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을이 왔다. 참으로 무덥고 긴 여름이었다. 그 힘든 시절을 샤를 보들레르의 ‘가을의 노래’ 첫 구절 “이윽고 우리는 차가운 어둠속에 잠기리니 그럼 잘 있거라, 짧은 여름날의 따가운 햇살이여!”를 생각하며 보냈다. 올해 여름은 1994년 이래 가장 무더웠다고 한다. 그 해 여름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우리 집 바둑이가 더위로 죽었기 때문이다. 며칠간 호흡곤란으로 거친 숨소리를 몰아치던 그 녀석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숨을 거두었다. 올 여름 24일의 폭염 (최고기온 33도 이상)과 32일의 열대야(
올림픽처럼 큰 국가대항 스포츠가 열리는 시즌이면 전국민은 열렬한 애국자가 된다. 지난주까지 아침에 눈을 뜨면 간밤에 무슨 재미난 경기 없었나 하는 궁금함에 텔레비전부터 켜기 바빴다. 하루는 펜싱 에페 금메달 소식에 다들 환호했는데, 여러 번을 봐도 누가 어디를 먼저 찔렀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만큼 동작들이 빨랐다. 그래도 우리 선수가 이겼다는 결과는 기분 좋았고, 그 선수와 부모들이 독실한 불자라는 소식을 들은 뒤엔 뿌듯함이 더했다.그런데 사전에 일면식도 없던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우리가 느끼는 이 동질감의 원인은 무엇일까?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의 무더위 속에 올림픽 열기가 겹쳤다. 두 열기가 겹치면 더욱 견디기 힘들 것도 같은데, 오히려 온 국민이 올림픽의 열기로 무더위를 넘기지 않았나 생각된다. 올림픽의 열기로 폭서를 누르고 아침녘에 부스스한 얼굴로 나오는 수많은 국민들…. 필자 또한 우리 선수들의 투혼에 함께 용을 썼던 사람 속에 끼는 것을 사양치 않을 것이다. 이제 그 열기를 되돌아보면서 뜨거운 외침 속에서도 간간히 필자의 뇌리를 스쳤던 몇 가지 단상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우선 우리들은 올림픽을 통해 일어난 건강한 애국심을 정말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 생활을 보낸 1970년대에서 40년이 훌쩍 흘렀지만, 그 시절과 다를 바 없는 대통령의 어록을 대하게 되면서 ‘세월이 거꾸로 흐른다’고 하던 어른들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국민과 야당의 목소리에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달려있는 문제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그것을 이용해서 국민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결국 국민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될 것”이라며 훈계인 듯 경고하는 방식도 그 시절과 똑같다. 심지어 집권세력 내부에서조차 진지한 토론과 협의 절차를 거치지
“사리불이여, 어떤 사람이 아미타불의 세계에 가서 나기를 이미 발원하였거나 지금 발원하거나 혹은 장차 발원한다면, 그는 바른 깨달음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세계에 벌써 났거나 지금 나거나 혹은 장차 날 것이다. 그러므로 신심이 있는 선남자 선여인은 마땅히 극락세계에 가서 나기를 발원해야 할 것이다.”(‘아미타경’)지난 2년여 동안 우리 집에 계시던 장모님이 얼마 전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숨길이 멎자 의사가 시계를 보고 시각을 알리며 사망을 선언했다. 97년에 걸친 이 사바세계와의 인연이 다한 것이다. 딸은 떠난 어머니의 시신을 붙들
제2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1991년 소련의 붕괴에 이르는 반세기를 ‘차가운 전쟁’, 즉 냉전(冷戰)시기라고 부른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이 무력으로 직접 충돌한 적은 없지만, 우주 진출 경쟁, 북대서양조약기구와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통한 진영 대립, 제3세계에서의 대리전, 별들의 전쟁(Star Wars)이라고까지 명명된 무한정한 군비 확장은 치열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 일견 모순어처럼 보이지만, ‘냉전’이란 용어는 수면 밑의 팽팽한 긴장을 적절히 비유한 표현이라고 하겠다.냉전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적(敵)과 아(我)의 편 가르기
공자는 “균형 있는 분배가 이루어지면 가난이란 없고, 구성원들이 화합을 이루면 부족함이란 없으며, (그렇게 되어) 안정이 되면 나라가 위태로운 일은 없다”고 했다. 원론적으로 부정하기 힘든 말이다. 국가 전체의 ‘부의 총량’이 아무리 크더라도 사회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없는 분배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면, 오히려 상대적인 빈곤이 더더욱 크게 드러난다. 그리하여 화합이 깨지고, 결국 국가의 안정을 해치며, 그것이 국가 전체의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공자의 말을 정말 아프게 받아들
