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이 서울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연탄지원 캠페인 ‘아이연탄맨’을 진행했다. 개미마을 80가구에 전달한 연탄은 총 1만6000장. 수능시험을 마친 동대부고 학생들과 포교사, 대불련, 대불청, 조계사 직장직능 전법회와 봉사회 등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연탄을 배달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참여해 직접 연탄을 나르기도 했는데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며 의미 있는 말을 전했다. “보여주기 식 행사가 되면 안 됩니다. 늘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이런 행사가 자주 있기를 바랍니다.”현재 전국적으로
동국대 법인사무처와 교수협의회, 직원노동조합, 총학생회는 최근 구성원 회의를 열어 내년 2월초 19대 총장을 선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동국대 이사장 자광 스님은 “학내 구성원 가운데 차기 총장을 선출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현재 하마평에 오른 총장 후보가 10여명에 이른다는 전언이다.법인사무처를 중심으로 한 동대 구성원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 총장 선출에 따른 민주적 절차를 심도 있게 논의한 건 시의적절했다고 본다. 18대 총장 선임을 둘러싼 갈등양상이 19대 총장 선임 과정에서도 재현될 경우 동국대 위상 추락은
조계종 승려교육의 목적은 깨달음 성취와 보살도 실천이다. 계정혜 삼학에 초점을 맞춘다면 깨달음 성취에 방점을 찍는 것이고, 경전을 중심으로 한 내외전에 무게를 둔다면 보살도 실천에 방점을 찍는 것이다. 승려라면 두 본분사를 다 취하고 닦는 것이지만 개인의 근기·특성·원력에 따라 우선적으로 한 쪽을 먼저 취하기도 한다. 조계종이 선원, 강원, 승가대학, 동국대를 기본교육기관으로 설정한 것도 이러한 특성을 고려한 데서 연유한다.조계종 기본교육기관을 졸업한 스님들 중에는 좀 더 깊은 내외전을 탐구하기 위해 석·박사 과정을 밟는다. 200
“본인은 임기 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할 것을 천명하는 바입니다.”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전국이 민주화 운동으로 들끓었던 1987년 4월13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국민들을 향해 이와 같이 발표했다. 그러나 성난 민심은 잦아들지 않았고 그의 호헌조치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됐다. 인터넷 위키백과는 6월 항쟁과 관련,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등 각계 인사들이 전두환의 호헌 조치를 비판하는 시국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고 적고 있다.당시 스님들과 불자
전준호 대한불교청년회 전 회장의 공금횡령 의혹이 불거졌다. 조계종이 전준호 전 회장 시절 과입금된 금액을 대불청에 돌려줬는데, 이 돈이 현 집행부에 인수인계되지 않은 통장으로 들어와 전준호 전 회장의 개인계좌로 이체됐다는 것이다. 대불청에 따르면 이런 사실은 올해 9월 외부감사에 의해 적발돼, 긴급이사회에서 진상조사위원회을 꾸려 조사 중이다.그런데 횡령의혹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차기회장에 당선된 하재길 당선자와 인수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전준호 전 회장을 적극 두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개인이 해명해야 할 의혹을
육군본부에 군종병과가 설치된 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7일이다. 이후 목사와 신부들이 줄을 이어 종군하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 군목사·신부는 육군 안에서만도 139명이었다. 반면 스님 즉, 군승은 한 명도 없었다. 정부가 군종의 길을 불교계에게는 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휴전협정 체결 후 군 규모가 커짐에 따라 군종업무 비중도 높아지면서 군종업무 운영에 국가예산이 투입(1955)되기 시작했다. 고기가 물 만난 듯 기독교계의 군 선교는 엄청나게 활기를 띠었다.그러나 이때까지도 군승은 존재할 수 없었다. 청담, 능가, 추담,
‘2015년 기준 전년대비 어린이·청소년법회 증감률’ 자료가 있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17개 지역의 어린이·청소년법회를 여는 조계종 사찰들의 추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늘어난 곳은 한 지역도 없다. 모두 원점에 머물러 있거나 줄었다.서울 경우 어린이 법회는 12.5%, 청소년 법회는 9.1% 각각 감소했고, 부산은 41.2%, 37.5% 줄었으며, 강원은 −57.1, −66.7%를 기록했다. 경북은 −72.7%, −100%였다.쓰린 기억을 자꾸 되살려 내는 자체가 고통이기는 하지만 통계청의 ‘2015 인구주택총
