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교간 원탁평화는 한민족의 자랑이요 위대성의 하나대통령이 불교계 4대요구 받아들이면 화엄개벽은 순행 그러나 ‘헌법파괴 ·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대회’ 상임봉행위원장 원학 스님은 “대통령이 불자들과 시민들이 종교차별로 얼마나 고통을 겪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추석이후에도 각 지역별 불자대회를 열 뿐 아니라, 사회단체세력과의 연대 가능성도 언급했다. 추석 뒤까지 이어지는 불교계의 반발은 추석이후 ‘민심회복’을 통한 ‘국정드라이브’를 준비하는 이명박정부의 정국운영일정에도 일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동일한 지면 맨 하단이다.“26일 현재 전국에서 집결하는 전세버스만 2천대이상 예약돼있는 것으로 파악됐다.”“전세버스로 상경하는 불자들만 8만 명”“서울광장뿐 아니라 남대문과 을지로 일대
김지하 시인은 지난 8월 27일 범불교도대회에서 “조용한, 그러나 엄청난 태풍이 내 안에 소용돌이 치는 경험을 했다”고 술회했다. 무수한 푸른 별과 무수한 붉은 꽃들이 인간의 몸과 물질과 허공과 세계의 모든 존재들과 생각들, 움직임들 속에서 반짝! 살폿! 여기저기서 뜨고 필것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대화엄의 우주적 영적 네트워킹의 시대로 들어간다.이것이 곧 후천개벽이요 동학의 비젼이다.그래서 동학 역시 ‘밝고 밝은 개벽의 운수를 각각 제 나름나름으로 밝혀라(明明基運 各各明)’라고 하거나 안으로 신령이 있고 밖으로 기화가 있으니 한세상 사람이 우주적 불가불리의 융합성을 저마다 제나름나름대로 인식하고 깨닫는다.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各知不移)고 하며 바로 이것을 ‘모
생명·평화시대…대중통합의 원만성 확립은 대통령 책무뉴라이트에게만 손 내미는 건 반쪽 소통에 매달리는 것 “바로 그것이다.”“머레이·북친은 어떤가?”“실질적으로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드볼·서션스의 심층생태학은 어떤가?”“낭만적 동기는 있으나, 문화와 인간의 자유를 설명할 수 없다.”“기든스나 울리히·백 등의 성찰적 근대화 철학 등은 어떤가?”“싸구려 상품이다. 이젠 거들떠보지도 않는 낡은 것이다.”“벌써?”“유럽시장은 본디 무정하지 않던가!”“무엇이 대신 유행하는가?”“불교다.”“유일한가?”“아시아샤머니즘과 함께다.”“어떤 샤머니즘?”“고대의 여신(女神)이나 모권제(母權制)신화다.”“불교를 찾는 원인은?”“영성고갈, 불안, 세계가 세계 자신을 인식하는 근본적 만물해방의 갈증…”“선(禪)말인가?”“
나는 그 기조연설에서 ‘촛불의 풍류와 화엄개벽’을 주제로 전세계를 향해서 말을 건넬 터이다. 어찌 할 터인가? 대세(大勢)다. 거스를 터인가?함께 타고 갈 터인가? 셋째, 세계문명사의 중심은 분명 대서양에서 동아시아·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로트르담허브에서 한반도 삼면해안의 동로트르담허브로 이동하고 있다. 수많은 전문가들의 일치된 단언(斷言)이다. 이제 이 한반도는 지나간 역사 속에서 민족이 겪어야했던 976회의 외국 침략속에서도 끝끝내 지켜왔던 고대적 삶의 기억과 미래를 향한 눈부신 이상을 결합하는 ‘성스러운 컵(聖杯)’을 인류와 세계 앞에 제시해야 한다.경제생활의 경우 그것은 무엇인가?바로 ‘신시(神市)’다.칼·플라니 개념으로는 ‘호혜시장(互惠市場)’이다.고대 아시아시장에 엄존했던
김지하 시인은 이명박 대통령이 불교의 요구나 충고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대세를 거스르는 역행보살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불교계는 이명박정부 출범과 동시에 추진했던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대해서도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사진은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도보순례 44일째인 3월 26일 운문사 학인 120여 명이 운하건설을 반대하며 낙동강 지류를 걷고 있다. 불교와 손을 잡아라!불교의 요구나 충고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드려라!이것이 대세(大勢)다.정치 또는 정치력이란 경제, 더욱이 토목공사와는 매우 다르다내말을 듣지 않으면 이명박 씨와 현 정부는 스님들 말처럼 ‘역행보살(逆行菩薩)’일 뿐이다. 거꾸로 가면서 세상에 공헌한다는 씨니시즘(cynicism)이겠다.너
김지하 시인이 9월 4일 ‘가만히 좋아하는 -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를 보고-’ 제하의 기고문을 본지에 보내왔다. ‘가만히 좋아하는’을 ‘자제된 열정’으로 해석한 김지하 시인은 200자 원고지 230매 분량의 장문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일부 목사들의 잘못을 질타했다. 그리고 화엄개벽을 통해 세계문명사의 동아시아 이동에 대비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편집자 ‘가만히 좋아하는’이란 말은 시어(詩語)로써 김사인(김思寅)시인의 최근 시집 제목이다.‘자제(自制)된 열정(熱情)’의 뜻일 것이다. ‘가만히 좋아하는’은 참된 중도(中道)와 진정한 원만(圓滿)으로 가는 바른 길일 터이다. 최근 이명박정부의 불교에 대한 종교차별은 헌법파괴수준에까지 이르고 있고 여기에 대