우리의 국보78호 금동반가사유상이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한일 양국 스님들로부터 거룩한 예경을 받았다고 한다.일본 불교계 측의 헌다의식에 이어 한국봉행단은 헌화를 비롯해 범패와 작법무를 선보였고, 한일 양국 스님들은 ‘반야심경’을 함께 봉독하며 산화공양도 올렸다. 잠시나마 박물관은 완벽한 도량으로 변모했다. 일본 기자들이 “작법무와 범패에서는 독특한 생명력이 느껴져 특별한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며 감탄했다고 하니, 그 공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느꼈을 환희심은 실로 대단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벅찬 감동을 안고 한일 양국의 반가사
작년 10월 31일 잠실 야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의 승리로 막을 내린 제15차 코리안 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언즈의 유중일 감독은 전국의 야구팬들에게 전에 없던 감동의 장면을 선사했다. 감독을 위시한 선수 전원이 일렬로 도열하여 승리한 두산 선수들을 박수로 축하했다. 이는 치열하게 싸운 후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하는 스포츠 정신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었다. 20대 총선은 야권의 분열로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확보하는 것이 땅 짚고 헤엄치기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제2당으로 추락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총선은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부자를 보고 “잘 산다”고 하는 말을 쓰게 되면 돈이 최고라는 생각을 낳게 한다. 해야 될 것과 하면 안 될 것을 가르쳐 주지 않고 무조건 “하면 된다!”를 강조하면 윤리와 법도가 무너진 세상을 낳게 한다. 이렇듯 말이라는 것은 바로 생각을 결정하고, 결국 그것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말을 바로잡지 않고는 세상을 바르게 할 수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말을 이루는 기본 단위는 바로 이름이다. 그래서 공자가 그토록 ‘이름을 바로잡음’[正名]을 강조했을 것이다. 공자는 이름이 바르게 되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다시 거리는 색색이 붉고 노랗고 연둣빛이다. 하늘에 걸린 작은 연꽃 행렬은 우리가 현대적이고 서구적이며 도시적인 삶에 익숙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역사와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저변의 신심과 감성을 일깨운다.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 자라서기도 했지만, 우리를 둘러싼 삶의 ‘현대적’ 풍토와 교육의 산물 때문에라도 도시 아이였던 나는 어릴 때는 ‘연등’을 친근한 사물로 여기지 못했던 듯하다. 그런 감성이 어쩌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친숙했던 신앙에 대한 배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이가 한참이나 먹게 되어서였
온 우주의 축제일인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는 지난 4월 구마모토와 에콰도르에서 발생한 강진들이 불러온 엄청난 지진재난의 악몽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운문(雲門)선사는 깨달은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좋은 날(日日是好日)’이라고 했다. 이 지진재난을 한반도에 둥지를 틀고 사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세속적으로 그리고 탈세속적으로.구마모토에서 지난 4월14일과 16일에 발생한 규모 6.2와 7.0의 지진으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입은 인명피해는 사망자 58명과 부상자 3100여
“무엇보다 진실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는 것, 거기서부터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되새겨 볼수록 진실과 치유의 관계에 대해서 이처럼 명징한 선언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진실을 밝힐 때, 내용이나 방식 모두 피해자가 동의하고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비로소 마음 속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치유는 진실을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진실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진실을 찾아 온 생애를 바친 이들의 삶은 평범
4·13 선거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만한 점이 많았다. 진영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 마련인 선거이지만, 그래도 국민들의 일반적인 평가는 정치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크게 담긴 선거였다. 이제는 선거의 결과를 두고 평가하기보다는 선거가 남긴 의미를 되새기고, 그 의미가 우리의 정치사에 진정한 의미로 남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에 우선 가장 중요한 일은 이번 선거를 통해 이루어진 심판들의 유효성이 오래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겠다. 정치인들이 선거를 의식하는 것은 선거 전후 한 달 남짓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이 있는데, 그러한 자조적 표
