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의 발굴은 유형과 마찬가지로 발로 뛰어야하는 그야말로 필드워크다. 그러나 무형은 유형과는 다른 여러 특성을 가진다. 특히 무형은 시간적 단절이 가장 풀기 어려운 키다. 따라서 발굴의 지난한 과정이 있게 된다. 양으로 따질 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가운데 불교는 손꼽을 정도다. 더구나 유네스코에 올라가 있는 불교무형문화재는 태고종의 ‘영산재’가 유일하다. 무형문화재의 경우 조계종단은 연등회, 삼화사 수륙재, 진관사 수륙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모두 종목 지정과 단체지정을 받고 있다. 2018년 심향사 ‘불복장장엄’과 2
흔히 일반인들이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관념 중 하나가 ‘땅부자’라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조계종이 소유한 토지가 국토의 1%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이는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지 1700여년 동안 민족의 정신문화로 자리매김해 왔고, 국토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탓도 있다.여말선초 도선 스님은 나라의 국토정책을 설계하였고, 그 이론은 조선에서도 적용되었다. 또 조선초 무학 스님은 한양천도와 도시설계를 담당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 외에도 많은 스님들이 당시 풍수의 대가로 국가와 개인의 토지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여파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 종일 관련 뉴스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관계당국이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국민들의 일상적인 사회활동도 크게 위축되었다. 약속을 취소하고 외출을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소비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국내외 관광업계는 직격탄을 맞았고 부품공장을 중국에 둔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은 부품공급이 여의치 않아 생산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그런데 급
지금은 방학인데도 방학을 제대로 보내고 있는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족한 공부를 채우거나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공부에 매달리고 있고 적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방학이란 무엇인지, 왜 방학을 하는 것인지, 그래서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없다. 방학(放學)이란 학을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많이 듣고 보고 지식을 채워 가는 배우기(學)를 그만하라는 것이다. 왜 지식 쌓기를 그만하라고 하는가? 참된 공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지정문화유산은 그 나라의 자랑이자 품격을 가리키므로 나라들 간의 경쟁도 뜨겁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통도사를 비롯한 7군데 사찰이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등재되어 화제를 일으켰다. 2016년에는 한국의 19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제주 해녀문화’가 등재되었다. 우리나라는 비록 영토는 작으나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문화면에서 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우수성과 독창성을 갖고 있는 문화강국이다.우리는 1995년 세계유산 3건 등재를 시작으로 현
언젠가 교육계에 계셨던 분과 대화하던 중 코딩(컴퓨터 프로그래밍)교육이 화제가 되었다. 영국과 일본, 미국 등에서는 이미 코딩이 중요과목이 됐고, 향후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핵심능력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존 교육계와의 이해충돌로 간신히 1주일에 1~2시간 편성됐지만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우리나라 불교계의 당면과제 중 하나는 출가자와 신도수 감소다. 여러 가지 이유와 대책이 있겠지만 필자는 교육이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해왔다.구한말 서구 선교사를 통해 근대 학교교육이 밀려들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이 여러 국면에서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거리에서는 거의 매일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이념과 지향을 강력한 형태로 표출하는 대중적인 집회가 열리고 있다. 만성 고질병처럼 계속적으로 심각한 증상을 보이고 있는 지역갈등 뿐만 아니라 계층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성별 간의 갈등 및 종교 간의 갈등 등의 크기와 깊이가 점점 커져서 심각하게 우려할 정도가 되었다. 왜 이러한 갈등은 생기는 것이며 심화되어 가는 것일까? 그것을 해소하거나 치유하는 길은 없는 것일까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본다.‘열반경(涅槃經)
세신(歲新)을 코앞에 둔 추운 세모(歲暮)다. 그만큼 만 가지 마음이 교차되는 시기이다. 여기에 그 겨울의 추위보다 더 아픈 사찰들이 있다. 우리들은 즐겁고 행복한 것만 보고 듣고자한다. 고통의 일들은 억지라도 회피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인 것이다.그러나 이 사바세계에 어찌 즐거운 일들만 있으랴. 요즘은 의식주 가운데 그 어느 것보다 ‘주(住, 주거)’의 문제가 심각하다. 사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사찰은 단순히 주거의 공간이 아니라 전법의 도량이요, 부처님을 모시는 우주의 전체이다. 몇 년 새 나라 전체가 재개발로 여기저기 파
내게 아이를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좋아하지 않는 쪽에 가깝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서툰 걸음은 불안하고 느닷없이 비명을 지르곤 하는 넘치는 에너지가 부담스럽다. 시간과 장소를 개의치 않고 울거나 떼쓰는 걸 받아주고 쉽지 않다. 자는 아이는 천사 같지만, 자고 있지 않은 아이는 평화를 깨는 존재다. 하지만 그래서 아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이 세상은 나에게 그렇듯 아이에게도 활짝 열려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이가 없기를 바랄 자격이 없다. 아이가 내가 없기를 바랄 자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해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지난 1년을 되돌아보게 된다. 연초 어떤 계획을 세웠고 어느 정도 실천했는지, 서운하게 한 일은 없었는지, 다짐은 흐트러짐이 없었는지, 생각의 초점을 지난 시간에 맞추고 이런저런 일을 떠올리게 된다. 열심히 살아왔다는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이 많은 게 현실이다. 조선 중기 지행합일을 주장한 시인 장유(張維)는 한 해를 보내면서 ‘앞날은 그래도 어찌할 수 있으니,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리라’라 하였다. 지난 일에 얽매이기보다는 앞으로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세모에 필요함을 말한 것이다. 예나
백제불교는 마라난타존자의 전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마라난타존자는 지금으로부터 1635년 전인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침류왕은 마라난타존자를 한성 궁궐로 맞아들여 정성스럽게 예를 올리고 설법을 들은 후 이듬해 10명을 출가시켰다. 그것이 백제불교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마라난타존자는 간다라국 출신 스님이었다. 간다라는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이다. 간다라는 알렉산더왕의 동방원정으로 인하여 헬레니즘문화가 전해져 있던 곳이다. 여기에 인도의 불교문화가 전해져 헬레니즘 조각양식을 담은 독특
유엔을 비롯하여 여러 국가들이 모인 국제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1순위 이슈는 항상 환경문제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들 국가가 자기 나라로 돌아오면 환경문제는 후순위로 밀리고 1순위는 경제성장, 일자리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국가지도자들이 선거로 선출되다보니 자기 임기를 넘어선 장기적인 과제인 환경문제보다 임기 내 국민들에게 직접 이익이 되는 경제문제에 함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구적 환경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 없이 국제적 약속에 떠밀려 마지못해 실행하는 듯한 양상을 띠게 된다.2020~30년까지 10년간 지구기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