신학자이신 정양모 신부님이 얼마 전에 나의 바닷가 토굴을 찾아오신 적이 있다. 내가 쓴 소설 ‘흑산도 하늘 길’을 읽고 오신 것이다. 그 소설 주인공은, 조선조 후기, 천주학을 신앙했다는 이유로 정적들의 모함을 받아 흑산도로 유배되어 거기에서 돌아가신 정약전 선생이다. 나는 정약전 선생이 살아낸 흑산도에서의 절대고독을 형상화시키기 위하여 주자학과 천주교 교리들을 깊이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의 최고 지성인들인 이벽 정약용 정약전 이승훈 등의 우리 선인들을 천주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던 책들 가운데 ‘천주실의’의 번역본을 읽으면서, 나는 그 책을 번역하는데 화룡정점의 역할을 한 분이 정 신부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불교만 아시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천주교 교리까지를 그렇게 깊이 알고 계십
민족사 윤창화 대표가 7월 7일 월요포럼에서 “성철 스님의 오매일여 해석은 도교적 관점일 뿐만 아니라 화두참구 상태가 실제 오매일여가 돼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분별망상이다”(본지 956호)라고 주장한 가운데 성철선사상연구원 연학실장 원충〈사진〉 스님은 이에 대한 반론문을 보내왔다. 원충 스님은 성철 스님의 상좌로 지난 3월 일본 하나조노대에서 선학(禪學) 연구로 박사학위를 학위를 취득했다. 편집자 주 2008년 7월 7일 월요포럼에서 민족사 윤창화 대표는 『오매일여는 가능한가? : 오매일여의 진실과 곡해』라고 하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성철 스님의 오매일여는 실제로 불가능할뿐더러 그러한 해석이 도교적 관점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자료 해석에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므로
오현 스님의 시는 불교의 심오한 사색과 깨달음의 세계를 일상적인 평이한 시어로 쉽고 감동적으로 읊고 있다. 지난해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인 ‘아득한 성자’가 하루살이의 삶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일깨워준 시라면, 이번 공초 문학상 수상작인 ‘아지랑이’는 실체가 없는 허상인 아지랑이를 좇아 헤매는 부질없고 어리석은 인생을 읊은 철리시이다.먼저 ‘아지랑이’의 시 전문을 소개하고 그 내용을 음미해 보자.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우습다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우습다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이 공(空)사상이다. 선사(禪師)들이 말하는 깨달
종교환경회 순례단의 일원으로 운하 예정지를 순례하고 있는 수경 스님이 3월 13일 「법보신문」에 운문사승가대학을 비롯, 각 강원에서 수행․정진하고 있는 학인 스님들을 순례 행렬에 초청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특히 스님은 3월 7일 문경 봉암사에서 봉행된 ‘부처님 마음과 생명의 눈으로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참회·정진 법회’에 동참했던 운문사 학인 스님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도보 순례는 수행과 성찰의 과정이기에 함께 할 것을 요청했다. 편집자 3월 7일 문경 봉암사에서 열린 ‘부처님 마음과 생명의 눈으로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참회·정진 법회’를 감동적으로 장엄해 주신 운문사 학인 여러분! 먼저 이 법회를 주관한 종교환경회 순례단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존경을 담아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
