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7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 나왔다. 남북 정상은 이로써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할 것을 공표했다. 공동번영을 위한 교류협력과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를 우선 실천하기로 약속했음은 물론이다.이전에도 남북 정상간 합의에 따른 공동선언이 두 번 있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시한까지 정해 평화협정 전환을 명시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혹은 미국과 중국이 함께 참여하는 3자 내지 4자회담을 통해 이를 보증할 입체적인 계획까지
북한과 북한의 지도자들을 요괴나 악마로 보던 시각이 이제는 좀 많이 누그러진 것 같다. 아니 누그러진 정도를 넘어서 너무 급격하게 경계 심리마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여러 번 북한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북한과 함께 통일을 이루는 주체가 되어야 함을 말하면서, “요괴와 보살의 뿌리가 같은 것”이라는 서유기의 이야기를 인용하기까지 한 필자로서는 너무 짧은 사이에 변한 상황이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그 이야기를 할 때만 하더라도 굉장히 강한 비판을 각오하고, 좌익 빨갱이라 비난하는 돌팔매를 각오했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불교에서 행자와 사미‧사미니 과정을 원만 회향한 출가자들은 ‘범망경(梵網經)’ ‘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盧舍那佛說菩薩心地戒品, 이하에서는 ‘보살계’)’에 따라 비구‧비구니 구족계를 받은 뒤에 완전한 출가수행자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이 ‘보살계’는 중요한 계목 열 가지를 담은 ‘십중대계(十重大戒)’와, 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가벼운 마흔여덟 가지를 담은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로 크게 구분한다.이 중에서 앞의 열 가지 중요한 계목은 실상 재가 신자들에게도 요구되는 항목으로써 부처님 제자라면 누구나 항상 잊지 말고 지키려 애써야
요즘 포털 뉴스에 이른바 ‘물컵 갑질’이 오르내린다. 사건의 주인공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로 ‘땅콩회항 및 승무원 폭행’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동생이다. 두 자매가 비슷한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키다 보니 재벌2세의 갑질이 또 한번 많은 이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재벌은 우리사회의 상위 1%에 해당하는 최상위 계층이다. 일반 서민들은 그들의 일탈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세계로 진입하지는 못한다. 거의 불가능하다. 계층의 장막이 너무나 높고
올해는 고려 건국 1100주년이 되는 해다. 각계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개최해오고 있으며,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향후 더욱 의미 있는 행사가 개최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500여년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고려는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불교를 국교처럼 숭배하던 왕조였다. 고려의 왕과 귀족들은 앞 다투어 원찰을 건립하였으며, 왕과 나라의 스승이라는 왕사 국사제도도 줄곧 시행되었다. 왕사와 국사를 모시는 책봉의식에서 스님은 왕의 자리에 앉아 왕에게 무려 아홉 번이나 절을 받을 정도였다. 고려불교와 승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을 ‘국민(國民)’이라고 칭한다. 건국헌법(1948) 제2조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 이래 일관되게 유지해 온 전통이다.그간 국민이라는 용어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있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말에 본격화된 황국신민화 정책에 따라 제4차 조선교육령(1943)이 기존의 ‘소학교’를 황국신민을 기른다는 뜻의 ‘국민학교’로 개칭한 사실이 지적되어 왔다. 함석헌 선생이 언급했듯이 여기에는 일제의 국가지상주의, 민족숭배사상이 깊이 배어 있어 어린이를
우리 한반도는 대륙의 입장에서 보면 해양세력을 향한 칼이요, 해양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대륙을 향하는 다리라 하였다. 그렇게 볼 때 한반도의 위상은 그 크기에 비해 훨씬 더 중요하다. 그것을 어떤 쪽에서 장악하느냐에 따라 그 세력의 힘이 달라진다. 그것은 곧 어떤 세력도 한반도를 다른 한쪽이 온전히 지배하는 것을 바리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그들 입장에서는 한반도가 이렇게 나누어져 있는 상황이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힘의 균형이 완전히 어느 쪽에 쏠려있지 않는 상황에서는 온전히 차지하겠다고 다투다가 서로 피를 흘리기보다
지난 3월11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한베(한국-베트남)평화재단’ 이사장 강우일 주교가 1968년에 한국군이 민간인 135명을 학살한 것으로 밝혀진 베트남 꽝남성의 ‘하미마을 학살 50주기 위령제’에 참석해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 보내는 성명서에서 베트남 방문 기간에 “공식적이며 공개적인 사과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이 성명서에 따르면, 그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던 2012년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주교회의 연합회 제10차 총회에 참석했을 때에도 “한국 군인들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현재 한국불교는 주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주지직을 맡는 순간 막중한 권한이 주어지고, 신도나 외부인도 주지스님을 사찰의 중심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스님은 주지스님과 ‘주지 아닌 스님’, 두 종류의 스님만이 있다는 풍자 섞인 말까지 생겨났다.주지(住持)라는 용어는 본래 단순히 ‘머물다’는 의미의 술어로 경전에 등장하여(‘一切如來 光嚴住持’ ‘云何思惟 云何住持’ ‘원각경’) 부처님 가르침이 세상에 머물도록 지킨다는 의미로 강화되고(‘教化成熟 眾生方便 分布舍利 住持教法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이 국회 질의과정에서 ‘겐세이’라는 일본말을 사용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물론 광복 70주년을 훌쩍 넘긴 시점에 이런 일로 무슨 호들갑이냐는 견해를 제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역사가 남긴 상흔과 그 영향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 전반에 존속되고 있는 한 이 같은 사례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심각성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하겠다.2018년, 지금 이 시점의 한국불교는 과연 식민지 불교의 잔재를 온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우리는 아직 ‘식민지 불교’의 실체조차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
