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염관 선사의 회중의 수좌로 있던 황벽 화상이 부처님에게 예배를 하고 있는데 대중(大中)이 이를 보고 한마디 했다. “부처에게도 집착하지 않고 법에도 집착하지 않고 대중(大衆)에게도 집착하지 않아야 하거늘 무엇 때문에 예배를 하고 있는 거요?” “부처에게도 집착하지 않고 법에도 집착하지 않고, 대중에게도 집착하지 않고 예배를 하고 있네.” “예배는 무엇 때문에 하는 거요?”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황벽 화상이 벌떡 일어나 대중(大中)의 따귀를 후려갈겼다. 대중이 지지 않고 “이 난폭한 자가!” 하면서 덤벼들었다. 이때 화상이 “이 경우 난폭하다느니 친절하다느니를 따지는가!”라면서 또 한번 대중의 따귀를 갈겼다. *황벽(?∼850); 복주에서 출생했으며 법명은 희운.
팔정도 갖춰야 참다운 스승 A: 미국에는 여러 가지 정신문제를 다루는 그룹과 스승들이 많이 있어요. 묵조선과 임제선도 있고, 위파사나, 중국 기공, 티베트불교, 태극권, 힌두요가 등 여러 종류의 에너지와 몸, 그리고 마음을 다루는 센터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어떤 것이 올바른 길을 가는 길이며, 또 누가 바른 스승인지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모든 종교마다 각각 힘을 가지고 있고,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서로 ‘자기들이 제일이다, 자기 스승이 제일이다’라고 하는데 요즘만 그런 게 아니고 부처님시대에도 그랬어요. 부처님이 생존하던 시대에 어떤 고지식한 노인이 한 분이 있었습니다. 당시도 요즘처럼 스스로 깨친자입네 하는 외도들이 많아 그 노인은 어디에서도 스
위산영우 선사 문하에 유철마라는 대단한 비구니가 있었다. 그는 위산 아래 암자를 짓고 살았는데 누구도 그를 어쩌지 못했다. 어느 날 자호 화상이 이 비구니의 처소를 방문했다. 자호는 저 유명한 조주와 함께 남전 화상 밑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자호 화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 유명한 쇠맷돌(鐵磨) 비구니 아니신가?” “죄송합니다.” “자네의 맷돌은 왼쪽으로 도는가, 오른쪽으로 도는가?” “화상께서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십시오.” 순간 자호화상은 철마 비구니의 뺨을 올려붙였다. *자호 스님(800~880); 단주에서 출생. 속석은 주씨이며 법명은 이종. 남전보원의 법을 이었다.
Q: 달마대사는 양 황제가 당신은 누구냐는 질문에 왜 모른다고 대답했나요? A: 망상이나 욕심으로 이룬 것은 하룻밤의 꿈처럼 진짜가 아닙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클수록 고통은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더 이상 깨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이루어 놓으면 부서지기 마련이고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 전에 보리달마가 선을 가르치기 위해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가 막상 중국에 도착한 뒤 서서히 그에 대한 소문이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가자 양나라 무제가 그를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양무제는 중국에서 많은 절을 세우고 승려들을 후원하는 등 불교를 위해 좋은 일들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전 화상이 백장산에 주석하는 열반 화상을 찾아가자, 열반 화상이 물었다. “예로부터 많은 성인이 사람들을 위해 설법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있지.” “어떤 것이 사람들을 위해 설법하지 않은 것입니까?”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그렇다고 한 물건도 아니지.” “그거야 다 말한 것 아닙니까?” “나는 그렇네만 자네는 어떠한가?” “저 또한 큰 선지식은 아닙니다. 성인들도 못한 말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난 모르겠네.” “제가 너무 자세히 설명했나봅니다.” *여기서 백장산의 열반화상은 백장청규를 제정한 것으로 유명한 백장회해가 아니라 그의 제자인 백장 유정이다. 그는 자주 열반경을 애독한 까닭에 ‘열반 화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남전보원은 백장회해와 함께 마조도
Q: 선(禪)에서는 우리가 본래 부처라고 합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신은 네 안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번뇌망상 속에서 시달리고 살아야 합니까? A: 부처님의 가르침은 번뇌를 없앤 뒤에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번뇌 속에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번뇌를 없애버리고 공부하려 하지만 더 큰 혼란만 맞게 됩니다. 요즈음 사람뿐만 아니라 부처님 당시 사람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원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신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신이 만들었으면 ‘왜 원죄도 만들었을까’하는 의구심을 자아냅니다. 신이라는 것은 진리와 사랑 그리고 지혜인데 왜 신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번뇌 망상과 우울증 등도 만들어 근심 걱정 속에 살
어느 날, 어떤 수행자가 대수 화상을 찾아와 문안을 올리고 물었다. “겁화가 타올라 온 세상이 파멸될 때를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그것도 무너집니까?” 화상이 답했다. “그야 무너지지.” 이에 수행자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그것을 따라가겠습니다.” 다시 화상이 이르기를 “그래, 따라가거라.” *대수(大隨·834~919): 재주 염정현 출신. 속성은 왕씨이며 법명은 법진이다. 어려서 출가한 뒤 약산유엄(藥山惟嚴), 운암담성(雲巖曇晟), 도오원지(道悟圓智), 동산양개(洞山良价) 등 여러 선지식을 탐방한 뒤 장경대안(長慶大安) 밑에서 크게 깨닫고 그의 법을 이었다.
