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교는 전국 각지에 사찰과 포교당을 지어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불교신도의 확산과 불교 부흥을 위한 수승한 움직임이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불교를 알려주기 위한 자리이타의 실천행이다. 그러나 종종 사찰이 커지고 신도가 늘어남에 따라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다른 사찰보다 더 큰 사찰을 지으려 하고, 대도시에 사찰을 지어야만 좋은 불사를 하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신도 인원수가 사찰의 평가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점은 최근 불교가 지나치게 불사의 확산과 경제적인 면을 추구하면서 발생한 것들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불사가 있습니다. 저는 ‘화엄경’ 해석 중 최고로 손꼽히는 청량 스님의 글 번역이 이 시대의 절실한 불사라고 생각했습니다. ‘화엄경’을 누구나 최고의 경전으로 언급하지만 정작 읽는 이는 극히 적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계기로 화엄의 바다에 뛰어들어 지혜의 길을 발견하는 사부대중이 더욱 많아지길 바랍니다.”전 쌍계사 강주이며 양산 원각사 주지 반산 스님이 방대한 ‘화엄경’의 주석 중 가장 심도 있게 해석했다고 칭송되는 청량 국사의 해석과 주석을 우리말로 완역해 ‘화엄경청량소(華嚴經淸涼䟽)’ 전34권에 담았다. 글의
경기도 민관합동조사단이 나눔의집 운영과 관련해 총체적 부실을 지적하면서 조계종을 향한 사회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종단 내부에서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많지만, 나눔의집 운영논란이 장기화되면서 지난 30여년 간 이어온 위안부피해자 할머니 지원 사업의 의미는 물론 불교계 복지사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때문에 나눔의집 정신을 계승하고 정상화를 위해서는 비록 억울하고 부당한 점이 있더라도 법인 임원진 전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나눔의집을 정상화 하려면 출재가 복지
헌법에는 국가를 통치하는 기본적인 원칙과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규범이 명시되어 있음에도 요즘 우리 현실을 보면 법에 관한 시비와 논란이 그치지 않고, 법 자체에 대한 불신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왜 국가의 기본질서를 세우는 법이 통째로 흔들리고 법에 대한 회의가 이토록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성찰해 본다.지금까지 기본법인 헌법만 해도 9차례나 개정되었고 수없이 많은 법이 새로 만들어지고 개정되고 있다. 그런데 법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동기나 목적에 사가 깃들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철저히 공을 지향하는 법의 정당성과 권위가 적
조계종 중앙종회가 ‘은퇴출가자는 창건주 권리를 승계받을 수 없도록’ 법으로 명문화했다.중앙종회는 7월23일 218차 임시회를 열어 은퇴출가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은퇴출가자는 창건주 권리를 승계받을 수 없다. 또 창건주 권리 승계에도 관여할 수 없다.대표발의한 각성 스님은 “은퇴출가한 비구, 비구니의 경우 말사 주지가 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창건주 권리를 승계할 경우, 실질적인 주지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부 스님들은
올해는 윤달이 있는 해여서 전국 여러 사찰에서 수륙재와 천도재를 올리며 돌아가신 영가와 여러 고혼들을 위로해주고 있다. 많은 불자님들도 자신의 가족과 자손들의 평안함과 행복을 위해 기도에 동참하고 계신다.근데 일각에서는 천도의식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기복적이고 불교의 근본 가르침인 무상, 고, 무아라는 삼법인에 어긋난다고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천도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우선 불교에서는 고정불변의 실체인 ‘자아(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한다. ‘나’라고 지칭할 수 있는 자아를 인정하
중견사업가이자 초기불전연구원 선임연구원인 황경찬 ‘21세기 불교포럼’ 공동대표가 ‘불교는 깨달음의 과학’ 개정증보판을 출간했다.‘불교는 깨달음의 과학’은 ‘무명(無明)의 족쇄를 풀어 줄 창(窓)밖의 108요담(要談)’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깨달음의 여정에서 길어 올린 108가지 보석 같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졌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그물에는 천 코 만 코가 있지만 정작 고기는 한 코에 걸리는 법”이라는 어느 선지식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던 저자는 인생과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화두를 품고 사는 진실된 구도자가 걸려들기를 바라는 간절한
