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습니다. 이제 입춘(立春)도 얼마 남지 않았으며 한여름인 하지(夏至)까지 낮은 계속 길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굳이 뉴스나 주변에서 소식을 전하지 않아도 낮과 밤의 길이와 체감온도만으로도 계절의 변화와 해가 달라짐을 알 수 있습니다. 늘 그랬듯이 계절은 변하고 시간은 흘러갑니다. 내 밖의 세상이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바꾸듯이 나의 내면세계와 삶의 모습도 점차 변화해 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안팎의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게 됩니다.한 해를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시점에서 삶의 전
눈물이 난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리느냐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터져 나는 슬픔일 수도 있고, 가슴 벅차 말을 잊을 정도의 기쁨일 수도 있다.젊은 시절 인류의 대량 학살사를 접하고 모든 의식이 일순간 마비가 왔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오랜 진통 끝에 조금은 생뚱할지 모르겠지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을 거부하고 감성적 낭만주의를 접하면서 그 답을 찾았다. 오랫동안 감정적으로 살지 말고 이성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고, 배워왔다. 하지만 차디찬 이성은 경직된 사회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할 수는
무술년 한 해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결에 한 장의 달력을 남겨놓고 있다. 2018년을 돌아보니 참 많은 일을 했다. 이 많은 일들의 대부분은 어르신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차지한다. 우리 센터에서의 일상은 어르신들이 채워 나가는데 요즘은 센터가 텅 비어 있다. 항상 활기가 넘치고 이런저런 일들로 눈코 뜰 새 없던 날들이 지금은 너무 고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센터의 건물이 나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내진 설계가 되어 있지 않은 건물이라 내진보강공사로 인해 잠시 휴관한 상태다. 매일 3000여명이 넘는 어르신들로 북적거리던
고향 친구인 숙이 보살님은 쾌활하고 정이 많습니다. 매년 어린이 여름불교학교 때는 감자와 옥수수를 챙겨주고, 때에 맞춰 소박한 살림살이를 보내줍니다. 농사짓는 시골에서 대가족의 삶이 어떤지 잘 알지만, 보살님은 한 번도 힘든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얼마 전, 아들의 입원 소식을 들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심장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장하는 동안 수십 번 생사를 넘나들었으니, 병과 함께 자랐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다 보니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아서 미리 준비하고 있었으며, 마지막 단계까지 와 있는 것도 인식하
최근 인도에 있는 불교 성지와 유적지를 순례하면서 살아있는 역사로서의 부처님을 접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부처님의 실존과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요. 우리에게 부처님이 왜 필요한지 생각해 봤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럭저럭 살만하고 괜찮을 때는 필요성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힘든 상황에서 찾게 됩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가피 또는 가르침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쌓이면 점차로 일이 잘 풀리고 좋을 때도 부처님의
가을이 깊었다. 몇 년의 가을을 잊고 지났는데 새삼 올해 가을 이야기가 잦으니 사람들이 내게 가을 탄다고 한다. 계절은 매년 어김없이 내 곁을 지나가지만 내가 느끼는 계절의 흥취는 완전 별개인 것 같다.바쁜 삶을 살다 보니 실은 가을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제주에 살다 보면 가을을 잊어버리기 쉽다. 남도의 낙엽은 우리 곁에 깊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실 한라산 고산지역이 아니면 낙엽다운 낙엽을 보기 힘들다. 제주 가을의 흥취는 노오랗게 익어 수확을 기다리는 밀감을 보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생일이 가을 초입이라 매년 한 번씩 나
지난 주말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날이었다. 우리 서울노인복지센터는 60여명의 직원들과 3000여명의 어르신들이 매일 이용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라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지난 주말 한 직원이 결혼식을 하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들을 축복하기 전 센터에 잠시 들러 못다한 일을 하고 있는데 한 직원이 슬픈 얼굴로 “센터에서 18년간 봉사 해주신 어르신이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얼마 전 서울노인영화제에 어르신영상자서
