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 3년전만 해도 불교동호회로 대표되는 인터넷커뮤니티는 일반 신행단체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종단이나 불자들의 인터넷에 대한 이해와 활용이 미흡했을 뿐만 아니라 PC통신 불교동호회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활동 또한 일반신행단체의 그것에 비해 나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국민의1/3 이상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고 인터넷커뮤니티가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는 상황에서 불교 관련 커뮤니티에 대한 기대가 점차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터넷 커뮤니티는 현실 공간과 양립할 수 있는 신행공간, 또는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한 포교 공간으로서 어느 정도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까. 새로운 신행공간으로서의 인터넷 커뮤니티의 가능성은 커뮤니티 사이트인 ‘다음 까페’와
성격 다른 두 인물의 구도행각 통해 사회질서의 허위 가치 비판 4. 김성동의 《만다라》 김성동의 《만다라(曼陀羅)》는 1970년대의 화려하면서도 어두웠던 밤에 구슬프게 우는 목탁새, 그 성불 못한 중이 죽어서 된다는 새처럼 나타난 작품이다. 1975년
며칠 전에 내 작업실로 찾아온 학생들 덕에, 내가 강의를 다니는 학교의 어떤 교수님 한 분이 학생들한테 참 특이한 과제를 내준 것을 알게 되었다. 내용인 즉, 주변에 널려있는 수많은 간판들 중에서 손으로 쓰여진 것들을 골라 사진을 찍어오라는 것이었단다. 그렇게 모아진 사진들을 책으로 묶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생각으론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나를 찾아왔다면서 원고뭉치를 펼쳐보이는 바람에 알게 된 일이다. ‘그것 참 재미있는 숙제로군’이라 말하는 내게, 한 학생이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의문을 표시했다. “컴퓨터 디자인 선생님이 뭐 이런 촌스러운 숙제를 내주시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학생한테 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컴퓨터는 도구일 뿐, 디자인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란 걸
최근 편집국 회의실에서 모처럼 짬을 낸 기자들과 ‘불자들의 심각한 책 외면’풍조를 주제로 한담을 나눴습니다. 말이 한담이었지 그 내용은 자못 심각한 것이었지요. 이 자리에서 나온 말들의 대강은 이렇습니다. “불자들이 1년 동안에 불서(佛書)를 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조사가 몇 해전 있었다는데, 심각한 일이다.” “불자의 불서 독서량은 기독교 신자의 1/20에 불과하다고 하더라.” “왜 불교에 귀의만 하면 책을 멀리하게 될까?” “불교신자가 늘어날수록 우리 국민이 점점 우민화되는 것은 아닐까? 불교신자가 늘어나는 게 국익에 반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등 그날 기자들은 모두 ‘정말 큰 일이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기도와 갈구의 종교가 아닌 지극히 합리
해남의 땅끝마을에 위치해 있는 미황사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가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잔잔한 감동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은 지역사찰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주는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우리는 지난 11월 11일 열린 이 작은 음악회가 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지역 고찰이 주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 것인가라는 힌트를 준 작지만 큰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지역 주민들을 직접 참여시켜 행사를 준비하고 출연을 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지역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느끼게 하고 마침내 사찰과 지역주민이 하나되는 대동제의 성격을 충분히 살렸다는 점은 이른바 대도시에 사는 몇몇 ‘큰 신도’에 의지해 사찰을 운영하는 상당수 지방 고찰들이 향후 지향해야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는
국가정보원의 강한 항의와 지역 가톨릭 신자 40만 명의 연대에 밀려 고려 때 창건된 사찰인 용인 장경사 뒷산을 지나는 대형 송전선로를 설치하려던 한국전력공사가 11월 16일 송전선로 변경을 위한 답사를 실시하고 “장경사 노선을 변경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직까지 변경될 노선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한전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긍정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주민들과 협의하겠다”면서 성의 없는 태도로 일관했던 한전은 장경사 노선 설치 과정에 지역 주민이나 장경사, 불자들의 의견을 단 한 차례도 반영하지 않았고 지역 주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지역 이기주의(님비현상)로 깎아 내리는 등 납득할 수 없는 편파 행정을 일삼아 왔기
