도 훨씬 많은 8000억 마리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우리 동양 문화권에서 쥐는 전통적으로 풍요와 다산, 부지런함을 상징하는 동물이며, 길흉화복을 알려주는 예지력을 가진 영물로 믿어왔다.그러나 근래 생명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쥐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인간과 함께 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인간 수명 백세가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6월27일 농림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장례식장이나 화장장에서 절차를 거칠 때마다 “차비 놓으라!”는 말이 계속 이어졌다. 유가족들은 이런 요구에 맞서 싸울 수도 없으니 그냥 하라는 대로 따라 하며 ‘제발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렸으면 고맙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이런 모습이 장례식장과 화장장에서는 이제 거의 다 사라진 ‘구습’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일이 멈추지 않고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전국의 사찰이다.고인이 왕생극락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유가족들은 절에 위패를 모시고 사십구재를 지낸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우리 민족은 어떤 민족일까? 뜬금없이 이런 물음을 던져보는 까닭이 있다. 우리가 우리를 보는 시각, 그것이 참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자칫하면 과대한, ‘국뽕’이라는 것에 취하여 우리 스스로를 높이고 나쁜 점을 가리려 할 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인 하는 짓이 늘 그렇지!’하는 자기 비하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근본적으로 잘못된 편향성을 벗어나지 않으면 건전한 비판을 통해 우리를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일어날 수 없다.있는 그대로를 말한다면 좀 자화자찬인 것 같지만, 우리
대승불교가 인류사회에 등장하게 된 계기는 교단주의, 출가중심주의, 성골의식 등으로 인해 인류의 현실적 고통과 거리를 두게 된 데 있다. 이러한 의식변화를 초래한 배경에는 도시화로 인한 사회적 정의에 대한 대중의 갈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가 사회 깊숙이 참여하여 갈등과 혼란을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정서인 것이다. 오늘날 또한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따라서 불교의 입장에서는 시비이해가 난무하는 현대사회에 자신의 정의론을 설파할 의무가 있다. 필자는 불법의 정의론을 참여불교인 원불교 차원에서 논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차이는
어느새 12월, 올해도 저물고 있다. 한 해의 끝머리에서 되돌아보니 2019년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외교 면에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선언’으로 인한 한일관계 악화, 법무장관 임명으로 야기된 ‘조국사태’, 최근에 불거진 ‘청와대의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에 이르기까지 국민적 관심과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도 있었고, ‘버닝썬 게이트’ ‘강원도 산불’ ‘인천 붉은 수돗물 사건’ ‘다뉴브강 유람선 허블레아니호 침몰 사고’ ‘독도 구조헬기 추락’ ‘아프리카돼지열병 파동’ 등 예기치 못
몇 년 전 이른바 ‘경허논쟁’이 심하게 불붙은 적이 있다. 학술회의장에서 발표된 한 연구자의 논문이 발단이 되어 유력한 불교계 잡지의 정간 사태까지 발생했던 사건이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이 일은 우리 불교계의 학술담론 필요성과 그 방향성에 대해 함께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 원효 스님을 둘러싼 논쟁이 교계 한 신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학술 담론이 사라져버린 현실에서 논자는 이들 기사를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보았다. 불교학의 발전 없이 불교의 발전을 기
종파로 나뉘어 서로 반목하고 타락한 고려 불교계 상황에서 원묘국사 요세 스님과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주창하여 전개한 백련결사와 정혜결사가 없었다면 한국불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등불 역할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결사의 정신과 힘이 이어져 왔기에 조선조 500년 동안의 가혹한 억불‧척불 정책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명맥을 유지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조선시대의 그 힘든 세월을 견디고, 일제강점기일본불교의 복속 시도를 어렵게 버텨낸 한국불교 앞에는 민족해방 뒤에도 숱한 난관이 가로막고 있었다. 다시 숨을 크게 쉬고 일어나 힘
우리 국민이 일본에 대하여 옹졸한지는 몰라도, 일본 문제라면 좀 감정적이 되고 또 부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것은 역사적 관계 속에서 당해온 것이 있기에 쉽게 벗어나기 힘든 뿌리 깊은 경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반면으로 미국에 대하여는 지나칠 정도로 우호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며, 또 그 감정에 반하는 미국의 처사를 보면 배반감을 느낀다 할 정도로 과민하게 반응을 하는 경우도 많다. 좌파적인, 또는 진보적인 운동들을 통해 반미 감정이 고취되기도 하였지만, 그 또한 진정한 사실 관계에 입각
주말이면 차를 몰고 성주 소성리로 간다. 2차에 걸쳐 사드(THAAD)가 들어간 길목에서 구도길을 열라며 원불교 출재가들이 24시간 지키는 진밭교 앞 평화교당에서 그들과 함께 한다. 2년 전인 2017년 3월18일, 수천 명의 전국사드반대행동 참가자들은 맨땅 위 찬바람 속에서 밤새 기도하는 그들에게 천막을 쳐주었다. 나도 그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평화의 관을 씌워주기 위해, 저지하는 경찰을 온 몸으로 막으며 안간힘을 쓰는 그들 앞에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이곳은 이제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여전히 소성리의 하늘