Q: 우리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현실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요? A: 땅에서 살던 사람이 땅에서 넘어지면 땅을 짚고 일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땅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현실 속에서 활동하면서 일어나는 개인 개인의 삶의 모습을 말합니다. 이것을 업이라고 합니다. 우리 보통사람은 이런 현실에서 떠나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수행은 이러한 삶을 떠나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삶을 직관하며 그 삶을 돌이켜 보며 수행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밤하늘에 떠있는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손가락을 통해서 달을 봅니다. 손가락을 보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로 우리들의 업이 동하면 업의 작용하는 것을 보아서 붓다를 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앉아서 선을 하고 있으면 손
마곡이 아직 납자로 선지식을 찾아 법을 물을 때, 한번은 장경 화상을 찾아가 선상 주위를 세 번 돌고 석장을 한 번 내리친 후 우뚝 섰다. 화상이 이 광경을 보고 말했다. “옳구나, 옳아!” 마곡은 다 시 남전 화상을 찾아가 똑같이 선상을 세 번 돌고 석장을 한 번 내리친 후 우뚝 섰다. 이를 본 남전 화상이 말했다. “아니지. 아니야!” 그러자 마곡이 남전 화상에게 물었다. “장경 화상은 옳다고 했는데 어째서 화상은 아니라고 하는지요?” 남전 화상이 답했다. “장경 화상은 옳지만 너의 행동은 틀린 것이다. 그렇게 바람의 힘으로 돌아가다가는 결국 파멸로 끝날 뿐이다.” 장경(章敬·754∼815); 천주 출신. 속성은 사씨. 법명은 희휘. 마조도일의 문하에서 심요를 깨치고
정상좌가 어느 날 임제 화상을 찾아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佛法)의 가장 요긴한 뜻입니까?” 이에 임제화상은 대답 대신 선상에서 내려와 대뜸 정상좌의 멱살을 잡고는 뺨을 한 대 때린 후 확 떼밀어 버렸다. 임제 화상의 돌연한 행동에 당황한 정상좌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한 표정으로 서 있자, 옆에 있던 사람이 이렇게 일렀다. “이 사람, 왜 예배하지 않는가?” 정상좌는 이 말을 듣고 예배를 하려다가 그만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임제(臨濟·?∼867); 임제종의 개조. 조주 남화사람으로 어릴 적부터 총명하여 출가 후 제방에 다니면서 경론을 많이 탐구하여 특히 계율에 정통했다. 황벽 희운의 법을 이었으며 시호는 혜조선사. 정상좌(定上座); 임제의 제자라는 것 이외에
Q : 무엇이 바른 신심(信心)인가요? A : 자기를 깨닫는 공부는 믿음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불교를 그저 듣고 이해하려고만 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해하는 것도 믿음이 있으면 이해를 깊이 할 수 있지 믿음이 없이 들으면 귀에 머물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믿음은 이해하는 것을 마음에 연결시켜주어 잡념은 줄어들게 하면서 지혜로 바꾸게 하는 기틀을 마련해 줍니다. 저는 가끔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전해줍니다. “마치 환약을 만들 때 많은 한약제를 가루로 갈아 꿀로 배합해 환을 만들면 모든 가루가 꿀로 인해 하나로 모아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일어나고 많이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자제가
1937년 3월10일 아침의 일이었다. 잠시 충남 마곡사의 주지를 맡고 있던 만공 스님은 그날 서울행차를 준비하고 계셨다. 다음날인 3월11일 조선총독부 회의실에서 미나미(南次郞)총독이 주재하는 조선불교31본산 주지회의가 소집된 때문이었다. 만공 스님은 마곡사 주지 당시 총독부에 일갈했다. 총독 꾸짖은 스님의 사자후 당시 스님은 시봉하고 있던 어린소년 몽술행자가 스님께 여주었다. “공양간에서 듣자니 노스님께서 오늘 경성(京城)에 가신다고들 하던데 정말시옵니까요?” 이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만공 스님은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셨다. “너 이녀석 몽술아! 몽술이 너는 도대체 조선사람이더냐, 왜놈이더냐?” “예에? 그야 저는 조선사람입니다요. 노스님.” “그런데 어째서 조선사람
