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 25주년 맞아 추모세미나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주관역사·선시·차 등 다각적 조명응송은 초의차 맑은 기품 계승 구한말, 일제강점기, 6·25전쟁, 불교정화 등 격동의 세월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았던 응송(應松) 박영희(1893~1990) 스님. 근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독립운동가였으며, 승려이자 문화운동가였던 응송 스님의 삶을 조명하는 첫 세미나가 열렸다.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소장 박동춘)는 11월24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응송 스님 추모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응송 박영희의 삶과 차’를 주제로 열린 이날
열반 25주년 맞아 추모세미나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주관해11월24일, 역사문화기념관서역사·선시·차 등 다각적 조명 평생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더라도 특정 사실 하나만 부각시켜 그 사람의 일생을 부정하거나 아예 외면하는 일들이 종종 있다. 응송(應松) 박영희(1893~1990) 스님도 바로 그런 경우다.응송 스님은 해남 대흥사 승려이자 구한말 신교육을 받은 선각자이며 교육자였다. 청소년기 항일 민병을 시작으로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했으며, 만해 스님과 더불어 청년 불교인들의 비밀결사체인 만당 활동에 참여하는 등 해방될 때까지 독립
대각사상연구원(원장 보광 스님)은 신흥사·성준문도회와 공동으로 11월4일 오후 1시 속초 신흥사 설법전에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설악불교의 귀원정종’을 주제로 열리는 이날 세미나에는 신규탁 연세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며, ▲한국 선의 기원 및 성격(홍사성 불교평론 주간) ▲시문에 나타난 설악산과 신흥사(임연태 금강신문 주간) ▲고암·성준 스님의 가르침(지원 조계종 호계원장) ▲고암 스님의 사상과 계승(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 ▲신흥사 포교전략의 모색(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 ▲설악불교의 전승과 방향(고명석 포교연구실 선임연구원)이
중앙종회, 종단화합 공청회 개최분규 극심할수록 징계자 늘어관용 후퇴․징계 가혹한 산물불교에 민주주의 적용 부적절94년 징계자 이젠 풀어가야멸빈 없애고 제적 활용해야징계 문제 공론의 장 마련해 ‘현대 조계종사는 분규의 역사’라는 말이 있듯 해방 이후 크고 작은 분규로 몸살을 앓았던 조계종. 1950~60년대 불교정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비구‧대처간 갈등이 일었고, 1970~80년대는 종권을 두고 종정과 총무원장, 중앙종회 등이 끊임없는 대결구도를 이어왔다. 1994년 종단개혁으로 종단의 구조적 모순은 일부 해소됐지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주관한일 불교전문가 4인 발표전쟁·전사자 등 합리화 주도현존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군산 동국사에 소장된 자료를 중심으로 불교와 전쟁의 관계를 조명한 자리가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회장 원영상)는 10월2일 동국대 충무로영상센터에서 ‘일본불교의 전쟁참회와 동국사’를 주제로 제14회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원영상 회장의 개회사와 동국사 주지 종걸 스님의 축사로 시작된 이날 학술대회는 김춘호(원광대) 박사의 통역과 정천구, 오인 스님의 사회로 진행됐다.먼저 김두헌 군산중앙고 교사는 일제강점기 금강
“성철이 가만히 보니 시절이 수상했다. 스님들도 하나둘 흩어졌다. 성철은 경찰과 빨치산 양쪽 모두에 의심을 받고 있었다. 봉암사의 실질적인 대표로 인식되어 ‘손봐 줄 대상’이었다. 당시 편을 가르는 사회 분위기로는 양쪽에서 모두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전쟁이 터질 것이라는 소문들이 산문을 넘어왔다. 문경 봉암사는 빨치산들이 오가는 길목에 있었고, 실제로 산사람들이 봉암사 인근에 자주 출몰했다. 이에 군경의 출동도 잦아졌다. 빨치산은 기어이 봉암사에도 들이닥쳐 식량을 약탈해갔다. 어느
