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여러분의 마음상태는 어떠한가요? 탐진치가 있는 마음인가요? 아니면 편안하게 이완되어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인가요? 혹시 두려움이나 초조, 불안한 마음상태인가요? 아니면 자애와 연민이 가득한 마음일까요? 바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한번 점검해봅시다. 그저 있는 그대로 마음, 현재의 마음상태를 가만히 관찰해보세요.” 일주일에 다섯 번씩 명상 수업을 하면서 필자는 위와 같은 명상 멘트(안내)를 수시로 하곤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기 직전까지 마음을 쓰며 살아간다. 한평생 쓰고 있는 마음, 명상으로 명료
살다 보면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날, 이 글을 쓰는 지금이다. 일주일 후로 알았던 원고 마감 날이 갑작스레 오늘로 변경되었다. 긴급한 순간을 맞이하면 멈칫하게 되지만 이럴 때는 스피드가 중요하다. 할 건지 말 건지. 이것저것 재면서 할까, 말까를 고민하다 보면 선택은 더뎌지고, 불안과 고통은 늘어난다. 얼마 전 서울대 최종훈 교수의 ‘인생 교훈’이라는 글을 우연히 보고 오늘부터 이렇게 살 거라 다짐했던 것도 선택에 큰 도움이 되었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말할까 말까
조사선 시대는 선기(禪機)의 시대였다. 스승들이 제자를 지도하기 위해 여러 방편을 시도하였다. 특수한 문답이나 할·방 등을 사용함으로 그때그때마다 스승이 상대방의 근기에 따라 대기대용(大機大用)의 방편이 활용된 것이다. 마조의 어떤 설법이나 행동은 제자들의 도를 깨우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런 방편의 활용을 앙산(807∼883)은 잡화포(雜貨鋪)라고 하였다. 어떤 물건이든 다 파는 잡화포라는 말은 제자들 근기에 맞춰 제자를 지도한다는 뜻이다. 마조의 다양한 접화방법이 후대에 공안으로 형성되는 기원이 되었다. 조사선 시대에 스승이 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7세기 후반 의상이 당의 지엄으로부터 화엄학을 전래하고, 원효가 ‘화엄경’을 본격적으로 연구함으로써 화엄학은 신라 통일기의 새 불교를 대표하는 교학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8세기 후반~9세기 전반에는 왕경과 지방에 다수의 화엄학승들이 등장하여 서로 다른 연구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제자 양성과 화엄학 전도에 주력하였던 의상의 법손들이 번성하게 됨으로써 이후 화엄학 주류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법손들에 의해 의상의 화엄학을 조술하는 전통이 확립되었는데, 특히 의상의 주저인 ‘일승법계도’에 대한 주석이
8년 전, 아내가 느닷없이 “당신, 108배 해보지 않을래?”라고 물었다. 슬하에 아들을 둘 뒀는데, 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둘째 아들이 입대를 했다. 아들이 병장을 막 달았을 무렵, 군대 사정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휴전선 부근에서 목함 지뢰가 터지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전방부대에 있던 아들이 군대 내부에선 전쟁 발발 징후가 감돌고 있다고 알려 왔다. 이미 큰 아들을 잃었는데 작은 아들마저 잃는 게 아닌지 걱정돼 초긴장상태로 며칠을 보냈고, 아내가 이를 눈치 채고 절 수행을 권한 것이다. 그럼
일요일 오후면 축구를 합니다. 스님들과 불자들이 모여서 운동하는 시간입니다. 적적하실까 봐 은사스님도 모시고 나가고 함께 모시는 보살님들도 나가게 됩니다. 은사스님께서는 주말이면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편안한 소파에 앉아 커피 한잔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것도 좋아하십니다만 제가 축구 일정이 있는 날에는 종종 운동장에 가자고 하십니다. 스님께서 함께 운동장에 가면 앉아만 계셔야 합니다. 이렇게 계신 것이 다소 힘드실 텐데도 제가 운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추운 날씨에 좀 오래도록 밖에 계셔
① 대목건련이 되기까지왕사성의 부상(傅相)장자가, 청제(靑提)부인 사이에 착한 아들을 두었는데,이름은 나복(羅卜)이라.일찍 아버지를 여의자, 3년 시묘를 마쳤지.재산이 줄고 있으니 돈을 벌어 와야겠구나.가진 돈을 세 몫으로 나눠 둘을 어머니께 드리며“한 몫은 어머니 생활에 쓰시고, 한 몫으로는 아버지 위해, 스님들 모시고 재를 올리세요.”한 몫은 나복이가 가지고 가서 장사를 하기로.금지국에 간 나복은 신용 있는 장사꾼이 돼 돈을 벌었지.어머니는, 재를 올리기는커녕 스님을 내쫓고, 짐승을 죽이는 살생을 일삼으며, 잡신에게 제사를 올린
