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민족 타민족 가르는 분별 또한 중생 스스로 마음에 그려넣은 것 중국에 와서 보니 내가 한국인임을 자각시키는 일들이 종종 생긴다. 어제는 청화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석사학위생과 점심 공양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 대화 도중 최근 한국과 중국간의 쟁점이 되고 있는 고구려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중국 친구는 고구려 멸망 이후 대부분의 고구려인들이 중국으로 귀속했다는 점, 고구려 땅의 반 이상이 현재 중국영토에 속해 있다는 점들을 들어 중국 입장을 대변하였다. 더우기 그 친구는 한국 문명이 중국의 문명에서 나왔으므로 두 나라는 먼 친척 간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속에서 무언가 뭉클하면서 갑자기 기분이 언짢아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몇년전에 이와 비슷한 경험이
인생에 준비과정은 없다 바로 이순간만이 존재할 뿐 우리의 인생에서 준비는 필요 없다. 그 어떤 준비과정도 진리와 멀어지게 할 뿐이고, 수행과 멀어지게 할 뿐이다. 모든 일은 낱낱이 ‘바로 그것’이 되어야지 그것을 위한 준비과정이 되어선 안 된다. 참선·염불·독경·진언·절 등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려고 하지 말라. 참선하는 바로 그 순간이 이미 본래성품을 드러내는 순간이고, 깨달음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참선수행을 하기 위해 선방에 가는 순간도 그것이 절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기 위한 준비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절로 가는 그 걸음 걸음의 순간 또한 그대로 본래 성품을 드러내는 순간이고, 깨달음을 위한 과정이 아닌 바로 깨닫는 그 순간임을 알아야 한다. 주말에
넘치는 관심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적당함의 미덕은 만물 살리는 지혜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찬바람에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 애석하게도 북경 시내에 있는 대부분의 나무들은 가을이 되어도 단풍이 들지 않는 품종으로만 골라 심어져 있는 듯 하다. 하늘을 바라보니 오늘밤은 유달리 달이 밝다. 평소에는 공해 때문에 하늘 속 모습을 잘 볼 수 없었는데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 덕에 북경의 하늘도 모처럼 깨끗하게 세수를 한 듯 하다. 조금은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서 달을 보며 걸으니 정신이 맑아지면서 예전에 비해 많이 단순해진 북경에서의 내 삶에 감사함이 느껴졌다. 지난주에 나는 작은 화초 하나와 금붕어 다섯 마리를 내 방의 새 식구로 맞아 드렸다.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노상에서 파는 화
불교라는 이름조차 버린 때부터 불자로의 온전한 삶이 시작된다 얼마전 신문에서 보았더니 우리나라 종교인구가 8천만명이 넘는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만큼 부풀리기도 쉽고 또한 정확히 집계 내기도 어려운 것이 종교신자이다. 또한 나라에서도 매년 종교별 인구분포를 데이터화해 내고 그 숫자에 종교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곤 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진리에는 울타리가 없다. 내 것 네 것이 없고, 내 종교 네 종교의 차별이 없다. 불법이라는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안에 있는 이들만이 불교신자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불법의 이해이다. 『금강경』에는 ‘불법이란 불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불법이다’라는 말이 있다. 즉 불법에도 집착하면 안되고, 불법이라고 고정된 어떤 실체도 있지 않다는 말이다
3배 4배 노력 기울일 때 자연스러운 멋 배어나와 중국에 와서 생활을 하다 보니 중국어는 참으로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한국어나 일본어처럼 주어에 따라 동사의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어가 선생님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아니면 어린애가 되었든 동사 자체의 모습은 그대로이다. 또 프랑스어나 영어에서 볼 수 있는 복잡한 관사나 복수 단수 변화가 없다. 문법도 다른 언어에 비해 간단한 편이다. 그렇지만 중국어에는 다른 언어에서 볼 수 없는 중국어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글자 하나 하나마다 정해진 성조(聲調)이다. 마치 오선지에 그려진 음계 마냥 중국어는 한 글자 한 글자에 정해진 음의 높낮이와 악센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어를 공부하다 보니
우리 인생의 가장 근원적인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모든 수행자의, 아니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물음이고, 그것을 찾는 것이 우리 모두의 본업이다. 왜 그러한가. 간단하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물음에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있는 이가 있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 ‘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나에 대한 남들의 평가를 ‘나’라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남들이 ‘너 참 똑똑하다’ 하니까 스스로 ‘똑똑하다’는 편견을 자신과 동일시 하게 된다. 그렇게 남들의 시선에 의존해 내가 만들어 진다. 내 스스로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의해서 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
