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파사나 초보-집중수련 위파사나 수행처 보리수선원은 5월 25일부터 31일까지 안성집중수행처에서 7일간의 집중수행을 실시한다. 이번 집중수련은 일주일동안 함께 생활하며 집중적으로 위파사나 수행을 하게 된다. 특히 붓다락키타 스님의 법문과 개인 인터뷰 시간도 있어 자기의 수행정도를 점검해볼 수 있다. 회비는 없으나 불교의례와 오계를 지킬 수 있는 수행자라야 한다. 한편 이에 앞서 5월 12일부터 23일까지는 초보자를 위한 수행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오전 11시∼오후 3시, 오후 7시 30분∼9시 30분까지 하루에 2회 실시된다. 02)517-2841 법왕사 고승초청 대법회 대구 법왕사는 5월 1일부터 ‘연등맞이 8일 큰스님 초청 주·야간 대법회’를 실시한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여름은 휴가와 방학의 계절이다. 산, 들, 계곡, 바다로 휴가를 떠나 바쁜 생활 속에서 오붓하게 가족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고 머리를 식히며 일상에서 탈출해보는 기회 다. 인파로 북적고, 늘 비슷한 피서 일정에 성보박물관 참배를 추가해 보면 색다른 휴가가 될 것이다. 방학을 맞아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는 성보박물관도 있어 평소 만날 수 없던 전시도 접할 수 있다. 특히 자녀들에게는 불교문화를 소개하고 문화재를 통해 우리 문화를 공부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 권할 만 하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은 국내 성보박물관 중에서 시설, 규모, 전시 내용 면에서 손꼽히는 곳이다. 현재 박물관 중앙홀에서 '괘불탱 특별전' 중이다. 1705년에 제작된 10미터 길이의 예천 용문사 괘불탱을 10월 13일까지 전시한다. 보
중국 진나라 시대의 고승인 천태대사가 저술한 을 살펴보면‘불법은 삼귀의로써 근본을 삼으니, 삼귀의는 모든 계품과 온갖 세간을 벗어나는 착한 법을 다 일으킨다’고 이르고 있다. 삼귀의계를 받아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스님들께 의지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불자가 되는 첫걸음인 것이다. 삼귀의계 수계가 불자됨의 시작이라면 오계, 팔관재계, 보살계 등은 재가불자가 생활하면서 지켜야할 규범들이다. 재가불자들이 지녀야할 계가 이처럼 여러 종류인 것은 각자 행하고 삼가할 수 있는 수준에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삼귀의계는 특정한 행동을 제한하는 금지의 계가 아니다. 불자 되기를 거부하고 ‘개종’하지 않는 한 행동으로 인해 계를 범하는 일이 없다. 오계부터는 특정한 행동을 제지하는
극락전 아미타 삼존불 미소에 중생의 아픔 씻은듯 사라져 성불사 편을 연재하는 동안 성불사 부처님을 보고 싶다는 독자의 전화가 있었다. 독자의 요청에 따라 극락전의 아미타 삼존불 사진을 게재한다. 정교한 조각, 완벽한 비례, 온화한 펴정 등 조선불상의 진수를 보는 듯 하다. 성불사 극락전 안의 아미타 삼존불은 전형적인 조선 후기(18세기) 양식이다. 목조 불상인데 온화한 표정과 자비로운 미소의 표현이 일품이다. 두부와 몸체가 이루고 있는 비례도 안정돼있다. 빼어난 조각 솜씨와 안정감까지 뛰어난 것으로 보아 수작이 분명하다. 주불인 아미타불의 표정은 물론이고, 좌우보처인 대세지,관세음보살의 미소 또한 세태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중생들의 애환
태고총림 선암사가 불교문화재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연건평 114평 규모의 성보박물관을 건립, 3월 23일 개관한다. 선암사 성보박물관(관장 지허 스님, 선암사 주지)은 선암사가 소유하고 있는 사찰 문화재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보존·전시하기 위해 자비 5억 7천여 만원을 비롯해 국·도·시비 등 총 16억 5천 만원을 투입, 지난 98년 12월 경내에 연면적 376.2㎡에 지상 2층, 연건평 114평 규모의 목조 한옥으로 건립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6월 완공했다. 선암사는 박물관 완공후 유물 목록 관리카드 작성, 전산 및 기록 보존장비, 전시대 제작 등 개관 준비를 진행해 왔다. 선암사 박물관에는 국가지정 보물 4점을 비롯해 도 지정유형문화재 5점, 불교회화 70점, 전적 및 기문·서화류 468점,