이상의 `성천기행'에 보면 신청년인 그의 눈에 평남 성천은 권태롭기 이를데 없는 고을로 그려지고 있다. 푸르기만한 하늘, 녹색으로만 덮힌 산과 들, 심지어 아이들이 놀다가 대변을 보는 것까지도 이상은 견딜수 없는 권태의 풍경으로 잡고 있다. 이미 폐결핵이 깊어 찾은 산천이건만 신문이 안오고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대목도 있다. 몸이 피폐해서 그랬겠으나 지금 신세대도 아닌 30년대 청년이 잠깐의 산속에서 내내 경성만을 동경하는게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그렇게 따분해서 몸부림 치던 기억이란 남아있지 않다. 도리어 요즘같이 우기로 접어들 때는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아 하루해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장대비가 그치기 무섭게 우리는 집집의 또래들을 들쑤셔 검은 구름
중앙승가대 제3대 신임 총장으로 종범 스님이 선임됐다. 학교법인 승가학원(이사장 정대 스님)이 11월 16일 조계종 총무원청사 4층에서 개최한 제55차 이사회의에서 10명의 이사가 참여해 만장 일치로 종범 스님을 중앙승가대 총장으로 선임했다. 종범 스님은 이날 인사말에서 “어려운 시기에 총장을 맡게 돼 나름대로 큰 부담이 있지만 중앙승가대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이사장 정대 스님은 “학자의 길을 걷는 종범 스님을 위해 총장으로 모시지 않으려고 한 것도 사실”이라며 “이왕 총장직을 수행하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해주길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달라이라마 방한준비위가 11월 16일 “우다웨이 주한 중국 대사는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을 중단하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달라이라마 방한 목적이 10억 모금에 있다고 운운하는 우다웨이는 망언의 근거를 밝히고 한국을 떠나라”고 경고했다. 우다웨이 대사는 “달라이라마가 티베트 독립을 주창하는 동시에 10여 억 원의 활동경비 모금을 위해 방한하려 한다”면서 달라이라마가 정치적 인물이란 점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폐사지 복원은 잃어버린 역사 즉 불교사를 잇는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여기에는 경제적 학술적 법률적인 문제등 선행되어야할 과제가 너무나도 많다. 먼저 폐사지 복원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할일이 바로 폐사지의 소유다. 앞서 지적했지만 전국에 산재해 있는 폐사지 가운데 일부는 교계 소유로 되어 있는 곳도 있지만 사유지나 국유지에 비하면 그 수나 면적은 많지가 않다. 이런 점에서 폐사지의 교계 소유는 복원과 잃어버린 불교사를 잇는 첫걸음이다. 이와함께 최근들어 크고작은 토목공사 현장에서 절터가 잇따라 발굴되는 등 개발로 인한 절터의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계는 해당 절터의 소유를 위한 기초작업을 다져나가야한다. 즉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등 역사 기록서와 각종 사지(寺誌)등에 기록
조계종 비구니스님은 비구스님과 동등한 종단내권리를 가질 수 없는가. 조계종 중앙종회에서 비구니의 평등권 문제가 또 다시 불거졌다. 산중총 회법 개정안을 심의하는 도중 종광스님은 "비구니도 비구와 평등한 참정권을 가져야 한다"며 `비구니계를 수지한 지 20년을 경과한 당해 교구의 재적승'을 `비구니계를 수지한지 5년을 경과한 당해 교구 재적승'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비구니도 비구와 동등한 참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장윤스님은 "비구와 비구니가 같은 자격을 가질 수는 없다. 다만 20년이 너무 길다면 10년으로 하자"며 이의를 제기했다. 종광스님의 5년 주장과 장윤스님의 10년 주장이 엇갈리자 정우(구룡사 주지)스님은 "비구니에게 비구와 동등한 자격 또는 10년이
조계종 총무원은 문화체육부의 협조를 얻어 오는 11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조계사에서 경주 나원리 5층석탑과 용당리 감은사 동탑(3층석탑)에서 출토된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 친견법회를 봉행한다. 그리고 친견법회를 마친 사리는 새로운 장엄구(莊嚴具)에 안치하여 8월과 9˙10월에 복원되는4원리 5층석탑과 감은사 동탑에 각각 봉안될 예정이다. 문화체육부가 불교도의 염원을 수렴하여 사리친견법회에 협조한 것은 백 번잘한 일이다. 그러나 보다 더 잘하는 것은 사리를 불교계에 완전히 돌려주는 것이다. 다 아는 바와같이 사리는 부처님의 유골과 고승대덕의 유물로서 불교도에게 있어서는 예배의 대상이지만 정부로서는 소유하거나 관리할 아무런 의무가 없기 때문에 불교계에 돌려주는 것이 순리이다. 또 정부 이
부석사를 중흥시키는 일영주 부석사가 대단한 절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초등학교 국사교과서에도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조사전이 우리 목조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랜 것이라는 점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이니까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 절에는 이 두 목조건물이외에도 국보가 세가지, 보물이 네가지가 더 있어서 가위 우리 문화재의 보물창고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이절이 중요한 것은 국보와 보물이 많이 있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 절이 우리 화엄종의 종찰이라는 점에서나 국내 10대 사찰의 하나라는 이지방 사람들의 자부심도 무시할 수 없을 것같다. 그러나 이 절을 처음 찾는 참배객 관광객들이 부석사에서 느끼는 것은 좀 더 다른 그 무엇이 아닌가 싶다. 주차장과 상가를 벗어나 일주문을 향해 오르면서
종립 동국대(총장 송석구) 95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이 재단이사장 녹원 스님을 비롯 황명수 총동창회장 등 내외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8월23일 오전1 시 학술문화관(중극장)에서 거행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학사3백54명(서울 2백61명, 경주 93명), 석사 2백41명, 박사47명, 지도자과정 1백91명 등 총 8백33명의 학위가 수여받았다.