걸레질을 하려면 무릎을 꿇어야 한다.허리와 머리를 깊이 숙여야 한다.엉덩이를 들어야 한다.무릎걸음으로 공손하게 걸어야 한다.큰절 올리는 마음으로아기 몸의 때를 벗기는 마음으로 닦지 않으면방과 마루는 좀처럼 맑아지지 않는다.어디든 떠돌아다니고 기웃거리고틈만 보이면 비집고 들어가 눌러앉는 먼지들:오라는 곳 없어도 밤낮없이 찾아오고누구와도 섞여 한 몸이 되는 먼지들:하지만 정성이 지극하면 먼지들도 그만 승복하고고분고분 걸레에 달라붙는다.걸레 빤 물에 섞여 다시 어디론가 떠난다.그렇게 그녀는 방과 마루에게 먼지에게매일 오체투지하듯 걸레질을
서울 홍제동 안산 자락 아래에 자리한 비로자나국제선원.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계에 알리는 허브 역할을 자청한 이 선원을 세운 건 자우(慈禹) 스님이다. 강원과 선원, 스리랑카 유학 등으로 이어진 경학과 수행을 거친 후 인도네시아 해인사포교원 주지를 맡아 현지 포교에 매진했다.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에 머무르며 ‘한국불교의 세계화’와 ‘불교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2006년 10월 서울 무악재에 비로자나국제선원을 열었다. 어린이 영어 담마스쿨, 영어 담마캠프, 외국인 참선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해 서울 도심 포교의 지평을 넓힌
조계종 교육원 교육부장 덕림 스님이 법보신문 법보시캠페인에 동참했다. 덕림 스님은 “불자가 감소하고 있는 시대에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모든 불자들의 의무”라며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도제를 교육하고 다양한 교재와 불서를 간행하는 교육원의 활동과 법보신문의 법보시캠페인은 하나의 길”이라고 평가했다.덕림 스님은 불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중앙승가대와 동 대학원, 동국대와 동 대학원에서 불교학과 불교음악이론을 전공해 학·석사를 마쳤고,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에서 ‘범패에 내재된 수행원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도암, 운부암
“법보신문은 제게 한낱 소식을 전하는 뉴스 매체가 아닙니다. 제 일상을 바꾸는 믿음직한 동반자이자 부처님 가르침을 전해주는 자상한 안내자입니다. 하지만 언론계가 다들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법보신문에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이순덕(70) 불자가 법보신문을 교도소·군법당·병원법당·관공서 등에 보내는 법보시캠페인에 동참했다. 이 불자는 법보신문을 통해 최근 용인 보현정사 주지 석중 스님이 이끄는 33기도순례를 알게 됐고, 매월 순례 일정을 함께하고 있다.“법보신문에는 풍부한 정보가 담겨 있어요. 아주 유익합니다. 하지만 아
13대 서울지역단장으로 당선된 강민구 조계종 포교사단 서울지역단 감사가 법보신문을 군법당, 교도소, 병원법당, 공공기관 등에 전하는 법보시캠페인에 동참했다. 강 감사는 포교사 품수를 받기 전부터 교정기관을 다니며 포교활동을 할 정도로 교정교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부처님 가르침 안에 인생의 길이 있기에 수용자들이 부처님 법 안에서 참회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랐다. 원력을 갖고 남부총괄 교정교화팀 소속으로, 교정교화전법단지원단장으로 전법단과 함께 교정기관을 찾아 법회를 지원하고, 교리공부, 상담 등을 하며 교정포교활동에 매진
마음을 관찰하는 위빠사나명상은 4념처에서 세 번째 심념처(心念處)명상법이다. 마음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종종 “마음이 무엇인가요?”라고 질문을 해본다. 그러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빨리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질문의 방식을 바꿔 다시 질문을 해본다. “마음은 어떤 작용을 하나요? 마음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있나요?” 이렇게 질문을 하면 대답이 바로 나온다. “생각하는 작용요. 인식하고 지각하는 작용요. 생각도 담겨있고, 감정도 담겨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마음은 생
대학시절에 본 헐리우드 영화 가운데 뭔가 모를 불쾌함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장면이 있다. 선악의 대결이라는 전체적 주제아래 선(善)을 대표하는 백인 주인공과 악(惡)을 대표하는 인물의 결투 장면이었다. 그 때 절대악의 형상이 유럽 절반을 지배했던 몽골 칭기스칸(1162~1227)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유럽사회가 과거 칭기스칸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영화에서 조차 동양에 대한 편견된 시각아래 표현된 장면이라는 것에 실망감이 있었던 것이다.동양의 영어적 표현중 하나가 오리엔트(orient)이다. 라틴어로
