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에서 니카야 보살은 “정각 이전에 보살이었을 때”라는 정형구로 표현되며, 그 첫 번째 의미는 현생에서 정각을 위해 수행하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니카야 보살의 두 번째 의미는 전생의 공덕으로 인해 무수한 공덕을 갖추고 태어난 경우이다. 하르 다얄은 ‘희유하고 경이로운 성질에 대한 경’(Majjhima-Nikāya 123경)에서 이런 생각이 잘 나타난다고 지적하는데, 이하에서는 이 경에 대응하는 중아함 ‘미증유법경(未曾有法經, T1.469c17ff)’의 설명을 통해 보살의 희유하고 경이로운 성질이 무엇이며, 여기서 어떻게 보살
지난번 연재를 통해 ‘거과권락생신분(擧果勸樂生信分)’이라는 상위 과목 속에 3개의 하위 과목이 있음을 소개했다. 이제는 그 과목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2)설법의식분(說法儀式分)을 보기로 한다. (2)에는 이하에서 펼쳐지는 ‘화엄경’ 설법이라는 결과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두 측면에서 밝혔다. 첫째는 ‘오랜 먼 인연’에 해당하는 ‘여래현상품 제2’에서, 둘째는 ‘현재의 가까운 인연’에 해당하는 ‘보현삼매품 제3’에서, 각각 원인을 밝혔다. 순서대로 ‘여래현상품’을 분석해보기로 한다. 화엄 경학가들은 ‘여래현상품’을 6과목으로 쪼갠다
고딕성당은 화려한 ‘기적의 빛’을 수직적인 신의 나라 안으로 끌어들였지만, 그 빛은 보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없음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무한’의 거리가 인간과 신 사이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은 멀리 절대적 피안의 세계에 있었지만, 인간이 사는 피안의 현세에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며 죽은 신의 아들이 있었고, 그를 낳은 세간의 가족이 있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의 부름에 응답하고 배신하고 다시 되돌아오던 역사적 인물들이 있었다.초월성의 경험은 이런 이들의 신체를 둘러싸고 가시화된다. 종교적 초월성을 표현하는 ‘숭고’라는 미적
산사에는 스님들뿐만 아니라 많은 생명들이 함께 산다. 물론 신도들과 등산객, 관람객들도 있지만 365일 산중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무수한 생명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새들은 가장 흔하게 보고 함께 하는 생명들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에는 특정한 개체들만 자주 만나지만 그들과 함께 아침을 연다는 것은 행운이며 행복 그 자체다.간혹 그런 생각을 한다. 산중의 새들은 아마도 천상에서 인간 세상을 위로하고자 내려온 악사(樂士)들 혹은 가수, 시인들이 아니었을까. 계절마다 다양한 새들이 악사로 등장해 여러 음악을 들려주어 때로 적막할 것 같은 산
니그로다미가 본생담(Nigrodhamiga Jataka)은 사슴왕 이야기이다. ‘nigrodha’는 무화과과의 나무로서 용수(龍樹)로 옮기고 ‘miga’는 사슴을 의미하므로, 한자로 용수록 본생(龍樹鹿 本生)이라고 한다. 남전 ‘본생경’의 12번 본생담이다. 아잔타 석굴의 17굴에 벽화로 그려져 있다. 기원전 1세기의 바르후트 탑에도 부조로 조각된 작품이 남아있는데, 이를 보면 산치대탑에도 부조화되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짐작된다. 이 본생담은 앞서 연재했던 마하카피[대원, 大猿] 본생과 같이 부처님이 많은 과거생에 걸쳐 스스로를 희생
汝得人身不修道 如入寶山空手來여득인신불수도 여입보산공수래 憂患苦痛欲何爲 如今自作還自受 우환고통욕하위 여금자작환자수 (그대가 사람의 몸을 받았음에도 도를 닦지 않는다면/ 보물이 있는 산에 들어가 빈손으로 나오는 것과 같다./ 우환과 고통을 어찌하려 하느냐?/ 지금 네가 짓는 것은 바로 네가 돌려받는다.)이 게송의 일부는 ‘정법염처경(正法念處經)’ 권 제17 아귀품(餓鬼品)에 나오는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여 논소(論疏)의 흐름에 맞게 편집되었다. 현수법장(賢首法藏 643∼712) 스님은 ‘화엄경탐현기(花嚴經探玄記)’ 권6에 “‘정법염처경’