3월 7일 문경 봉암사에서 열린 ‘부처님 마음과 생명의 눈으로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참회법회’를 감동적으로 장엄해 주신 운문사 학인 여러분. 먼저 이 법회를 주관한 종교환경회순례단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그날 여러분들의 모습은 눈부셨습니다. 아무 말 없이도 승가의 위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저도 한때는 천하를 통째로 삼킬 량으로 토굴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시절 인연으로 환경 운동의 말석에 서게 되었습니다. 난폭한 주인이 노예를 부리듯 자연을 대하는 세상의 성정을 제도할 법력은 턱없이 모자라는지라, 고통 받고 신음하는 자연과 함께하는 쪽을 택한 것이지요. 운문사 학인 여러분!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중생 제도’일까요? 소박하게 얘기하자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남대문은 그 정식 명칭이 숭례문이고 6백년의 역사를 간직한 국보 1호라는 것을. 양녕대군이 제액의 글씨를 썼다는 설이 있음을 아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정작 이 건물을 세운 건축가의 이름을 아는 경우는 드문 것 같으니, 역시 등잔 밑은 어두운 것 같다. 태조 5년(1396)에 시작된 숭례문 건설은 1398년 2월에 완공되었다. 1448년과 1479년 두 차례의 중수를 거치기는 했지만, 해체․수리를 했던 1962년까지 이 건물은 세월의 풍상을 굳건히 이겨냈다. 해체 시에 발견된 1396년 10월 6일자의 상량문은 당시의 대목이 법륜사의 각희(覺希)였음을 명기하고 있다. 대목이 설계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건설 현장의 총체적인 지휘와 감독을 맡았던 점에 유의하면, 각희는 뛰
“이 시대를 생명의 눈으로 성찰하는 계기 삼을 것”부처님이시여!길을 나섭니다. 길에서 나셔서, 길 위에서 가르침을 펴시다가, 길 위에서 가신 당신을 따라 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왜 이리 두려운지요. 엄동에 한뎃잠을 자야 하는 일도 두렵고, 혹시라도 누군가를 미워하게 될까 봐 두렵고, 길을 잃을까 봐 두렵습니다. 당신의 길을 따라온 40년이 헛공부였는가 봅니다. 하지만 저는 길을 나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는 일이 더 괴로워서, 우선 제가 살기 위해서 이 길을 나섭니다. 하여 이 길은, 납자로서 살아온 지난 시간을 반조하고, 당신과 당신의 또 다른 몸인 뭇생명들에 드리는 기도입니다. 모두들 힘들어합니다.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다들 못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거리에는 차들이 넘쳐나고,
민족의 최대 명절 설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신년이 시작된 지 이미 한 달 너머 지났습니다마는 수천 년 음력을 사용했던 우리로서는 아무래도 설이 지나야 진정한 새해를 맞이했다 할 수 있겠지요. 법보신문은 올 한 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을 사훈으로 정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좋은 날이다’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의미가 깊은 문구입니다. 알다시피 일일시호일은『벽암록』에 실린 선가의 유명한 화두입니다.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나 생로병사, 길흉화복에 소란을 피우지만 우주는 한 개인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의 본체에서 본다면 자연의 변화와 실상에 선악이란 없다.” 『벽암록』의 설명입니다. 우리는 태풍이 불면 태풍이 분다고 걱정합니다. 또 볕이 쨍쨍 내리쬐면 너무 뜨겁다고 불평을 하지요. 그러
“스님, 스님. 이것 좀 보세요. 별일이네요.”우리 절 한 보살님이 내 앞에 불쑥 신문을 내밀었다. 「법보신문」이었다. 평소에는 비교적 꼼꼼히 신문을 보는 편이지만, 요 며칠 많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번 주에 도착한 신문을 이제껏 보지 못했던 터라 무슨 일이라도 났나 싶어 보살님이 펼쳐 보인 지면에 서둘러 눈을 돌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신문 지면에 ‘성모 마리아’ 품에 안겨 있는 ‘아기 예수’의 그림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는 것이었다. 신도 교육과 포교를 주목적의 하나로 삼고 있는 불교계 전문 신문에서 이웃 종교의 ‘성화’로 불리는 그림이 보이다니 보살님 말대로 ‘별일’이었다. 지면을 펼쳐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어보니 비교종교학자로 이름 높은 오강남 교수님이 인류 역사에 등장한 여러 종교들의
