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을 하다 보면 가끔 명상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 순간에는 온전히 나와 종이 위에 글씨밖에 없다. 천천히 획을 그으며 움직이는 붓펜 잡은 손과 눈앞에 보이는 글자들에 집중하면, 마치 달마대사가 벽을 보고 마음을 통찰하는 ‘벽관수행’을 하는 것처럼 글자로 향하던 시선이 종이에 반사돼 내 마음 상태를 비추는 효과를 경험한다. 사경에 집중하다가도 잡다한 망념들이 올라오면 그 망념의 에너지를 피하지 않고, 글자를 쓰면서 그대로 보고 느낀다. 그렇게 마음을 관찰하다 보면 속으로 ‘내가 혼자 공부한다고 힘들었구나’ ‘그동안
‘법념처’의 두 번째 명상법은 오온관찰명상이다. 오온(五蘊)은 ‘나’라는 존재를 다섯 가지 무더기로 분리하고 해체해서 설명한 방식이다. 무더기(蘊)란 빨리어로 ‘칸다(Khandha)’라고 하는데, 다발, 덩어리, 모임, 더미, 쌓임, 구성요소 등의 의미가 있다. 즉 여러 요소가 모이고 쌓인 것, 뭉쳐지고 집적된 것을 ‘무더기’라고 한다. 그러니까 오온은 ‘나’라는 존재가 물질과 정신의 무더기들로 결합되었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초기불교에서 오온은 불교의 ABCDE라고 할 만큼 기본이자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한적한 마을에 만물트럭이 지나간다늙수그레한 남자와 동승한 여자 목소리는옆자리에 앉지도 않고평생 늙지도 않는다젊은 여자의 목소리만으로도 설레는바깥노인들아이가 없는 집에서 우유를 사고남편이 없는 집에서 국수를 산다사탕 한 봉지를 사는 할머니는일주일 동안 입안을 굴리며 말 상대를 대신할 것이다마시멜로는 손주들의달콤한 말맛이어서 좋고잇몸의 사정을 잘 헤아리는 두부는무를수록 부드러워서 좋다사탕은 평생을 통틀어가장 달달한 대답 같다늙은 마을에어린 입맛들농번기에는 모두 흙 묻은 손이다트럭이 돌아 나가는 저녁처럼 어둑한 손끝들외상은 몇 달이
3주 동안 언급했던 대로 공안 형성에 마조는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이 원고에서는 마조의 선기 방편이 불교사적 위치에서 어떤 관점으로 평가되고 있는지, 또한 선의 역사상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고존숙어록’에 의하면, 위산영우(771∼853)와 앙산(807∼883)의 선문답이 등장한다[위산이 스승이고, 앙산이 제자]. 위산이 앙산에게 물었다. “백장이 마조 스님을 다시 만났을 때, 서로 간에 불자(拂子)를 든 인연이 있었다. 이 두 존숙의 뜻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대기의 대용을 드러낸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날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날짜들은 자기만의 특별한 이름을 갖는다. 며칠 전 그날은 ‘이스달 여인의 날’,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미스터리한 죽음에 경의를 표하고 기억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오후 한 인물이 홀연히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모든 것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 고독한 방식의 죽음이었다. 그것은 마치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었고, 내 삶의 노고에 깃든 비밀스런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듯하였다. 그러면서도 마치 미래의 동일한 날짜가 되면 다른 누군가 다시 그
수보리 소언일체법자 즉비일체법 시고 명일체법 수보리 비여인신장대(須菩提 所言一切法者 卽非一切法 是故 名一切法 須菩提 譬如人身長大) “수보리야! 일체법이라는 것은 곧 일체법이 아니요 그 이름을 일체법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자면 사람의 몸이 크다는 것과도 같은 것이니라.”그렇다면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불법과 일체법은 과연 어떤 것인가? 또 다시 불법과 일체법이라는 것에 집착할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이를 염려하시어 다시 수보리를 불러 재차 말씀하심이다. “내가 말한바 일체법이 모두 불법이다라고 한 이 법만은 만고에 변할 수 없는
어머니와 나는 하루에 한 번은 꼭 통화해야 일과를 마친 기분이 들 정도로 가까운 모녀 사이다. 언제나 나의 고민을 끝까지 들어주시는 고마운 분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말씀해주시고 조언해 주시는 유일한 분이다. 항상 딸의 ‘인간관계’와 ‘인생’ 문제 전문 상담사 역할을 자처하시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서슴지 않으시는 성격의 소유자이시기도 하다. 때문에 아무리 가까운 모녀 사이여도 가끔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어머니의 진심 어린 조언들이 심기를 건드리는 불편한 말로 전달되는 순간도 더러 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
