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미-단계 자상하게 설명 “지극한 연민이 곧 대보리심” 불교를 수행의 종교라고 한다. 수행은 불교를 다른 종교와 구분 짓게 하는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정작 불교를 믿고 실천하겠다며 귀의한 불자들조차 수행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분명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전을 수지하고, 부처님이 행했던 좌선, 명상 등을 좇고 있는데도 정작 그 근본은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수행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보니 자연 온갖 수행법이 난무한다. 한국불교의 대표 수행법으로 인정되는 참선 수행법은 보통의 불자들에게는 여전히 넘을 수 없는 큰 벽으로 남아 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선지식들의 10년 또는 50년을 눕지 않았다는 놀라운 수행
300 한국불자 감동속 ‘입보리행론’ 강설 “이타행 실천할 때 보리심 얻는다” 강조 부처님이 수천의 제자를 위해 펼친 법석의 장엄함이 이와 같았을까. 여수 석천사(주지 진옥 스님)가 주관하고 『법보신문』이 협찬한 ‘달라이라마의 한국 대중을 위한 첫 법문’이 한국과 세계 30여 개 국의 불자 35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한 가운데 지난해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 인도 북부의 오지인 다람살라의 남걀사원에서 장엄하게 봉행됐다. 세계 가톨릭의 총본부인 로마의 교황청은 물론 세계의 60여 개 국을 자유롭게 왕래하면서도 중국의 강압으로 유독 한국만은 올 수 없는 달라이라마는 한국인 불자들이 청해 성사된 이번 법석에서 한국에 갈 수 없는 서운함을 훌훌 털어내듯 세계 최고의 현자다운 가르침을 더
“속리산으로 가 길상초(吉祥草)가 많이 나 있는 곳을 찾아서 그곳에 절을 세우라”는 진표 스님의 당부를 그의 제자 영심 등이 그대로 따라 절을 지었고 절의 이름도 길상사로 정했다는 기록은 속리산 법주사의 창건 연기이다. 두루 알려진 것처럼 법주사는 금산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미륵신앙을 대표하는 으뜸성지이다. 흔적만 남은 성소가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미륵신앙의 중심지로 당당히 그 위상을 과시하고 있는 곳이니, 법주사를 빼놓고 우리나라 미륵신앙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법주사가 미륵성지임을 알려주는 으뜸 표식은 ‘마애여래의상’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이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마애불로 부조(浮彫)로 높이가 5미터에 이르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216호로 지정됐다. 두 다리를
올바른 질문이 바른 답변 유도 제대로 묻고 사는 한 해 됐으면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려 대중 앞에 선보이는 화가들의 작업을 두고, ‘옷을 홀딱 벗은 채 백주 대낮에 거리를 달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림 대신 글로써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기자들의 본체는, 인터뷰 기사에서 가장 극명하게 읽힌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약간의 살을 붙여가며 작성하는 해설성 기사는 옷으로 치면 때와 장소를 고려한 정장을 입은 것과 마찬가지로 본래 모습 가운데에 단점은 적당히 가리고 장점은 그런대로 잘 드러낸 경우와 비슷하지만, 어떤 한 사람을 콕 집어 낱낱이 해부한 후 작성해야 하는 인터뷰 기사 만큼은 아무리 노련한 선수라도 자신의 살림살이가 날것으로 드러나기 십상이다