“대중을 무섭게 다그친 만큼 성철은 자신에게 엄격했다. 결사 중에도 생식을 계속했다. 쌀 두 홉을 물에 담갔다가 간을 하지 않고 씹어 먹었다. 일체 찬도 없었다. 성철은 이때도 장좌불와(長坐不臥)를 계속했다. 성철의 방엔 목침이 없었다. 누구도 이불 위의 성철은 본 적이 없었다.”봉암사는 희양산 흰 바위만큼이나 높이 솟았다. 봉암사에서 일어난 일은 금방 퍼져나갔다. 선승들이 전국에서 찾아왔다. 부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절 살림은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 선방에서는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알고 싶고 보고 싶었다. 봉암사 스님들
“경허가 근대 선의 무대를 열어 선을 중흥시킨 주역이라면, 용성은 깨달은 선사이면서도 불교를 새로운 세상에 적응시키려는 개혁적인 행보를 이어간 스님이다. 이런 측면에서 용성은 개신적(改新的)인 고승이다. 그는 계정혜 삼학을 중요시하고 보수적인 가치관을 근간으로 삼으면서도, 불교가 현실에 적응하고 생존할 수 있는 노선과 방략을 고민했고 그것을 실천했다. 이른바 지성적인 노선이다.”“서암 종정은 자신의 소신(율장, 승단 질서 등에 유의)에 의한 종단안정 및 개혁을 시도했으나 혁신세력의 강한 반발로 종정직을 사퇴했다. 제도권 종단을 떠난
덕숭총림·선양회, 9월20일만공대선사 조명 학술대회수연 스님, 항일행적 증언“독립유공자로 선정돼야”발제자들, 한 목소리 주장대선사로만 알려졌던 만공 스님이 과거 광무황제의 아들 의왕·만해 한용운 스님 등과 교류하며 제2의 3.1운동을 추진하고자 했으며 드러나지 않게 독립운동 자금을 대고 독립을 발원하는 천일기도를 이끄는 등 물질적·정신적으로 활발한 항일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덕숭총림 수덕사(주지 정묵 스님)와 경허·만공선양회(이사장 옹산 스님)가 9월20일 수덕사 황하정루에서 일제강점기 만공 선사의 위상을 주제로 개최한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회장 원영상)가 10월2일 오후 1~5시 서울 동국대 충무로영상센터 227호실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일본불교의 전쟁참회와 동국사-동국사 소장자료를 통해서 본 불교와 전쟁’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동국사 주지 종걸 스님의 축사 및 동국사 소장자료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다.이어 본 학술대회에서는 ▲일제 강점기 군산 금강사(해방 이후 동국사)의 창립(발표: 김두헌, 토론: 김광식) ▲타카하시 치쿠메이를 통해 본 조동종의 전쟁(발표: 이치노헤 쇼코, 토론: 김호성) ▲제국주의 전쟁과 우물가의 여인들-종교적
경허·만공선양회·덕숭총림 수덕사9월20일 ‘만공선사 위상’학술대회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만공대선사의 항일운동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경허·만공선양회(회장 옹산 스님)와 덕숭총림 수덕사(주지 정묵 스님)는 9월20일 오후 1시 수덕사 황하정루에서 ‘제7회 만공대선사 학술대회-일제강점기 만공선사의 위상’을 개최한다. 학술대회는 심응섭 순천향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이은윤 전 중앙일보 대기자의 ‘만공선사의 선지와 가풍’ 주제 발표를 시작으로 진행된다. 이어 이석 동국대 교수가 ‘만공선사와 의왕’을, 김광식 동국대 교수가 ‘만
대각사상연구원(원장 보광 스님)은 최근 ‘대각사상’ 제23집을 펴냈다.‘용성과 한암, 그 지성의 원류를 찾아서’를 특집으로 다룬 이번 논문집에는 △용성과 한암의 행적에 나타난 정체성(김광식) △‘용성선사어록’의 구성 및 선사상사적 의의(김호귀) △백용성의 선농불교에 대한 재조명(이수창/마성) △백용성 율맥의 성격 및 전개(이자랑) △백용성의 근대와의 만남과 불교개혁 운동(김종인) △계잠(戒箴)의 분석을 통한 한암의 선계일치적 관점(염중섭/ 자현 스님) △화두참구의 두 가지 방법과 한암선(윤창화) △한암의 계율인식 고찰(백도수)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