지난 10월23일 개봉하며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82년생 김지영’. 개봉 2주가 되기도 전에 벌써 누적 관객수 26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이 영화에 주목하는 것은 흥행성공이나 작품의 완성도가 아니라 영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열성 지지자들은 ‘육아와 함께 경력은 단절되고 심지어 맘충으로 비하되는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의 사회적 실상을 잘 보여준 훌륭한 영화’라고 극찬하며 관람을 독려하였다. 반면, 비판자들은 성대결을 촉발하고 남성 혐오를 부추긴다하여 청와대에 제작 중단을 요구하는 청원을 올리고,
태극기, 성조기, 십자가, ‘문재인 하야’. 거의 매주 계속되고 있는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이다. 수만에서 때로는 수십만의 군중이 모여 진행되고 있는 이 집회의 성격이 모호하다. 종교집회라 부르기도 어렵고 정치집회라 부르기도 어렵다. 지난 10월25일 개최된 광화문집회는 ‘1000만 기독교인 나라살리기 금요철야기도회’라는 제목과 ‘10·25문재인퇴진 철야국민대회‘라는 제목을 함께 내건 행사였다. 광화문집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인물은 ‘한기총’ 대표 전광훈 목사이다. 그는 문재인대통령을 향해 온갖 막말을 쏟아내면서
1916년 9월11일, ‘조선 선교양종 30본산 연합사무소’가 조선총독 앞으로 보낸 ‘승려의 민적(民籍)에 관한 건’이라는 공문에 주목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12년 전인 2007년 2월에 ‘승려 호적문제 이대로 좋은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그 공문은 “①각 사찰에 호구를 하나로 세워 주지를 호주(戶主)로 하고 다른 승려들은 (일반) 가정과 같은 가족구성법에 따라 주지 아래에 함께 적을 올리는 것이 어떠하올지? ②새로이 승려가 된 사람은 불전(佛前)에서 새롭게 계명을 받아 이름을 바꾸는 관례가 있으므로, 관습에 따라 새로 승려가
대학 교단에 있을 때 일이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투쟁의 열기가 아직은 다 가시지 않은 시절, 학생들에게 잘못보이면 교수도 곤욕을 치르는 시절이었다. 강의에 들어가면서 지나치던 게시판에 특이한 대자보가 붙어 있어 읽어보게 되었다. “민족**(대학교 이름)는 얼마나 썩었는가?”하는 구호로 시작된 대자보였다. 내용인즉 교직원 하나가 요식업소 주인여자와 좀 친분이 있었는데, 그 집 아이에게 대학과 관계된 특혜를 준다고 돈을 받아놓고는 전혀 모르쇠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피해를 당했다는 여자 분이 총학생회에 찾아와 하소연을 했고
“사람들은 고통 받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환경시스템이 붕괴되고 있어요. 대멸종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전부 돈과 끝없는 경제성장의 신화에 대한 것뿐이네요.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9월23일 유엔기후정상회의에서 한 말이다. 한 해 전 그녀는 금요일이면 수업을 빼먹고, 모국 스웨덴의 국회 밖에서 기후위기로부터 지구를 구해달라는 종이팻말을 들고 외로이 시위했다. 이후 전 세계 제2의 툰베리들과 환경단체들이 호응하며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나도 지난달 2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주고, 누군가가 수행을 잘 하거나 공덕 짓는 일을 하면 내가 성취한 것처럼 기뻐해주는 것, 그것을 수희공덕이라 한다. 수희공덕은 초기불교의 사무량심(四無量心) 중 희무량심(喜無量心)에 연원한 것으로, 대승불교에서는 ‘화엄경’ 보현행원의 10가지 행원 중 다섯 번째 행원이며 ‘법화경’ 제18품의 제목이기도 하다.다른 사람이 지은 공덕을 그냥 따라 기뻐해주기만 하면, 그 공덕에 편승해서 나도 똑 같이 그만큼의 공덕이 성취되니, 세상에서 이만큼이나 쉬운 공덕행도 없는 듯하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조계종 제8대 교육원이 출범하였다. 조계종 중앙종회는 지난 9월19일 개최된 임시회의에서 진우 스님을 만장일치로 선출하였으며, 진우 스님은 9월23일 교육국장에 원용 스님을 임명하는 등의 인사 절차를 진행하였다. 이로써 제8대 교육원 집행부는 ‘역사적인’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교계 구성원들은 새롭게 출범한 교육원 집행부가 과연 어떻게 산적한 교육현안을 해결해나갈 것인지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될 것이다. 제8대 교육원 집행부의 출범을 역사적인 첫걸음이라 표현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지금의 교육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요즈음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다”거나 “도덕적으로 부끄럽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물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이들의 변명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본래 법이나 도덕 규정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행위에 대해 최소한의 규제를 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어서 대중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까지 미리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그런데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일은 법이나 도덕 규정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정서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가족 해체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의 숱한 문제들의 배경에는 ‘상대의 마
문대통령의 대입제도 개편 지시를 두고 말들이 많다. 조국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비켜가기 위한 정치적 술수라는 비판부터, 이를 계기로 대입제도 등을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논란 속에, 아니 그 이전에 놓여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어떤 정치적 쟁점 때문에 대입제도 등의 교육제도가 문제가 되고, 그래서 제도가 바뀌는 일이 많았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문제인 것이다.‘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헛소리가 된 것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 10년도 내다보지 못하는 제도 개편으로 대입제도 같은 중요한 제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