조계종 중앙종회가 7월23일 제218차 임시중앙종회를 개원하기로 한 가운데 ‘중앙종회의원 겸직금지 완화’를 골자로 한 종헌개정안이 다시 발의돼 관심을 모은다.중앙종회 사무처에 따르면 원돈 스님 외 26명은 218차 임시회 의안접수 마감일인 7월16일 중앙종회의원 겸직금지를 완화하는 종헌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종헌개정안은 지난해 3월214차 임시회에서도 발의됐다가 중앙종회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고, 여전히 중앙종회의원의 겸직금지를 완화해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있어 논의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원돈 스님이 대표발의한 종헌개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20세기와는 많은 것이 변화되었다. 그중에 정보의 검색과 공유가 편리해지며 언제 어디서라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아보고 알 수 있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 한 권 읽고 싶어도 서점을 찾아가야 했고,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전문서적이나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손바닥 안에서 세상을 들여다보고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앞으로도 우리의 삶이 더욱 편리해질 것이고 그 변화에 대한 무한한 기대감을 갖게 해주는 것
오래 전에 ‘증일아함경’ 권31에 나오는 붓다와 아누룻다(Anuruddha, 阿那律) 존자 간에 있었던 일화를 읽고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이른바 ‘복을 구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데, 오늘날의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에게 유익한 가르침이다.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기수급고독원에서 많은 대중들을 위해 법을 설하고 계셨다. 그때 아누룻다는 붓다의 설법 도중에 졸고 있었다. 붓다는 아누룻다에게 무엇 때문에 출가한 것이냐고 힐난하고, “여래가 직접 설법하는데 어떻게 졸고 있느냐?”고 꾸짖었다. 이를 계기로 아누룻다는 “지금부터는 몸이
오늘은 자녀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자녀교육은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더불어’라는 환경에서 아이들이 성장하게끔 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더불어’라는 말 속에 특별히 교육이라는 개념은 따로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어느 젊은 부부가 고민을 상담해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부부는 곧 아이를 출산할 예정인데 지금과 같이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절에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참으로 막막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잘 키워나갈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
“성미산은 동서남북 모두가 도심의 건물로 둘러싸여 산인지 공원인지 알 수 없었다. 오대산에서 살면서 보았던 풍경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숲속 나무의 건강 상태는 불량했으며 대부분의 나무도 아카시아였다. 새들은 참새‧비둘기‧까치 등 텃새 몇 종뿐이었고 산길은 지나치게 많아서 장마철이면 빗물에 흙이 쓸려 내려가기 일쑤였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 년 내내 물이 흐르지 않아서 여름철이면 도심열섬현상과 습한 기후가 더해져 산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동‧식물, 그리고 사람들 모두가 지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이민형 채비움 서당 훈장은 그 성미
“불교는 어렵지 않고 어렵게 말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에요. 쉬운 말을 난해하게 얘기해서 그런 것이지 불교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불교계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이런저런 불교계 얘기로 시작해 출판과 포교 얘기로 이어졌다. 한 분이 “쉬운 불교를 지나치게 어렵게 얘기하는 게 우리 불교계 풍토”라고 토로했다. 불교 강연이나 법문할 때 생소한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책을 쓰는 사람들이 자신이 이해 못한 부분은 얼렁뚱땅 넘기거나 복잡하게 쓰는 것을 자주 보았다고 했다. 쉽게 말하고 글을 쓰는 것은