“가야불교의 역사를 조명하고 그 가치를 알리는 데 있어 불교계 언론은 가장 든든한 힘이 됩니다. 특히 법보신문이 가야불교 역사 복원 활동에 신장이 돼 주길 바랍니다.”가락 고찰 밀양 부은사 주지 지원 스님이 법보신문 법보시에 동참하며 ‘가야불교’의 가치를 알리는 활동에 박차를 가할 것을 다짐했다.부은사는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의 천태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2000년 역사의 가락 고찰로 가야불교의 법향이 가득 서려 있는 도량이다. 지원 스님은 “부은사 주지 소임을 맡은 인연으로 가야불교에 깊이 연구하게 됐다. 가야불교의 가치를 발굴
“법보신문은 까칠하면서 날카롭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닙니다. 불교계를 향한 애정 어린 비판, 부처님 가르침을 사회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열정이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법보시캠페인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꺼이 참여하게 됐습니다.”태고종 사회부장 금산도휘 스님이 교도소·관공서·병원법당·군법당 등에 법보신문을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올해 4월 태고종 제28대 총무원장에 상진 스님이 당선된 이후 금산 스님은 상진 스님 첫 집행부에서 사회부장을 맡았다. 금산 스님은 “소임 맡은 지 겨우 5개월차의
법관찰 위빠사나명상에서 첫 번째는 5장애(五障礙), 오개(五蓋) 명상법이다. ‘장애’라고 한 것은 수행의 과정에서 다섯 가지 거친 번뇌들이 수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오개에서 ‘개(蓋)’는 덮개를 의미하는데, 번뇌가 수행자의 마음을 가리거나 명상 대상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덮개라고 했다. 유리창에 커튼을 치면 바깥이 보이지 않고, 빛나는 보석도 헝겊으로 덮어버리면 보이지 않는다. 위빠사나명상은 대상을 정확하게 보고, 명료하게 알아차리는 명상이다. 그런데 번뇌가 마음을 오염시켜서 수행의 진전과 향상을 방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5장애는
한 해를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감사의 달 12월이다. 2023년을 돌아보니 좋은 인연과 만남, 뜻깊고 감사한 추억, 무수한 집착심과 만나며 하심(下心)과 겸손을 배운 경험들이 떠오른다. 새해 출발은 내 인생 첫 책을 내놓으며 나도 세상에 함께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출간의 인연이 법보신문과도 이어져 세심청심에 1년간 12번의 글을 쓰는 소중한 경험도 하게 되었다.만남에는 이별이 뒤따른다. 애별리고(愛別離苦)의 교리를 들지 않더라도 좋은 인연과 헤어짐은 고통이다. 만남 속에 이별이 예정되어 있고, 만남과 이별이 한 쌍임을 그동안
지난주에 마조의 언어에 의한 대기대용 방편이었다. 이어서 이번 주는 몸의 동작이나 행위에 의한 대기대용 사상을 만나보자. ⓐ 마조와 백장이 들판을 지나는 중이었다. 이때 들오리 떼들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마조가 백장에게 물었다. “저것이 무슨 물건인고[是甚麽]?”/ “들오리입니다.”/ “어디로 갔는가?”/ “이미 날아갔습니다.” 마조가 머리를 돌려 백장의 코를 한번 비틀었다. 백장은 아픔을 참느라고 소리를 질렀다. 마조가 말했다. “다시 한번 날아갔다고 말해봐라.” 백장은 마조의 말끝에 깨달은 바가 있었다.이 이야기는 ‘백장야얍(
의상은 당의 지엄으로부터 전수해 온 화엄학의 연구와 홍포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었다. 670년 귀국 초에는 왕경의 황복사, 그리고 676년 부석사를 창건한 이후에는 태백산과 소백산 지역을 무대로 화엄학 전교와 제자 양성에 주력함으로써 교학불교의 주류인 화엄종 개조로서 길이 추앙받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석사를 창건하면서 아미타신앙을 구현하는 가람구조로 설계함으로써 아미타신앙의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전승되었고, 동해 낙산에 관음 진신이 상주한다는 신앙을 정착시킴으로써 관음신앙의 확산에도 기여한 인물로 신봉되어 낙산에서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아야 교정교화 활동도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범죄를 예방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겠죠.”범죄학 연구자를 꿈꾸는 29살의 국유진 불자가 법보신문 법보시캠페인에 동참했다. 재소자들의 재범율을 낮추고 범죄를 미리 예방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보탬이 되고자 범죄학 전공을 꿈꾸는 국씨에게 신문을 통한 교정교화 활동은 조금 다른 방법으로 꿈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이다.누구나 한번 즈음은 텔레비전 드라마 속 주인공 같은 멋진 의사나 변호사를 장래 희망으로 꿈꾸기 마련이다. 중학생 시절 국씨의