북경에는 정말로 자전거가 많다. 내가 사는 대학교 주변에도 마치 사람 숫자보다 자전거 숫자가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특히 아침 출근 시간이나 저녁 퇴근 시간에 거리에 나가 보면 자전거 부대가 도로를 반쯤 점령해 버리는 것 같다. 처음 북경에 와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중국말로 시우츠(修車) 라고 쓰여진 곳을 종종 보았는데 왜 길 한가운데서 자동차 수리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것도 보아하니 자동차를 고칠 만한 장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서 말하는 차는 자동차가 아니라 쯔싱츠(自行車) 즉 “자전차”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중국에서는 자동차만큼이나 자전거가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주에는 나도 자전거를 하나 장만할 생각
홈페이지를 운영하다 보니까 종교가 없는 분이나, 심지어 타종교 신자들까지도 의외로 수행과 마음공부에 큰 관심을 가진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하나같이 불교의 가르침은 좋은데, 타종교를 공부한다는 것에 대해 왠지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그때마다 나는 단호하게 ‘오히려 불교를 좀 더 깊이 믿고 실천하였을 때 비로소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말씀드린다. 조금 다른 쪽으로 접근해 보자. 보통 많은 사람들이 ‘불교가 종교냐 아니냐’라는 문제에 대해 묻곤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불교는 당연히 종교다. 그러나 ‘Religion’은 아니다. 흔히 종교라고 하면 창조신과 같은 절대자를 연상하기 마련인데 그 이유는 서양에서는 ‘Religion’이라는 말 자체에 창조신의 존재를 강하게
살다 보면 무언가로부터 이별을 해야만 하는 때가 온다. 오랫동안 살던 정든 동네를 떠나 이사를 한다거나,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와 헤어져야 한다거나, 좋아하는 일이나 귀중품과 인연이 다 되어서 이별을 해야 하는 때도 온다. 지난 주에는 나도 이런 이별을 경험했다. 햇수로 두자리 수가 넘는 미국 생활을 뒤로 하고 중국행 비행기에 올라 탄 것이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욕심에 일년 정도의 중국행을 결심했지만 막상 떠나려하니 마음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14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 시간 동안 지난 몇 년간의 내 생활들이 길다란 파노라마 사진처럼 쭉 떠올랐다. 떠나려는 나의 마음 안에서 걸리는 그 무엇들 굳이 언어를 가져다 붙이면 ‘회한’이랄까 ‘아쉬움’이랄까 이 끈적끈적한 정(情)과 습관의 고리
우리 삶의 본질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그저 있는 그대로 여여한 모습이다. 어느 한 쪽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 수행자의 삶이다. 한 쪽을 고집하면 고집한 만큼 그대로 되지 않았을 때 괴로움이 생긴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지만 꼭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되면 이렇게 되어서 좋고, 저렇게 되면 저렇게 되어서 좋은 그런 텅 비어 있는 삶일 뿐이다. 마음 속에 고집을 텅 비워버렸을 때, 꼭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렸을 때 우리의 삶은 참으로 맑아지고 자유로워진다. 본래 고정된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신랑감을 고르는데 키는 170이 넘어야 하고 4년제 대학도 나와야 하고 연봉이 얼마 정도
예로부터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내려준 윤기(倫紀)라는 뜻으로 천륜(天倫)이라고들 말한다. 아마도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뜻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가끔 나와 같은 출가자와 은사 스님과는 어떤 인연이 있어서 은사 상좌의 인연을 맺는지 궁금해진다. 은사 스님이 계시기에 스님으로써 제2의 탄생을 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니 은사 스님은 낳아 주신 부모만큼이나 소중한 분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나의 은사 스님은 나와는 참 다르시다. 나는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조금은 느긋하면서 소심하다 할 정도로 세심한 편에 속하는데 은사 스님은 일의 처리 속도가 박력이 있으시고 모든 일을 크고 대범하게 처리하신다. 나는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은사 스님은 대중들과 어울려서 지내시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
내 안의 부처 믿는다면 괴로움 두려움 없어져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 진리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렇듯 어리석다 보니 온통 불분명하고, 복잡하다. 무엇 하나 온전한 것이 없다. 환히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두렵고 무섭다. 미래에 대해서도 두렵고, 일에 대해서도, 죽음에 대해서도, 모든 것이 알 수 없는 두려움 뿐이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안락하게 해 줄 도피처를 찾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때 사람들은 어떤 ‘절대’나 혹은 ‘신(神)’, ‘불(佛)’을 가정해 놓고, 이제부터 그것을 믿기로 작정하기 시작한다. 그럼으로써 이 세상이라는 두려운 곳에서 의지할 곳을 얻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믿음’의 실체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언제
말복(末伏)이 지났는데도 아직 여름 더위가 한창이다. 그런데 이렇게 더운 날씨가 계속 되다 보니 큰 건물 어디에도 에어컨으로 냉방을 하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다. 몇일 전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찾으려 미술학과 도서관에 가게 되었다. 어렵게 찾은 자료가 하필이면 도서관 밖으로 대출이 되지 않아 꼼짝 없이 도서관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도서관이 다른 도서관들에 비해 유달리 춥다는 것이다. 에어컨을 얼마나 강하게 트는지 긴 소매 옷을 입지 않으면 추워서 공부가 잘 안되는 곳이다. 결국 나는 도서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에어컨 바람이 가장 적게 부는 곳을 한 동안 찾아 나섰다. 그나마 조금 덜 춥다고 느끼는 곳에다 공부를 하려 책을 내려놓고 앉아 있으니 나도 모르게 이