지난해 11월27일 영국 왕실이 공표한 해리 왕자(34)의 약혼 소식은 왕실 이슈에 민감한 영국 타블로이드 업계에 좋은 가십거리를 던져주었다. 약혼녀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미국인 배우로 이혼 전력이 있는 개신교도 메건 마클(37)이었다. 메건의 국적이나 나이, 이혼, 종교가 구설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성 평등과 페미니스트 활동 이력도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가 백인인 아버지와 흑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었다.미국에서는 오랫동안 ‘피 한 방울의 법칙’이 통용되어 왔다. 즉 조상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흑인이 있으면
무수한 돌팔매들이 날아다닌다. 자칫 그 돌팔매들의 목표가 되었다가는 그대로 삶을 마감할 것 같은 그러한 돌팔매들이다. 성추행, 성희롱 문제를 둘러싼 돌팔매들도 있고, 팀추월과 관계된 돌팔매들도 있다. 그런 돌팔매들을 보면서 갑자기 “누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느냐?”고 물은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고, 또 갑자기 생뚱맞게 “어디라 더듸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어디로 던진 돌인가? 누구를 맞추려던 돌인가?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맞아서 울 뿐이다)…”하는 ‘청산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종교인들의 위선을 고발한 내용을 숱하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다를 바 없는 ‘위선’ 행위들은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행자‧성직자에게 무슨 돈이 필요하겠습니까? 수입 좋은 절‧성당과 교회의 주지‧주임신부와 담임목사 자리가 왜 필요하겠습니까?”라면서 바른 수행자‧성직자인 척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내게 보시‧헌금을 많이 해야 큰 복을 받습니다”는 뜻을 은근히 비쳐서 더 많은 돈을 받아내는 승려와 신부‧목사들이 많다.명분이 그럴
최근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서 ‘직장 내 성범죄’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연일 보도되고 있는 ‘여검사 성추행’이란 예사롭지 않은 사건이 그것이다. 현직 여검사가 검찰 내부망에 자신의 성추행 피해와 인사 불이익을 공개하면서 일파만파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에 검찰총장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그에 따른 응분의 조치를 약속했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책을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3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장·차관 워크숍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문화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며 혁신과제의
새해에 들어서면서 불교계 주요 기관들이 신년계획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역시 지난 1월23일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다양한 포교종책들을 발표하였는데, 이 가운데 특히 ‘불교성전’ 편찬계획이 눈에 띈다. 우리 불교계는 이미 1970년대 불교성전을 편찬하기 위한 범불교적 모임을 구성하고 그 성과물을 내놓은 바 있지만, 지금은 그 기억조차 희미한 일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불교성전’ 간행은 처음 일본에서 시작됐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유럽에 유학했던 일부 유학승들에 의해 이른바 근대불교와 근대불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올림픽 정신(Olympism)’이라는 것이 나왔다. 승리를 향해 무작정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협력과 이해를 바탕으로 연대하는 데 올림픽의 의의를 두자는 것이다. 현존하는 지상 최대의 스포츠 축제를 창안한 조직가이니 현실 감각도 뛰어난 사람이었겠지만, 쿠베르탱은 다른 한편 세계평화를 꿈꾼 이상주의자였던 모양이다. 반면 지난해 6월 무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대회 참석차 한국을 찾은 북한 IOC 장웅 위원은 사뭇 냉엄한 현실 인식을 내비
‘서유기(西遊記)’에는 수많은 요괴들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는 보살님께서 손오공이 요괴를 죽이는 것을 말리고 가람을 지키는 이로 받아들이거나, 제자로 삼는 경우도 있다. 그런 가운데 나오는 관세음보살님의 한마디가 있다. “오공아, 보살이나 요괴나 결국 한 생각일 뿐이지. 근본을 말한다면 모두 본래 없음이니라!”어떤 존재가 선이라든가 악으로 본디부터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이 말, 우리가 부처님의 지혜로부터 배워 이 세상을 새롭게 건설해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방향타가 될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는 다른 존
인간은 서로 다른 성격과 능력을 갖고 세상에 태어난다. 비슷한 능력을 타고 났어도 가정환경과 교육 정도,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의 성향에 영향을 받아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지리산‧설악산을 최고로 여기는 이들은 그 믿음대로 살아가고 집에서 가까운 낮은 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그 산을 좋아할 수 있어야 하듯이.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똑같은 삶을 살아가라고 강요하지 않고 각자 근기에 따라 살아가게 도와주는 것이 정상적인 시민들이 할 일이다.탐구정신을 타고 난 사람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자나 사상가
동해에서 힘차게 솟아오른 붉은 태양이 낙산사 관음보살의 미소가 되어 세상을 비춘다. 무술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그래도 시도해보는 금연이나 다이어트에서부터,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속득취업 원만성취’와 ‘국가고시 무난합격’에 이르기까지 기대와 설렘으로 활기가 돈다. 나라 대통령도 온 국민의 행복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각종 새해 정책을 내놓았다.불교계를 돌아보면, 지난 정유년은 총무원장 선거를 비롯해 여러 현안들로 그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더구나 ‘불자 300만 감소’라는 통계자료
역사공부를 해오면서 버리기 힘든 명제가 하나 있다. 바로 역사는 발전한다는 명제이다. 때로 역사는 정체, 혹은 퇴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관적인 생각을 해야만 하는 순간도 있지만, 우리 인류의 역사는 도도한 강물의 흐름처럼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도 분명 발전해나갈 것이다. 물론 역사는 일직선상으로 발전해오지 못했으며, 그냥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도 아니었다. ‘민주주의, 정의, 자유, 평등’ 우리 인류사회가 이러한 공동의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그동안 치러왔던 희생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정도이다. 역사는 구성원들의 숱한 희생과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