6·10 항쟁의 함성 속에 타오른 민주화 열망이 이 땅을 뜨겁게 달굴 때 법보는 출범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라와 민족의 역사를 새로이 열어야 할 중대한 전환기에 처해 있다’로 시작한 ‘천수천안의 거보(巨步)’ 제하의 창간 사설에서 법보는 ‘그동안 유보되었던 인간의 자유와 기본권을 회복하고 진실한 표현의 자유로 인간의 자주성과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실현’될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할 것이라 천명했습니다.평화·공존의 인생관에 따른 양심적 결단을 지키고자 군사훈련을 거부한다고 선언했던 오태양씨의 외침을 올곧게 담아낸 건 법보
불교상담개발원이 ‘스스로 떠난 이를 위한 위로법회’를 봉행했다. 자살을 선택한 넋을 위로함과 동시에 절망감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유가족들의 심상을 치유하는 시간이기도 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2017년까지 13년 동안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올해 최악을 모면할 수 있었던 건 OECD에 새로 가입한 리투아니아의 자살률이 우리나라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하루 평균 자살 현황을 보면 2014년에는 37.9명, 2016년에는 36명, 2017년에는 34.1명이었다. 자살률이 감소하는 추
조계종 포교원이 2030세대를 위한 ‘청년 마음거울 108앱'을 출시했다. 입시·취업지옥으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에서 고통받고 있는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청년세대들은 그 누구보다도 경제침체의 여파를 실감하고 있다. 지표로 드러나는 실업률, 끝없는 비정규직의 양산, 빈부 격차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현실에서 젊은 세대가 느끼는 위험도는 예상보다 훨씬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자신을 스스로 비난하는 심리현상은 우울증과 고립으로 이어져 심신을 피폐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는 1967년 12월29일 지정된 지리산 국립공원이다. 22개의 국립공원 내 사유지 비율은 45.5%에 이른다. 사유지를 소유한 경우 지자체나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기도 하지만 각종 규약으로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피해를 감수해야 할 때도 적지 않다. 사찰도 예외는 아니다. 지리산 천은사가 대표적이다.1950년대 중반 지리산 노고단 정상에 군사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무장공비 출몰에 대비한 군사작전도로가 개설(1968∼1972) 됐고, 곧이어 군부대가 주둔(1974)했다. 군사작전 도로는 전두환 정권이 들
국제개발협력 NGO 로터스월드가 KT&G복지재단과 함께 미얀마 시골마을에 현대식 시설을 갖춘 두 번째 학교 ‘자야 스웨따웅’을 건립했다. 지난 14년 동안 캄보디아 지원을 아끼지 않던 로터스월드가 미얀마 후원도 10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으니 불교계 대표 NGO로 꼽을 만하다.한국이 원조를 받던 수원국에서 원조국으로 전환된 2009년 전후로 일반 NGO단체들과 함께 종교에 기반한 NGO 즉 FBO(Fai th-based Organization)가 급속히 확산됐는데 각각 장단점이 있었다. 정부도 접근하기 어려운 사회 빈곤층 사람들을 헌
최근 진행된 행복바라미 워크숍에서 이기흥 중앙신도회장이 조계종 신도등록 100만 명을 목표로 한 신도배가 운동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중앙신도회는 올해 1월1일 신도등록 불사를 포교원으로 이관 받았는데 그즈음 조계종 신도 등록 수는 약 20만 명이었다. 그 이후 10개월 동안 어느 정도 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8월 여름을 전후로 종단 내홍이 불거졌었던 만큼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 선언은 새롭게 출범한 총무원 집행부의 지원과 협조 속에 다시 한 번 힘을 내보겠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대통령의 리더십에 관심을 가졌던 미국 정치학자 바버(Barber)는 “대통령의 직무수행은 성격, 스타일, 세계관 3요소가 한데 어울려 동기·습관·신념을 이루고, 이것이 다시 (국정)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역설적으로는 국민들의 다수 의견에 반하는 정책이 대통령의 신념에 따라 확정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대통령의 종교관에 따라 어떤 정책이 펼쳐졌는지 살펴보자.이승만 전 대통령은 ‘기독교 국가 건설’을 공공연히 발언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1945년 11월 연설에서 “여러분께서도 하나님 말씀을 반석삼아 의로운 나라를 세우기