부산 천태종삼광사(주지 춘광 스님)는 8월21일 부산교도소를 방문 재소자 생일축하 법회를 봉행했다. 1부 축하법회와 2부 다과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삼광사 봉사회원 15명과8월에 생일을 맞는 51명의 재소 불자가 참석했다. 봉사회 김기필 총무는 축하 인사를 통해 "비록 영어의 몸이지만 생일을 맞아부처님의 가피력에 힘입어 소정의 형기를 무사히 마치고 가족의 품안으로 돌아가라" 고 말했다. 봉사회는 선물로 수건을 준비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 열반의 깨달음을 얻기를 당부했다.
문화방송 불교연구회(회장 유희근)는 제2회 전국명찰 순례법회를 8월24·25일강원도 월정사·상원사 일대에서 실시했다. 불교연구회 회원 40여명은 원행(삼화사 주지) 스님을 법사로 법회를 봉행하고,적멸보궁을 참배했다. 한편 불교연구회는 9월19일 사내법회를 봉행하고 10월 19·20일 양일간에는 포항문화방송 불교연구회와 함께 제3차 전국 명산대찰 순례법회를 불국사에서 가질계획이다.
여름휴가의 여파로 인해 온갖 쓰레기 더미로 뒤덮힌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불자들이 나섰다. 맑고 향기롭게(회주 법정 스님)는 8월 25일 경기도 양평 용문사 계곡에서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란 환경보호 캠페인을 벌였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실시된 이날 캠페인에는 5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해 계곡에쌓여있는 쓰레기 수거활동과 등산객을 대상으로 쓰레기 버리지 않기 계몽운동 등의 활동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불가(佛家)의 5대 명절인 백중절을 맞아 제3회 생명해방의 대축제가 열렸다. 서울 봉은사(주지 무상 스님) 주관으로 8월 28일 오후 5시부터 5시간에 걸쳐봉은사 앞마당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는 무상 스님과 봉은사 신도 등 7백여 명의사부대중이 참석했다. 수확을 앞두고 풍년을 기원하는 봉은사 풍물패의 길놀이 공연으로 시작된 축제는 △영단분향 △시련(侍輦) △불공 △시식(施食) △봉송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일연(一然)스님(1206~1289)이 삼국유사를 집필했다는 인각사(麟角寺)의 주지를 모신다는 광고가 승속간 화제로 올랐었다. 산문(山門)의 일이지만 비공개적으로해서 생길지 모를 잡음이나 의혹을 덜 수 있어서 좋고 일반인들에게 불사에 대한관심까지 제고했다고 해서 신선한 일로 반기는 분위기였다. 인각사처럼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공간은 벌써 복원과 관리에 힘써야 했음에도방치되다시피 했던 것이 불교계의 현실이었다. 유럽제국과 일본 등에서 위인들의자취라면 기를 쓰고 챙기는 버릇에 비할 때 우린 그런데 너무 무관심한 편이었다. 저들은 위인의 생가를 보존하는 것은 물론 몇백 년전의 유품과 유물들을 고스란히 보존해놓고는 낯선 이방인들에게도 보란 듯이 역사자랑에 한깟 열을 올린다고 한다. 교과서를 통한 일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국보 제32호 고려대장경판(속칭 팔만대장경판)중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