“오늘 다람살라의 날씨가 유달리 춥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의 스님들께서 한국의 추위를 고스란히 이 곳으로 몰고 온 것 같습니다.” 달라이라마는 법회 중 농담을 잘 해 청중들이 보다 법문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부처님의 11대 제자가 ‘유머 제일’이었다면 달라이라마는 그 맥을 이었을 게 분명하다. 한국 스님들이 추위를 몰고 왔다며 법상에서 코를 닦고 있는 달라이라마. 한국 불자를 위한 대중 법회 첫 날인 29일 추위에 떨고 있는 대중들을 향해 달라이라마는 ‘추위’를 주제로 말문을 열며 다소 긴장한 한국의 불자들을 편안하게 했다. 내용인 즉 “갑자기 다람살라의 날씨가 추워진 걸 보면 아마도 이 추위를 한국의 스님들이 가져왔으며 추위 속에서 한국인 스님들의 머리가 유난히 빛이 난다”는 것이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말씀을 제대로 통역하지 못한 것 같아요. 아마 한 3년 정도 더 통역을 연습하고 티베트 불교를 공부한다면 성하의 가르침을 보다 완벽하게 한국의 불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달라이라마의 한국 불자를 위한 첫 대중 법회의 통역을 담당했던 박은정(30·법명 뗀진 된메 ; ‘법을 밝히는 등불’이란 뜻) 씨의 안타까움이 담긴 소감이다. 남걀사원의 강원인 체니 롭다의 사범학교에 해당되는 ‘사라학교’에서 만 3년째 티베트 불교를 공부해 온 그녀는 “준비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성하의 첫 법문을 무사히 마쳐 다행”이라고 말하면서 “그 동안 우리 한국 불교는 같은 대승 불교이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불교 경전’이 초기 결집 때의 내용을 가장 충실하게 간직
“당초 한국인 불자들을 위한 법문이 한 번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한국의 불자들이 다시 법을 청하니 당연히 법을 설해야겠지요. 올핸 5일간 공부합시다.” 지난해 12월 3일간 한국의 불자들을 위해 첫 대중 법문을 한 달라이라마가 올 10월경 다시 한 번 한국의 불자들을 위한 대중 법석의 법상에 오른다. 달라이라마는 12월 29일 오전 한국 대중 법문단의 대표자를 만난 자리에서 “한 번의 법회로는『입보리행론』을 마칠 수 없으니 2004년에 다시 법문을 해 달라”는 대표단의 청을 쾌히 받아 들였다. 이에 따라 달라이라마의 한국인을 위한 대중 법문은『입보리행론』을 마칠 때까지 해마다 정기적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구체적인 일정이나 기간은 여수 석천사와 달라이라마 비서진이 추후 협의해 최종 결정하
법문 기간 내내 매일 오전 9시 시작돼 매일 오후 4시 하루의 법회 일정이 마무리되는 달라이라마의 한국 불자를 위한 대중 법석은 한국의 불자만을 위한 법석이 아니라 ‘세계의 불자를 위한 법석’이었다. 15년 째 달라이라마의 공식 영어 통역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롭상 조르덴 스님이 성하의 법문을 동시 통역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대만 불자들의 지난해 8월 대중 법회와 마찬가지로 한국인을 위한 대중 법석에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비롯한 이탈리아, 이스라엘, 스페인, 미국, 폴란드, 브라질, 일본, 대만, 호주 등 세계 30여개국의 불자 35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해 ‘인종 시장’을 방불케 했다. 그렇다면 세계 각국의 불자들은 어떻게 성하의 법문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해마다 적게는 2-3회
범국민 명상 운동을 기획하고 있는 강북삼성병원의 이시형 박사〈사진〉가 지난해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 열린 달라이라마의 한국 불자를 위한 첫 대중 법문에 동참해 성하를 친견했다. “당신의 존체를 불교와 명상, 선의 홍포를 위해 선뜻 실험의 대상으로 보시해 특히 성하를 존경한다”는 이 박사는 “직접 성하를 친견하고 나니 명성에 비해 그 성격이 대단히 소탈한 분이었고 명상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항상 명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티베트와 달라이라마께선 현재 중국의 압력으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회에서 설법을 하시는 성하의 얼굴에선 ‘망명의 그늘’도, 또 그로 인한 긴장감도 도대체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국민 명상 운동을 펼치기 전 세계적인 명상 수행
달라이라마의 대중 법문을 주최한 한국의 불자들은 1.3m 높이의 법상에 올라앉은 달라이라마를 직접 볼 수 있는 남걀사원의 중앙 법당에 자리했다. 물론 다른 나라의 불자들은 중앙 법당 바깥의 주변 공간에 앉아 체감 온도 0도의 제법 쌀쌀한 날씨 속에서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경청해야만 했다. 남아프리카 아날리 알리스(왼쪽). 미국인 필립 호리츠(오른쪽). 바깥 법당에선 달라이라마의 존체를 직접 볼 수 없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인 아날리 알리스(43·여 사진 오른쪽) 씨는 “대만 불자들에 이어 한국의 불자들 역시 달라이라마를 법사로 대중 법석을 열게 돼 무척 부럽다”면서 “부디 이런 법회를 통해 성하의 맑은 영성을 더 많은 한국의 불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당부의 뜻도 잊지 않았다. ‘