조계사가 자원봉사단 ‘가피’ 발대식을 가졌다. 산발적인 신도들의 봉사활동을 체계적으로 조직화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봉사조직이 공고하면 각 분야에 적합한 전문적인 활동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자원봉사활동은 지역 주민의 복지를 추구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 주 대상은 특별한 보호나 원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대상이다. 실업자, 심신장애자, 비행청소년, 전쟁미망인, 고령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는 일부 특정계층에 중점을 둔 협의의 사회복지 대상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그 대상이 대폭 확대돼 경제와 교육은 물론 의료, 문화, 체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임기 첫 월례조회를 통해 종도들과의 소통·화합, 한국불교의 유·무형 문화 계승·창달, 승려노후복지 등 후보시절 천명한 3대 공약 이행을 다짐했다. 교구본사와의 협의를 전제한 것이지만 노스님들을 위한 교구별 비구·비구니 수행관 건립지원, 1만2000여명 스님들의 국민연금·의료보험료 100% 지원 약속에 이목이 집중된다.조계종 내에서 승려노후복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때는 2003년 출범한 31대 총무원장 법장 스님 집행부 체제였다. 아쉽게도 법장 스님의 갑작스런 입적으로 큰 진척을 볼 수는 없었지만 종단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조계종 전국비구니회가 기념법회와 함께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했다고 한다. 전국비구니회의 어제와 오늘이 반백년을 지탱해 온 비구니의 역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10월28일 전국비구니회 50주년 기념 법회는 매우 의미 깊다.비구니의 강원교육과 선 수행이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시행되기는 했지만 독자적 강원교육이 체계화된 게 1962년 조계종 출범 전후이니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956년 동학사를 시작으로 운문사, 화운사, 봉녕사, 내원사, 대원사, 석남사 등이 비구니 전문 강원을 잇달아 열어 인재들을 육성했다.포
24개 교구본사와 직능을 대표하는 79명의 중앙종회의원이 선출됨으로써 조계종 제17대 중앙종회가 구성됐다. 17대 중앙종회의 성공적인 의정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종단이 직면한 위기상황 때문이다.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임기 중 퇴진한 데 이어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중심으로 한 집행부도 이제 출범했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따라서 안으로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의 체제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야 하고, 밖으로는 적폐 운운하며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고 있는 세력들의 훼불 행위에도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집행부의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지 56년 만에 2000번째 보물이 지정됐다. 김홍도가 57세 때인 1801년에 그린 8폭 병풍인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가 그 주인공이다.보물 2000호 지정을 계기로 문화재청은 “문화재적 가치가 큼에도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대상을 적극 발굴하는 한편,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이 미래세대에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며 문화유산 가치 고양에 더욱 힘쓸 것임을 약속했다.전 세계 주요 국가가 체계적인 문화재보존 정책을 펴고 있지만 놀랍게도 그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중세이후부터
극심한 내홍을 앓아왔던 서울 불광사가 합의점을 찾아 안정되어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중포교의 산실로 대표되는 도심 사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지홍 스님이 불광사 회주직에서 물러난 건 지난 6월이다. 한 사찰의 어른임을 상징하는 회주직을 내놓는다는 건 사실 여부를 떠나 사찰 내홍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는 반증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주 사임 직후 창건주마저 내놓으라는 요구에 쉽게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창건주 권한을 잃을 만큼의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개인적 소신도 있었을 것이고, 신도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