“윗동네에 괴병이 돌았단다. 그래서 그 마을을 순식간에 불살라서 없애버리고 떠났단다.” 어릴 때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입니다. 분명한 것은 엄청난 재앙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그나마 괜찮다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얼굴을 드러내고 기도하지 못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만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안전 수칙을 지키면서 이렇게라도 법석을 열 수 있으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영혼은 있는가?’ 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면 80%의 불자님들은
출가 수행자의 삶을 우리는 위대한 포기라는 말로도 설명한다. 세속적 권력, 부, 인간관계, 가치 등을 모두 포기하는 삶이란 의미이다. 그런데 이러한 포기를 누구의 강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기에 ‘위대한 포기’인 것이다.단순히 출가가 아니라 ‘출가 수행자’라고 하는 말에서 그 비장함과 엄중함을 느끼게 된다. 비구는 빨리어 ‘빅쿠(bhikkhu)’를 음사한 말로 ‘걸식 수행자’란 의미가 된다. 무소유의 삶을 살면서 위로는 해탈을 구하고, 뭇 사람들의 복전이 되는 존재가 바로 비구인 것이다. 소나 꼴리윗사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좇는다. 그리고 그 행복의 조건으로 부, 명예, 권력을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처음 생각했던 부, 명예, 권력 등의 조건을 충족해도 좀처럼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또 다른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애쓰는 삶이 이어진다. 그러다보니 삶이 힘겹고 고단할 수밖에 없다.도대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해질 수 있기는 한 것일까? 그렇다면 진짜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이같은 의문을 갖지만,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 책 ‘최상의 행복’은 바로 그 행복에 이르는 길을 부처님 가
아는 스님의 부탁으로 삼귀의·오계에 관한 글을 사찰 단체밴드에 올린 적이 있다. 수계법회를 앞둔 신도들이 열정적으로 읽어주었고 솔직한 댓글로 필자를 분발시키기도 했었다. 그때 어떤 분이 “계를 지킨다는 것이 어렵고 의무감으로 생각되면서 부담스럽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것은 삼귀의와 오계 수행지도를 할 때 자주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다.계율이라는 단어는 일단 듣기만 해도 속박 혹은 구속의 기분이 들고, 잘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부담이 생기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속박은 자유를 구속한다. 남녀 간의 애정도, 부모 자식 간의 사
코로나19 확산으로 면역력을 높이는 음식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제철 채소를 활용한 건강한 먹거리인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법보신문은 사찰음식의 대가로 알려진 여섯 명의 스님에게 ‘면역력을 높이는 건강한 사찰음식’을 주제로 각각 한 가지 음식을 추천받아 소개한다. 편집자연꽃은 불교를 대표하는 꽃이면서 깨달음을 상징한다. 싯다르타 태자가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나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씩 걸을 때마다 땅에서 연꽃이 솟아올라 태자를 떠받들었다는 데서 불교의 상징이 됐다. 또한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는 말처럼 더러운 곳에 있
26장은 “옛 덕 높으신 스님이, ‘단지 너의 ‘눈 바른 것’이 귀하지 너의 ‘행리처’는 귀하지 않다’”고 한 내용이다.서산은 “옛날 앙산(仰山慧寂, 803∼887)이 위산(潙山靈祐, 771∼853)의 질문에 답하기를, ‘‘열반경’40권은 모두 마군의 말이다’고 한 것이 앙산의 바른 눈이다. 앙산이 또 행리처를 묻자 위산이 답하기를, ‘오직 그대의 눈 바른 것이 귀하다’고 한 등의 까닭은 먼저 바른 눈을 연 후에 행리처(行履處)를 설한 것이니, 만일 수행하고 싶으면 먼저 돈오(頓悟)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고 평하였다. ‘위산영우어록
‘부처님오신날’을 맞을 때마다 참으로 많은 감회가 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만났기에 나라는 존재가 그래도 이 만큼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큰 감사의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러한 기쁨과 감사의 마음, 거기에는 언제나 부끄러움과 죄송함이 함께한다. 그 귀한 가르침을 받고도 제대로 실천 못하는 자신에 대해, 그래서 그 가르침을 사회적으로 회향해 이 세상을 불국토로 가꾸어 가지 못하는 나와 우리 불자들에 대해…. 부처님의 가르침이 위 없는 진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그 위 없는 가르침이 왜 세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