수행자의 삶이라 항상 평온하면 좋겠지만, ‘주지’라는 소임이 있어 하루하루가 매우 분주합니다. 몹시 지칠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찾아가는 멋진 벗이 있습니다. 그는 언제 어느 때나 저를 최우선으로 맞아주며, 가장 편안하게 마음 쉬도록 해 줍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나의 삶에서 나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벗입니다. 그는 바로 ‘바다’입니다.바다를 바라보면, 어머니 품 안에 안긴 것처럼 안락합니다. 햇빛을 받으며 반짝이는 각양각색의 깊고 얕은 푸른색은 경이롭습니다. 파도는 아득한 수평선에서 쉼 없이 다가오며 바위를 감싸
봉은사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반년 정도 지났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마음챙김 명상을 지도하고 있는데요. 제가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동시에 배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배우기 위해 오신 분들에게 무언가 전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도 하게 되고 평소에 수련을 할 때에도 일어나는 현상들을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보게 됩니다.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주로 학업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명상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지도하는 과정이 다소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와 현장에서 하는 명상에는 엄연히 격차가 존재하기
젖혀둔 창으로 들어오는 찬 기운에 놀라 잠을 깨어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가을에 잠들었는데 겨울이 되어서 일어난듯 했다. 계절이 아니라 이번에는 내가 지금 삶의 어디쯤에서 무얼 하면서 헤매고 있는지 당황스러웠다. 밤중에 잠을 자다 차가운 기온에 잠을 깼다고 해도 갑자기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지 잠시 후에야 알 것 같았다. 지난밤 잠들 때가 문제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바티칸에 가서 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다가 잠이 들었다. 밤새 그 무의식의 꿈이 나를 엄습했나보다.지난밤 우리나라 대통령이 바티칸공화국을
서울노인복지센터는 하루 3000여명의 어르신들이 이용한다. 그러다보니 이곳저곳에서 보이지 않는 봉사자들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 늘 봉사자의 손을 빌려 생활하시는 어르신들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동안 당신들이 배운 것을 종묘공원 건너편 세운상가 앞에서 ‘북(book)적북적 어른이 놀이터 02콘서트(共理콘서트)’로 시민들에게 회향하는 날이었다.무대는 성공적이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쌀쌀한 날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 공감하고 소통하는 자리가 되었다. 평소 우리가 생활하면서 쉬 지나치던 곳의 역사적인 이야기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우리 절은 무허가 지역에 있어서 주변에 어려운 가족들이 많습니다. 매년 백중기도 회향으로 장학금 기금을 마련해 소년 소녀 가장이나 어려운 형편의 청소년들에게 전달하는 법회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절 형편이 넉넉지 못해 지난 2년 동안 많이 축소되었습니다. 올해도 장학금 마련이 힘들어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그러던 중, 공익법인 일일시호일과 함께 다문화 가정에 장학금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다문화 가정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 기쁜 마음에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금액이 너무 작지 않은가,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까,
오늘은 여러분에게 어떤 날이었나요? 의미 있고 즐겁게 보낸 것 같아 보람을 느끼고 있나요? 에너지는 방전되었지만 실속이 없는 날은 아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루를 돌이켜 보면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과 무엇이든 하고 싶은 날. 누구도 만나지 않고 간섭받지 않으면서 쉬고 싶은 날도 있고요. 어떤 날은 누구라도 만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자신이 만족하면 되는 것이죠. 그런데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 때 행복한지 모르는 건 문제입니다. 자신의 성향을 알아서 나다운