부처님 말씀대로라면 머리를 깎으면 계를 받고, 계 받은 뒤에 받은 계를 배우고 익히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우리는 계 받는 일이 운전면허시험장에서 학과와 기능에 합격하면 1종 또는 2종 면허증을 주듯 하니, 부처님 말씀과는 반대로이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비구가 비구의 계율을 모른다. 비구가 모르니, 비구니는 당연히 모른다. 이러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포살인데, 포살도 하지 않으니 더더구나 알 길이 없다. 나는 지금 이 글을 통해서 율원에 방부를 들이려는 학인들께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율원의 계율공부를 하나에 과정으로 여기지 말고,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마음으로 와달라는 것이다. 설령 지금까지는 부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더라도 율원에 입방하면 먼저와 같이 살지 않겠다는
술 마시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다. 재산을 소비하게 되고, 병이 생기게 되며, 잘 다투게 되고, 나쁜 이름이 퍼지며, 분노가 폭발하기 쉽고, 지혜가 날로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그 간 불교 교리를 공부해 오는 동안에 수행 없이는 불교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불교는 생활 불교일 때 종교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지, 지식 이론의 이해에 그친다면 참다운 종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틈나는 대로 독경, 염불, 사경 등 수행을 계속하면서 여름과 겨울 방학 때, 전국의 유명 사찰에서 실시하는 수련회에 참가하는 기회를 가지기도 하였다. 특히 사찰수련회의 색다른 체험에서 크게 감동을 받았다. 송광사에서의 묵언 수련, 해인사의 철두철미한 계율 준수 생활과 삼천 배 철야 정진, 불국사에서의 삼보일배 탑돌이와 석굴암 감실 안에서의 새벽 예불의 장엄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상의 여러 수행을 통해 얻은 내 나름의 결론을 요약하면 부처님께서
수행으로 참다운 ‘인생역전’ 참회 눈물로 평생 수행 다짐 또 한해가 바뀌었다. 지난해 내가 인생역전을 꿈꾸며 매달린 것은 명상이다. 위파사나 수행은 “스스로의 관찰능력을 통해 번뇌를 제거하고 지혜를 발견하여 해탈을 얻는데 있다.” 처음에는 그냥 남들이 하는 대로 반가부좌에 한 시간 반 정도를 앉아있으니 잘 모르겠고, 다리만 아프고 집중이 잘 안되었지만 관의 힘이 조금 생기자 그동안 세세생생 쌓아놓았던 업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있어도 영상이 뜨고, 전생의 일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마치 브레이크 망가진 자전거를 타고 비탈을 내려가는 그런 심정이었다. 집중수련은 그래서 필요했다. 집중수련은 관찰의 힘을 증가시켜서 올라온 업을 제도하고 정리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나는 세 번의
지식 접근 한계 느껴 화두 선택 스님들 지도받으며 선방서 정진 정녕 올바른 삶은 어떤 것일까? 임종시 침대에 누워 아들과 가까운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과 이 생(生)에서의 마지막 말을 나눌 때, “나는 여한(餘恨)없이 살았다. 다시 살아도 나는 이렇게 살 것이다.”라고 의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올곧은 삶’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소박한, 그러나 매우 진지했던 나의 소망은 마음공부와 수행을 근본으로 하는 불교세계와 나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조사어록, 불교경전 등을 읽으면서 법문을 듣고, 스님의 안내에 따라 좌선수행을 흉내내보면서 나는 불교의 바다에 조금씩 조금씩 빠져들어 갔다. 특히 ‘중중무진(重重無盡) 법계연기(法界緣起)’를 설명하고 있는