염불 28.3%…참선 20.7% 보다 앞서 ‘쉽다’이유로 ‘열등한 수행법’오해도 만일염불 전통 신라 때부터 이어져 5월 17일 오후 8시. 어둠이 짙게 깔린 청계산 정토사에는 40여 명의 스님과 불자들이 각각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하고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흐를수록 염불소리가 조금씩 높아져 갔고, 염불하는 이들의 얼굴에 흐르는 평온함도 차츰 깊어만 갔다. 5년째 염불수행을 하고 있다는 보건복지부 장승락(53·본연) 사무관은 “참선 등 여러 불교수행을 해봤지만 결국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것이 염불이었다”며 “매일 새벽 집에서 1시간씩 염불을 하는 것은 물론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보건대 송인환(47·지명) 교수는 “염불은 언제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한 시대를 풍미한 고승들의 삶 속에는 지고지순한 진리의 결이 담겨져 있기에 고승들의 삶의 한 편린도 현대인들에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동화작가 우봉규 씨의 『산문, 그 아름다운 이야기』는 한국불교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스님들의 감동적인 일화를 담고 있다. 피고름으로 만신창이가 된 한 거지 여인을 부처님 품으로 인도한 경허 스님, 석유 곤로로 죽을 끓였다고 해서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내가 기름을 은 죽을 먹겠느냐며 공양을 물렸던 동산 스님, 한국전쟁 당시 군인들이 백양사를 불 태우려 하자 ”법당에 불을 지르려거든 나도 저 법당과 함께 태워 죽이라“며 가부좌를 틀었던 만암 스님 등의 일화 한 편 한 편에는 고승들의 진면목이 살아 숨쉬고 있다. 우봉규 씨는
고운사 숲속길. 내게 있어서 절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절은 경북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에 있는 고운사(孤雲寺)다. 유감스럽지만 이 절에서 수계를 받았기 때문도 아니고, 무슨 큰 깨침을 얻었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내가 어릴 때 살던 경상북도 안동군 일직면 원호동에서 가까운 절로, 초등학교 때 원족(遠足)인지 소풍(逍風)인지를 가 내 일생 절이라고는 처음 본 절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 때는 물론 이 절이 681년 신라의 의상(義湘)조사가 창건한 절이라는 것도, 처음에는 고운사(高雲寺)라 하였으나 그 후 신라의 고승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그의 호를 따 고운사(孤雲寺)라 하였다는 것도, 그 후 임진 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들을 위해 식량을 모아두고, 부상당한 승병
대구 수성구 법왕사(주지 실상 스님)가 6월 1일부터 100일 동안 고승 100명을 초청, 백고좌 법회를 봉행한다. 오는 9월 8일까지 계속되는 법왕사 백고좌 법회에는 조계종 원로 스님을 비롯한 대구 동화사 주지 지성, 은해사 주지 법타, 직지사 주지 자광, 파계사 율원장 철우, 파계사 주지 성우 스님 등 지역을 대표하는 고승들이 법왕사 불자들을 위한 큰 법석을 펼쳐 보인다. 또 본지 사장 겸 연꽃마을 이사장 각현 스님과 녹색연합 공동대표 원택, 중앙승가대 교수 보각, 전 조계종 포교원장 무진장, 소쩍새마을 원장 현각 스님 등 지역 포교와 복지, 참여불교운동에 직접 나서고 있는 스님과 지도자들도 초청된다. 한편 법왕사는 백고좌 법회 입재 하루 전날인 5월 31일 산사음악회를 봉행했으며 회
동반 수행법으로 염불 - 독경보다 선호 무명타파 - 열반증득…다른 주술과 차이 “스타타가타야 토스니샴 시타타파트람 아파라지탐 프라티앙기람 다라니∼” 서울 반포동 강선희(선명화) 보살의 하루 일과는 능엄주(楞嚴呪) 염송으로부터 시작된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능엄주를 염송 하다보면 어느새 삼매에 빠져들어 자신도 모른 채 계속해서 능엄주를 염송 기도한다. 98년 불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자신에 맞는 수행법을 찾던 중 우연한 기회에 책을 통해 능엄주 수행을 배우게 된 선명화 보살은 매일같이 능엄주 염송을 시작했고,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능엄주 진언 수행에 매진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능엄주에 전념하게 된 것은 진언 수행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 의식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면