4월13일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선거는 시민 일반은 물론이고 여론조사기관 및 언론매체들, 정당 관계자들까지도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결과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지리멸렬한 야권의 리더십과 분열 상황에 비해 여권은 선거의 여왕이라는 호칭을 얻고 있는 대통령이 제왕적 리더십을 자신만만하게 구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기세가 떨어지고 의기소침하다 못해 커다란 위기감을 느낀 것은 직접 선거에 나선 야당만이 아니었다. 집권세력의 생각과 다른 국민의 목소리,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지극히 억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보배의 비가 온 허공에 가득히 내리고 중생이 그 그릇 따라 이익을 본다 (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법성게)20여년 전 대학에 있을 때다. 경영대 근처를 지나는데 조훈현 국수 초청 바둑지도가 있다는 공고가 있었다. 들어가 보았더니 이창호 9단이 학생들과 다면기를 두고 있었다. 또 교수 휴게실에는 조훈현 국수가 부총장과 바둑을 두고 김인 국수가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부총장이 몇 점을 놓고 두는 것 같은데 그가 돌을 놓으면 조 국수가 매번 더 좋은 수를 가르쳐주었다. 그 후 대학신문에 부총장이 이겼다고 보
유럽으로 여행간 지인이 가는 곳마다 사진으로 소식을 전해줍니다. 특히 독일 뮌헨에서 보내준 사진에 눈길이 오래 머뭅니다. 뮌헨대학 백장미단 기념실, 숄 기념광장 바닥의 백장미단 유인물 조각, 조피숄 두상…. 그 기념물은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이름만큼은 너무나 친숙했고, 이내 옛 기억 속으로 이끌었습니다.‘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1982년 대학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세미나에서 읽은 책 제목입니다. 세미나를 했던 동아리는 의과대학 동아리인데, 그 흔한 이름도 없이 ‘팀’이라 불렀답니다. 첫 세미나 교재가 된
최근 김천 직지사에 갔다가 올해 조계종 행자교육에 참가한 교육생이 처음으로 80명에 미치지 못했다는 정말 충격적이고도 슬픈 소식을 들었다. 직지사 불전한문승가대학원 강의를 맡아 승풍 진작과 승려자질 향상의 노력을 지켜보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있던 필자에게는 더욱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엽적인 곳에 쏟는 노력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아득한 심정이었다. 물론 그렇다 하여 어려운 가운데도 보다 나은 승단을 만들기 위해 애쓰시는 분들의 노력이 빛을 잃는 것도 아니고, 그것마저 놓아버리면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에 벌어진 세기의 대국이 큰 화제다. 그러나 이 대국이 ‘세기의 대국’이 된 것은 처음부터 예상된 일은 아니었다. 4000여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바둑은 기계가 아직 넘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사고능력이 결부된 놀이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세돌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 싱거운 ‘게임’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게임은 세기의 드라마, 아니 인류의 역사에 있어 가장 충격적인 순간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세간에는 마치 이미 이러한 드라마를 자신들이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갖가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지난 해 필자의 책을 출간한 ‘사이언스북스’의 편집장이 하버드대학 물리학과의 최초 종신 여교수인 리사 랜들의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Knocking on Heaven’s Door)’를 건네주었다. 입자물리학과 우주론 전공의 그녀는 극미한 소립자의 세계부터 무한히 펼쳐진 우주까지 물리학자들이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힘들게 얻은 지식을 흥미진진하게 설명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이 책을 읽고 “21세기는 리사 랜들의 세기가 될 것이다”라는 추천사를 썼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도 첨단과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