정해(丁亥)년 한해가 긴 낙조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희망찬 무자(戊子)년의 새 아침이 밝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법보신문 발행인 이상훈입니다. 한해를 갈무리하는 시기에 법보신문 새 발행인으로 독자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됨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법보신문은 지난 1988년 근대 한국불교의 거대한 산맥이었던 월산 성림 대종사께서 문서포교를 통한 불법홍포의 뜻을 세워 창간한 범불교 신문입니다. 법보신문은 지난 19년 동안 저널리즘 본연의 사명인 냉철한 이성과 예리한 시각으로 불교계의 현안을 분석하고 바른 대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해 왔으며, 이런 노력과 독자 여러분의 성원이 함께 어우러져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불교계를 대표하는 유력 언론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 올수록 우리 눈앞은 한치 앞을 보기가 어려울 만큼 혼탁스럽기만 하다. 12명의 후보 가운데 앞으로 5년 동안 나라 살림을 맡겨야 할 일꾼 1명을 가려내야 하는데 이번 선거만큼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요즘은 옥외 유세장에 의존했던 옛날 선거와는 달리 미디어에만 의존하는 선거이다. 따라서 국민은 미디어에 나타난 내용에 판단의 근거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온갖 보도는 후보들이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할지 그들이 제시하는 정책 방향은 보이지 않고 대신 네거티브 캠페인만이 난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의식 속에 의혹과 불신만이 팽배해져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인식으로 실망만 만 심어 주고 있다. BBK 사건이라든가, 삼촌 조카사이 양육비 소송사
최근 조계종 중앙종회의 ‘불기 사용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위원장 주경)’의 불기 문제 논의과정에서 조사위원으로 위촉된 동국대 조준호 박사가 “올해 불기는 2551년이 맞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동국대에서 ‘인도불교사’와 붓다의 생애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김미숙 박사가 본지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김 박사는 기고문을 통해 “WFB의 불기는 세계 각 나라와 단체들이 최우선적으로 기준 삼고 있는 불기”라며 “더구나 서구 국가에서 불교도가 늘어나고 있는 현대에 그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 가고 있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이어 “현 시점에서 WFB의 불기 산정법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라며 “WFB는 불기 산정에 있어 남방 전승을 따르고 있고, 특히 인도의 태음력을 산정 기준으로 삼고
주 영 운행원문화재단 이사장 신문 펼치기가 두렵고 텔레비전 쳐다보기가 가슴 떨립니다. 누군들 살면서 잘못 하는 일이 없고, 누구들 살면서 원한 지는 일이 없겠습니까. 그러니 잘못이 드러나 질책을 받기도 하고 때론 망신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 며칠사이 불교계에 관해 전해지는 소식들을 들을라치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부풀려진 것인지를 따지기도 싫을 만큼 눈살이 찌푸려질 뿐입니다. 더욱이 출가한 스님들 사이의 다툼과 힘겨루기가 이제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성속을 구분없이 거론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속이 성을 걱정한다’는 어떤 논객의 표현이 헛말이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교단내의 다툼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닙니다. 부처님 재세시에도 승단 내에 사소한 오해가 일어 패거리가 형성되고 다툼이 일었
수경 스님화계사 주지 청명청명 가을 하늘마저 눈물겹다. 생명평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보노라면 그 모든 것들이 참으로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다. 종교는 종교대로 그러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환경 등 그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더구나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두 기둥을 무참하게 쓰러트리는 불교계의 추악한 모습들은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통 받는 중생들을 위해 관음의 천수천안이 되어야 할 수행자들이 오히려 더 깊은 중병을 앓고 있으니 속인들의 눈에 비치는 불교계의 위상은 그야말로 ‘도로아미타불’이 아닌가. 마침내 터질 것이 터지고 올 것이 왔으니 이제 남은 것은 발로참회뿐이다. 지난 10월 28일 삼각산 화계사에서는 ‘이주 사망노동자를 위한 천도재’를 봉행했다. 이 땅에서 차별과 천대를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