왼쪽부터 용성 스님 성철 스님 도성 스님 혜일 정사 진언은 수행에 있어 마장을 극복하고 마음을 잘 다스리고 계율을 능히 지키며 불법을 잘 받들어 열반에 이르게 해 옛 고승에서부터 수많은 선사들에 의해 강조돼 왔다. 특히 진언 수행을 강조했던 대표적인 고승으로 신라시대 원효 스님을 들 수 있다. 원효 스님은 “만일 어떤 중생이 십악업과 오역죄를 지은 것이 세상에 가득한 먼지처럼 많아 목숨을 마치고 나쁜 세계에 떨어지게 되었을 지라도, 광명진언(光明眞言)을 108번 외운 흙모래를 죽은이의 시신 위에 뿌려주면 즉시 몸에 광명을 얻게 되고 모든 죄의 업보를 없애게 된다”고 진언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일제시대 민족대표 33인 중에 포함됐던 용성 스님도 조석으로 천수다
개신교 집안의 이능화 10여년 자료수집 불교에 완전 매료 상현(尙玄)거사 이능화(李能和, 1869, 1-1943, 4)의 대표작 『조선불교통사』는 한국불교 연구의 종합적 자료집으로서 1600년 간 우리 불교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한 금세기 불교사서 중 최대의 명작이다. 그의 나이 49세 때인 1918년 3월 10일 만 10년간의 탈고 끝에 신문관에서 간행된 이 책은 순수한 창작 저술이라기보다는 자료를 모아서 시대별, 인물별, 사항별로 정리한 뒤 자신의 견해를 붙인 말하자면 편저(編著) 형식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간행된 종합적인 불교역사서로는 그 어느 책보다도 가장 방대하고 치밀하며 완벽하다. 본디 개신교 집안 출신으로 한학은 물론 영어, 불
해골에 떠 마신 물 한모금 연못에 핀 연꽃 한 송이에 확철대오한 선사 37명 소개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던 원효는 한 토굴에서 하룻밤을 지내다 잠결에 갈증이 생겨 물 한모금을 마셨다. 물맛이 시원하고 달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토굴은 공동묘지의 한 무덤이었으며 물을 떠 마시던 그릇은 해골이었다. 하룻밤을 더 지낸 원효는 순간 활연대오했다. 원효는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음이 생기면 만물의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면 무덤 해골 물과 맑은 샘물이 둘이 아니로다” 무산 스님의 『선사들의 오도송』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사들의 깨침의 법음을 모은 책이다. 20여년간 고승들의 문집과 선종사 관련 문헌들을 탐독해 삼국시대의 원효를 시작으로 고려의 진각, 백운, 나옹화상
신부들의 불교학 연구가 늘어가고 있는 반면 스님을 비롯한 불교학자들의 타종교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과거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고승들은 이미 도교와 유교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이를 통해 불교학에 접근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불교계의 수행 및 학문적 방법에 대한 전체적인 역량이 저하된 것과 선불교의 영향으로 언어문자를 경시하는 풍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국대 불교학과 윤영해 교수는 “불교가 사회참여, 실천불교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타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바탕이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6월 11일(수)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엠네스티 국회모임 ‘특별세미나-북핵위기와 북한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 접근 방식의 모색’=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 053)426-2533 △천태종 금강대학교 ‘개교 기념 불교 학술 세미나’=오전 10시, 금강대학교 대강당. 041)731-3032 △조계종 중앙종회 ‘출가연령 제한에 따른 공청회’=오후 2시, 조계사 교육문화회관. 02)735-5868 △의성노인복지관 ‘개관 1주년 기념식’=오전 11시, 의성문화회관 054)833-6006 △통도사 성보박물관 ‘국가지정문화재특별전 통도사의 불화’=오전 9시, 통도사 성보박물관. 055)382-1001 △김인숙 ‘목걸이 전시회’=오전 9시, 성곡미술관, 19일까지. 02)737-7650 △동산반야회 ‘
