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악한 군주가 숱하게 많았던 중국, 그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수양제(隋煬帝)는 천성이 포악했을까?저자가 보기에 수양제는 “아주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여러 가지 약점을 지닌 인간이었다. 그를 둘러싼 시대 환경은 사회 자체에 아무런 이상도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각자 다투면서 권력을 숭배하고 추구하며 남용하는 세상이었다. 이런 까닭에 이 시기에는 음란하고 포학한 천자가 수양제 외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등장했다. 말하자면 난폭한 천자의 예사스런 등장이 시대 풍조였다. 수양제는 그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했다. 실로 무서운 세
각각 스무 살, 열일곱 살이었던 강(康) 도령과 선(鮮) 아가씨. 1636년 병자호란을 맞아 이 땅에 살았던 이들은 조선을 유린한 만주족에게 포로가 되어 혹독한 겨울 추위 속에 세 달을 걸어 선양(瀋陽)으로 끌려간다. 포로들은 끌려가는 도중 열에 여덟은 맞아 죽고, 강간당해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고, 압록강에 뛰어들어 죽었다. 당시 조선 인구의 10%가 포로로 잡혀갔다. 이 책 ‘화냥년― 역사소설 병자호란’은, ‘돌아오게 할 수도 있었지만 돌아오게 하지 않아서 그렇게 죽어가고 또 그렇게 살아남은’ 포로들과 ‘이들을 버렸던’
“미국은 얼핏 보면 에너지와 활력이 넘치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 모리스 버만의 이 말이 아니더라도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미국을 ‘기회와 희망의 땅’으로 여기고, 밀입국을 해서라도 그곳에 가서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미국은 이미 “기업들의 의도와 생각대로 움직이는 기업 상상력의 산물”이 되었고,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활력은 “상품의 구매와 소유 이상의 가치는 가지지 않는데”, 저자는 이것이 “문화적 쇠퇴”의 징후라고 본다.저자는 ‘문명이 몰락하게 되는 네 가지 중요한 요인’- 즉, 사회경제적 불평등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은 ‘삼국~조선말~근대’에 이르기까지 전 시대에 걸쳐 있으며, 서화는 물론 조각과 공예 등 거의 모든 미술 분야를 아우른다. 국보 12건, 보물 10건 등 22건의 국가 지정문화재와 뜰에 전시된 석탑, 부도, 불상 등을 소장하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곳의 소장품만으로 한국미술사를 서술할 수 있으며, 이를 제외한 한국회화사는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이 미술관의 설립자이자 조선 제일의 수장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삶과 문화재 수집 이야기를 추적한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치 다큐 영화
일본의 아시아사 연구를 세계 학계에 빛나게 한 이른바 ‘교토(京都)학파’의 대표였던 미야자키 이치사다, 그의 글을 좋아하여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은 거의 다 사서 읽는다.역사를 깊이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청(淸)나라 강희(康熙)제와 건륭(乾隆)제 시절에 중국이 정치·군사·문화 부문에서 세계 최강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널리 이름이 알려진 아버지 강희와 아들 건륭 사이의 옹정(雍正)제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다. 왜 그랬을까.저자는 말한다. “강희제는 인자하고 도량이 넓은 군주라는 좋은 평판을 얻었다. 그러나
만주의 작은 집단에서 시작돼 중국 역사상 가장 방대하게 영토를 확장했던 청(淸) 제국 형성의 역사는 “서로 다른 유전 형질을 가지는 세포조직이 하나의 생명체 안에 공존하는 유전자 혼재 생물”인 “‘키메라’ 생명체가 잉태되어 태어나고 자라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고 착안하고 이것을 밝혀나간 것이 이 책이다.먼저 관심을 갖게 되는 대목은,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흥기가 서양 제국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과 약탈의 부산물로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유입되기 시작한 은(銀)을 매개로 “지구적 규모의 교역 망(網)이 형성”되는 과정과 밀접한 관
최근 중국이 미국에 맞서는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고, 과거 오랜 동안 미국의 우산 아래에 머물던 아시아와 중남미 여러 나라들이 미국과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는데다가 미국 내부에서도 ‘몰락의 징후’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는데도, 미국 정치와 경제, 문화계 주류에서는 애써 이런 기류를 무시한다. 이것이 ‘오만한 제국’의 속성이다.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흑인은 인간 이하의 것들이다.’ 몇 백 년 전, 서양인들의 머릿속에 파고든 이런 생각은 4천만 명이나 되는 흑인의 목숨을 앗아간 대서양의 노예무역을 가능케 했다. 흑
조선시대 양반 부부들도 끈끈한 사랑을 나누며 살았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먼저 조선 유학자를 대표하는 퇴계를 보자. 오늘날 ‘퇴계 이황’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영남의 보수 집단을 연상하기 쉽지만, 막상 퇴계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만큼 다정한 사람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그는 죽음 전까지 어린 손자에게 편지를 썼던 자상한 할아버지였고, “낮에 의관을 차리고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밤에는 부인에게 꼭 토끼와 같이 굴었다. 그래서 ‘낮 퇴계 밤 토끼’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으며, 아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그 순간을 재치 있게 넘겨 심지어
우리 현대사에는 좌우와 남북 양쪽에서 환영받지 못한, 아니 모두에게 버림받고 그래서 오래도록 잊고 지낸 이름이 많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카리브해의 프랑스 식민지 출신으로 알제리 해방 운동에 뛰어들었던 인물 프란츠 파농에 주목하게 되는 것도 우리 현대사의 이런 상처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는 “축소와 확대라는 이중의 왜곡에 희생된 가장 불운한 사상가에 속한다. 먼저, 프랑스에서 파농은 너무나 불온해서 언급하기 거북한 인물이다. 그는 우파 쪽에서 보면 모국 프
이 책을 쓴 알렉상드르 졸리앵은 ‘트럭운전사 아버지와 가정부 어머니’를 부모로, 어려운 경제 환경에서 태어났다. 탯줄이 목에 감겨 질식사 직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뇌성마비를 갖게 되었고, 세 살 때부터 17년간 요양 시설에서 지냈고, 태어난 이래 하루도 어려움이나 문제에 부딪히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 그러나 이처럼 ‘불편과 고통, 난관에 수없이 부딪히면서’ 자신을 더 깊이 성찰하게 되고 철학에 빠져들었다.그는 5년 전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선(禪)을 만나고, 또 그 인연으로 아내와 함께 한국에 와서 살면서
이 시대 대표 사상가 신영복이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를 붙여 선물한 이 책은, 오래 전 그가 세상에 내놓은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에 이어 독자들과 함께 “우리가 일생 동안 하는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 ‘낡은 생각을 깨뜨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 그리고 세계와 자신을 변화시키는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을 떠난다.책 전체에 걸쳐 그는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어지지만, 변방이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강조한다. 이는 따로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을 낼 정도로 신영복의 사유와
엘살바도르. 가톨릭 국가이지만 저자의 동료 신부들 여섯 명이 대학 안에서 정부군에 살해될 정도로 처참한 고통과 슬픔의 땅인 이곳에서 이 책이 태어났다.과연 ‘해방신학’이 무엇인가. 옮긴이가 짧고 분명하게 정리한 대로, 해방신학은 “신앙의 그리스도보다 역사의 예수를, 구원보다 희망을, 부활보다 하느님 나라를, 예수의 고난보다 저항을 더 선호한다. 그리스도교보다 가난한 사람을 더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을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인류 역사의 중심이라고 여긴다. 가난한 사람의 운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현재도 그렇고 지나온 기독교 역사도