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총림 범어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고찰이다. 천년을 넘어 1300여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인 만큼, 사중(寺中)에 전해지는 신이(神異)나 전설 그리고 영험담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1300년 범어사의 역사를 대표하는 수많은 고승들이 있다. 조선후기인 18세기 초, 이 절에서 수행하셨던 낭백낙안(浪伯樂安) 스님도 그 중의 한 분이다. 흔히 낭백수좌(浪伯首座) 혹은 만행수좌(萬行首座)라고 전해지는 이 스님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스님은 보시행을 발원하여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남을 위하여 이롭게 하고자 하는
3년 전까지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았다. 재작년 결국 에어컨을 쓰기 시작했다. 아주 더운 날, 가장 뜨거운 낮 한때 잠깐 틀고 껐다. 작년엔 아주 더운 며칠 간, 늦은 밤 시간을 빼고 하루 종일 틀었다. 올해엔 무더위가 시작된 한 달 전부터 거의 매일, 늦은 밤 시간을 빼고 하루 종일 틀고 있다. 그동안 나는 내 몸이 에어컨 바람을 극도로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올해 새롭게 깨닫게 됐다. 내 몸이 얼마나 에어컨 바람을 사랑하는지.3년 전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혹은 나의 가족이 견뎌야 할 열기를 에어컨이란 깔때기로 걸러내 집
드루킹 댓글 여론 조작 사건, 대법원 재판 거래, 불교계 뉴스 등이 폭염만큼이나 우리를 덥게 한다. 절대 왕조시대에서도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여 민심을 중요시 여겼다. 민심은 오늘날 여론으로 나타난다. 여론은 여론조사라는 객관적인 조사에 의해 수치로 드러나는 세상이다. 대통령이나 각 정당의 지지율은 매주 발표되고 있다. 지지율에 명운이 걸려 있는 정치인이나 단체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과거의 민심은 풍문 등에 영향을 받았다면 인터넷 시대인 오늘날은 각종 기사에 대해 표현하는 댓글의 질과 양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드루킹 댓글 여론 조작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를 둘러싼 협상이 겉돌고 있다. 지난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이후, 북한은 미국을 향해 ‘강도’같은 짓이라고 비판을 하고 있고, 미국은 미국대로 북한에 대해 비핵화 협상의 지지부진함을 비판하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신뢰구축과 확실한 체제보장으로서 종전선언을 먼저 할 것을 주장하고 있고, 미국은 비핵화의 가시적인 조치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어떻게 보면 과거의 ‘선 비핵화’를 둘러싼 구조적 갈등의 양상과 유사하다 할 것이다. 단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남북관계가 순항하고 있고, 북미
따스한 봄날이면, 단풍이 울긋불긋한 가을날이면, 소복소복 쌓인 눈이 한껏 정취를 자아내는 겨울날에도, 그리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같은 여름날에도 대한민국의 사찰에는 가지각색 차림의 다양한 계층들이 어김없이 찾아들어 소란스럽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사찰은 쉬어가는 공간이고, 둘러보는 공간이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공간이고, 소풍을 가는 장소이고, 여행길에 한 곳쯤은 들러 가는 곳이다.그래서 대한민국 사찰은 신행공간이기 힘들고, 수행공간이기 힘들다. 관람객(?)들의 소란스러움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일이
글쓰기 강의를 전업으로 하다 보니 사람들의 글을 접하고 코멘트 할 일이 잦다. 나는 글쓰기를 코칭 할 때 어휘, 문장, 표현, 문법에 대해선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글을 써가며 차차 개선해야 할 문제이지, 그게 완벽해야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입장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글을 통해 자신이 전하고자 했던 의도를 제대로 표현했느냐의 문제다.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을 제대로 썼는가를 살펴보는 일이 글쓰기 강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구성을 중시한다. 구성은 결국 쓰고 싶은 내용을 잘 선택해 독자의 공감과
철학박사이자 팔리문헌연구소장 마성 스님이 6월30일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한 ‘산사의 세계유산 등재 득과 실’이란 글을 통해 산사의 세계유산 등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런 가운데 이성운 동방대학원대학 박사가 법보신문 시론을 통해 마성 스님의 주장에 대해 반론했다. 편집자지난 6월30일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 개최된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의에서 우리나라가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되었다. ‘산사’ ‘산지승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유형의 길과 무형의 길. 매일 그 길 위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나는 인간의 길 위에 태어났고, 수행자의 길 위를 걷고 있다. 여러 갈래로 난 수많은 길 위에서 다양한 삶을 만났다.사람으로 태어나 축생의 길을 걷고 있는 삶, 부모가 걸어야 하는 길에서 부모의 길을 포기하는 삶, 법조인의 길을 선택하고도 불법(不法)으로 사는 삶, 수행자의 길을 선택했으면서도 다시 돌아가는 길을 걷고 있는 삶 등 다양한 삶의 모습들.언젠가 외국에서 유학하거나 해외 여행길에 있는 일부 스님들이 사
4월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6월12일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개최되었다. 남북 정상회담은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있었지만, 북미 정상회담은 휴정 협정 이후 69년만의 만남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더욱이 불과 몇 개월 전 한반도 전쟁 위기를 생각하면, 격세지감마저 느껴진다.그런데 이러한 평화무드에 대해 일부 언론 매체나 논객들의 지나친 딴지걸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지금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안보와 반공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지금의 회담이 북측에는 이롭지만 남측이나 미국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올해 7월부터 시행된다.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이 높은 우리나라가 이를 계기로 그 악명을 벗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장시간 노동에 따른 피로가 감소함에 따라 산업재해가 줄고 노동 생산성이 올라가는 효과가 기대되기도 하고,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14~18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여가 시간이 늘어남으로써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는 것이 반갑다.물론 반론이 있다. 특히 주 52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생활이 유지되는 서민층의 입장에서 소득의 감소