평소 잘 보지 않던 TV에 자주 눈길이 간다. 때가 때인지라 아무래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 할 수가 없어서이다. 며칠 전 맨하탄 중심 도로 위에서 반전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침 뉴스 시간에 방송됐다. 1백 여명도 훨씬 넘는 사람들의 도로 위를 가득 메우고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출근으로 바쁜 아침 시간이라 각 방송사들은 도로 교통 상황을 보도하면서, 그들의 시위 모습을 방송하지 않을 수 없었던 듯 싶다. 전날 미국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셀 수 없이 폭격했고, 그 결과 많은 이라크인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이날 시위는 이라크의 참상을 알리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이른 새벽부터 나와 죽은 듯 도로 위에서 누워 있었을 그들의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폭격으로 죽은 많은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많이 포근해 졌다. 그리고 벌써 이렇게 들녘엔 새봄을 맞이하는 꽃들이며 봄나물이 한창이다. 이렇게 세월은 하루가 다르게 흘러가는데 내 속 뜰의 공부는 얼마만큼 그 흐름에 부응하며 보내왔는지… 하루 이틀, 한 시간, 일분, 일초 이렇게 흐르는 시간을 너무 쉽게 소모해 버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날이 갈수록 단순한 아쉬움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뻐근한 가슴앓이로 다가온다. 이 소중한 기회 이 소중한 순간을 놓쳐버리면 다음 순간이란 그다지 소중하지 못하다. 이 순간, 내게 주어진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이 생에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되어야 한다. 백일 천일 공부할 것도 없고, 전생 공부 인연 논할 것도 없으며, 다음 생에도 이 공부인연 이어지기를 구할 것도 없이 바로 지금 이
화엄사의 봄/ 최용근作
'크메르 예술의 극치, 크메르의 보석'이라는 찬사를 받는 곳이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i)이다. 앙코르 복원 작업에 참여했던 프랑스 건축가들이 남긴 탄성이다. '창조주의 두 손을 빌려와 창조주의 두 손을 창조한 사람, 영혼을 빚은 조각가의 삶과 예술 그리고 지독한 사랑, 신의 손을 지닌 인간' - 이것은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에게 바쳐진 헌사이다. 정교함, 현란함, 치밀함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앙코르 유적 중 단 한 곳을 지정하여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반띠아이 쓰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건축물의 어디를 샅샅이 꿰뚫어 보아도 단 1 평방센티미터의 여백이 없다. 숨이 막힌다. 재료가 돌인가 나무인가 흙인가 확신이 없어 송곳으로 찔러보고 싶다. 그럴 수는 없는 노
최근들어 우리 민속에 대한 생태학적인 접근이 학계와 환경운동계에서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필자를 비롯해 일군의 학자들이 지난해 제8회 세계생태학대회에서 발표한 논문들도 우리 민속에 대한 생태학적인 고찰이었다.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나라마다 민족마다 나름대로의 기억들이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나라와 민족은 불행하다. 그 기억들 가운데 민속은 가장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문화로, 그 나라 그 민족의 존재증명이다. 민속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유기적으로 생성-발전-쇠퇴 또는 전승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변성이 심하다. 그러면서도 민속의 가치는 그 가변성에서 나온다. 가변성은 곧 생명성을 의미한다. 민속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교집합이기도 하다. 오늘에 와서 옛 민속이 생명의 차원에서 다시 거론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근대라고 한다면 언제부터일까?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는 개항(1876) 이후를 근대의 기점으로 잡는다. 불교계 역시 이 시기부터 근대불교의 여명기가 시작되고 있지만, 그다지 정점이 될만한 사건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불교계는 그보다 조금 늦은 1895년에 가서야 비로소 250여 년 간 소위 '승려들은 절대 도성을 출입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족쇄가 풀리고(승려 도성출입금지 해제), 그로부터 7년 뒤인 1902년쯤 정부에서는 무슨 속셈인지 '이제야 전국사찰을 좀 관리해 봐야겠다'고 원흥사에 사찰관리서를 설치(1902)하는 시기가 자의든 타의든 변화의 모멘트가 된다. 이쯤 불교 출판계에는 서서히 현공겸(玄公廉)의 『석가여래전(釋迦如來傳)』(1912)과 이교담의 『팔
세상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자연의 소리는 아주 작고 여리기 때문에 아무나 들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그 살뜰한 소리는 고요한 법계의 울림과 모든 존재 내면의 쩌렁쩌렁한 깨우침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보통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세상사에 찌든 온갖 소음들만 귀 고막이 터져라 듣고 산다. 세상의 소음에 익숙해지다 보면 작고 여린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 본래의 청음 능력을 상실한다. 우리들 육근(六根)이라는 것이 본래는 세상의 작고 여린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었고 우주와 자연의 작지만 커다란 울림과 교감할 수 있었지만, 감각적이고 육감적인데 서서히 익숙해지다 보니 그 본래 능력을 상실하고 시끄러운 세상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