깨달음의 격 떨어뜨리는 현상 교육원 대안찾기에 기대 중국에 설봉(雪峰·822∼903)이라는 큰스님이 있었습니다. 의존선사(義存禪師)로 불리기도 했던 이 스님은 수행력에 관한 한 가히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설봉 스님은 깨달음을 이룰 때까지 아주 오랜 시일이 걸렸던 분입니다. ‘세 번 투자산에 가고 아홉 번 동산에 갔다(三到投子 九至洞山)’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설봉 스님은 피나는 구법의 정진을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투자산(投子山)은 안휘성 양자강에 접한 산으로 대동화상(大同和尙·819∼914)이 이곳에 주석해 선지(禪旨)를 드날리면서 투자라는 별칭을 얻게한 곳이고, 동산(洞山)은 강서성 예장의 균주에 있는 산으로 저 유명한 동산양개(洞山良价·807∼869) 스님이 주석하며
백제-통일신라에 큰 영향 보리류지를 위시한 역경승 집단이 북조의 역경사를 대표한다면 남조의 대표적인 역경가는 진제(眞諦 499~569)이다. 웬 일인지 중국에서 진제는 두 가지 이름을 지녔다. 첫 번째 이름은 범어로 ‘빠라마르타(Parama-rtha)’인데 원음을 살려 ‘파라말타(波羅末陀)’로 하거나 의역을 써서 ‘진제’라 한다. 두 번째 이름은 범어로 ‘구나라따(Gun·arata)’인데 ‘구나라타(拘那羅陀)’로 음역하거나 ‘친의(親依)’로 의역하기도 한다. [당고승전] 등에서는 ‘구나라타’란 이름자를 사용하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진제’란 이름자를 즐겨 쓴다. 왕조의 잦은 교체기에 중국에 왔기 때문에 진제의 중국 생활은 그리 순탄치 못했으며 한마디로 말해 떠돌이로 일생을 마쳤으니
동아시아역경사 - 36국 언어에 능통한 어학 천재 40년간 150만부 이상 번역 원문에 충실한 직역 방법 불경 번역의 새로운 장 구축 서진 시대를 대표하는 역경가로 축법호(竺法護)를 손꼽는다. 축법호의 선조는 본래 대월씨국 사람인데 몇 대에 걸쳐 돈황에 살았다. 본래 대월씨국 출신이기 때문에 ‘지(支)’를 성으로 삼는 것이 중국의 통례이지만, 축법호의 경우는 인도 출신인 스승 축고좌(竺高座)의 성에 따라 ‘축(竺)’을 성으로 삼았다. 그의 본 이름은 ‘다르마락샤(Dharmaraksa)’이다. 8살 때 출가하여 불법을 전하는데 뜻을 세워 스승을 따라 서역 각지를 유랑하며 서역 여러 나라에 흩어져있던 불경을 수집하여 돈황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서역의 36국 언어에 능통했다고
조선 선조의 맏손자로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후 그곳에서 출가해 온갖 역경을 딛고 큰 발자취를 남겼던 고승 일연(日延, 1589∼1665) 스님. 본지(658호)에 단독 보도되기도 했던 스님의 혼이 409년만에 다시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일본 후쿠오카 묘안사(妙安寺) 주지 가도다 쇼에이 스님과 부주지 가도다 쇼엔 스님은 일연상인(上人) 환국추진위원회(회장 양은용)와 금산사(주지 평상 스님) 초청으로 10월 23일 한국을 방문했다. 15cm 크기의 존안상을 모시고 한국 땅을 밟은 이들은 입국 즉시 서울 종묘와 덕수궁을 찾았다. 스님이 한평생 그리워했을 혈육들의 위패와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또 다음날인 24일에는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스님의 할아버지 선조대왕목릉을 찾아
해방 이후 조계종 정화불사화 통합 조계종단을 구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청담(1902∼1971) 스님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청담 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회고하고 근현대 조계종사적 의미와 가치를 평가하고 정리하기 위해 열린 이번 행사에서는 100주년 기념대법회와 청담기념관 개관식, 기념논총발간식 등 이어졌다. 특히 10월 15일 도선사에서 열린 기념대법회에는 석주·성수 조계종 원로 스님과 정대 조계종 총무원장, 지하 중앙종회 의장 스님 등을 비롯해 김수환 추기경, 한화갑 민주당 대표, 이상배 한나라당 정책위원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정대 스님은 이날 법어에서 '청담 스님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살린 위대한 고승'이라며 '그 분의 가르침을 되새겨 한국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