조계종 총무원장과 교육원장에 이어 종단의 몇몇 스님들에 대한 MBC PD수첩의 고발성 의혹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제기된 의혹에 대한 실재적 진실을 떠나 2차례의 보도만으로도 조계종단에 대한 사회적 여론의 질타가 고조되고 있으며 종단 내부에서 참회와 자정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필자는 1부와 2부가 실재적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현격한 차이점을 보이는 것에 주목했다. 실재적 진실이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거짓이 아닌 객관적 사실을 의미한다. 언론의 보도를 둘러싸고 언론과 당사자와의 사실공방은 흔히 발생하는데 이는 실재적 진실을
불교계 최대명절인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몇 년에 한 번씩 불자들의 신심을 시험대에 올려놓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뉴스에 오르내리는 사건의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불심은 극락과 지옥 사이를 롤러코스터 탄다. 누가 무슨 자격으로 불심에 상처를 입힌단 말인가. 이런 집단적인 상흔은 어디서 위로 받으며 치료 받는단 말인가.문득 이 말씀이 생각난다. ‘삼일수심(三日修心)은 천재보(千載寶)요 백년탐물(百年貪物)은 일조진(一朝塵)’이라. 천년의 보물도, 하루아침의 티끌도 각자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승가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 안에 수심(
4월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함께 평화체제로 나아가자는 선언이었다. 1953년 휴전협정이 맺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선언함으로써 남북 간의 70년 대치국면이 사실상 끝나고 바야흐로 한반도는 평화의 길로 들어섰다. 상호 대남·대북 심리전에 활용하던 확성기 철거를 시작으로 유라시아 대륙철도 연결과 관련한 논의 등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소식 등이 잇따라 전해지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종전
지난 4월26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8 청소년 통계’에 2017년 9~24세 청소년이 부모님(양육자)과 매일 저녁식사를 하는 비중이 27.0%로 나왔다. 매우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더군다나 이는 3년 전(37.5%)보다 10.5%나 감소한 것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꼭 수치로 객관화될 수 없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서로 밥상 공동체도 이루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랑의 유대관계를 쉽게 이룰 수 있겠는가?지난해 말 비영리단체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전국 초등 4학년에서
우리는 전쟁 혹은 사고로 끔찍하게 돼버린 현장이나 싸움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상황을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됐다고 표현한다.아수라는 고대 인도신화에 등장하는 신인데, 불국토의 이상향인 수미산(須彌山) 밑에 사는 모습이 흉측하고 얼굴이 셋, 팔이 여섯 개나 되며 끊임없이 싸우기를 좋아하여 전쟁의 신(戰神)으로 불리기도 한다.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에 비슈누 신이 던진 원반에 맞고 창과 칼에 찔린 아수라들의 시체가 쌓여있는 처참한 모습이 묘사돼 있는데 아수라장이란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아수라가 있는 곳에서는 싸움이 끊이지 않고 늘
몇 해 전 유엔생물다양성과학기구가 발표한 보고서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세계 주요 작물 가운데 동물 수분에 의존하는 종이 3분의 1’이며 북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벌과 나비의 개체 수가 약 30~40%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 원인은 서식지 감소도 크지만 농약과 오염, 외래종, 병원균 및 기후 변화를 의심했다’라고 전했다.벌과 나비의 개체 수 감소가 불교와 승가에 무슨 큰 이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요즘 날씨 변화를 보며 도량에 동주하는 풀과 나무가 피운 향기로운 꽃에 벌과 나비가 찾아오지 않는 현상은 분명
6월13일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발길이 속속 불교계를 향하고 있다. 아직 각 정당별 후보자가 확정되지 않아 본격적인 선거전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선거판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당별 그리고 후보 간의 힘겨루기는 이미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전략공천을 통해 이미 후보자로 확정된 정치인이나 정당의 후보가 되기 위한 예비후보자들의 행보가 조계종 총무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5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총무원장 설정 스님을 예방한 데 이어 11일는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 13일에는 이인제
지난 3월에 가톨릭대에서 종교학과의 폐과를 둘러싸고 두 차례의 공청회가 있었다. 공청회 내용에 따르면 가톨릭대에서 당장 2019학년도부터 신입생을 모집할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아직 폐과가 확정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가톨릭대 측의 공식 입장이라고는 하지만 두 차례의 공청회는 폐과의 수순이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하지 못하게 한다.굳이 과학의 시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자기 종교만 관심을 갖기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라면서 이웃종교까지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사실 국립대학인 서울대를 제외하고는 천주교에서 서강대와
개헌이 국내 정치의 주요 현안으로 부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에 국회에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통령 발의에 대하여 야당은 국회에서 통과가 불가하다는 강한 반대 의사를 개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주요 후보들이 6월 지방선거 때 동시투표로 개헌을 하겠다고 공약했으며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발의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반면 야당은 개헌의 핵심인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축소 방안이 미흡하며, 시간이 촉박해도 국회와 협상하지 않은 채로 발의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음력으로 정월이 가기 전에 인연 있는 노스님을 찾아뵈었다. 맑고 카랑카랑 하시던 예전 모습에 비하면 많이 쇠약해지셨다. 노스님께서 상주하시는 곳은 연세가 드셔서 선원에 갈 수 없거나 포교일선에서 활동할 수 없을 때, 또는 아직은 젊지만 건강이 허락지 않은 비구니스님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그곳에서 스님들의 살아가는 면면을 생각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부처님 제자로 살아가는 삶이 평범하지는 않지만 세간과 출세간에서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한 일원이라는 공통분모 안에서 생각해 보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