대학을 막 졸업할 무렵 친구들과 함께 적성검사를 해봤다.당시 취업률은 180% 넘었으니 무엇을 할 것인가 망설이거나 취업문 앞에서 초조해서가 아니었다.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니 일할 사람이 늘 부족했다. 대학졸업을 앞둔 2학기가 시작하자마자 대부분 취업을 확정짓고 또다른 기업에 응모해 이중 합격하는 일도 있었다.자신을 바로 아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적성검사의 결과에 매우 놀랐다. 상담교수님이 사회봉사분야의 직업을 가져보라 권했다. 당시 너무나 생소한 말이어서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라 했다. 즉석에서 ‘저는
센터는 금요일이면 top작은 공연장(우린 강당을 이렇게 부른다)에서 ‘금요예술무대’가 열린다. 오늘도 어르신들이 입추의 여지가 없이 꽉 들어차 설레하면서 공연을 기대하고 있었다. 전해 들으니 오늘은 ‘송해길보존회’와 함께 금요예술무대가 꾸며지는데 송해 선생님은 물론 많은 출연진이 다채로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90세가 넘은 어르신인데도 정정하게 전국을 누비면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으시는 송해 선생님의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철저히 자신을 관리하시는 모습에 우리 센터의 어르신들도 자신들을 잘 관리하셨으면 하고 바
지옥중생까지 구제한다는 지장기도의 백미(白眉)인 우란분절·백중 기도 날입니다. 노보살님이 오랜만에 절에 오셨습니다. 불과 여름 한 철 못 만났는데, 그사이 많이 약해지신 듯 보여 걱정되었습니다. 노보살님은 여름 무더위 지내면서 많이 아팠다며, 이제 죽을 때가 되었나보다 하며 넋두리를 하십니다. 그러면서도 이야기 끝에 꼭 큰아들네 가족 기도를 부탁합니다.여든이 훌쩍 넘은 노보살님은 평생을 아들 걱정을 하며 살았습니다. 아들은 나이 오십이 되도록 특별한 직업이 없고, 다 큰 손자는 방에서 컴퓨터만 하며 밖을 나오지 않습니다. 며느리가
제19호 태풍 솔릭은 이름부터가 매우 의미심장하다. 미크로네시아에서 제출한 태풍이름으로 전설의 족장 이름이라고 한다.제주는 태풍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모든 항공편이 결항하고 배들도 부두에 묶여 그야말로 섬의 본 모습을 보였다. 태풍 앞에 서면 인간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나타나 언제나 겸손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 현대 문명세계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누군가는 5년 동안 큰 태풍 없이 잘 지냈는데 올해는 유별나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큰 태풍이 한 번씩 지나가야한다”며 “그래야 뭔가 제대로 정비하지 않은 곳이 여실히 들
연일 무더운 날씨가 제법 익숙해진 것인지 34~5도가 이제는 그냥 덥구나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창 더울 때는 우리 체온보다도 높은 온도를 경험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습관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 같다. 더운 날씨도 반복적으로 지속되다보니 우리 몸이 익숙하여져서 자신의 체온보다 높은 온도에서도 잘 견뎌내는 것을 보면서 습(習)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며칠 전 복지관이 평가를 받았다. 보건복지부는 3년에 한 번씩 전국 복지관 평가를 한다. 서울의 복지관들은 서울형 평가로 대체해 받는다. 삼복더위에도 불구하고 전 직원
여름철에 열리는 ‘청소년 템플스테이’는 즐겁고 활기찬 행사입니다. 공부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을 아이들은 무척이나 기다립니다.올해 프로그램 가운데 주변 인연들에게 삼배를 올리는 자비발원문 사경 명상 시간이 있었습니다.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 경쟁자, 괴롭히는 사람, 배신한 사람 등의 대상을 정하고 그의 이름을 “존귀한 ○○○부처님”이라 붙여서 자비발원문을 사경하며 삼배를 올리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막상 기도를 시작하니, 아이들 모두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한 법우가 “나를 괴롭히는 나쁜 친구에게 행복하라고 기
방학하는 날이다.열정과 환희심으로 처음 시작한 불교대학을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어제 종강을 하고 방학을 시작했다.방학이라고 해봐야 2주간 수업이 없을 뿐이지만 모두들 방학을 이렇게 즐거워할 줄은 정말 몰랐다. 본인들이 좋아서 공부 하자고자 입학해 놓고 그래도 수업하지 않고 쉬는 날이 있다는 것을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사회는 지금 52시간 주간 근로 시간으로 매우 어수선하다.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일로 알고 살아왔는데 일주일에 52시간 이상 법적으로 근로 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것을 즐거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