방한암(方漢岩) 큰 스님은 조선조 말 1876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22세 때 우연히 금강산 구경길에 나섰다가 장안사(長安寺) 행름노사를 만나 삭발 출가하였다. 24세 때에 당대 최고의 선지식 경허대선사를 청암사에서 만나 『금강경』을 배우던 중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구절에서 큰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개안(開眼)의 기회를 얻었다. 그 후 스님은 해인사, 통도사를 거쳐 평안도 맹산군 도리산에 있는 우두암에서 홀로 참선수행하던 중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가 홀연 큰 깨달음을 얻고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읊었다. 한암 스님의 생전 모습. 부엌에서 불 지피다/홀연히 눈 밝으니 이로부터 옛길이/인연따라 분명하네 만일 누가 달마스님이
청년을 향한 최석호 법사의 수행메시지 책 전면에 걸쳐 주옥같은 이정표 ‘가득’ “막연한 비굴함 속에, 또 막연한 교만함 속에 헛된 인생으로 꽃다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크게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불꽃같은 정열로써 인생을 살고자 하는 분들에게, 부처님의 제자답게 참다운 보살행을 실천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약간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990. 6. 20 최석호” 14년 전, 그러니까 1990년 이 책이 막 발간될 무렵은 초년기자 시절이었다. 지금은 삭발하여 저명한 스님(법륜 스님)이 되었지만, 저자 최석호 법사로부터, 당시로서는 다소 생경한 느낌의 제목인 『젊은 불자들을 위한 수행론』(중앙불교교육원출판부)을 선물 받았을 때, 그리고 그날 저녁 이
궁극적 깨달음에 대한 끝없는 회의 우곡 선사 만나 참 수행 의미 깨쳐 참선수행을 통하여 선정(禪定)의 맛이 살짝 살짝 느껴지는 순간, 수행과 현실 사이에는 자그마한 틈새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수행과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병행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이라는 의식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궁극적인 마음의 평정, 깨달음이라는 것은 선택된 자들만이 가 닿는 신비스러운 곳인데, 어불성설 너 같은 중생이 감히, 네 주제를 알아야지!”라고 자문자답하면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였다. “수행하는 시간만이라도 마음의 평정을 얻었으면 됐지, 또 무슨 욕심, 스님들처럼 출가해서 수행을 전업으로 삼아도 마음이
배 움직임 관찰로 쉬운 ‘마음집중’ 유도 초기불교 정신 계승한 남방수행법 확립 마하시 스님의 수행법이 이뤄지고 있는 미얀마 양곤 마하시수행처. 1991년 필자는 마하시 스님의 수제자이신 우 판디타 스님이 지도하시는 양곤의 판디타라마라는 수행처로 위파사나 수행을 하러 가기 전에 마하시 스님의 수행법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하지만 3개월간의 집중수행을 하고 난 뒤에야 마하시 스님의 가르침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 수행법이란 직접 수행을 해 볼 때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서 확인한 것이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실제 수행을 통해 초기경전과 『청정도론』 등을 바탕으로 마하시 스님의 한 가르침의 참맛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바라면서 실제적인 마하시 수행법을 간략하
보시-지계-인욕 등의 노력 복덕 아닌 공덕 차원서 접근 『육바라밀 수행법』을 소개하기에 앞서 저자를 먼저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저자 김현준 불교신행연구원장은 아마도 불교계에서 가장 평범하지만, 동시에 독특한 방법으로 신행과 수행을 지도하고 있는 독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75년 한국불교연구원 대구구도회 창립의 산파역을 담당했고, 79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간행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불교관련 집필을 맡았으며, 88년에는 우리문화연구원을 창설하고, 현재는 불교신행연구원을 설립해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불교신행연구원 산하에 ‘효림’이라는 출판사를 설립하고 일타 큰스님의 책을 비롯하여 각종 저술을 출간하는데 그 책들이 또한 눈길을 끄는 것들이다. 딱히 책의 내용이 어렵다거나 부담스러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