저는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58세 ○○○ 라고 합니다. 한달에 한두 번 운 좋게 주어지는 법보신문을 통해 불교의 지혜 가르침과 삶의 숭고함을 배우고 있는 부족한 중생입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고 도움받을 곳 없이 살아오던 제게 법보신문은 신앙심 그 이상입니다. 탐진치 삼독을 잘못 여윈 채 안하무인으로 살아온 제게 법보신문은 참회와 성찰의 깊은 울림으로 죽비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갈 길 먼 수감생활 신실한 불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법보신문을 보내주시길 두손 모아 서원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1706호 / 2023년 11월 2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방편으로 대각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저는 성불도를 중생제도 방편으로 삼아 보급에 앞장서 왔습니다. 하지만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참회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겐 이 방편을 전할 수 없습니다. 법보신문이 또 다른 방편이 되어 이들이 부처님 법 만나 광명의 길로 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음성 견불사 주지 혜현 스님이 재소자들에 대한 포교불사를 발원하며 법보신문 법보시에 동참을 서약했다. 60여년 전 청주 수도사에서 벽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우연한 기회에 ‘성불도’를 접하고 48년째 포교의
“병원에는 환자들만 있지 않아요.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들을 애써 뒷바라지하는 간병인들과 간호사들, 살림을 도맡는 도우미도 있어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그들에게 부처님 법이 가닿길 바라요.”인선호(초하·50) 국제참선지도사가 병실에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법보신문으로 위로받길 발원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참선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는 인선호 명상지도사는 “지나고 보니 슬픈 감정을 견뎌낸 게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 순간의 일부였음을 알았다. 현재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지금 닥친 고
“원오사는 삼보의 가호와 불자들의 보시로 건립된 도량인 만큼,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법석이자 베트남 불자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계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한국에 베트남 전통 불교문화를 알리는 한편, 재한 베트남 불자들의 한국 적응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베트남불교 원오사 주지 팃뜨엉탄 스님은 천안과 양산에 베트남 법당을 개원해 베트남 불자들의 한국생활과 신행활동을 돕고 있다. 원오사 신도가 이주노동자 50%, 결혼이주여성 40%, 유학생 10% 비율로 구성된 만큼, 한국에서 생활
어둠이 빨리 찾아옵니다. 오후가 되면 어느새 문밖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가 다가오나 봅니다. 밤이 길어지는 것을 느낄 즈음이면 그 정점이 다가옴을 알 수 있고 조금 지나면 다시 밤이 짧아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모두 이렇게 가득 차면 다시 줄어들고 작아지면 다시 늘어나는 현상들 위에 살아갑니다. 어제도 밤하늘의 달을 보았습니다. 반달보다 작은 달이 떠올랐습니다. 며칠 전 손톱같이 작은 달이었는데 어느새 커졌습니다. 어찌 보면 달은 작아지면 작다고 걱정하고 커지면 커진다고 걱정하는 나
사찰음식은 오신채를 제하고 생명을 빼앗지 않은 재료를 손질한다. 또 공양을 올릴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만들어진다. 기실 우리는 대부분 요리할 때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타인의 입에 들어갈 음식을 만든다. 자비명상의 게송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가까이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지키듯이, 살아 있는 모든 것에 한량없는 자비심을 발하라’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정신이 ‘요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