불언 선재선재 수보리 여여소설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여금제청 당위여설 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여시주 여시항복기심(佛言 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汝今諦請 當爲汝說 善男子 善女人 發阿縟多羅三貘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착하고 착하도다. 수보리야 너의 말과 같이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피고 염려하며 모든 보살들에게 잘 당부하고 부촉하느니라. 너희들은 이제 자세히 들어라. 너희들을 위하여 말해 주리라.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
화곡동에 거주하고 있는 30대 직장인 A씨는 건강을 위해 꾸준하게 운동을 즐기고 있는 스포츠맨이다. 등산, 클라이밍 등의 운동을 즐기기도 하고, 웨이트 트레이닝, 요가와 같은 코어 근육을 단련할 수 있는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는다.따라서 건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던 A씨다. 하지만 최근 등산을 하다 잘못 넘어져 허리를 다치게 됐고, 이후에 통증이 생기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문제점은 통증이 생긴 즉시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건강한 나이대에 있는 2,30대, 특히 평소 운동을 즐겨 건강에 자신감이 있는 이들이 흔히
부천에 거주하는 H씨(64세)는 며칠 전, 이가 빠져 치과를 방문했다. 평소 딱딱하고 질긴 음식을 좋아했던 H씨의 식습관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약해진 치아의 손상을 일으킨 것이다.자연치아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각종 치주질환에 노출되어 그 기능을 제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으며, 심한 경우 발치가 불가피해지기도 한다. 자연치아를 상실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거나 방치되면 일상에서의 기능적 문제는 물론 구강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따라서 치아가 손상 또는 탈락될 시에는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때 실시하는 대표적인 치료가
1월22일, 틱낫한 스님이 향년 95세로 열반에 들었다. 생불이자 활불로 널리 알려진 스님의 육신이 허공으로 환원되는 무여열반의 길로 들어가셨다. 한국에도 다녀가셨으며 많은 저술들이 출판되었다. 무엇 때문에 이 분을 우리가 그토록 존경할까. 세계의 변방이자 화약고였던 베트남 출신인 스님이 아노미 상태의 지구인들 마음속에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무엇보다도 불교를 친근하게 대중화한 것이 가장 큰 공덕이다. 여러 책을 접하면서 스님은 문명의 한계에 처한 인간 사회의 모순과 갈등, 고통의 핵심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대구에 거주하는 A씨는 또래보다 작은 자녀에 키에 걱정이다. 자신과 남편의 키도 평균보다 작은 편이어서 아이의 키가 크지 않을까봐 걱정은 더욱 늘고 있다.자신의 크지 않은 키가 그대로 대물림될까 걱정되는 부모라면, 자녀의 초등학교 저학년부터는 성장 관리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이 시기 아이의 키가 또래보다 작다면 성장검사와 치료로 따라잡기 성장이 필요할 수 있다. 키에 미치는 유전적 요인은 2~3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운동, 영양 상태, 잔병치레, 수면의 질 등 후천적인 환경 요인에 좌우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의 키만
‘시법평등 무유고하(是法平等 無有高下)–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젊은 한때, 불교에 귀의하고 출가하여 강원에서 공부할 때였다. 어느 날 ‘금강경’을 음독(音讀)하다가 제23장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에 이르러 이 경구(經句)를 접하고 얼마나 놀랐으며, 얼마나 두려웠고, 얼마나 환희로웠던지 이 문구를 주제로 글을 쓰려니 지금도 그 설렘이 울컥 밀려온다.많은 사람들이 젊은 시절 차별 없는 평등하고 깨끗한 세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자신이 처한 시절과 위치에 따라 그 평등의 깊이는 다를지 몰라도 평등의 가치를 고민하지 않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