보조스님 ‘수심결’해설서 중 최고 원문 해설-용어 풀이 탁월해 물질이 풍요로운 시대, 먹고 사는 것이 어느 정도 해결된 시대를 살면서도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세계 어느 나라의 어린이들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의 어린이들이 상대적으로 후진국인 인도네시아의 어린이들보다 ‘만족지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것은 물질과 풍요가 행복의 절대조건이 아님을 잘 알려주고 있다. 이는 어린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제 자리를 잃어버린 채 삶의 가치를 혼동하고 외부의 충격이나 조건에 이끌리고 있다. 모두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의 고승 보조스님은 사람들이 저마다 부처임을 깨달아 현실 속에서 희망과 용기를 갖도록 하는 소중한 가르침을 남긴 선
천년고찰-천혜의 자연 경관 속 질주 사막-초원의 별밤 체험 프로그램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던 고대 로마인들의 자부심에서는 어쩐지 오만함이 묻어난다. 지구상의 모든 문화와 부와 권력을 한 숨에 들이마시려는 거대한 야욕의 구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이야 무슨 잘못이 있으랴. 단 한번 나그네가 발끝을 돌려 돌아서 준다면 그 길은 모든 세상과 맞닿아 있는 거대한 가능성의 출발선이 되는 것 아닌가. 서력의 기원이 아직 존재하지 않던 마이너스의 역사시대부터 이미 많은 이들이 발길을 동쪽으로 돌려 로마를 떠났다. 그들은 동-서양을 가로막던 거대한 산맥을 넘어 목숨을 통행료로 요구하는 잔혹한 아름다움의 사막을 가로질렀다. 운강 제13굴과 본존의 교각 보살상. 한 걸음에 한
지난해 한국자동차를 직접 중국으로 반입해 대륙을 횡단하는 실크로드 대장정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한중자동차문화교류협회(회장 현광민. 이하 한중교류협회)가 이번에는 중국정부와 손을 잡았다. 오는 5월 31일부터 개막되는 ‘제1회 중국 오대산-내몽고-북경 대장정’은 한중교류협회와 중국국가체육총국 및 법보신문이 공동 주최, 민간 문화교류의 새 장을 연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오대산 탑원사. 특히 개인 소유의 차량에 대한 중국 반입-운행을 가능케 함으로써 주마관산 식의 중국 여행을 자유롭고 꼼꼼한 성지순례로 한 차원 끌려 올렸다는 평가다. 한중교류협회 측은 이번 공동 주최를 계기로 한국 불교계와 중국체육총국의 유대 강화를 위해 대장정 출발에 앞서 만남의 자리도 가질 계획이다. 한중교류협회는 운
하루는 상서 벼슬을 하는 진조 거사가 자복 화상을 친견하러 찾아갔는데, 화상은 그가 오는 것을 알고 손가락으로 일원상을 그려 보였다. 이에 진조가 말했다. “제가 이렇게 와서 앉지도 않았는데 벌써 일원상을 그려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이에 화상은 방장실의 문을 꽝 닫고 들어가 버렸다. *일원상(一圓相); 선문에서 절대 진리의 표상으로 자주 등장함. 일원상을 최초로 그린 사람은 혜능의 제자인 혜충 국사로 알려져 있음. *진조(陳操·생몰연대 미상); 당나라 때의 거사. 목주도명에게 선을 배웠으며 목주자사를 지냈다. *자복(資福·생몰연대 미상); 5대 당말(五代唐末)의 선사. 법명은 여보(如寶)이며 양산혜적의 법을 이은 서탑광목(西塔光穆)의 제자
Q : 참선과 위파사나는 어떻게 다른가요? A : 일반적으로 미국에는 히나야나 메디테이션과 마하야냐 메디테이션이 있습니다. 요즈음 한국에도 히나야나가 좋으냐 마하냐나가 좋으냐 시비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통사람들은 대승선, 소승선하는데 히나야나는 작은 호수에서 항해하는 반야의 배를 말하고 대승선은 큰 바다를 항해하는 반야의 배를 말합니다. 본래 불법에는 대소승이 없지만 환경과 그 문화에 따라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큰 바다에 가려하면 큰 파도 속에 작은 배는 엎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수행법도 남방불교에서는 무더운 환경에 맞는 방법인 소승선인 비파사나가 많이 발달되어 있고, 북방불교에서는 계절적인 환경으로 대승선인 간화선이 발달됐습니다. 큰 나무로 예를 들면 나무에는 잎사귀가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