선종의 역사는 끊임없는 동(動)의 역사이다. 선 사상 중 일부는 후대의 요청이 가미된 역사이다. 당시 신수(606∼706)가 오조홍인(601∼674)의 법을 이은 정통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신회(684∼758)의 6조 현창운동으로 인해 혜능을 6조로 받들면서 신수의 선을 방계인 북종(北宗)이라 불렀고, 혜능의 법을 이은 자신은 7조라고 하면서 남종(南宗)이라고 자처했다. 즉 선종의 역사가 신회로 인해 흐름이 바뀌었다. 신회 입적 후, 혜능의 법을 이은 제자라고 자처했던 하택종[신회의 선종]은 5조인 규봉종밀에게서 단멸한다. 그런데
아응멸도일체중생 멸도일체중생이 이무유일중생 실멸도자(我應滅度一切衆生 滅度一切衆生已 而無有一衆生 實滅度者)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즉비보살(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내가 마땅히 일체중생을 멸도에 이르도록 다 제도하였으나, 실은 한 중생도 멸도 된 사람이 없다 하리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나라는 생각, 사람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이 있다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내가 응당 일체중생을 멸도(滅度)하였고, 일체중생이 멸도를 마쳤는 고로, 한 중생도
“이 시대 불교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 불교 발전을 위한 정론의 길을 펼쳐주시기 바랍니다.”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현덕 스님이 법보신문을 군법당, 교도소, 병원법당, 공공기관 등에 전하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하며 불교 정론의 길을 응원했다. 현덕 스님은 9월13일 통도사 주지 접견실에서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를 만나 “법보신문을 통해 한국불교의 정신과 가치가 더욱 다양한 곳으로 전해지길 바란다”고 법보시 캠페인 동참의 취지를 전했다.현덕 스님은 “독립언론으로 정론직필에 매진해 온 법보신문이 벌써 창간 35주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법보신문을 읽다 법보시를 통해 수용자들에게 신문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불법을 만나기 어려운 그분들이 불교와 인연을 맺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법보시가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고 생각하니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10년 가까이 법보신문을 구독해온 임경희(66·재선)불자가 법보신문을 교도소·병원법당·군법당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어릴 적부터 불자였던 임 불자는 가정사가 어려웠던 중에 불교와 인연이 닿았다. 그는 아침마다 108배로 100일 기도를 했고 그 결과 가정사
법륜종 종회의장이자 단양 금수사 창건주인 주지 혜광 스님이 법보신문 법보시캠페인에 동참했다. 혜광 스님은 “한때의 잘못으로 참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재소자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이끈다면 출소 후 재범률을 낮추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법보시는 우리 사회를 범죄 없는 정토로 만드는 불자들의 실천”이라고 평가했다. 혜광 스님은 이미 30여년 전부터 군포교와 교도소 포교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36년 전인 1987년, 이곳 금수산 자락에 금수사를 창건한 혜광 스님은 꾸준한 전법활동을 통해
봉정암은 우리나라 제일 기도 도량이어서 전국 불자들의 순례가 이어집니다. 특히 10월 중순 단풍이 절정일 때는 3000명씩 몰려 도량에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후유증일까요? 저출산 노령화 탓일까요? 아니면 탈 종교화의 영향 때문일까요? 인파가 예전만 못합니다. 봉정암에서는 2016년 전후 큰법당을 낙성했는데 산중에 108평의 넓은 법당이 들어서 예전에 비하면 천지개벽입니다. 구법당은 크기가 작아 주말엔 앉을 자리도 없었는데 넓은 법당이 생기고 나니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기도할 자리가 부족하지 않습니다.2008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